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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People)/스타 2014.01.15 17:57

최철호 음주 후 난동 불구속 입건, 안타까운 사극전문 배우






최철호 음주 후 난동 불구속 입건, 안타까운 사극전문 배우

 

 

최철호가 음주 후 난동을 부려 불구속 입건되었다는 불미스러운 소식이 또 들려왔다.

'또(?)'라는 말은 잘 나간다 싶을 때면 이따금 이런 저런 불미스러운 일로 구설수에 오르길 반복했기

때문이다. 사극전문 배우로 상당히 좋아하는 배우 중 하나인데 이처럼 자꾸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니

살짝 밉상이라는 생각마져 들려고 한다. 2009년 대하드라마 '대조영'에서 걸사비우로 출연해

이글거리는 눈빛과 귓전을 울리는 그 목소리가 딱 사극전문 배우구나 싶었는데 그 직후에도

안좋은 일로 한동안 자숙해야 했던 것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배우 최철호가 이번에도 음주 후 난동을 부리고 불구속 입건되었다는 소식에 대해서

물론 소속사측은 억울해하는 입장이다. 지난 14일 새벽 술을 마시고 술집에서 나와 차문을 열다가

바로 옆차에 상철르 냈고 이 때문에 차주인 다른 손님과 말다툼이 좀 있었다고 한다.

결국 경찰서에까지 가서 차주와 원만한 합의까지 보고 파손 비용을 모두 물어주고 귀가했는데

이런 보도가 또 터져나왔다는 것이다. 원래 연예계 소식에 특종을 쫒는 하이에나 기자떼가

상주하는 것은 알지만 재수 또 옴붙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게 다 최철호가 사극전문배우이기 전에, 좋게 말하면 열혈남아이기 때문에

자꾸만 벌어지는 사건들인 듯 싶다. 대게 연예계에서 최철호 처럼 혹은 최철호 이상으로

혈기를 누르지 못하는 자칭 '상남자' 스타일의 배우들은 종종 이런 구설수에 휘말린다. 일반인들

같으면 주먹다짐 좀 하고 깽값(?) 물어주면 그만이겠지만 연예인들은 한번 재수없게 걸릴라 치면 끝도

없고, 심지어 연예계생활 접을 각오까지 불사해야 한다. 야인 최민수도 대표적인 케이스 중

하나인데, 그러고보니 최철호도 최씨다. ㅠ.ㅠ 성씨를 걸고 넘어질 생각은 결코 없다.

 

 

 

 

 

 

아뭏든 좋게 보면 참 남자다운 매력이 넘치는 배우들이 이따금 이런 불상스러운 일을

겪게 되는데 대해 좀 조심 좀 하지. 안타깝다 하는 생각들이 든다. 일반인이라고 해도 조심해야 할

판국인데 요즘같은 세상엔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연기에

몰입도가 높은 배우들이 그러고보면 현실에서도 탈이 좀 나는건 아닐까도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보자면 대조영을 맡았던 최수종은 완전무결에 가까울 정도로 사생활이 조용한 편이다.

 

 

 

 

▲ 배우 최철호가 출연했던 대하사극 '대조영' ost (어머니의 나라-주병선)

 

 

 

▲ 대종영에서 '걸사비우' 역의 최철호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최철호가 이번에도 음주후 난동을 부려 입건되었다는 보도도 좀 억지측면이

없잖아 있기야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겠느냐는 말까지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배우로서는 무척 좋아하는 사극전문배우 최철호가 또다시 이런 일에 휘말리는 건 팬 입장에서

정말 너무나 안타깝다. 2010년에도 대조영이 막을 내린 직후에 후배 연기 지망생을 폭행했다는 구설수에

휘말려 일시적으로 방송활동을 중단한 바 있는데 2년간 봉사활동을 하며 자숙의 시간을

보냈음에도 또 이런 일이 터지니 참 안타까울 따름이다.

 

 

 

 

 

 

 

 

 

 

최철호는 근래 종편 드라마로 활동을 재개했고 최근에는 MBC '스캔들'을 통해

지상파 드라마로 복귀한 바 있다. 최철호는 드라마 '야인시대', '천추태후', '불멸의 이순신', '대조영',

'내조의 여왕' 등으로 얼굴을 알렸었다. 특히 대조영에서 걸사비우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를

많은 팬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15일 첫 방송되는 KBS '감격시대:투신의 탄생'에 카메오로 출연할

예정이었다. 이번 일을 다시 한번 계기로 삼아 조심 또 조심하여 앞으로도 유망한

사극전문배우 최철호의 모습으로 팬들에게 보답했으면 한다. 최철호 화이팅!!

 

 

 

 

 

 

  

 

 

 

 

최철호
탤런트, 영화배우
출생:1970년 3월 2일
신체:182cm, 70kg
소속사:오피스제로
수상:2009년 KBS 연기대상 남자 조연상
데뷔:1990년 연극 '님의침묵'
특기:검도

 

 

 

인물(People)/유명인사 2013.12.06 20:02

넬슨 만델라 타계, 흑인인권운동가이자 남아프리카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






넬슨 만델라 타계, 흑인인권운동가이자 남아프리카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

 

 

넬슨 만델라 타계 소식에 전 세계인의 애도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헐리우드의 유명배우 중

한 사람인 모건 프리먼과 흡사한 외모를 가지기도 했던 넬슨 만델라가 타계한건 지난 6월 폐

감염증으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 지난 9월 호조를 보여 퇴원했으나 병세가 깊어져 오늘 12월5일

사망한 것이다. 이로써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인권 운동에 힘썼던 위대한

정치가였던 넬슨 만델라의 타계 소식에 전 세계 인권운동가는 물론이고 자유를 갈망하는 수많은

지구촌 자유주의자들의 상실감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안갈 정도의 상황이 벌어졌다.

 

 

 

 

 

 

넬슨 만델라는 1918년 7월18일생으로 올해 96세를 일기로 타계한 것인데, 그는 평생을

인종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노력한 공로가 인정되어 지난 199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넬슨 만델라 타계 소식에 영화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를 통해 넬슨 만델라와 인연을

쌓은 헐리우드 스타 배우 모건 프리먼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 우리는 지난 세기의 진짜 거인을

잃었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영예의 인물이며, 정복할 수 없는 힘, 타협하지 않는 결의를 가진

사람이다. 자유와 인간 존엄을 소중히 하는 모든 사람들의 영웅이다'라는 장문의 추도 글을

올리기도 했는데, 모건 프리먼은 그만큼 넬슨 만델라와 여러면에서 외모도 닮은 스타일인데다

그의 철학에서부터 이념까지 존경을 아끼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넬슨 만델라 타계를 즈음해서 그의 생애를 간단하게나마 살펴보았다.

