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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때리는영화/한국영화 2014.08.08 23:02

진중권 명량 졸작 발언, 개의치 말고 보자






진중권 명량 졸작 발언, 개의치 말고 보자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영화 '명량'을 졸작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최단기간

천만관객 고지를 향해 고공행진 중인 영화 '명량'에 찬물을 끼얹은 분위기이다. 지난 6일

진중권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영화 '명량'은 솔직히 졸작이죠. 흥행은 영화의 인기라기

보다 이순신 장군의 인기로 해석해야 할 듯"이라며 영화 '명량' 감상평을 남긴바 있다.

아직 영화를 못본 관객 입장에서는 "뜨헉"하는 발언임엔 틀림없다.

 

 

 

 

 

 

 

 

 

진중권 명량 졸작 발언이 터지자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문화평론가로서

그가 던진 이말에 출렁이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진교수는 명량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의

전작 '최종병기 활'을 언급하며 "활은 참 괜찮았는데"라고도 말한 바 있다. 개인적으론 아직

명량을 못보았지만, '최종병기 활'은 솔직히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었다. 완성도 면에서

훨씬 더 욕심을 내도 좋았을 작품이었기 때문인데, 어쨌든 치욕의 역사 '병자호란'을 다룬

사실만으로도 높게 평가해줄만했다고 본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진중권 교수는 최종병기 활에

대해선 좋게 평가한 반면 명량을 졸작이라 표현했기 때문에 최고의 흥행작 명량을 아직

못본 관객들 입장에서는 이게 뭔소린가 싶었을 게다. 무슨 스포일러도 아니고...

 

 

 

 

 

 

 

 

 

 

그러나 진중권 교수가 명량을 졸작이라 발언한 것 못지 않게 이미 여러차례

세간에 화재를 불러일으켰던 작품들에 대해 비수같은 발언을 한적이 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이번처럼 진중권 명량 졸작 발언에 어느정도는 "피식~"하고 웃을 수

있었다. 예전에도 진중권 교수는 2012년 심형래 감독이 제작한 '디 워'를 두고도 "'디워'를

3D로 만든다나. 재래식 변소에 대리석 까는 격"이라고 비판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러나 진중권 명량 졸작 발언 뒤에 이어지는 후폭풍은 그래도 어느정도 이는

모양세다. 그야말로 그간 '왕따 당할까봐'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이 유명한 평론가의

솔직 발언을 통해 봉인 해제됐다고 반기는 의견도 있었고 또 다른 일부는 평이 아닌 평론가로서

내뱉기에는 무책임한 발언이었다라며 거센 비판을 불러온 분위기이다. 때문에 온라인

상에서는 진교수의 의견에 찬성파와 반대파가 갈리기 시작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영화 자체의 작품성을 아쉬워하는 이들은 영화가 아닌 역사, 성웅 이순신이라는

캐릭터가 이 영화의 흥행 원동력임에 동의하며 욕심을 내자면 졸작으로 평가해도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는 의견도 있다. 나 역시 영화 명량을 보지는 않았지만 그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즉, 진중권 명량 졸작 발언은 어디까지나 주관적 견해가 언론을 통해 터져나와 불거진 것일 뿐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영화자체가 졸작이라기 보다는 그 흥행력과 성웅 이순신이라는

민족 최대의 영웅을 다룬 내용에 비해 상대적인 졸작이라고 하는 것이

어쩌면 좀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김한민 감독의 전작 '최종병기 활' 때도 내가 개인적으로 느낀게 바로

이런 것이었다. 병자호란은 그저 산적떼 같은 청나라 군이 잠시 지나간 그런 전쟁이 아니었다.

