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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People)/유명인사

구글 회장 래리 페이지(Larry Page)의 성공이 부러운 대한민국, 아직도 IT강국이라고 믿나?

구글 회장 래리 페이지(Larry Page)의 성공이 부러운

대한민국, 아직도 IT강국이라고 믿나?

 

앞서 네이버 규제와 관련한 글을 포스팅 하면서 '구글(Google)'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언제고 기회가 되면 모든 면에서 국내 최악의 포털 네이버와 비교 돼는 글로벌 기업

'구글'과 창업자이자 현재 회장을 맡고 있는 래리 페이지, 그리고 '페이지랭크'란 기술을 개발했던

그의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들이 창업을

준비하던 비슷한 시기에 전 세계는 인터넷 열풍과 더불어 IT붐이 폭발적으로 일어 났었고

대한민국도 한 때는 잠깐이지만 세계가 부러워하는 IT강국일 때가 있었다.

 

  

 

 

물론 지리적 특성이나 국민적 속성으로 IMF를 막 극복하고 일어나 침체된 경기에

활력을 가져올 무언가를 모색해야 했던 우리나라의 경우는 좁은 땅덩어리 덕에 그런 IT강국

으로의 기반을 닦을 수 있는 인프라 구성이 비교적 다른 국가에 비해 쉬운 편이었고

또 당시 국민의정부 시절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을 필요로 하는 염원에 의해 수 많은 벤처와

IT산업을 육성 및 장려하고자 하는 관심과 열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구글'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자신들이 개발한

백럽(BackRub)기반 검색엔진을 들고 여러기업의 문을 두드렸으나 번번히 거절당하자, 자신들이

직접 회사를 차리자며 여자친구의 자동차 차고에 사무실을 내고 초라하게 창업했지만, 오늘날 전 세계

데이터 센터에 100만 대가 넘는 서버를 갖추고 명실상부 최고의 IT 기업으로 성장했다. 흔히

미국을 '기회의 땅'이라고 말하지만, 정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해야 할 듯 하다.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창의적인 노력에 대한 댓가가 확실한 이런 국가 시스템이 결과적으로

이들을 배양해 낸 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진정한 IT강국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에 반해 대한민국은 요즘 흔히 역사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다고 푸념하 듯 IT시계가 무슨

귀뚜라미 보일러도 아니고 정말 거꾸로 돌아가 버렸다. MB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정통부를 폐지하더니

그 자리에 새로운 국가성장동력으로 '삽자루'를 꽂아버렸기 때문이다. 이건 인터넷 하면 '네이버'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정말 그랬다라면 소통부재의 일방적 공산주의적 발상이다.

때문에 결국엔 네이버 규제까지 온 것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말이 규제이지 솔직히 안믿는다.

IT강국은 무슨 얼어죽을 소린지 모를 일이다. 참신함과 창조적 가치라도 돋보이면 좋으련만,

정확히 말해 네이버를 주축으로 기형화됀 낚시 공화국으로 전락했다. 오죽하면

야후(YAHOO)가 두손 두발 다 들고는 짐 싸서 한국을 떠나버렸을까. ㅋㅋㅋ

 

 

 

 

'구글'이 세계 무대에 뛰어들어 최고의 기업으로 고속 성장하는 동안 네이버도

몇몇 해외진출의 노력은 했었다. 하지만 몇번 고배를 마시는가 싶더니 이내 국내에 엉덩이 깔고

주저 앉아 버렸다. 현실에 일찌감치 안주한 것이다. 그리고는 수많은 벤처들의 기회를 빼앗아

가면서까지 거대한 공룡으로 성장했다. 결국 이번에 정치권의 네이버 규제를 통해

네이버 공룡이 최후를 맞을지는 미지수이다. 십중팔구 엄포 쌩쇼로 끝날 것이고 또 그렇게 

넘어가겠지만, 결국에는 언젠가 싸잡아서 망할 날이 올 것이라고 본다.

 

 

 

 

 

 

 

 

  

     

 

 

 

구글(Google) 창업자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

 

래리 페이지(Larry Page)의 스탠포드대학교박사학위 논문을 위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이 가담하면서 두사람이 공동으로 개발하였다.

페이지는 미시간에서 출생하였고 그의 부모님은 미시간대학교 컴퓨터과학부 교수였다.

세르게이는 6살 때 미국으로 이민온 러시아인이었으며 그의 부친은 메릴랜드대학교

수학 교수였고 어머니는 미항공우주국(NASA)에 과학자로 근무했다.

 

 

 


이런 부모의 영향으로 세르게이는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두사람은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연구하면서 인터넷 검색분야에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고안했다. 그들의 프로젝트는 백럽(BackRub)이라고 불렀는데 웹상에서 링크된 정보를 분석하여

자신의 웹페이지에 누가 접근하여 링크되어 있는지 알수 있도록 해준다는 생각이었다.