넬슨 만델라는 1918년 트란스케이 움타타에서 템부족(族) 족장의 아들로 태어나 1940년

포트헤어대학 재학 중 시위를 주동하다 퇴학당한 뒤 1944년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청년연맹을

창설하였다. 1952년 비백인(非白人)으로서는 처음으로 요하네스버그에 법률상담소를 열고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반대운동에 나서는 등 본격적으로 흑인인권운동에 참가하였다.

 

 

 

 

 

 

 

또 넬슨 만델라는 1952년과 1956년 두 차례에 걸쳐 체포되기도 했는데 1960년 3월

통행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던 흑인 69명이 무차별 사살된 샤프빌 흑인학살 사건을 계기로

평화시위운동을 중단하고 무장투쟁을 지도하게 된다. 만델라는 61년 지하 무장조직인

'움콘토 웨 시즈웨'를 결성해 전국적인 파업과 게릴라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흑인 해방을 위해 무기를 든 지 17개월 만인 62년 8월 체포된 넬슨 만델라는

1964년 6월 리보니아 재판소에서 국가 전복기도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1979년 옥중에서

자와할랄네루상(賞), 1981년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1983년 유네스코의 시몬 볼리바 국제상을

받았으며, 1990년 2월 석방때까지 27여년간을 복역하면서 세계인권운동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1991년 7월 ANC 의장으로 선출된 뒤 실용주의 노선으로 선회하여 드 클레르크의

백인정부와 협상을 벌여 350여 년에 걸친 인종분규를 종식시켰다.

 

 

 

 

 

 

이러한 공로로 93년 드 클레르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며, 1994년 5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참여 자유총선거에 의하여 구성된 다인종 의회에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일반적인 우려와 달리 유혈참극을 거치지 않고 남아공을 소수백인지배에서 민주주의로

전환시킨 위대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1999년 6월 퇴임했다. 저서로 자유를 위한 투쟁

의지를 밝힌'투쟁은 나의 인생:The Struggle is My Life'(1961)과 자서전 '자유에의 먼 도정:

Long Walk to Freedom'(1995) 등이 있다. 넬슨 만델라 타계 소식은 역시도 자유를 갈망하는

전 세계 많은 자유주의자들에게 희망과 아쉬움을 동시에 남겨주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넬슨 만델라 타계 소식에 고인의 명복을 빌어 본다.

 

 

 

 

 

 

 

넬슨 만델라
(Nelson Mandela)
전 국제기관단체인, 전 정치인
출생:1918년 7월 18일(남아프리카공화국)
사망:2013년 12월 5일
학력비트워터스랜드대학교 법학 학사
수상2006년 국제 앰네스티 양심대사상
1993년 노벨 평화상경력1998.09~1999.06 비동맹운동 사무총장

 

 

 

 

 

 

 

 

 

 

 

 


인물(People)/유명인사 2013.10.29 22:38

김주하 아나운서 하차, 시어머니와 신랑의 폭력 앞에 무너지나






김주하 아나운서 하차, 시어머니와 신랑의 폭력 앞에 무너지나

 

김주하 아나운서가 하차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요며칠 전부터 난데 없이 믿기 힘든

소식이 들려오는 바람에 설마했었는데 김주하 앵커의 이혼소송, 결혼9년만에 파경위기 등의

헤드라인 뉴스는 루머도 아니었고 오보도 아닌 사실이었다. 외모만 보아서는 모든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뭐 하나 부족할 것 없이 완벽하기만 한 김주하 앵커였는데 참 안타깝게 됐다.

실제로 지금도 여대생들에게는 가장 닮고 싶은 사람 중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에

이런 날벼락 같은 소식이 더더욱 믿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김주하 아나운서의 경제뉴스 하차 소식은 오늘 나온 소식이지만, 세간의 사람들은

완전무결에 가깝던 MBC의 간판급 스타 아나운서가 왜 갑자기 그런 이혼소송에 휘말리게

되었는지에 대해 더 궁금해하는 분위기였다. 확실한 내막은 워낙 사생활 노출을 꺼리는 부분도

있고 유명인사이다 보니 더더욱 외부시선에 부담을 느껴 잘 알려진게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흘러나온 보도들만 들여다 보아도 김주하 아나운서가 겉으로 대중들에게

보여졌던 모습과 달리 사생활에 있어서는 남편의 상습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최근 미국에 사는 시어머니까지 가세함으로써 폭행을 둘러싼 시비가 불거지기도 했다.

 

 

 

 

 

사람 사는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는 하지만, 김주하 아나운서는 그래도 어쨌거나

상징적으로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있어 다른 세상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일반인들

사는 모습과 별반 다를바 없는 그런 일들에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고 하니 씁쓸한 마음이앞선다.

전문가들은 김주하 앵커 처럼 사회적 성공과 지위를 누리는 전문직 여성들일 수록 이번에 알려진

바와 같이 가정폭력이나 가정불화설에 더욱 민감하다고 전한다. 그도 그럴것이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만 놓고 보아도 자신의 흠결이 대외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칫 가정폭력과 같은 문제들이 내부로 더 곪아 기어이 이번 일 처럼

급기야 더 이상 감추거나 피할 수도 없는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 최근 김주하 아나운서 하차 소식과 함께 들려온 이야기들

 

어쨌든 김주하 아나운서의 사생활에 대해서 더 이상 궁금해 할 필요도 없지만 오늘

김주하 아나운서가 하차했다는 소식은 큰 아쉬움을 남긴다. 김주하 앵커의 후임으로 유선경

아나운서가 MBC의 '경제뉴스'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유선경 아나운서는 프리랜서이다. 

