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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People)/영화배우 2014.02.04 22:14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Philip Seymour Hoffman) 사망, 아까운 연기파 배우에 대한 기억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Philip Seymour Hoffman) 사망,

아까운 연기파 배우에 대한 기억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Philip Seymour Hoffman)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어제밤 잠자리에 들면서

알게되었다. 순간 '아~! 또 아까운 배우 하나가 사라지는구나...맙소사!'였는데, 정말 너무 이른 나이에

그것도 난데없이 약물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몇일 전 그가

출연했던 영화들중에 '미션임파서블'을 포스팅하기도 했는데, 그 때만 해도 톰 크루즈를 중심으로 이야기

하면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란 배우의 인상적이었던 열연에 대해 아주 짧게 소개를 하고

넘어갔었다. 오랜만에 그를 언급하며 기억을 더듬기도 했지만 공교롭게도 설연휴가 끝나자마자 그가

돌연 약물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니 기가 찰 노릇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라는, 이름 조차 기억하기 어려운

이 배우에 대해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거라고 본다. 그도 그럴것이 핸섬하게 잘생긴

헐리우드 스타도 아닐뿐더러 통통한 마스크에 오로지 연기파 배우라는 수식어만 따라다니는 이 배우를

과연 몇명이나 기억할까. 하지만, 지난 2006년 개봉했던 미션임파서블 3라면 여기서 악역을

맡았던 배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을 기억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뜻밖의 악역이라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베트맨 다크나이트의 영원한 악당 조커 역의 히스 레저(Heath Ledger)

정도는 되어야 하는거 아냐'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적어도 천사와 악마 두 얼굴을 가진 몇 안되는 배우 중

한 명이었음에는 틀림없다. 때문에 미션임파서블3 가 개봉할 당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보여준

악역 '오웬 데이비언' 캐릭터에 대해 불안해하던 관객들의 마음이 쓸데없는 기우였음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본다. 당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출연했던 미션임파서블3

예고편을 오랜만에 다시 한번 감상해 보시기 바란다. 호불호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왜 그가 진짜 연기파 배우였는지 확인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2006년 개봉작 '미션임파서블3'에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악역이었다.

 

 

 

 

 

  

 

 

 

 

비록 날카로워 보일 정도로 마른 체구의 악당이 아니었던지라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미션임파서블3에서의 악역 이미지가 조금은 희석되어 보였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는 이 영화에서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열연을 통해 확실한 존재감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물론 이보다 앞서

2006년 소설가 트루먼 카포티의 일생을 다룬 전기영화 ‘카포티’(Capote)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바 있으니 그가 톰 크루즈의 상대역으로 미션임파서블3에 출연하게 된 것도 어찌보면 결코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때문에 이런 연기파 배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그를 추켜세웠던 많은 팬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악역 뿐 아니라 '다우트'(2008)에서처럼 마음씨 좋은 신부님 역활까지

두루 완벽하게 소화하던 연기파 배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사망이 요즘처럼 블럭버스터급의

오락물 위주의 영화들이 판치는 때일수록 더더욱 안타깝게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호프만이 출연했던 수많은 영화들 중에는 사실 단역과 조연으로 넘어간 90년대 영화들이 많다.

비교적 데뷔가 늦은 편이었던 그가 출연한 모든 영화들을 다 볼 수는 없었지만, 대작이 아니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영역에서 조연이던 단역이던 마다않고 연기내공을 갈고 다듬어왔던 배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데, 또 하나 추천할 만한 영화는 2008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최고의 여배우

메릴 스트립(Meryl Streep)과 함께 출연했던 영화 '다우트(Doubt)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출연한 영화들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작으로 종종 주위에

추천해주던 영화인데, 아시겠지만 메릴스트립은 헐리우드에서 최다 아카데미상 수상자로 꼽히는

이 시대 최고의 여배우이다. 그런만큼 그녀의 존재감만으로도 자칫 그가 밀리거나 묻힐 수도

있었겠지만, 호프만은 전혀 밀리는 것 없었다. 아래 영상을 한번 보시기 바란다.