사실 전쟁이랄 것도 없이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역사적 사실일진데, 그것이 더욱 치욕스러운 것은

조선이 이렇다할만하게 뭐 하나 제대로 저항해본 것도 없었다는 것이고, 그 보다 더욱 울화가

치미는건 임진왜란 발발로부터 불과 44년만에 또다시 그런 국가적 환란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사실이다. 아무런 대비도 준비책도 없이 비열하게 쿠데타(인조반정)로 정권을 잡은,

개만도 못한 임금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도망쳐 버티던 끝에 조선 최악의 굴욕사건이었던

'삼배구고두례'가 있었던 통한의 역사기록이 바로 병자호란이었고 조선백성 수십만이 끌려갔던 그

런 엄중한 역사적 사실이 바로 병자호란이었다. 임진왜란은 의병이 일어나 항거라도 했고

성웅 이순신이라도 있었지만, 병자호란은 그러지도 못했다. 그런 최악의 국난을 영화 소재로

다루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화를 치켜세워줄만도 했지만, 이 역시 명량 처럼 엄청난 사건에 비해

오락영화처럼 전개된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처음에 이 영화 '최종병기 활'을 오히려

졸작이라고 평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진중권 명량 졸작 발언이 이해간다.

 

 

 

 

 

 

 

 

 

 

그러나 이번 진중권 명량 졸작 발언에 대해서는 저명한 문화평론가 타당한 이유 없이

단정지어 혹평을 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의견이 사실 더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늘상 그렇지만,

세간의 안주거리를 즐겨찾는 언론에 제대로 걸려들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늘상 언론이란 것이

뭇매 치기에 워낙 밝은지라 제대로 걸린건 아니가도 싶은데, 그만큼 영화 명량의 흥행과 대중적 인기 등은

이런 유명인사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취재해 씹어대기에 충분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일각에서는 또

이런 비판도 한다. 여전히 한국의 대중문화, 대중적 인식의 정도는 '애국심'과 맞물려 영화에 대한 비판

자체가 왠지 금기시되고 있는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특히나 민족의 영웅이신 성웅 이순신을 다룬 영화를

어디서 감히...라는 시선으로 먼저 바라보는 견해도 없잖아 많은 듯도 보여진다. 하지만 꼭 봐야 하는

영화가 반드시 잘 만든 영화는 아닐 수도 있고, 사실 그럴 필요까지도 없다는 말에 동감한다.

어쨌든 진중권 명량 졸작 발언은 결국 어디까지 공식적으로 문화평론가가 한말이라기 보다는 일개

개인으로서의 주관적 견해로 받아들이고 싶다. 다만, 아쉬운건 트위터라는 SNS공간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 부분이다. 그냥 개의치 말고 보자. 대리만족이건 뭐건 지금의 동북아 정세라면

더더욱 더 이런 류의 영화에 대중들 관심이 쏠리는건 고무적이라고 본다.

 

21세기에도 제2의 임진왜란이 터질지 누가 알겠는가. 그리고 '임진왜란'이란 말은

주관적 견해로 볼 때 틀렸다. 조일전쟁이 맞다. 제나라 백성도 하나 지키지 못한 것들이 체면

떤다고 그릇된 사관으로 은폐축소한 흔적일 뿐이다. 임진년의 왜놈들 난이라고??

이런 썩을....도대체 이런 자만심은 어디서 오는걸까. 그렇게 정신 못차리니 40여년 뒤에

청나라에 또 밟히지. 그러고도 정신 못차리고 또 '병자호란'이라고 한다.

어이할꼬....그때나 지금이나...-_- *

 

 

 

 

 

 

 

 


영혼을때리는영화/한국영화 2014.08.07 23:38

명량 왜군 캐릭터 영상 속 배우들 리얼리티 그리고 명량 일본반응






명량 왜군 캐릭터 영상 속 배우들 리얼리티 그리고 명량 일본반응

 

 

명량 왜군 캐릭터 영상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마치 일본의 사극

(史劇-'しげき')을 보는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리얼리티가 잘 살아있다.

일본어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배우들의 분장뿐 아니라 의상 등 최대한 1592년 그 무렵

임진왜란 당시에 맞추어 나름대로 역사적 고증을 거친 왜적의 복장까지 꼼꼼하게 신경 쓴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특히나 김명곤, 류승룡, 조진웅 등이 일본어로 펼치는 연기를 보면

비록 예고편이기는 하지만, 명량 왜군 캐릭터 영상은 배우들의 분장과 섬뜩한 연기가

리얼리티 있게 표현됨으로써 영화의 극적요소 장치를 한껏 끌어올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일단 명량 왜군 캐릭터 영상 하나만을 보았을 때, 아직 이 영화를 관람하지 않은 입장에서

매우 흥미가 당기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파죽지세로 연일 모든 흥행기록을

뒤엎어 가며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는 이 영화 '명량'에 대한 일본반응도 재미있다.