그리고 김주하 앵커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현재 소속 부서인 인터넷 뉴스부 업무를
맡게 될 것이라고 전해졌다. 참 세상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ㅠ.ㅠ

 

 

 

 


김주하
방송기자, 전 앵커
출생1973년 7월 29일(서울특별시)
소속MBC (기자)
가족배우자 강필구, 아들 강준서, 딸 강준
학력이화여자대학교 과학교육학 학사
수상2009년 제2회 더 우먼 오브 타임 어워드 올해의 여성상
경력2013.04~ MBC 뉴미디어국 인터넷뉴스부 기자

 

 

 

 


이화여자대학교 과학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1997년 11월 MBC에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입사 후 2000년 10월까지 굿모닝 코리아, 피자의 아침 등의 보도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2000년 10월

30일부터는 MBC 뉴스데스크의 평일 앵커로 활동하였다. 앵커 활동 중 2004년 6월에는 아나운서국

소속 아나운서에서 사내 직종 전환을 통해, 보도국 소속 기자로 전직하였다.
이후 출산 휴가문제로 2006년 3월 3일, 결국 MBC 뉴스데스크의 평일 앵커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2007년 3월 17일, 정확히 1년 만에 주말 뉴스데스크의 단독 앵커로 발탁되었다.
이후 1년여간을 진행해오다가, 2008년 3월 24일부터는 육아문제와 관련한 개인 사정으로 인하여,

MBC 뉴스24로 자리를 옮겨서 해당 프로그램을 단독 진행하였으나, 2011년 12월 7일의

둘째 아이의 출산 준비를 목적으로 2011년 11월 18일의 뉴스 진행을 끝으로 하차했었다.

 


 

인물(People)/스타 2013.10.22 21:10

국악신동 송소희, 통신사 광고 모델로 두각보이며 '국악계의 아이유'로 통해






국악신동 송소희, 통신사 광고 모델로 두각보이며 '국악계의 아이유'로 통해

 

국악신동 송소희! 언제부터인가 TV에서 모 통신사 모델로 등장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을 때

한 눈에 확실하게 '삘'꽂히더라니 어느새 대중들에게는 이미 '국악계의 아이유'로 통하고 있다고 한다.

다 좋은데 왜 하필 비유가 '국악계의 아이유'인지...개인적으로는 표현이 적절치 못하다 싶은 생각이

앞선다. 사실 언제부터인가 국악은 요즘같은 미디어 범람의 시대를 살면서 완전히 등떠밀리며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아왔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악신동 송소희의 등장으로 다시금 판이 요동치며 국악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반응이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국악신동 송소희는 최근 모 통신사의 광고에 등장하면서 국악계의 아이돌스타로 대접받고는 있지만

사실 이전에 이미 KBS2TV '남자의 자격'이나 SBS '스타킹'에도 출연해 화재를 모은바 있다. 그래서 눈썰미 좀

있다는 사람들이라면 한 눈에 송소희를 알아보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빼어난 미모는 어찌보면 영화배우

정려원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국악을 한다고 해서 옛스럽게 생기거나 하지도 않다. 차라리 근래 퓨전사극이라

불리우는 빼어난 사극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도 전혀 손색없을 정도의 외모를 갖추었다.

 

 

 

 

또 국악신동 송소희는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왠만한 기성국악인 못지 않은 출중한 실력까지

겸비했으니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옛날 같았으면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고 해야 했을까? 국악을 하는

사람더러, 그것도 아직 미성년인 사람한테 이런 표현을 하는것도 참 상서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튼

한 마디로 실력도 있는데 미모 또한 아주 빼어나고 신세대 다운 면모를 두루 갖추었다고 보여진다.

그래서인지 모든 연령대를 두루 통털어 상당히 인기가 좋다. 특히 어르신들은 물론이거니와

중장년 층 사이에서도 "캬아~! 잘한다. 이뿌다!"라는 칭찬이 쏟아진다.

 

 

 

▲ 국악신동 송소희 - 풍년가 & 태평가, 2013년9월16일 가요무대의 한 장면

 

모 통신사의 휴대폰 광고와 국악인 송소희는 안어울릴듯 하면서도 아주 썩 잘 어울리는 묘한 조화를

선보였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요즘처럼 국악이 무관심을 넘어 천대(?)마져 받을만큼 외면시하는 풍토 속에

이처럼 약관의 나이에 예사롭지 않은 길을 간다는 자체부터가 이채롭다. 하기사 요즘 처럼 오디션 프로가 판치고

수많은 젊은 남녀들이 그리로 쏠리는 판국에 차라리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 훨씬 자신을 알리고

성공으로 한걸음 훌쩍 다가갈 수 있는 지름길인 것 만큼은 사실이다. 물론 그 길 역시 힘겹고 순탄치만도 않아

타고난 바가 없으면 아무나 갈길도 아니기는 하지만, 지나친 과찬일지는 몰라도 국악인 송소희야말로

하늘이 내렸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재능도 미모도 운세 또한 잘 타고 났으니 말이다.

 

 

 

 

 

 

 국악인 송소희는 1997년생으로 현재 호서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지난 2010년 14세라는

약관의 나이에 '한국을 빛낸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송소희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서

장녀로 태어나 5세 때부터 국악과 시조부분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일찌기 이광수,

박석순, 이호연 씨로부터 시조와 민요를 사사 받았고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소녀 명창 혹은 국악신동 송소희로 통하고 있다.

 

 

 

▲ 송소희 - 정선아리랑 외 17곡 연속, 민요모음 (51분35초)

 

국악은 산업화가 거듭될수록 사실 현대인들로부터 자꾸만 멀어지고 또 멀어지는 듯 했다.

지난 1993년 임권택감독의 '서편제'가 개봉하여 백만관객을 뛰어넘었을 때만해도 정말 숱한 화제를 불러

모았고 국악과 판소리에 대한 인기가 절정을 이루었었다. 요즘에 비하면 백만관객에도 요란법석을 떨었던

때가 있었다. 당시 서편제 인기에 힘입어 모 CF광고에 출연했던 명창 박동진 선생이 말했던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여~!"가 큰 유행어로 사람들 사이에서 화자되기도 했었다.