 

 

 

 

▲ 영화 '다우트'(Doubt, 2008)에서 매릴 스트립과의 연기대결 중인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다우트
Doubt, 2008
미국
상영시간:104분
개봉일:2009년2월12일

감독:존 패트릭 샌리(John Patrick Shanley)

 

출연


메릴 스트립(Meryl Streep-알로이시스 수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Philip Seymour Hoffman-브렌단 플린 신부)
에이미 아담스(Amy Adams-제임스 수녀)
비올라 데이비스(Viola Davis-밀러부인)

 

 

 

 

 

 

 

 

메릴 스트립과 함께 주연으로 출연했다는 사실은 역시도 헐리우드에서 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주목받는 배우, 뛰어난 연기파 배우로 대접받을 수 밖에 없었는지를 여실히 증명하고도 남는다고 본다.

때문에 톰 크루즈의 상대역이었던 미션임파서블3 못지않거나 혹은 그 이상의 의미와 존재감이 빛났던

영화라고 평가하고 싶은 영화가 바로 2008년작 '다우트'이다. 영화는 시대극이라 할 수 있으며

영화라기 보다 문학작품에 더 가까운 작품성이 먼저 와닿는 영화이기 때문에 잔잔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겨주는 의미심장한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고 한다면 신앙과 구지 상관없더라도 꼭 볼만한

영화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남긴 유작 중 꽤 괜찮은 영화로 추천할 수 있겠다.

 

 

 

 

 

 

 

어쨌든,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이라는 배우는 지난 2014년 2월2일 사망했다.

일단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진 것으로 추정만 하고 있을 뿐 경찰은 아직 공식적으로 사망원인을

공표하지는 않았다. 다만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을 당시 헤로인이 상당량 발견되었고

헤로인 봉지에는 '에이스 오브 스페이드(Ace of Spades)' 또는 '에이스 오브 하츠(Ace of Hearts)'
라고 쓰여진 글귀가 있었는데, 두 가지 모두 엄청난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 일종의 진통제로

쓰이고 있어 마약류로 취급주의를 요하는 약물이라고 한다. 한 때 펜실베이니아 주에서는

이들 약물을 남용한 22명이 숨져 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향년 47세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너무도 이른 나이에 사망했는데 생전에

10살된 아들과 각각 5, 7세의 두 딸을 극진히 사랑하고 아꼈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의 말에 따르면

이미 호프만은 이전부터 무슨 이유에서인지 약물에 의존(헤로인 중독)하려는 증상으로 인해

갈등을 겪다가 집에서 쫒겨났다고 한다. 때문에 이날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사망한 집은

원래의 집으로부터 몇 블록 떨어진 곳에 거주하던 곳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말 그가 어떤 이유에서 약물과다복용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23년간이나

끊어온 술을 다시 마신다거나 사망하기 몇 주 전부터 이상한 행동을 보여온 것들까지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또 지난달 30일에는 애틀랜타의 한 바에서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고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고 공항에서도 고주망태가 된 모습으로 포착돼기도 했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사망했지만, 그는 2012년에는 '마스터'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도 세 차례 올랐으며 연극 무대에서도 활발히 활동해

토니상 후보에 세 번 올랐던, 정말 아직도 창창한 나이에 헐리우드에서 명망있는 명배우로 한창

활동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헝거게임2-캣칭 파이어'로 국내 영화팬들에게

인상적인 모습을 남기기도 했으며, 감독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고 최근에는 중년 남성의 행복

추구를 다루는 새 코미디 시리즈 '해피시'(Happysh) 출연까지 결정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었다.

그래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갑작스러운 사망소식이 더더욱 믿겨지지 않는 것이다.

어쨌거나 안타까운 마음은 금할 수 없지만 삼가 故人의 명복을 빌어본다. ▶◀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Philip Seymour Hoffman)
영화배우
출생:1967년 7월 23일(미국)
사망:2014년 2월 2일
신체:177cm

학력:뉴욕대학교 티쉬예술학교 드라마 학사
데뷔:1991년 영화 '트리플 보기 온 파 파이브 홀'


수상


2013년 33회 런던 비평가 협회상 남우조연상 수상
2012년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2006년 제7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출연작품