 

 

 

 

 

 

 

 

명량에 대한 일본반응은 한 번역사이트에서 알려졌는데, 일본의 극우성향을

지닌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2c는 '명량'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고 한다. 이들 일본인들의 명량에 대한 반응은 "우리나라 만세의 망상

역사관이다", "조선 수군 사령관 이순신도, 전임 원균도 시마즈 요시히로한테 죽었어.

공정하게 이 영화를 만든다면 시마즈 요시히로의 영웅담이 되는데 말이야", "NHK가 매국

방송국이 아니라면 다음 대하 드라마로는 이토 히로부미가 될텐데. 야만스러웠던 조선을

어떻게든 개명시키려고 분투하다가 마지막에 테러리스트에 의해 비명에 죽어간",

"세계사적으로는 무명에 가까운 일개 무장이야. 히데요시 세력의 보급선을 끊은 것

정도의 전적밖에 없잖아"라며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폄하했다고 전해졌다.

 

 

 

 

 

 

 

 

 

이외에도 "일본의 경우 역사를 바탕으로 드라마가 만들어 지는데, 한국에서는
드라마를 바탕으로 역사가 만들어진다", "일본은 사극, 한국은 중2병 판타지 실사판",
"조선인이 만드는 드라마와 영화는 모두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공상 판타지다.
연전연패의 역사라서 자랑할 수있는 역사가 전혀 없기 때문에 불쌍한 망상민족" 등

한국의 드라마 자체를 부정하는 글들도 많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몇몇은 "일본은

패배하는 것에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다" "일본 수군을 철저하게 깬 전투구나.

일본은 제해권을 잃고 반도에서 패주"라며 패배를 인정하기도 했다.

 

 

 

 

 

 

▲ 명량 왜군 캐릭터 영상 - 김명곤,류승룡,조진웅 등 만만치 않은 배우들이 적진에 포진해있다.

 

 

 

어쨌든, 그네들 반응이야 어디까지나 일본인이니까 자국의 편에서 무슨

말인들 못할까 싶다. 정도의 차이로 보면 뭐 거기나 여기나 피차매일반일듯 하다.

중요한 것은 현재 개봉8일만에 700만을 넘기고 있는 '명량'을 많은 사람들이 보면서

과연 임진왜란 당시와 조선의 역사 전체에 대해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있을지

나는 개인적으로 그게 더 궁금하다. 그냥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영화라서 그저 재미로

보는 것인지 아니면 성웅 이순신의 진면목을 보기 위함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저마다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제각각 달라도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만큼은 있는

사실 그대로 제대로 알고 보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늘상 조선의 역사를 비판할 때 꺼내는 이야기이지만, 임진왜란 당시의 임금

'선조'나 병자호란 당시의 임금 '인조'는 개만도 못한 것들이었다라고 나는 감히 인정사정

없이 깎아내리는 축에 속한다. 성웅 이순신 장군이 그토록 지켜낸 나라는 임진왜란으로부터

거의 정확히 300년 만에 결국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마는데, 나라가 그 지경

나도록 조선이라는 나라는 300년 동안 과연 무얼했을까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니, 임진왜란 발발로부터 정확히 44년 뒤에 청나라의 말발굽이 온 국토를

유린하는 병자호란이 일어났다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나 '명량'을 볼까?

 

 

 

 

 

 

 

 

 

 

이런 사실들을 알면 성웅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논하면서 과연 이 개탄스러운

국가와 임금, 조정을 구하기 위해 이순신 장군이 목숨을 바친 일 자체가 그리도 한스럽고

서글플 수가 없을 것이다.그러나 배우 최민식의 인터뷰에서도 나온 말이기는 하나

이순신 장군이 사랑하고 아낀 이는 다름 아닌 백성이었다고 하니 그 위대함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까 싶다. 영화 명량 왜군 캐릭터 영상만을 짧게 소개하려 했던 게 또 말이 샜다.

어쨌든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는 이 무서운 흥행몰이의 주인공 '명량'은 이번주말 관람할

예정이니 자세한 이야기는 그 때 가서 다시 하기로 하고 오늘은 예고편 중에

명량 왜군 캐릭터 영상 속 배우들의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모습을 확인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명량 일본반응은 그냥 무시하도록 하자. 걔들은 뭐든 배아프면

무시하고 본다. 하지만, 그런 일본에게 우리는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결국 쓰라린

오욕의 역사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도 잊지말아야 하겠다.