 

 

 

 

그러고보니 국악인이 CF등에 나왔던건 국악신동 송소희가 처음도 아니긴 하다. 어쨌거나

세월이 갈수록 우리의 멋과 우리의 소리에 젊은 세대들이 전혀 무관심한 채 서양의 것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모습들이 안타깝기도 했던게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오디션 프로를 매우 싫어하는 이유가 꼭 그런것 때문은

아닌데, 적어도 국악인 송소희와 같이 아무리 낡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도 현대적 감각으로 조금만 다듬어도

얼마든지 새롭게 재탄생하는 것을, 원숭이 처럼 너무 서구의 것들을 그냥 무조건 쫒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이건 내가 국수주의자도 아니고 수구도 아닌 예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평소 안타깝게

생각했던 부분들이었다. 때문에 국악인 송소희의 등장과 그녀의 비상을 바라보며 왠지 흐믓하고

가상하고 또 가상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송소희가 잠깐의 인기에 영합되어지다가

스러짐 없이 영원토록 한국을 대표하는 명창, 국악인으로 건실하게 성장하길 바랄 뿐이다.

 

 

 

 

 

송소희

(So Hee Song)
국악인
출생:1997년 10월 20일(충청남도 예산)
학력:호서고등학교 (입학, 2013~ )

임성중학교 (졸업)
덕산초등학교 (졸업)
수상:2010년 한국을 빛낸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경력:양평군 홍보대사
수덕사 홍보대사
2011.01 생명나눔실천본부 홍보대사

 

 

 

 

 

 

 

 

 

 

인물(People)/영화배우 2013.10.19 09:18

원더우먼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미스 아메리카 출신 배우 린다 카터(Lynda Carter)






원더우먼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미스 아메리카 출신 배우 린다 카터(Lynda Carter)

 

원더우먼을 요즘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70~80년대 육백만불 사나이나 소머즈 처럼 만화에서만

등장하던 캐릭터가 실사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TV물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이른바 '미드'라고 할 수 있겠는데, 어쨌든 원더우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배우가 바로

미스 월드 아메리카 출신의 배우 린다 카터((Lynda Carter)일 것이다. 국내에서 방영되던 80년대 초반

성우 장유진씨의 목소리로 브라운관을 장악했던 린다카터와 원더우먼에 대해 살펴본다.

 

 

 

 

원더우먼을 그저 만화책에서나 만나볼만한 시시한 캐릭터로 폄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미스 아메리카

출신 린다카터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원더우먼을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더불어 동양적

아름다움까지 겸비하면서도 팔등신의 완벽한 몸매를 자랑하는 이 여배우는 어린시절 10살 소년의

눈망울로 바라보아도 정신줄을 홀딱 빼놓았을 정도로 정말 '완전 환상'이었으니 말이다. ^^*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어 오랜만에 원더우먼, 즉 린다카터를 다시 보아도 역시 "쵝오~!!"라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 중장년층 남성분들이라면 "두말하면 잔소리지~!"라며 맞장구를 칠 것이라고 본다.

그 옛날 개도국으로 한참 못살던 시절, 한국인들에게 TV나 영화에서 만나는 잘생긴 서양인들은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이요, 우상 그 이상이었다. 지금 동남아에 가면 한류스타에 열광하는 요즘의 그런 것과도 한참

차원이 다른 저세상의 이야기 정도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76년에 린다카터에 의해 그려진 원더우먼의 모습은

당시로서는 세계를 열광캐 하고 뭇남성들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대단한 신드롬을 불러왔다.

 

 

 

▲ 린다카터(Lynda Carter)가 주연한 원더우먼은 사실 3세대 원더우먼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원더우먼으로 기억되는 린다카터의 3세대 원더우먼은 1976년부터 방영되었다.

요즘처럼 깜쪽같은 특수효과와 더불어 다양한 슈퍼히어로를 보아왔던 신세대에게는 벙찌는 캐릭터일 수도

있겠다. "저 아줌마 모야~ 완전 유치해~ ㅋㅋㅋ" 이럴것 같네. ㅠ.ㅠ

 

 

 

 

요즘처럼 성형미인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는 솔직히 서양인도 동양인도 아닌, 공장에서 찍어낸

인형 처럼 똑같이 얼굴들이 개성없는모습으로 각종 미디어를 주름잡고 있지만, 확실히 그 시절 린다카터는

영원한 원더우먼으로 길이 남을 정도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당시 TV에서는 국산 드라마보다

외화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그래서 목소리를 더빙하는 '성우'들이 굉장히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원더우먼 목소리는 당연히 모든 이쁜이들의 목소리를 죄다 도맡다시피 했던 성우 장유진씨 몫이었다.

 

 

 

▲ 옛날 원더우먼 뿐만 아니라 모든 예쁜 여배우의 목소리는 성우 장유진씨가 도맡았다.

 

이런 추억속의 원더우먼이었던 린다카터는 미모 하나만으로도 완벽하기로 유명했지만, 이 캐릭터를

탄생시킨 사람은 다름아닌 남자였다. 1941년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페미니스트 이론가인 윌리엄 몰튼 마스턴

(William Moulton Marston)박사에 탄생한 원더우먼이었던 것이다. 마스턴 박사는 슈퍼맨, 배트맨, 그린 랜턴처럼

힘과 주먹으로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랑으로 풀어나가는 영웅을 구상했고, 심리학자인 아내와 함께

의논해 캐릭터의 성별을 여자로 선택함으로써 마침내 원더우먼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남성 캐릭터의 강한 초능력과 함께 여성의 선량한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캐릭터를 창조함으로써

남성 독자를 대상으로 한 진정한 여성해방이 가능하다고 그는 주장했으며 1947년 임종 때까지 모든 오리지널

스토리를 완성했다고 한다. 윌리엄 몰튼 마스턴 박사는 또 한편으로 거짓말 탐지기를 고안한 인물로도

유명한데, 꽤 설득력 있는 페미니스트 이론가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그는 1920년대 중·후반 한 가설을 입증했고

그 내용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정직한 성향을 갖고 있으며, 일을 하는 속도나 정확도에서 앞선다는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미국사회에서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한참 낮았던 사회상에서 이러한 그의 발견은

꽤 놀라운 반향을 일으켰을 것이고 마침내 '원더우먼(Wonder Woman)'을 탄생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1976년이 되어서 우리는 완벽한 미모의 린다카터가 주연한 원더우먼을 만날 수 있었다.