2015 헝거게임:모킹제이-파이트2
2014 모스트 원티드 맨
2014 헝거게임:모킹제이-파이트1
2013 가즈 포켓
2013 샐린저
2013 헝거게임:캣칭 파이어
2012 마지막 4중주
2012 마스터
2011 킹메이커
2011 머니볼
2010 잭 고즈 보팅
2009 존 카제일의 재발견
2009 거짓말의 발명
2009 메리와 맥스
2009 락앤롤 보트
2008 다우트
2007 세비지스
2007 시네도키, 뉴욕
2007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2007 찰리 윌슨의 전쟁
2006 미션 임파서블 3
2005 엠파이어 폴스
2005 스트레인저스 위드 캔디
2005 카포티
2004 폴리와 함께
2003 오닝 마호니
2003 콜드 마운틴
2002 러브 리자
2002 25시
2002 레드 드래곤
2002 펀치 드렁크 러브
2000 미스터 헐리웃
2000 올모스트 페이머스
1999 리플리
1999 매그놀리아
1999 플로리스
1998 넥스트 스톱 원더랜드
1998 몬타냐
1998 해피니스
1998 패치 아담스
1998 위대한 레보스키
1997 부기 나이트
1996 더 데일리 쇼 위드 존 스튜어트
1996 리노의 도박사
1996 트위스터
1994 노스바스의 추억
1994 남자가 사랑할 때
1994 겟어웨이
1993 위험한 행운
1993 조이 브레커
1993 쟈니와 미씨
1992 마이 뉴 건
1992 기적 만들기
1992 여인의 향기
1991 트리플 보기 온 파 파이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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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때리는영화/액션 드라마 환타지 2013.08.26 14:21

리버 와일드(The River Wild), 강을 따라 펼쳐지는 90년대 액션 영화 그리고 메릴 스트립






리버 와일드(The River Wild), 강을 따라 펼쳐지는

90년대 액션 영화 그리고 메릴 스트립

 

'리버 와일드'는 래프팅(Rafting)을 소재로 한 90년대 액션 영화다. 메릴 스트립이라는 대배우가

액션영화의 주인공으로도 등장을 했던 적이 있는데, 그게 바로 캐빈 베이컨과 함께 출연했던 1994년작

'리버 와일드'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는 이 블로그에서 종종 소개했던 아역배우 조셉 마젤로(Joseph Mazzello)

도 등장한다. 쥬라기공원에 나왔던 바로 그 꼬맹이다. 지금이야 어엿한 청년이 되어 미드 '퍼시픽'같은

전쟁영화에도 등장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메릴 스트립의 아들로 쥬라기공원 때처럼 작고 앳되만 보인다.

오늘 소개할 이 영화 속 주인공 메릴 스트립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일순위이다.

 

 

 

 

메릴 스트립의 영화는 전에 '메디슨카운티의 다리'나 '철의여인' 포스팅하면서도 소개한 바 있지만,

여배우로서는 정말 몇 안되게 가장 성공적인 명배우 중 한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그녀가 출연했던

'리버 와일드'가 떠올랐던 건 주말 TV 스포츠프로에서 조정경기 관련한 내용을 보면서다. 당시 이 영화를 볼 때

영화 도입부에 도심을 가로지르는 강가에서 힘차게 노를 젓던 매릴 스트립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요즘도 피서철이면 전국 주요 계곡과 강가에서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아마도 그런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영화 '리버 와일드'를 모를리가 없을 듯하다.

 

 

 

 

모든 래프팅은 스릴과 모험을 만끽하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레포츠이기도 하지만, 사실 위험도

만만치 않다. 구명조끼를 입어야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살은 속도도 장난 아니고

물 속 곳곳에 위험스러운 바위가 지뢰처럼 곳곳에 감춰져 있기 때문에 안정장비 착용은 필수다.

게다가 영화 '리버 와일드'에서도 나오지만, 국내는 해외 래프팅 장소에 비하면 아마추어 수준에 불과하다.

