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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People)/유명인사 2013.05.03 11:55

성철 스님 친필 유시 18년만에 회수 소식






성철 스님 친필 유시 18년만에 회수 소식

 

성철 스님의 친필 유시가 도난당해 사라진지 18년만에 회수에 성공했다 한다.

1993년 입적한 성철 스님이 생전 남긴 친필 유시가 18년 만에 회수되기는 했는데

어찌된게 이처럼 유명인사가 남긴 유품을 도난하려 드는 사람들이 꼭 있다.

도대체 사는 내내 어떤 깨달음도 신념도 좌우명도 없을 사람들 같다.

여기서 유시란 타일러 가르치는 글을 말한다.

 

 

 

 

평소 특별한 종교에 얽메이거나 편승하는 편은 아니고 조심스러운 영역

이기도 한데, 성철 스님 이야기가 나와 관련기사를 읽던 중 성철 스님 친필 유시가

18년만에 회수되었다고 해서 반길만한 희소식인지라 이런 소식은

포스팅해서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종교라는건 때론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과 맞물릴 때 혼탁한 이야기로 뻗어나가기

쉽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개인적으로 어떤 종교던 비판할 때는 가차없이 비판하기도 하는

편인데, 종교는 인간을 위한 종교여야 하지, 종교를 위한 인간이 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편이다. 종교종파를 떠나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나 지질학적으로나 전통적으로

동양적 토테미즘 사상이 너무도 뿌리깊이 박혀있는지라 이게 종교와 한번 잘못 맞물리다 보면,

이따금 신상화하거나 신격화하려 드는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종교를 위한 종교 내지는

무작정 숭배하는 성향들을 발견할 때마다 염증을 느끼는 편이다.

하지만 종교 종파를 떠나 존경할만한 분이라면 누구든 관심있게 보는 편이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밝힌 바에 따르면, 성철 스님 친필 유시를 훔친

이모(57)씨를 절도혐의로 입건하고 이씨로부터 유시를 사들인 공모(65)씨를 장물취득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서울 종로구 모 스튜디오의

보조 사진사로 일하던 지난 1995년 1월 성철 스님 일대기에 넣을 사진자료 촬영 중

유시를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이씨는 공소시효 만료를 기다렸다

범행 17년여 만인 지난해 1월20일 공씨에게 유시를 판매했다.

 

 

 

 

종로에서 미술품 경매업체를 운영하는 공씨는 성철 스님 친필 유시가

장물임을 알고도 1000만원을 주고 사들였다. 성철 스님 친필 유시는 지난해 3월

경매에서 2100만원에 낙찰됐다. 성철 스님 친필 유시는 1981년 8월 불국사와

월정사 주지 임명 과정에서 작성됐다. 당시 성철 스님은 주지 임명을 둘러싼 불협화음에

67.2㎝, 세로 68.7㎝ 종이에 ‘지계청정(持戒淸淨·계율을 지키되 맑고 깨끗하라’

‘화합애경(和合愛敬·서로 화목하게 어울리고 공경하고 사랑하라)’

‘이익중생(利益衆生·부처님 가르침대로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라)’

이라는 가르침을 적었다. 

 

 

 

 

당시 성철 스님을 모시던 원택스님은 성철 스님에 관한 책자를 발행하기 위해

평소 알고 지낸 유명 사진작가에게 유품 촬영을 맡겼다. 이씨는 촬영 뒤 남겨진 유시를

몰래 챙겼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훔치려던 것은 아니다. 촬영 장소에

남기고 간 것을 보관해 오다 돈이 될 것 같아 돌려주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씨의 절도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이미 만료돼 형사처벌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편 회수된 성철 스님 친필 유시는 당시 두 점 작성됐지만 현재 한 점만 남아있다.

조계종 종단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귀중한 기록 유산으로 평가된다.

 

 

 

 

 

성철
性澈


호: 퇴옹(退翁)
출생-사망: 1912년 ~ 1993년 11월 4일

출신지:경상남도 산청

본관:합천(陜川)

대표관직:해인총림 초대 방장, 조계종 제7대 종정

 

본관은 합천(陜川). 속명은 이영주(李英柱). 호는 퇴옹(退翁). 법명은 성철(性澈).

경상남도 산청 출신. 아버지는 상언(尙彦)이며, 어머니는 진주(晉州) 강씨(姜氏)이다.

8년 동안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행하는 등 평생 철저한 수행으로 일관하였으며

돈오사상(頓悟思想)과 중도사상(中道思想)을 설파하였다.
 
성철은 열 살 무렵부터 유서(儒書)를 읽고 각종 경서를 독파하였다.

1930년진주중학교를 졸업하고 청소년기에 이르자 동서양의 철학·문학·논리학 저서를

탐독하였다. 1935년경영가(永嘉)의 '신심명증도가(信心銘證道歌)'를 읽고 지리산의

대원사(大願寺)에 가서, 거사로서 수행하다가 출가하였다.
 
해인사 백련암에서 혜일(慧日)을 은사로 모시고 수계·득도한 뒤,

10년간 금강산의 마하연사, 수덕사의 정혜선원, 천성산의 내원사, 통도사의 백련암 등에서

안거를 지냈다. 1940년 29세 되던 해에 동화사 금당에서 동안거 중 견성하고,

1941년부터 1963년까지 송광사, 파계사 성전암, 봉암사, 묘관음사, 문수암

천제굴 등에서 수십 회 안거를 지냈다.
 
1993년 11월 4일 열반하였으며, 다비 후 진신사리가 수습되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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