 

 

 

 

 

 

 

 

 

 

 

 

 

 

 

 

 

 


영혼을때리는영화/史劇으로보는 역사 2014.02.02 18:15

영화로 보는 인조반정(仁祖反正)과 삼전도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배경






영화로 보는 인조반정(仁祖反正)과 삼전도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배경

 

 

인조반정(仁祖反正)은 조선역사에 있어 세번에 이어지는 반정 중에서도 가장 명분이 약했던

정변으로 기록되어 있다. 잘못된 왕과 정치를 바로 잡는다 하여 일어났던 이 '반정(反正)'은 조선역사상

세번에 걸쳐 일어났는데, 오늘은 바로 이 역사 속 반정의 주인공 중에서도 가장 자격 없는 임금이었던 인조와

더불어 병자호란 당시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를 겪어야 했던 역사적 배경과 상황을 살펴보고 이런 '반정'과

관련한 영화나 드라마에 대해 살펴볼까 한다. 인조와 삼배구고두례 이야기를 해야겠다 생각을 하게 된건,

이번 설날 장인 어른께서 세배하는 자세(사실 올바른 세배자세를 어디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를

두고 덕담을 하시는 과정에서 인조와 삼배구고두례 이야기가 나오면서였다.

 

 

 

 

 

 

 

우선, 조선 역사에 있어 세번의 반정 중 첫번째 반정을 일으킨 주인공은 세조(世祖)'였다.

어린 단종을 몰아낸 세조의 반정이 그 첫번째 사건인데, 2013년 개봉했던 송강호 주연의 영화 '관상'에서

배우 이정재를 통해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피의 군주 세조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세조는 반정의 명분이랄

것도 없이 형 문종의 어린 아들이자 조카였던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된 수양대군이었으며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임금이었던 세종대왕의 차남이었다. 그런 잔인한 세조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영화 '관상'에 담겨있다.

그리고 이어 두번째 반정인 '중종반정'은 천만관객으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 '왕의 남자'에서 등장한다. 

바로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이다. 극 후반에 궁궐로 난입하는 무장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 '왕의남자' 에서의 연산군을 폐외시킨 반정이 '중종반정'이다.

 

 

중종반정은 폐악을 일삼던 연산군을 몰아내고자 반정의 명분을 내세웠던 정변으로 그나마

가장 명분이 있다 할 수 있으며, 반정으로 인해 연산군을 폐위시킨 진성대군은 이 사건 직후 왕으로 추대되어

훗날 중종이 되었다. 즉, 자신이 처음부터 왕권을 찬탈할 목적으로 반정을 도모한 것은 아니란 이야기이다.

헌데, 마지막 세번째 반정인 인조반정의 주인공인 인조(仁祖)는 달랐다. 반정의 명분이 약하기도 했을 뿐 아니라

선조 때부터 광해군을 향해 마음 속에 담아 온 복수의 감정과 더불어 왕권을 찬탈할 목적으로 반정을 도모했으니

시작부터가 앞으로 두 반정과는 많이 달랐다. 명청 교체기에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저울질을 하며 나름대로

현명한 치적을 보였던 광해군과 달리 인조는 새롭게 떠오르는 제국 '후금'을 오랑캐라며 개무시했다가 훗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연이어 두번이나 겪으며 끝내 굴욕의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겪는

조선 역사상 최악의 굴욕을 당한 임금이 되었다. 하지만, 이 말로 다 표현 못할 병신같은 왕이 당한 굴욕이

백성이 당한 굴욕에 비하기나 했을까. 개인적으로는 조선역대 임금중에 제일 못나고 비열한, 욕나오는

임금을 꼽으라 할 때 두 명의 임금인 '선조'와 '인조' 특히 인조를 일순위로 꼽는다. 

 

 

 

 

 

 

▲ 영화 '청풍명월'에서 인조반정을 보여주는 한 장면, 잔인한 인조는 그렇게 광해군을 몰아내었다.