기가 막힌 절경을 자랑하는 곳일 수록 스케일도 장난 아니고 물살의 속도 또한 전문가가 반드시

동참해야 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다. 나 역시 진정한 래프팅은 그런 영화 속 절경이 펼쳐지는 곳에서

도전해 보고 싶다. 물론 체력이 허용만 한다라고 한다면 말이다. ^^;;

 

 

 

 

'리버 와일드'를 연출한 커티스 핸슨(Curtis Hanson)감독은 1992년작 '요람을 흔드는 손'을

연출했던 바로 그 감독이다. 리버와일드에 이어 1997년엔 커트러셀 주연의 LA컨피덴셜을, 그리고

가장 최근엔 2002년 에미넴의 영화 '8마일'을 연출하기도 했었다. 이후로 이렇다 할만하게 큰 대작을

선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 90년대 그의 대표작들은 분명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던 작품들이 많았다.

1997년 LA 컨피덴셜 하나만 가지고도 각종 비평가상을 싹쓸이 했을 정도로 감독상과 각본상을

모두 거머쥐기도 했었다. 그 정도 저력이 있는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기 때문에 리버 와일드는 최소한

기본 이상은 하는 영화이다. 메릴 스트립이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 볼만한 이유가 있다.

 

 

 

▲ '리버 와일드'(1993) 예고편. 매릴 스트립 출연

 

영화 '리버 와일드'(The River Wild)에 담긴 단어의 의미처럼 영화는 계곡의 물살을

따라 흐르듯 스토리 전개 또한 평온함에서 출발해 복병처럼 숨어있던 바위와 협곡을 만나기도

하고 절정에 가서는 그야말로 거칠고 험한 강물을 만난듯 격정적으로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것이

마치 진짜 래프팅을 하기라도 하듯 다이나믹한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됀다. 여름이 다 가고는

있지만, 올 여름 휴가철에 래프팅을 즐겼던 분들이라면 추억과 함께 온가족이 즐길만한

액션스릴러로 썩 괜찮은 90년대 영화라고 말할 수 잇겠다.

 

 

 

 

 

 

관련포스팅

 

1. 쥬라기공원(Jurassic Park, 1993), 공룡영화 속 아역배우 조셉 마젤로(Joseph Mazzello)

2.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 사랑은 이들처럼...

3. 마가렛 대처 사망으로 떠오른 영화 '철의여인'

 

 

리버 와일드
The River Wild, 1994  

미국
상영시간:108분
개봉: 1995년3월11일

감독:커티스 핸슨(Curtis Hanson)

 

출연

 

메릴 스트립(Meryl Streep), 케빈 베이컨(Kevin Bacon),
데이빗 스트래던(David Strathairn), 조셉 마젤로(Joseph Mazzello),
존 C.레일리(John C.Reilly)

 

 

 

 

줄거리

 

아이들과 함께 휴가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게일(Gail: 메릴 스트립 분)은 남편 톰

(Tom: 데이비드 스트래던 분)이 회사일로 바쁘자, 남편을 떼어놓은 채 아이들만 데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는 타본 강가로 떠난다. 결혼전 래프팅 가이드였던 게일은 여행객 웨이드

(Wade: 케빈 베이컨 분)를 만나 그들과 함께 강을 따라 래프팅하기로 한다. 그러나 남편 톰은 우여곡절

끝에 이 팀에 합류하고, 아이들은 소극적인 아빠보다 웨이드와 함께 있는 것을 즐긴다. 여행을 계속하는

동안 톰은 웨이드 일행에 불안을 느낀다. 게일과 톰은 이들을 떼어놓고 가족만의 여행을 하려 하나,

강도였던 웨이드 일행은 이들을 협박, 강의 하류로 도망치려 한다. 평온하던 가족 여행은 일순

인질극으로 변하고, 가족을 지켜야할 운명에 놓인 게일은 용감히 현실을 이겨낸다.

 

 

 

 

 

 

 

 

 

 

 

 

 

 

메릴 스트립
(Meryl Streep, Mary Louise Streep)
영화배우

출생:1949년 6월 22일(미국)
신체:168cm
가족:아들 헨리 검머, 딸 마미 검머
학력:예일대학교드라마스쿨 석사
데뷔:1977년 영화 '줄리아'
수상:2013년 피플스 초이스 어워즈 가장 좋아하는 무비아이콘

 

 

 

 

메릴 스트립은 전형적인 이스트코스트 사람으로 성장해 한때 오페라 가수를 꿈꿨다가, 바사

칼리지와 예일 대학을 거쳐 마치 운명처럼 배우가 되었다. 억양과 사투리를 흉내 내는 거의 로봇 같은

재주를 타고났고 의상과 분장만으로도 완전히 달라진 외양을 연출할 수 있는 그녀가 일구어 내는 노력들의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다. 사실상, 그녀의 연기를 묘사하는 데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하게

비판적인 말은 기계 같다는 것이다. 스트립이 연기라는 '생산품'을 찍어 내는 듯하다는 것인데, 그것은

순전히 그녀가 마치 컴퓨터로 디자인이라도 한 것처럼 매 연기마다 새로운 스타일의 화법과

정서적 태도를 만들어 보여 주기 때문이다.

