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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People)/영화배우 2013. 2. 5. 11:20

배우 류승룡, 영화 7번방의 선물로 흥행배우 입증






배우 류승룡, 영화 7번방의 선물로 흥행배우 입증

 

언제부터인가 배우 류승룡이 출연했다하면 흥행이 입증된다는 설이 돌기 시작했다.

어제 4일 기준으로 이번에 새로 개봉한 영화 '7번방의 선물'의 경우도 400만 관객을 훌쩍

돌파했다는 소식이 올라왔는데, 7번방의 선물은 지난 1월23일 개봉하여 지난 주말

전국 859개 상영관에서 136만 801명의 관객을 모아 누적관객 419만 1천 879명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더우기 코미디쟝르로 이런 기록은 일찌기 없었기에 더 놀랍다. 또한

화제작 '베를린'에는 밀려 박스오피스에서 한 계단 내려왔어도 개봉 12일만의 성적

치고는 오히려 더 위력적이란 이야기가 된다. 이렇듯 한국 영화계에 배우 '류승룡'이

어느 순간부터 흥행보증수표 처럼 통하고 있어 이 배우에 대해 살펴보았다.

 

 

 

 

배우 류승룡은 1970년 11월 29일 생으로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출신이다.

동기로는 정재영이나 신동엽, 황정민 등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상대적으로 어째 좀

노안이라는 생각은 든다. 1986년부터 연극과 뮤지컬 배우로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2004년 장진 감독의 영화'아는 여자'를 통해 영화계에 데뷔했다. 좀 늦깎이 데뷔다.

현재 프레인TPC 소속으로 2013년 영화 '광해 왕이된남자'로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서울종합예술학교 연기예술학부 교수로 몸담고 있기도 하다.

 

 

 

 

배우 류승룡은 개성 넘치는 마스크와 묵직하게 깔리는 음성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화에 있어 조연을 맡더라도 언제나 비중있는 역활로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최근 1000만관객 반열에 오른 '광해 왕이된남자'

에서도 도승지 '허균'역을 아주 매력적으로 잘 소화해낸 듯 하다.

 

 

 

 

그런가하면 2011년 '최종병기'활'에서 청나라 장수로 액션도 원만하게 잘

소화해냈고 '고지전'에서의 인민군 장교역도 썩 잘 어울렸다. 그런가하면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보여준 코믹연기 또한 능수능란하게 잘 소화해내어

그가 그저 무게나 잡을줄 아는 배우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 보였고 가장 최근에는

최민식이 이순신 장군 역으로 나오는 김한민 감독의 영화 '명량-회오리바다'를

촬영중인데 '사극(史劇)에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대로 화재가 되고 있는 '7번방의 선물'은 400만 관객을 단숨에 뛰어

넘었다고 하는데 주연을 맡아 그가 가진 모든 끼와 재능을 얼마나 보여주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개인적으로는 '명량-회오리바다'가 더 기대되긴

하는데 앞으로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흥행배우'로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있는 그의 행보가 어디까지 펼쳐질지 지켜볼만하다.

 

 

 

▲ 월드 오브 탱크 TV 광고 90초 광고영상

 

 

 

 

[류승룡 출연작들]

 

2004 아는여자

2005 박수칠때 떠나라
2006 열혈남아
2006 거룩한 계보
2007 별순검
2007 천년학
2007 황진이
2008 바람의화원
2009 아이리스
2009 7급공무원
2009 시크릿
2009 굿모닝 프레지던트
2009 불신지옥
2010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2010 베스트셀러
2010 평양성
2011 고지전
2011 아이들...
2011 최종병기 활
2012 광해, 왕이된 남자
2012 내 아내의 모든 것
2012 명량-회오리바다
2012 7번방의 선물

 

그외 다수.

 

 

 

 

 

 

 

 

 

  

 

 

  

 

 

 

 

 

▲ 요건 아는 후배가 하는 카페에 다녀가면서 남긴 싸인이다. 최민식과 더불어

원두커피를 좋아하는 배우들이 많다. 유명 카페는 시간날 때 꼭 들른다.