 

 

 

 

 

원더우먼은 다른 남자 히어로 캐릭터들과는 달리 영화로 제작된 적은 없고 주로 TV시리즈로 만들어졌다.
실사 TV 드라마인 '원더우먼'의 첫 등장은 1967년으로, 린다 해리슨(Linda Harrison)이 주연이었다. 배트맨 TV

시리즈가 성공하자 그 시리즈의 프로듀서에게 원더우먼의 첫 파일럿 작품을 맡긴 것이다. 두 번째 원더우먼은

1974년도에 캐시 리 크로스비(Cathy Lee Crosby)가 연기한 시리즈로, 기존 스키니 상의와 별무늬 팬티

의상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등장한다. 그리고 1976년, 원더우먼의 대표 이미지라 할 수 있는
린다 카터(Lynda Jean Cordova Carter) 주연의 원더우먼이 방송되었다.

 

 

 

 

중장년층은 누구든 원더우먼을 모를리가 없다. 특히나 린다카터 야말로 유일무이할 정도로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로 영원히 그들의 머릿 속에 남아있는 여성 히어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세월은

어쩔수 없나보다. 1951년생인 린다카터도 어느새 60을 훌쩍 넘겨버린 할머니가 되었으니 말이다. 왠만하면

가장 아름다웠을 때의 그 모습만을 기억하는 것이 좋기야 하지만, 말 나온 김에 최근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린다카터의 모습마져 공개하며 오늘 포스팅 마칠까 한다.

 

 

 

 

 

린다 카터

(Lynda Carter)
영화배우
출생:1951년 7월 24일(미국)
신체:177cm
학력:애리조나주립대학교
데뷔:1974년 드라마 '나키아'
수상:1972년 Miss World USA 1위

 

 

 

 

 

  

 

 

 

 

 

 

인물(People)/유명인사 2013.10.14 10:00

돈 라폰테인(Don LaFontaine), 헐리우드 영화 예고편의 바로 그 목소리 주인공






돈 라폰테인(Don LaFontaine), 헐리우드 영화 예고편의 바로 그 목소리 주인공

 

돈 라폰테인(Don LaFontaine)이 누구인지 이름만 들어서는 별로 아는 사람이 없겠지만,

헐리우드 영화의 예고편에 흘러나오던 매우 익숙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라고 한다면 왠만한 사람들은

모두들 "아~! 그 사람!!"하면서 바로 알아듣는다. 지난 2008년 9월1일 타계한 돈 라폰테인은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무려 5천여편에 달하는 헐리우드 영화 예고편에서 전문 나레이터로 활약했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얼굴은 몰라도 목소리만큼은 확실히 기억한다. 그동안

숱하게 많은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예고편을 통해 매우 익숙하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돈 라폰테인이 사망한 뒤로는 다른 이가 바톤을 이어 받았지만, 일단 굉장히 오랜 세월 카리스마

넘치던 듣기좋은 그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전 세계 영화팬들이 매우 아쉬워 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이 블로그에서도 90년대 영화를 주축으로 영화들 소개를 하면서 메인 예고편을

꼭 첨부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많은 영화 예고편에서 돈 라포테인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여전히 도대체 어떤 목소리인지 감이 안오는 분을 위해 아래 영상을 소개한다.

딱 한 구절만 들어보아도 아~ 이사람이라고 바로 알아보게 될 것이다.

 

 

 

▲ 돈 라폰테인(Don LaFontaine)의 목소리는 바로 이런것이었다.

 

그만큼 돈 라폰테인이 헐리우드 영화사에 있어 예고편을 소개하는 나레이터로 이례적인 성공을

거둔것은 어쩌면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확실히 일찌감치 우연찮게 주어진 기회를 통해

가능성을 발견했고 자신이 타고난 재능을 정확히 쏟아부어 기량을 펼쳤기 때문이다. 돈 라포테인 말고도

분명 목소리 좋은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보다 더 목소리 괜찮은 성우들도 있을 것이고 그런 재능을 다른 쪽에

쓰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운이 좋았다라는 부분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돈 라폰테인은

확실히 그가 가야 할 길을 정확히 알고 열심히 재능을 발휘하며 정진했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목소리를 타고 나는 것은 솔직히 엄청난 행운이다. 가수를 해도 기왕이면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가진 좋은 음성을 가진 가수가 좀 더 유리한 이유도 이때문이다. 발성법이 좋아야 하는 것도 있지만

그런것들은 어차피 갈고 다듬어야 할 부분이고 노력하면 개선이된다. 돈 라포테인은 비록 2008년 68세의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나 더이상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어 버렸지만, 사는 동안 그는 확실히 전 세계

수많은 영화팬들에게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분명하게 족적을 남겼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영화 이야기를 주로 쓰면서도 어찌보면 이 사람에 대한 소개가 너무 늦은 감도 없잖은데

어떤 영화를 또 포스팅할까 하면서 지난 90년대 영화들을 둘러보던 중 이 사람 이야기를 꼭 써야겠다고

생각한건 사실 좀 오래되었다. 어쨌든 1963년부터 상당수의 헐리우드 영화 예고편에 그의 목소리가

삽입되기 시작한건데, 한창 잘 나갈 때는 하루에만도 25작품의 예고편 작업을 했고 한 작품당 걸리는 시간은

약15분 정도에 편당 2천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 한 해 수익은 천문학적인 숫자였다고 한다. 

 

 

 

▲ 돈 라폰테인(Don Lafontaine) 생전 인터뷰


돈 라폰테인을 이야기하면서 미국의 경제 용어 이야기 하나를 또 빠뜨릴 수가 없는데,

참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어 소개한다.  즉, '라폰테인 효과'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흔히 경영자가

갖추어야 할 마인드를 이야기 할 때 자주 쓰인다고 한다. 요지는 '검증되지 않은 신인에게 모험을

거느니, 차라리 믿을만한 사람을 계속 기용하라'는 뜻을 담고있다. 어찌보면 그냥 평범한 말인데, 그만큼

실효성에 있어 그게 더 낫다는 의미이겠다. 왜 그동안 돈 라포테인이 헐리우드 영화 예고편을

독점해 왔는가를 설명하는 데 있어 이보다 더 적합한 표현이 또 있을까. 진작에 포스팅 했어야 할

전설적인 헐리우드 영화 예고편의 목소리 주인공 돈 라폰테인에 대해 살펴보았다.

 

 

 

 

 

돈 라포테인

Don LaFontaine

영화 프로듀서, 성우, 배우

출생:1940년 8월26일(미국 미네소타)

사망: 2008년 9월1일

 

미네소타의 덜루스에서 태어난 그는 처음부터 보이스 액팅에 관연한 것은 아니다.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군에 입대했고 그 곳에서 군악대의 레코딩 엔지니어로 이 계통에 발을 들여놓았다.