 

 

 

 

아카데미의 여왕

 

메릴 스트립은 아카데미상 최다 후보 기록을 갖고 있다. 그녀는 14회 후보에 올라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 여우조연상, '소피의 선택'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79년에

처음 아카데미 상을 받았을 때 그녀는 너무나 들뜨고 흥분한 나머지 실수로 트로피를 화장실에 두고

나왔다고 한다. 베티 데이비스는 신인 시절부터 스트립을 높이 평가했는데, 캐서린 헵번은 싫어했던 게

분명하다. 흥미롭게도 스트립과 데이비스(10회 후보, 2회 수상)와 헵번(12회 후보, 4회 수상)은

아카데미 최다 후보 기록의 정상을 차지하는 여배우다.

 

 

 


스트립은 패자로서도 훌륭하다. 1987년에 그녀와 셰어가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셰어가 「문스트럭」으로 수상했을 때, 스트립은 벌떡 일어나 승자에게 박수를 보냈다.

셰어는 수상 소감을 말할 때 '실크우드'에서 함께 연기하면서 스트립이 보여 준 지지에 고마움을 표했다.

스트립은 또 골든글로브 최다 수상 (6회) 여배우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스트립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기간은 '헐리웃 스토리(1990'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사이의 5년뿐이다.
'엔젤스 인 아메리카(2003)'로 에미상을 수상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때로는 나조차도 내가 과대평가를 받았다고 생각되는 때가 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상작


Sophie's Choice(1982)
Kramer vs. Kramer(1979)
 
후보작


The Devil Wears Prada(2006)
Adaptation.(2002)
Music of the Heart(1999)
One True Thing(1998)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1995)
Postcards from the Edge(1990)
Evil Angels(1988)
Ironweed(1987)
Out of Africa(1985)
Silkwood(1983)
The French Lieutenant's Woman(1981)
The Deer Hunter(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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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때리는영화/2000년대영화 2013.04.09 09:47

마가렛 대처 사망으로 떠오른 영화 '철의여인'






마가렛 대처 사망으로 떠오른 영화 '철의여인'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하면 반드시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철의여인'이다. 이처럼 '철의 여인'으로 대표되던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가

8일(현지시간) 오전 향년 8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고 한다.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매우 중요한 인물이자 여러 면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유명인사의 죽음을

내 생전에 또 한번 목격하게 되었다. 어린시절 흑백TV를 통해 이따금 보도되는

내용을 보면서 그녀의 존재를 일찌감치 어린나이에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무상함마져 느껴지는 순간이다.

 

 

 


마가렛 대처 전 총리는 뇌졸증으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영국 근현대사에 있어 처칠 수상 다음으로 가장 위대한 총리 중 한명으로 기억되는

가운데 그녀는 영국국민들의 삶을 바꾸는 데 한평생을 바친 위대한 정치인으로

기억된다. 지난 2001년 뇌졸중 판정을 받았던 이후 공개 석상에 거의 나오지

않았는데 영국 왕실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크게 슬퍼했다고 한다.

 

 

 

 

바로 얼마전에 메릴스트립이 주연한 영화 '철의여인'을 보았던 기억이

생생한데, 잊고 지냈던 인사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이러한 일이 현실로 우리 눈앞에서 역사의 한 장으로 넘겨지게 되었다.

 

 

마가렛 대처
Margaret Hilda Thatcher
(1925.10.13~2013.4.8)

 

 

 

영국의 정치가로 교육·과학장관 등을 지내고 보수당 당수를 거쳐 영국

최초의 여총리가 되었다. 긴축재정으로 경제부흥을 이루고 획기적인 정책 추진과

독단적인 정부운영으로 '철의 여인'이라 불리며 3기라는 최장기 집권을 하였다.