 

 

 

 

 

 

 

 

 

인물(People)/영화배우 2013. 2. 4. 22:24

영화 데미지(Damage)로 정신적 충격을 안겨준 줄리엣 비노쉬(Juliette Binoche)






영화 데미지(Damage)로 정신적 충격을 안겨준 줄리엣 비노쉬(Juliette Binoche)

 

영화 '데미지'를 본게 아마도 1994년 겨울쯤이었던 것 같다.

내가 줄리엣 비노쉬를 알게된 것도 이 영화 '데미지' 때문이었으며, 사실 그 이전에

'퐁네프의 연인들'이 개봉했을 당시엔 군바리 신분이라 기회를 놓치고 나중에서야

이 영화를 통해 알게된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파급적 소재로 개봉전부터시끌했었고 

필름도 어지간히 잘라서 개봉됐었다. 당시 VTR비디오 테잎을 통해 영화 '데미지'를

보았을 때의 충격은 매우 컸다. 요즘 같아서야 이 정도쯤이야 싶어할지는 몰라도

당시로서는 도덕적,윤리적 잣대로나 그 때까지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잡아 뒤흔들기에 

충분한 소재였다. 때문에 처음엔 나 역시도 그런 혼란을 빗겨갈 수는 없었으나

이후 줄리엣 비노쉬는 은근한 매력으로 젊은 날의 내 영혼을 일깨우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잠시 내 곁에 다가와 속삭이던 아름다운 여배우 중 한명이었다.

(개인적으로 인정하고 손꼽는 여배우는 조금 많이 인색한 편이다.)

 

 

 

 

줄리엣 비노쉬

Juliette Binoche

 

1964년 3월 9일 프랑스 태생. 신장: 168cm

학력: 파리국립연극원

데뷔: 1983년 영화 'Liberty belle'

수상: 2010년 제63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2001년 제14회 유럽영화상 베스트 유러피안 여우주연상

 

 

 

 

1992년에 만들어진 영화 '데미지'(Fatale, Damage, 1992)가 지난해 2012년 11월 1일 근

20년만에 재개봉했었다. 이 때까지도 이 영화의 존재를 몰랐던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루이 말(Louis Malle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제레미 아이언스(Jeremy Irons)와

줄리엣 비노쉬(Juliette Binoche)의 파격적인 연기에 어떻게들 반응했을지 궁금하다.

111분의 상영시간을 갖는 영화 데미지는 당시 제18회 LA 비평가 협회상 1992년, 음악상

(지그뉴 프레이즈너(Zbigniew Preisner)), 제57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1992년,

여우조연상(미란다 리차드슨(Miranda Richardson))등을 수상했었다.

관객 평점보다 평론가들 사이에서의 평점이 더 높은 편인데 대략 8점대로 나온다.

 

 

 

 

 

▲ '데미지' 19금 예고편 Damage (1992) trailer

 

 

 

▲ Damage US Trailer - Juliette Binoche 1993

 

사실 줄리엣 비노쉬가 출연했던 영화들 중에는 '데미지' 말고도 인상적인 작품이 많다.

앞서 언급한 '퐁네프의 연인들' 말고도 수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1988년 작품

'프라하의 봄'을 손꼽는다. 그 외에 1986년작 '나쁜 피'도 매우 인상깊게 보았다.

이 영화를 계기로 아마도 줄리엣 비노쉬가 나온 영화는 모조리 찾아 탐닉했다고 해야 할

정도로 90년대 내가 좋아했던, 작품성 있는 영화 속에는 줄리엣 비노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잖이 컸다. 그만큼 당시엔 내 영혼 조차 적어도 지금보다는

매우 자유롭지 않았던가 다시금 상기해보게 된다.

 

 

 

 

 

▲ 당시 포스터는 파격 그 자체였다. 포르노그라피를 방불캐하는 설정에

정말 말도 많았다. 선정적인 것으로만 바라볼 것만은 아니었는데, 의례 대중은

작가의 의도나 작품성 이전에 눈에 보이는걸 먼저 따져묻기에 당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에와서 다시 보아도 므흣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걸 딱 한 마디로 표현하고 싶다.