제대후 뉴욕으로 옮겨 내셔널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사운드 엔지니어로 일한 그는 1962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Dr.Strangelove'의 라디오 광고를 만들었던 플로이드 페터슨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
몇년 후 그들의 회사는 급속히 성장해 30여명의 직원과 자신들의 빌딩을 소유할 정도로 영화 광고계에서는

첫 손에 꼽힐만큼 크게 성공한 회사가 되었다. 그리고 1965년에는 드디어 전설의 목소리, 예고편의 제왕

돈 라폰테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가 MGM(Metro Goldwyn Meyer)에서 제작한 웨스턴무비

'Gunfighters Of Casa Grande'의 라디오 광고를 만들기위해 처음 목소리를 삽입했는데, 이를 계기로

오늘의 전설적인 돈 라포테인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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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People)/유명인사 2013.09.25 22:18

'별들의 고향'으로 7.80년대 최고의 대중적 인기를 누린 소설가 최인호 별세






'별들의 고향'으로 7.80년대 최고의 대중적 인기를 누린 소설가 최인호 별세

 

이 시대 최고의 대중 소설가로 손꼽히던 작가 최인호씨가 별세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향년 68세의 조금은 이른 나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최인호 작가는 1973년 '별들의 고향'을

통해 본격적인 대중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혀왔다. 그가 집필한 많은 작품들이 영화화 되었던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만큼 대중적이고 현실적인 소재와 더불어 시대상을 담아 글로 표현해 온만큼 그의

작품세계는 별세한 이후에도 영원히 세상에 진한 발자욱을 남겼으리라 짐작해 본다.

 

 

 

 

어떤 면에서는 죽기 전에 이러한 작품을 남기고 간다라는 게 개인적으로 몹시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그냥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바둥바둥 살다가는 세상에

아무런 족적도 남기지 않고 가버리게 되니 말이다. 최인호 작가의 별세 소식과 함께 돌연

인생무상함 마져 느껴본다. 아마도 세월이 그만큼 유수와 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보니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정말 많은 유명인사들이 하나 둘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정작 죽어야 할 인간들은 천수를 누리고 오히려 좀 더 우리 곁에 오래 남아주었으면 하는 아까운 사람들이

자꾸만 사라져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만 더해온다. 이번에 역시 대중적 인기를 누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소설가 최인호씨 마져 별세했으니 그 다음은 또 누가 될지 불안함이 앞설 판국이다.

그만큼 개인적으로도 빠르게 세월을 따라 멀리도 달려왔으리라.

 

 

 

 

 

 

9월25일 저녁 7시10분 지병으로 작고한 소설가 최인호씨는 1982년 '깊고 푸른 밤'을 통해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깊고 푸른 밤'은 안성기, 장미희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영화 또한 흥행에 성공한 것으로 기억한다.  어찌보면 거의 대부분의 내놓는 작품들이 모두 영화화

되었을 정도로 7.80년대는 그야말로  소설가 최인호의 시대였고 그의 작품은 영화와 더불어

한층 더 유명세를 떨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작고한 소설가 최인호씨의 저서를 단 몇권밖에 읽지 않았지만 그나마 영화작품을

통해서라도간접적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경험한 것은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우던 소설가 최인호씨는 2008년 5월 침샘암 발병 이후 5년째 투병중이었다.

그 '영원한 청년작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렇게 68세의 일기를 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데

대해 문학인을 비롯해 많은 팬들이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1967년 연세대학교 영문과 재학 중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한

최인호 씨는 '별들의 고향' '겨울나그네'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가 쓴 작품들은 소설로서의 인기 뿐만 아니라 드라마·영화·다큐멘타리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청년문화의 대변자'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년 전에는 투병 중에 완성한 장편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최인호

崔仁浩
소설가
출생:1945년 10월 17일(서울특별시)
사망:2013년 9월 25일
학력:연세대학교 영문학 학사
데뷔: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입선
수상:2011년 제14회 동리문학상
경력:1999.10 미주 순회 한국현대문학낭독회

 

작품활동


1967 조선일보 신춘문예 '견습환자'로 문단 데뷔
1970 술꾼, 모범동화
1971 타인의 방(현대문학상 수상)
1973 병정놀이
1973 별들의 고향
1973 바보들의 행진
1974 죽은사람
1976 도시의 사냥꾼
1977 가면무도회, 다시 만날 때까지
1978 돌의 초상
1978 천국의계단
1979 불새
1979 적도의 꽃
1981 지구인
1982 깊고 푸른 밤(이상 문학상), 위대한 유산
1982 고래사냥
1983 겨울나그네
1985 잃어버린 왕국
1993 길 없는 길
1997 사랑의 기쁨
1999 내 마음의 풍차
2000 상도
2003 해신
2004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2006 유림
2008 머저리 클럽

 

 


인물(People)/유명인사 2013.09.02 16:06

미야자키 하야오 은퇴 이유, 일본의 우경화와 구제불능의 역사인식에 대한 소회의 결과






미야자키 하야오 은퇴 이유, 일본의 우경화와

구제불능의 역사인식에 대한 소회의 결과

 

미야자키 하야오가 은퇴를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이전에도 이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오는가

싶었는데, 결국 오는 9월6일 도쿄에서 공식기자회견을 갖고 공식 은퇴를 선언할 예정이라고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지금까지의 애니메이션 작품에서 드러났던 평화주의적인 철학관을 가지고 있는

예술인 중 한 사람이다. 그동안 재패니메이션이라고 해서 그의 작품들 중 상당수를 탐닉해 온 매니아들

중에는 이런 미야자키 하야오의 팬들이 우리나라에도 상당히 많다. 때문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갑작스러운 은퇴 이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도 미야쟈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을 제일 처음 접한게 80년대 초였는데

그 작품은 이름하여 '미래소년 코난'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정말 당시엔 그의 이런 작품들이

자라나는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아름다운 동화적 소재들을 통해 꿈과 이상을 펼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은 원화 이미지부터가 보는 것만으로도 어릴적 잃어버렸던 동심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는 이처럼 심플한듯 담백한 느낌의 이미지와 더불어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많은 작품들을 전 세계 팬들에게 선사해왔다.

