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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People)/영화배우

영화 데미지(Damage)로 정신적 충격을 안겨준 줄리엣 비노쉬(Juliette Binoche)

영화 데미지(Damage)로 정신적 충격을 안겨준 줄리엣 비노쉬(Juliette Binoche)

 

영화 '데미지'를 본게 아마도 1994년 겨울쯤이었던 것 같다.

내가 줄리엣 비노쉬를 알게된 것도 이 영화 '데미지' 때문이었으며, 사실 그 이전에

'퐁네프의 연인들'이 개봉했을 당시엔 군바리 신분이라 기회를 놓치고 나중에서야

이 영화를 통해 알게된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파급적 소재로 개봉전부터시끌했었고 

필름도 어지간히 잘라서 개봉됐었다. 당시 VTR비디오 테잎을 통해 영화 '데미지'를

보았을 때의 충격은 매우 컸다. 요즘 같아서야 이 정도쯤이야 싶어할지는 몰라도

당시로서는 도덕적,윤리적 잣대로나 그 때까지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잡아 뒤흔들기에 

충분한 소재였다. 때문에 처음엔 나 역시도 그런 혼란을 빗겨갈 수는 없었으나

이후 줄리엣 비노쉬는 은근한 매력으로 젊은 날의 내 영혼을 일깨우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잠시 내 곁에 다가와 속삭이던 아름다운 여배우 중 한명이었다.

(개인적으로 인정하고 손꼽는 여배우는 조금 많이 인색한 편이다.)

 

 

 

 

줄리엣 비노쉬

Juliette Binoche

 

1964년 3월 9일 프랑스 태생. 신장: 168cm

학력: 파리국립연극원

데뷔: 1983년 영화 'Liberty belle'

수상: 2010년 제63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2001년 제14회 유럽영화상 베스트 유러피안 여우주연상

 

 

 

 

1992년에 만들어진 영화 '데미지'(Fatale, Damage, 1992)가 지난해 2012년 11월 1일 근

20년만에 재개봉했었다. 이 때까지도 이 영화의 존재를 몰랐던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루이 말(Louis Malle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제레미 아이언스(Jeremy Irons)와

줄리엣 비노쉬(Juliette Binoche)의 파격적인 연기에 어떻게들 반응했을지 궁금하다.

111분의 상영시간을 갖는 영화 데미지는 당시 제18회 LA 비평가 협회상 1992년, 음악상

(지그뉴 프레이즈너(Zbigniew Preisner)), 제57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1992년,

여우조연상(미란다 리차드슨(Miranda Richardson))등을 수상했었다.

관객 평점보다 평론가들 사이에서의 평점이 더 높은 편인데 대략 8점대로 나온다.

 

 

 

 

 

▲ '데미지' 19금 예고편 Damage (1992) trailer

 

 

 

▲ Damage US Trailer - Juliette Binoche 1993

 

사실 줄리엣 비노쉬가 출연했던 영화들 중에는 '데미지' 말고도 인상적인 작품이 많다.

앞서 언급한 '퐁네프의 연인들' 말고도 수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1988년 작품

'프라하의 봄'을 손꼽는다. 그 외에 1986년작 '나쁜 피'도 매우 인상깊게 보았다.

이 영화를 계기로 아마도 줄리엣 비노쉬가 나온 영화는 모조리 찾아 탐닉했다고 해야 할

정도로 90년대 내가 좋아했던, 작품성 있는 영화 속에는 줄리엣 비노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잖이 컸다. 그만큼 당시엔 내 영혼 조차 적어도 지금보다는

매우 자유롭지 않았던가 다시금 상기해보게 된다.

 

 

 

 

 

▲ 당시 포스터는 파격 그 자체였다. 포르노그라피를 방불캐하는 설정에

정말 말도 많았다. 선정적인 것으로만 바라볼 것만은 아니었는데, 의례 대중은

작가의 의도나 작품성 이전에 눈에 보이는걸 먼저 따져묻기에 당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에와서 다시 보아도 므흣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걸 딱 한 마디로 표현하고 싶다.

 

'격정적 사랑'(또는 치명적 사랑)

 

 

 

 

 

 

 

 

 

 

 

 

 

 

 

영화를 보신 분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처음부터 끝이 보였다.

하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있어 감독의 노련함은 역시 달랐다.

그저 통속적이고 삼류소설로 추락할 법도 한 소재를 예술적으로 잘 승화시킨데에는

제레미 아이언스와 줄리엣 비노쉬 같은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 덕이 아니었을까.

언제나 그러했지만, 줄리엣 비노쉬는 역시도 영화 속 캐릭터 그 자체로 자신을 동일화시키며

완벽하게 빙의하는 탁월한 몰입력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매력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부분이

아닐까 하는데 그녀는 이지적이면서도 감성을 겸비한 연기로 유명하듯 이런 이지적

외모 속에서도 감성적인 모습을 연기할 때면 독특한 백치미가 유난히도 보는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1980년대 누벨이마주를 주도한 프랑스의 영화감독 레오 카락스(Leos Carax)의

1991년 작품으로 드니 라방(Denis Lavant)과 줄리엣 비노쉬(Julliette Binoche)가 주연을

맡았던 '퐁네프의 연인들' 영화를 포스팅할까 했지만, 얼마전 재개봉했던 이 영화가 문득

떠올라 오늘 그렇게 포스팅하며 내가 한 때 매우 좋아했고 사랑했던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에 대해 재조명하고 싶었다.

 

 

 


그녀는 1964년 3월 9일 프랑스 파리에서 무대감독인 아버지와 영화배우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예술학교를 졸업한 뒤, 1985년 앙드레 테시네 감독의

'랑데뷰 Rendez-vous'에 출연하면서 연기자로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그 뒤 레오 카락스

감독의 '나쁜 피(Mauvais sang)' '퐁네프의 연인들' (Les Amants du Pont-Neuf) 등을 통해

강렬하고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으며,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공연한 '프라하의 봄'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제러미 아이언스와 공연한 루이 말 감독의

'데미지'(Damage) 등의 영화에서 이지적이면서도 뜨거운 감성을 겸비한 연기를 선보였다.

 

 

 

 

1993년 폴란드의 거장 키에슬로프스키의 세 가지 색 시리즈 중 '블루' (Trois couleurs: Bleu)

에서 남편과 아이를 잃은 슬픔에 직면한 작곡가를 연기하여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고, 1997년에는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잉글리시 페이션트'(The English Patient)로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얼마전 포스팅했던

'쉰들러리스트'의 나찌장교 '랄프 파인즈'와 열연했고 난 그걸 극장에 가서 보았다.

세월이 흐르다보면 과거에 아무리 명성이 자자했고 빛을 발하던 배우도 마치 하늘의

태양이 노을을 드리우며 석양으로 지듯 찬란했던 시기를 뒤로하게 되어 있다.

가장 아름답게 빛나던 배우도 황혼을 드리운다고 해서 슬퍼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황혼의 노을 또한 그 나름대로 매우 아름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