 

'격정적 사랑'(또는 치명적 사랑)

 

 

 

 

 

 

 

 

 

 

 

 

 

 

 

영화를 보신 분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처음부터 끝이 보였다.

하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있어 감독의 노련함은 역시 달랐다.

그저 통속적이고 삼류소설로 추락할 법도 한 소재를 예술적으로 잘 승화시킨데에는

제레미 아이언스와 줄리엣 비노쉬 같은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 덕이 아니었을까.

언제나 그러했지만, 줄리엣 비노쉬는 역시도 영화 속 캐릭터 그 자체로 자신을 동일화시키며

완벽하게 빙의하는 탁월한 몰입력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매력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부분이

아닐까 하는데 그녀는 이지적이면서도 감성을 겸비한 연기로 유명하듯 이런 이지적

외모 속에서도 감성적인 모습을 연기할 때면 독특한 백치미가 유난히도 보는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1980년대 누벨이마주를 주도한 프랑스의 영화감독 레오 카락스(Leos Carax)의

1991년 작품으로 드니 라방(Denis Lavant)과 줄리엣 비노쉬(Julliette Binoche)가 주연을

맡았던 '퐁네프의 연인들' 영화를 포스팅할까 했지만, 얼마전 재개봉했던 이 영화가 문득

떠올라 오늘 그렇게 포스팅하며 내가 한 때 매우 좋아했고 사랑했던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에 대해 재조명하고 싶었다.

 

 

 


그녀는 1964년 3월 9일 프랑스 파리에서 무대감독인 아버지와 영화배우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예술학교를 졸업한 뒤, 1985년 앙드레 테시네 감독의

'랑데뷰 Rendez-vous'에 출연하면서 연기자로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그 뒤 레오 카락스

감독의 '나쁜 피(Mauvais sang)' '퐁네프의 연인들' (Les Amants du Pont-Neuf) 등을 통해

강렬하고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으며,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공연한 '프라하의 봄'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제러미 아이언스와 공연한 루이 말 감독의

'데미지'(Damage) 등의 영화에서 이지적이면서도 뜨거운 감성을 겸비한 연기를 선보였다.

 

 

 

 

1993년 폴란드의 거장 키에슬로프스키의 세 가지 색 시리즈 중 '블루' (Trois couleurs: Bleu)

에서 남편과 아이를 잃은 슬픔에 직면한 작곡가를 연기하여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고, 1997년에는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잉글리시 페이션트'(The English Patient)로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얼마전 포스팅했던

'쉰들러리스트'의 나찌장교 '랄프 파인즈'와 열연했고 난 그걸 극장에 가서 보았다.

세월이 흐르다보면 과거에 아무리 명성이 자자했고 빛을 발하던 배우도 마치 하늘의

태양이 노을을 드리우며 석양으로 지듯 찬란했던 시기를 뒤로하게 되어 있다.

가장 아름답게 빛나던 배우도 황혼을 드리운다고 해서 슬퍼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황혼의 노을 또한 그 나름대로 매우 아름답기 때문이다.

 

 

 

 

 

 

 

 

 

 

 

 

 

 


 

인물(People)/영화배우 2013. 1. 21. 23:00

알랭 들롱(Alain Delon), 현존하는 세기의 대표적 미남배우






알랭 들롱(Alain Delon), 현존하는 세기의 대표적 미남배우

 

오늘 우연히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주제곡을 차에서 듣다가 배우 '알랭 들롱' 생각이 났다.

아마도 현존하는 금세기 최고의 미남배우로 손꼽는데 누구도 주저함이 없을 줄로 안다.

그런 미남배우 알랭 들롱(Alain Delon)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전혀 들려오는 소식도 없이

세인들 사이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해서 오늘 그를 떠올려보고자 한다.

1935년생이니 어느덧 그의 나이도 80을 바라보는 78세 노인이다.(우리 장인어른 나이네. -_-;;)

우리는 어린시절 그를 '아랑드롱', '알랑드롱' 등 다양한 발음으로 불렀지만, 공식적으로는

'알랭 들롱'이 맞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는 바로 '태양은 가득히'이다.