그의 작품을 만난다라는 것만으로도 왠지모를 행복감과 감성적 설레임이 분명 있었다.

 

 

 

 

그랬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은퇴를 결심하게 된 것은 여러 추측들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최근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기점으로 과거 역사에 대한 참회는 고사하고 오히려 빠른 속도로 우경화하는

분위기에 지식인(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마음에 그리 결심했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앞서 말한대로 그는 일본인이지만, 분명 평화주의자이다.

 

 

 

 

실제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난 달 일본에서 열린'‘바람이 분다' 기자간담회에서 "과거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일본 정부가 일본인을 귀하게 여기지 않아서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거라고 생각한다"며 소회를 밝힌 바 있다. 그는 평소 전쟁을 반대해 왔고

원전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반대 활동도 해왔다. 그리고 전세계인이 우려하는 일본의 우경화에

더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그동안 ‘미래소년 코난’,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작품으로 전 세계에 수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고 있었다. 어느덧 72세를 맞이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로써 오는 6일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할 예정이다. 전문가들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갑작스런 은퇴에는 최근 일본 보수 정권의 잇따른 우경화 정책과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2차 대전 침략국으로서 최소한의 염치도 지키지 않는 현실에 대한

실망감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또 최근 이런 말도 덧붙였다. "현재 일본 젊은이들은 역사 감각을

잃었다. 그걸 잃으면 그 나라의 균형이 깨진다. 위안부 문제도 이미 일본이 청산을 했어야 한다.

'하시모토 담화'라는 식으로 또 다시 오르내리는 것은 굴욕이다"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로 오는 5일 개봉하는 '바람이 분다'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공산이 커 보인다.

네티즌들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갑작스러운 은퇴에 매우 큰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미친듯 우경화를 달려가는 일본의 모습이 결국 평화를 사랑하는 한 예술가의 작품에 대한 의지마져

꺾어놓고 말아버린 듯하다. 하지만, 이런 고백으로 하여금 보다 많은 세계인들이

일본의 우경화에 우려를 넘어 실망 그 이상으로 그냥 좌시하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참고] 관련 사이트 모음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는 OST가 더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이웃집의 토토로-미야자키 하야오의 영원한 걸작

 

'온유어마크(On Your Mark)',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차게 앤 아스카(CHAGE and ASKA)의 뮤직비디오

 

 

 

 

 

 

 

 

 

 

미야자키 하야오
(みやざきはやお, 宮崎駿)
애니메이션감독
출생1941년 1월 5일(일본)
가족아들 미야자키 고로
학력가쿠슈인대학 정치경제학
데뷔1978년 애니메이션 '미래 소년 코난'
수상2006년 제31회 LA영화비평가협회상 애니메이션상
경력1985 스튜디오 지브리 설립

 

 

 


1941년 1월 5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출생하였다. 고등학교 때 이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결심하였으나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였다. 대학시절 청소년 신문에 만화를 기고하였으며 1963년

졸업 후 도에이 동화[東映動畵]에 입사하여 뒷날 동업자가 된 다카하타 이사오'高畑勳'의 작품에 메인 스태프로

일하다가 A프로덕션으로 옮겨 TV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 未來少年 コナン'(1978)으로 데뷔하였다.

 1년 후 연출한 극장용 애니메이션 '루팡 3세 : 칼리오스트로성의 비밀 ルパン三世 : カリオストロの城'과

다음 작품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風の谷の ナウシカ'(1984)의 흥행 성공으로 확실한 입지를 구축한 미야자키는

다카하타 이사오와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 Studio Ghibli'를 설립하여 '천공의 성 라퓨타

天空の城ラピュタ'(1986)와 1980년대 최고의 애니메이션으로 꼽히는 '이웃집 토토로 となりのトトロ'(1988),

사춘기 소녀의 심리를 묘사한 '마녀 우편배달부 魔女の宅急便'(1989), '붉은 돼지 紅の豚'(1992) 등을

발표하였다. '마녀 우편배달부'와 '빨간 돼지'는 상영된 그해 일본 최고의 흥행성적을 기록하였고,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여 만든 '원령공주 もののけ姬'(1997)는 제작비 20억 엔을 투자하여 14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였다. 이후 2000년 대 들어와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고양이의 보은'(2002),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벼랑위의 포뇨'(2008), '마루밑 아루에티'(2010), '코쿠리코 언덕에서'(2011)등을

선보이며 보다 더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왔고 2013년에는 '바람이 분다'를

통해 또 한번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이려 하고 있다.

 

 

 

 

 

 

 

 

 

 

 

 

바람이 분다
風立ちぬ, The Wind Rises, 2013

일본
상영시간:126분
개봉:2013년9월5일

감독:미야자키 하야오(Hayao Miyazaki 宮崎駿)

안노 히데아키(Hideaki Anno-지로 목소리),

타키모토 미오리(Miori Takimoto-나호코 목소리)

 

 

▲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作이 될 수도 있는 2013년 9월5일 개봉작 '바람이 분다' 예고편

 

 

 

 

 

 

 

 

 

 

  


인물(People)/영화배우 2013.08.28 18:35

임청하 최근 근황, 영원한 동방불패 어느덧 60의 나이






임청하 최근 근황, 영원한 동방불패 어느덧 60의 나이

 

90년대는 홍콩영화의 황금기였는데, 임청하 최근 근황이 알려지면서 당시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였던 홍콩영화 '동방불패'(1992)가 떠오른다. 임청하는 당시 남장과 여장의

1인2역을 소화하며 그렇게 인상적인 마스크 하나로 정소동, 당계례 감독의 '동방불패'를 통해 한순간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대표적인 홍콩 출신 여배우 중 한명이었다. 그랬던 임청하의 최근 근황이

공개되어 온라인상에 올라온 사진 한장을 보니 영락없이 평범한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나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1995년 이후로 더이상 영화 출연은 하지 않고 지냈다.

그래서 더 그래 보이는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임청하의 최근 근황 사진을 보면 그 대만큼의 화려함은

사그라 들었을지언정 60이라는 나이가무색할 정도로 미모는 여전해 보인다. 임청하의 이름은

중국어로 '린칭샤'·(林靑霞)라고 부른다. 임청하 마스크의 특징은 여자로서는 보기 드문 강한 턱이다.

때문에 당시 '동방불패'역활에 있어 임청하 만큼 적격인 그런 여배우도 없었을 듯 하다.