 

 

 

▲ The Real Legacy of Margaret Thatcher, Britain's Iron Lady (생전의 대처)

 

옥스퍼드대학의 서머빌 칼리지를 졸업하고, 1951년 D.대처와 결혼하여

쌍둥이 남매를 두었다. 1953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 1959년 보수당 소속으로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961∼1964년 연금·국민보험부 정무차관, 1970∼1974년 교육·과학장관을

지냈다. 1975년 E.히스를 물리치고 영국 최초의 여성 당수(보수당)로 선출되었다.

1979년 노동당의 L.J.캘러헌 내각이 의회에서 불신임결의를 당하고 해산된 직후의

총선거에서 대처가 영도하는 보수당이 승리함으로써 영국 최초의 여총리에 취임하였다.

 

 

 

 

집권 후 긴축재정을 실시하여 영국의 경제부흥을 이룩하였고, 1982년의

포클랜드전쟁에서도 뛰어난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였다. 1983·1987년 실시된 총선거에서

보수당이 승리, 3기를 연임함으로써 영국 사상 최장기 집권의 총리가 되었다.

그 후 과감한 사유화와 노조의 와해, 교육·의료 등 공공분야에 대한 대폭적인 국고지원

삭감 등 획기적인 정책 추진과 독단적인 정부운영 등으로 ‘철(鐵)의 여인’이라 불리게 되었다.

1990년 유럽통합 반대입장을 고수하다가 당 지도부의 반발을 사게 되어 자진 사임하였으며,

1991년 5월 정계를 은퇴하였다. 1992년 남작 작위(케스티븐의 대처 남작)를 받고

귀족회의인 상원의원으로 활동을 재개하였다. 1986년 5월 한국을 방문하였다.

 

 

 

영화 '철의여인'

The Iron Lady, 2011

 

감독:필리다 로이드
주연:메릴 스트립, 짐 브로드벤트

 

 

 

 

영화 '철의여인'은 드라마로 보기에 탄탄한 시나리오가 돋보이는

영화다. 위대한 배우 '메릴 스트립'이 출연했다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러한 사실이

입증되는 셈인데, 일전에도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언급했었지만, 그녀가 선택하는

영화란 그 어떤 영화들보다도 최소한 내용면에서 실마을 주는 일이 없다.

흥행과 무관하게 늘 그래왔기 때문에 '마가렛 대처'라는 실존인물에 대한 일화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스토리가 매우 흥미롭다. 못보신 분들을 위해 꼭 추천해주고 싶다.

 

 

 

▲ The Iron Lady (2011) 영화 '철의영인' 메인 트레일러

 

영원한 '철의여인' 마가렛 대처의 사망과 더불어 떠오른 영화 이야기였지만,

근현대사에 있어 분명히 역사적 의미와 큰 족적을 남긴 위대한 철의여인, 마가렛 대처의

명복을 빌어본다. 우리나라도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일단은 탄생하긴 했는데....

이 부분은 정말 노코멘트 하고 싶다. 세월이 요즘 얼마나 하수상한지, 부러움과

아쉬움 등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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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때리는영화/액션 드라마 환타지 2013.01.17 23:08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 사랑은 이들처럼...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 사랑은 이들처럼...

 

21세기라는 것은 단지 숫적개념에 의한 단순배열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 시간이 거듭될수록 세상 모든것들은 그저 빠르게 흘러가야만 정상인 것일까.

문득 90년대 영화들을 포스팅하다보면, 근래의 영화들은 속도가 매우 빠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1995년작으로 원래 클린트 이스트우드식 영화만들기는 한템포

느린 듯한 여유를 한껏 보여줘 왔는데, 오랜만에 다시 꺼내 보니 더욱 늘어지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극 전개는 매우 느린 편이다. 때문에 요즘 영화에 길들여진 사람들이라면,

정말 한가할 때 나름대로 인내를 가지고 보아야할 지도 모를 영화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왕년에 누구보다 빠르게 총을 뽑아들던 황야의무법자 답지 않은

행보를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신의 영화만들기에서 고집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만의 연출기법과 다루고 있는 소재는 하나같이 현대인들이 잊고 살아가는