프랑스 출신의 영화배우, 가수, 영화감독, 영화연출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고, 전 세계를

통털어 최고의 미남배우, 미남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는 한때 가수활동을 하며 음반을

발표도 하였으며, 1999년 스위스 시민권을 취득하여 현재는 스위스 시민권자 신분으로

노후를 조용히 보내고 있다고 한다. 요즘 세대는 우리나라에 장동건이 있기 훨씬 이전에

전설적인 미남배우로 세계를 주름잡던 '알랭 들롱'이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려나?

하긴, 장동건에게서도 살짝 그런 삘(Fill)이 날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차원이 좀 다르다.^^

 

 

 

알랭 들롱

(Alain Delon)

출생: 1935년 11월 8일 (프랑스)
신체: 182cm
데뷔: 1957년 영화 'Quand la femme s'en mele'

 

 

▲ Plein Soleil (1960) - Trailer with Theme 알랭들롱의 대표작 '태양은 가득히' OST.

 

 

 

 

알랭 들롱이 출연했던 영화 '태양은 가득히'는 1960년 작품으로 원제는 'Plein Soleil'

또는 'Purple Noon'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합작해 만든 작품으로

르네 클레망이 감독했고 상영시간은 118분에 알랭 들롱 외 마리 라포레, 모리스 로네 등이

출연했다. 국내에서는 2004년 5월 11일에 재개봉 했었다.

아마도 1960~70년대는 순전히 그의 시대였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며, 일본을 위시로

아시아에서도 미남의 기준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을 정도였다. 어차피 아시아에서는

서구 문화에 대한 열등감으로 지금도 더러 그런 습성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모든 문화의 가치와

기준, 미학의 잣대는 오로지 그런 서구문화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고 특히 영화배우에 있어

아직까지도 가장 아름다운 배우, 잘생긴 배우 그 이상으로 알랭들롱은 영화계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고 확연히 전설적 존재로 남아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시대의 변천과 흐름에 따라 조금씩 그런 틀이나 형식은 바뀌어왔고 지금의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그 기준이 또 확연히 달라졌음을 인정해야겠지만

적어도 앞선 세대에서는 그렇게 강하게 인식되어 왔던게 사실이다.

그야말로 미남의 대명사 그 자체였다.

 

 

 

 

어찌보면 알랭 들롱이 이처럼 최고의 미남배우로만 우리의 기억 속에 머무르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편으로 드는데, 그 이유는 지금 보여주는 이런 모습들

모두가 최고의 전성기 시절, 젊음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화려하게 빛나던 모습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도 신이 아닌 이상 사람이라 늙게 되어있다. 물론 중년 이후 나이 들어

가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과 오히려 주름이 더해지면서 젊은 날의 그 모습과는 다른 또다른

깊이있는 내면의 모습들을 보여주기까지 했으니 이 또한 팬들에게는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피워볼 마지막 불씨조차도 남지 않았고 모두가 지난 날의 영욕이라

생각해서인지, 알랭 들롱은 조용히 스위스로 넘어가 황혼을 맞이하고 있는 듯하다.

 

 

 

 

하필이면 입수한 최근의 알랭 들롱 사진이 상대적으로 너무 초라해 보인다. ㅠ.ㅠ 
그냥 노인일 뿐이다. 하지만 이 또한 전혀 가식이나 꾸며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현재 모습이니,

보여지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듯 싶다. 물론 알랭들롱은 최근까지도 토크쇼나 TV방송출연도

열심히 하면서 나름대로 분주하게 살고있다. 오히려 이쯤에 와서는 평범하게 조용히 살다가기를

더 바랄지도 모른다. 다만 일반인에 비하면 워낙 온갖 수식어로 화려했던 만큼,  지난 세월의

그 어떤 영욕과 영예도 늙어지면 모두가 다 부질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순간

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젊은 날엔 젊음 그 자체만으로도 누구나 아름답다고 했다.

하지만 늙어서는 어느 누구라도 어쩔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이렇듯 간단하게나마 문득 떠올랐던 알랭 드롱에 대해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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