 

 

 

 

임청하의 최근 근황은 중국 가수 이우춘(리위춘·李宇春)의 소속사를 통해 공개된 것인데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를 통해 지난 27일 타이완에서 공연 중인 연극 '여몽지몽' 현장을 찾아 이우춘을

만난 임청하의 사진을 공개한 것이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다정하게 어깨를 맞대고 있는

임청하와 이우춘의 모습이 담겨 있다. 여전한 미모도 그렇지만, 이처럼 오랜만에 임청하의 최근 근황

모습을 보니 90년대 '동방불패'로 이름을 날리던 그 시절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동방불패
笑傲江湖 之 東方不敗: Swordsman II, 1992

홍콩
상영시간:107분
개봉:1992년3월25일

감독:정소동, 당계례

출연

이연걸(영호충), 임청하(동방불패), 관지림(임영영),
이가흔, 이자웅, 원결영

 

 

▲ 임청하 최근 근황 보면서 떠오르는 영화는 역시도 '동방불패'(1992)

 

 

 

 

 

  

 


임청하
(林靑霞, Lin Ching hsia, Brigitte Lin)
전 영화배우
출생1954년 11월 3일(타이완)
신체168cm
데뷔1973년 영화 '창외'
수상1990년 제27회 대만금마장 여우주연상
1976년 제21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여우주연상

 

 

 

 

임청하는 중화민국 타이완 태생의 중화인민공화국 홍콩 특별행정구 여배우이고

음반을 발표한 바 있는 가수이기도 하다. 임청하는 이한상 감독의 금옥양연홍루몽

(The Dream Of The Red Chamber)에서 남성역을 맞았다.

 

 

 


이후 도검소, 동방불패에서도 남자 역할을 맡았다. 1988년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에

출현하여 아시아 권에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1989년에는 경천대모살(Deception)에

왕조현과 함께 출현하여 좋은 연기 호흡을 보여 주었고, 동방불패 2, 동성서취에서 다시 조우하여

연기하였다.임청하는 1991년 정소동 감독의 동방불패에 출연하면서 스타가 되었다.

 

 

 

 

동방불패에서 남자의 몸이지만 무공을 익혀 여자가 된 동방불패로 출연하여, 이연걸,

관지림과 연기 대결을 펼쳤다. 남장으로 분한 임청하의 모습은 신비하였고, 매서운 눈빛에

뚜렷한 이목구비와 강인한 표정은 독창적인 동방불패를 탄생시켰다.

 

 

 

 

동방불패 이후, 임청하는 신용문객잔, 절대쌍교, 백발마녀전, 녹정기2, 도마단,

천룡팔부, 추남자등 출연하여 전성기을 맞았고,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과 동사서독에

출연하면서 북아메리카와 유럽에도 이름이 알려졌다. 임청하는 1995년 이후 영화에는

출연하지 않았으며, 몇몇 영화의 나레이션에 참여하였다. 임청하는 2010년 왕자웨이 감독의

일대종사로 스크린에 복귀하여 공리, 송혜교, 량차오웨이와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춘다.

 

 

 

  

 

 

 

  

 

 


인물(People)/유명인사 2013.08.28 10:14

최일구 前 앵커 회생 신청 소식, 결국 보증이 문제인가






최일구 前 앵커 회생 신청 소식, 결국 보증이 문제인가

 

최일구 전 앵커가 회생 신청을 했다는 좀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예상했던 대로

언제나 '보증' 한번 잘 못 섰다가는 빚잔치에 얽히기 쉬운데 최일구 전 앵커도 이 때문에 회생신청을

했다는 것이다. 무려 30억원대의 빚을 지고 있었다는 것인데, 친형의 부동산과 출판사를 운영햇던 지인의

공장부지 매입사원 등에 연대보증을 잘못 섰다가 그리 되었다고 한다. 앵커도 월급쟁이이고 그나마

최일구씨는 현재 앵커도 아닌 상황에서 맞이한 상황이니 회생 신청이 불가피했을 듯 하다.

 

 

 

 

뉴스 앵커 중에도 스타급인 사람들이 종종 있어왔다. 특히 MBC쪽에 그런 앵커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우리가 잘 아는 엄기영 전 앵커도 그렇고 김주하,백지연,손석희 등등

비교적 MBC 쪽엔 유명인사가 많았다. 30억원의 빚 때문에 최일구 전 아나운서가 회생 신청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그래도 그동안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앵커답지 않게 뉴스말미에 훈훈한 웃음을

선사해주기도 했던 그런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주변에 어려운 상황에

놓인 가까운 지인들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최일구 전 앵커를 좋아했던 팬들이라면

이번 최일구 회생 신청 소식을 접하며 그렇게 받아들일 것이라 짐작해 본다.

 

 

 

▲ MBC뉴스데스크 전 앵커 최일구 어록 모음

 

한 때 최일구 전 앵커는 '최일구 어록'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로 앵커에 대한

선입견을 날려버리는 재미난 멘트를 많이 남겼었다. 그래서 2000년대 초중반 이를 두고 말들이

많았었다. 권위적인걸 좋아하는 영감님들은 "앵커가 그게 뭐냐, 전혀 앵커답지 않은 처사'라며

반발했고 혁신을 좋아하는 자유주의자들에게는 뜨거운 인기를 누리기도 했었다. 지금의 MBC는 매우

유감스럽게도 그 당시와는 다르게 본질이 타락해버린 방송국이라고 생각해 MBC 뉴스는 아예 보지도

않고 있지만, 최일구 전 아나운서는 입 바른 소리, 할말은 한다는 언론인으로서 어쩌면 마지막

보루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해 본다. 지금의 MBC는 완전히 변질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30억 빚 때문에 결국 지난 4월 최일구 전 앵커는 개인 회생을 신청했고 이미 지난 5월

법원은 최일구의 개인회생 신청을 받아들였다고 전해졌다. 그러고 보니 이미 한참 지난 소식인데

왜 이런 소식이 지금에서야 뜬걸까. 요것도 매우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최일구 회생 신청’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 반응은 으례 온라인 뉴스가 그러하듯 뻔한 반응을 보이는 분위기이지만, 정말 한 때나마

색다른 뉴스를 기대했던 팬들 입장에서는 최일구 전 앵커의 회생 신청 소식이 씁쓸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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