아주 값진 그 무엇을 84세라는 노감독이 의미심장하게 들려주는, 할아버지 또는 어르신이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와도 같다는 것이다. 그만큼 깊은 깨달음의 공명음이 전해진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1995


개봉: 1995.09.23 
상영시간: 135분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로버트 킨케이드),

메릴 스트립(Meryl Streep-프란체스카 존슨),

애니 콜리(캐롤라인)

 

나만의 평점: 9.12 ★★★★☆

 

 

 

▲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Trailer(1995)

 

영화 '메디슨카운티의 다리'(The Bridges of Madison County)는 로버트 제임스 윌러가

쓴 실화소설이다. 1960년대 미국 아이오와 주의 메디슨 카운티를 배경으로 하며 책으로 출간

되었을 때도 영화를 본 여운이 너무 강한 나머지 한번 더 읽어본 기억이 난다.
극중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커버디자인을 위한 사진을 찍으려고

워싱턴에서 온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를 연기했고 평범한 시골아낙인 이태리계 가정주부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과의 나흘간의 사랑을 다루었던 영화다. 원작이 1992년 발표되었고,

1995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순수함이 갈수록 사라져가는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영화를 보고 있는 그대로의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 얼마나 남아있을까하는 궁금증이 먼저 떠오른다.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아직 혼탁하게 오염되지 않았다는

증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보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면 그저 너무 앞만 바라보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니 말이다.

차라리 부족하고 모자라 아직 세상을 잘 몰랐을 때 가져보았음직한 그런 여유와 열정이

서툴렀을지언정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마져 드니 말이다.

 

 

 

 

지금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보면서, 어쩌면 거의 모든 여자들(주부)은 이 짧은

러브스토리 처럼 '나도 저런 사랑 한번 해보고 죽었으면 원 없겠다.'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당시 이 영화 후반에서 보여주었던 가장 인상적인 엔딩씬에서 처럼 만일 프란체스카가

남편을 버리고 사진작가 로버트를 따라 문을 박차고 나가 함께 차를 타고 떠나버렸더라면

과연 그들은 행복했을까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했었다. 그랬다라면 두 사람은

행복했을지 몰라도 아마 영화자체는 완전 삼류로 전락하는 B급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무슨무슨 부인 바람났네'라는 식으로 말이다.

 

 

 

 

여전히 빗 속에 서서 말 없이 생각에 잠겨 고뇌하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떠나는 남자를 바라만 보며 눈물을 삼켜야 했던 메릴 스트립의 그 연기장면은 다시 보아도 가슴

속에 뭔가 뜨거운 것이 울컥이게 만든다. 특히 좌회전 신호를 기다릴 때, 앞차에서 룸미러에

목걸이를 걸며 말 없이 함께 가자고 애원하는 남자와 문을 잡고 갈등하는 여자의 대사 없는 연기.

이걸 뭐라 말로 표현하기 참 어렵다. 우리나라 여인네들의 '한(恨)'같은게 느껴졌다라고

해야할까. 마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남자인 나로서도 울컥한데

여자들의 심정은 오죽했을라고. 그 장면 다시 보기로 한다.

 

 

 

▲ bridges of madison county... her sacrifice

 

  

 

 

 

 

 

 

 

 

 

 

 

 

 

 

 

이런 장면들에 대한 연출이나 정서는 참 서구적인 것들에 익숙하게 길들여져 온

우리 입장에서는 뜻밖이기는 하지만 낯설지않고 오히려 우리 정서와 너무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호응이 클 수 밖에 없었다. 어찌보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전반적으로 그가 보여주는

작품세계와 철학을 보았을 때 전생에 동양인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 그가 담아내는

이야기들은 서쪽보다 동쪽에 훨씬 가깝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래서 이름도 이스트우드일까?(EAST WOOD)-_-;;

 

 

 

▲ Johnny Hartman - For all we know (OST)

 

 

 

 

위 음악은 기억하시는 분들이 좀 계실 것이다. 이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주제곡으로

재즈 선율이 아주 멋드러지고 운치있게 기억에 남아있는데 극중에서 보여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분위기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었고 극중 배경이 된 한적한 전원풍경과도 잘 어울린다 생각

했었는데 이 곡은 조니 하트먼(Johnny Hartman)이 부른 곡이다.