또한 링크된 페이지에 링크 숫자를 분석하여 랭킹(ranking)을 나타내도록 했다. 두사람은백럽의

결과에 따라 그것으로 인해 인기가 높은 사이트와 낮은 사이트를 구분하여 서열을 매겼고

이것을 인터넷 검색 결과에 인기가 높은 순서대로 적용하였다.

 

 

 


이런 검색 결과는 당시 인기 높았던 알타비스타(Altavista)나 야후(Yahoo)의

검색보다 뛰어난 검색 결과값을 얻게 되었다. 알타비스나와야후는 텍스트 형태소 검색 결과

값만을 고려하였고 다른 신호는 검색결과를 만드는 신호로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페이지랭크(PageRank)라고 명명하였으며 구글(Google)이라는 검색엔진을

개발하는 바탕이 되었다. 구글은 'googol'에서 따온 말로, 10의 100승을 의미하는데 이는

수많은 웹페이즈를 검색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대규모 하이퍼텍스트 웹 검색엔진의 해부(Anatomy of a large-Scale Hypertextual

Web Search Engine)'라는 논문을 발표하였고 그들의 검색기술을 팔기위해 여러 업체에

제안하였지만 모두 거절되었다. 얼마후 자신들이 직접 창업을 하기로 결정하고 지도교수의 소개로

앤디벡톨샤임(Andy Bechtolsheim:썬마이크로시스템 창립자)를 만나 10만불을 투자받게 되었다.

1998년 9월 7일 마침내 구글을 설립하였고 세르게이브린 여자친구의 차고에 사무실을

마련하였다. 이후 구글은 점차 유명세를 타게 되었으며 1999년 2500만 달러 투자를

유치하면서 실리콘벨리에서주목받게 되었다.

 

 

 


한동안 수익모델이 없어 구글의 성공여부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으나

2001년 애드워즈(Adwords)라는 검색광고를 수익모델로 도입하자 구글은 인터넷 광고시장을

빠르게 점유해 나갔다. 2001년 래리 페이지를 대신할 CEO로 선마이크로시스템과 노벨에서

최고경영자로 일한 경력이 있는 에릭슈미트를구글의 CEO로 영입하였다. 당시 인터넷 기업은

극심한 침체기였지만에릭슈미트 영입 이후 구글은에드워즈가 점차 광고효과를 발휘하며 계속 흑자를

이어갔다.구글은 사진 공유 서비스인 피카사(Picasa), 위성지도를 서비스하는 키홀(Keyhole) 등의

업체를 인수하였고 구글이미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점차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구글은 약 30억개의 인덱스를 보유하면서 전세계 약 40개의 언어로 검색서비스를 제공했다.
구글은 직원들에게 업계 최고의 대우와 복지를 제공했으며 실리콘벨리의 대부분 IT기업들이 심한

불황을 겪을 때에도 구글은 계속 성장했다. 2003년 애드센스 광고서비스를 시작하였고 애드워즈처럼

검색광고로 성공하였다. 하지만 구글은 이런한 성공의 이면에는 많은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검색 신뢰도를 내세운 기업이었지만 검색 결과를 두고 구글댄스(Google Dance)라는 비판과 함께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었으며, 또한 개인정보가 쉽게 노출되어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마침내 2004년 8월 19일 나스닥에 상장하였고 2개월이 지나자 주식값은 두배로 올랐다.
2006년 세계최대 동영상 사이트인 유투브를 인수하였고 2007년 미디어랩인 더블클릭을 인수하면서

종합미디어 기업으로 변모하였다. 2011년 8월 15일 모토로라(Motorola)의 휴대전화 사업부를 인수하면서

휴대폰 하드웨어 개발력을 함께 갖추게 되었고 모바일 시장에도 구글의 사업 영역이 확장되었다.

 

 

 

 

구글의 이러한 성공에 대한 비판론도 제기되었다. 구글이 인터넷 검색시장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와 거만하고 오만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구글의 성장은 계속되었다. 2011년 에릭 슈미트가 구글 CEO에서 물러나고

래리 페이지가 10년만에 다시 CEO로 복귀하였다. 현재 구글은 전 세계 데이터 센터에 100만 대가 넘는

서버를 갖추고 있으며, 매일 10억 건 이상의 검색이 구글을 통해 이루어진다.구글 도메인은

2010년 현재 150여 개에 달하는데, 도메인을 처음 등록한 것은 1997년 5월이었다.
현재의 본사는 캘리포니아 마운틴 뷰에 있는데, 2006년 이곳으로 이전했다.

 

 

 

 

래리 페이지

(Larry Page, Lawrence E. Page)
기업인
출생:1973년 3월 26일(미국)
소속:구글 (CEO, 최고경영자)
학력:스탠퍼드대학교 대학원 컴퓨터공학 석사
수상:2002년 세계경제포럼 내일을 위한 글로벌 리더
경력:2011.01~ 구글 CEO, 최고경영자
구글 제품부문 사장
검색엔진 구글 공동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