재즈에 관심없던 분들이라 해도 이 운치있는 곡을 통해 관심가져 보시기 바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 1930.5.31 ~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연출을 맡고 주연배우까지 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오클랜드 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벌목장 인부, 소방수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끝에 군대에 다녀온 후 LA로 가서

1954년부터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트럭 운전을 하면서

단역 배우로 영화에 출연해 연기 경력을 쌓았다고 한다. 그러던중 1959년 CBS방송국에서

방영한 서부 연속극 '로하이드'(1959∼1966)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1964년 할리우드식(式) 서부극과는 다른 서부극을 만들고자 하던 이탈리아 감독

세르조 레오네의 눈에 띄어 '황야의 무법자'라는 마카로니웨스턴 영화에 출연했다.

이와 함께 뒤이어 출연한 '석양의 무법자'(1965), '속 석양의 무법자'(1966) 등이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서 냉소적인 총잡이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확고히 하였다. 이후 이미지 변신을 위하여
돈 시겔 감독의 갱스터무비 '더티해리'(1971)에 출연하였다. 이후 시겔 감독에게서

감독이 되라는 권유를 받고 1971년 맬파소 프로덕션이라는 제작사를 차려 사이코 스릴러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1971)로 감독으로 데뷔하였다.

 

 

 

▲ 왕년에 그는 무서운 총잡이 였고 서부영화의 대표적 아이콘이기도 했다.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용서받지 못한 자'는 서부영화를 결산하는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1986년부터 2년간 카멜시(市)의 시장을 지냈고, '사선에서'(1993)에 배우로서 출연하였다.
그 후에'퍼펙트 월드'(1993),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 '앱솔루트 파워'(1997)를 감독하여
흥행에 성공을 거두기도 했고, 이후 2004년작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안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크게 성공했다. 연이어 2006년에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아버지의 깃발' 그리고

 2008년 '그랜토리노', '체인질링', 2010년 '히어애프터'에 이어 2012년에는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까지 84세라는 노익장을 과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죽기 전에

한편이라도 더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듯 엄청난 다작을 하고 있다.


 

 

 

또 한명의 주연배우 메릴 스트립(Meryl Streep, 1949.6.22 ~  ).

연극, 텔레비전, 영화 등 각종 매체에서 활동하는 미국의 여배우로 현대 여배우들 중

가장 재능 있고, 가장 존경받고 있는, 내가 좋아하는 헐리우드 여배우 중 몇 안되는

배우 중 한명이다. 1977년 영화 '줄리아(Julia)'로 영화에 데뷔하여 1978년의 '디어 헌터'

(The Deer Hunter)와 1979년의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Kramer vs. Kramer)에서는 관객들은 물론

평론가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디어헌터로 처음 아카데미 상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로 처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1982년 '소피의 선택'

(Sophie's Choice)로 마침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최근 201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철의 여인으로 생애 3번째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메릴 스트립은 아카데미 상에 16번 노미네이트 되었고, 3번 수상했으며,

골든 글로브 상은 25번 노미네이트 되어 7번 수상했다. 역사상 다른 어떤 배우도 두 상을

이만큼 많이 노미네이트 받지 못했다. 그 외에도 스트립은 2회의 에미 상,

2회의 미국 배우 조합상, 1회의 칸 영화제 영화상, 4회의 뉴욕 비평가 협회상, 5회의 그래미 상

노미네이션, 영국 영화·텔레비전 예술 협회상, 세자르 영화제 공로상, 베를린

국제 영화제 은곰상 등등을 수상했다.

 

 

 

 

오랜만에 다시 살펴본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보면서 문득 나도 늙으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멋지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물론 내면적으로 말이다.

젊어서는 젊어서만으로도 빛이나고 광이 난다지만, 늙어서의 멋이란 따로 있다고 믿는다.

서두에서 언급했듯 아름다운 것을 볼 때는 아름다움을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순수한 빛을 잃지않는 눈과 가슴을 갖는 한, 얼마든지 멋지게 늙어갈 수 있을거라

믿어보며 오늘 90년대 영화 포스팅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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