 

 

 

바로 이런 인조반정의 주인공 인조에 대한 언급이나 관련이 있는 영화를 꼽으라면 2003년 조재현,

최민수 주연의 영화 '청풍명월'을 꼽을 수 있겠다. 인조반정으로 피바다가 되는 궁궐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준

영화로 기억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영화는 이병헌 주연의 천만관객 영화 '광해:왕이 된 남자'에서는

인조반정으로 폐위 당하기 전의 광해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있다. 지금에 와서 역사적으로 재평가되고 있는

광해군은 사실 반정의 명분이 너무나 빈약했던 인조반정에 의해 희생된 사례라고 보는게 옳을 듯하다.

픽션이기는 하지만 영화 '광해:왕이 된 남자'에서도 이런 정적들에 의한 압박과 음해의 위협 때문에 가짜 왕

노릇을 필요로 해야했던 그런 상황이 잘 그려지고 있지 않나 싶다. 결국 폐위된 광해군은 유배를 가긴 했어도

천수를 누리며 인조의 온갖 악행과 국난을 경험해야 했으니 그 속마음이 어찌했을지 궁금하다.

 

 

 

 

 

▲ 인조에 의해 폐위된 비운의 왕 '광해', 이병헌에 의해 정적들에 대해 고민하는 광해군의 모습이 잘 보여졌다.

 

 

 

청나라(후금)에 의해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의 치욕을 겪게 된 인조. 어질 '인(仁)'자를 써서

'인조'라 부르고 있지만, 그가 행한 악행으로 보자면 '잔인하다' 할 때의 '인(忍)'자를 쓰는게 맞을지도 모른다.

후금. 즉 청나라에 당한 이 두번의 국란(國亂)은 박해일,류승룡 주연의 영화 '최종병기 활'을 통해 어느 정도

그 참담함을 잘 보여주었는데, 실제로는 각종 문헌에 나와있는 기록들로만 보아도 당시 조선이 청나라에 짓밟힌

정도가 임진왜란 못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최종병기 활'에서도 보여지고 있지만 당시 청나라에 끌려간 조선인

숫자만 60만명에 달한다. 개 끌듯 올가미 줄로 엮어 잡아다가 국경을 넘어 멀리 타국인 청나라로 끌려간

백성의 숫자가 그 정도면 이건 거의 나라가 거덜난 셈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임진왜란을 겪은지 불과 38년만에

재차 이런 일을 겪어야 했으니 그 때 당시 이미 조선은 망한 바나 다름없었을 것을 5백년이나 이어갔다는게

신통할 지경이다. 중국의 역사만 보아도 잘 나가는 왕조가 들어서봐야 불과 2~3백년이었다.

 

 

 

 

 

 

 

 

 

 

인조가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로 머리를 짖찧었던 사건도 치욕적이라지만, 사욕과

사적인 감정에 휩쌓여 명분 없는 반정으로 왕이 된, 못난 임금 '인조' 하나 때문에 백성들이 겪은 고초는 그와는

견줄바가 못될 정도로 참혹함의 극치였다. 대부분 노예로 팔려갔을 텐데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생활력 강한

여인네들은 모두 '화냥년'이라 손가락질이나 했으니, 인조라는 왕이 얼마나 비열하며 능력없고 상황판단 안되는

못난 임금이었는지 대략 짐작이 가실게다. 경기도 성남에 있는 남한산성은 청과의 전투랄만한 것도 없이

그저 '인조'라는 못난 임금 하나 건사시켜 보자고 버티고 버티었던 그런 장소였다.

 

 

 

 

 

 

 

 

 

 

인조는 반정을 통해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되더니 변하는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해

청으로부터 삼배구고두례 같은 치욕을 겪기까지 버티던 남한산성은 이제 수도권 인근에서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 중에 하나가 되었다. 차를 타고 남한산성 주변을 돌면 산세나 지형만큼은 인조가 한동안 버틸 수 있던

요새 역활을 톡톡히 해주었을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한반도에 있어 가장 최적의 요새라 할 수 있는

곳은 오직 강화도 뿐이었다. 그러나 고려시대 삼별초의 난으로 유명한 몽고항쟁 당시 몽골의 침략에 굳건히

맞설 수 있었던 이 천혜의요새 강화도 마져도 얼마나 어처구니 없이 함락당했는지 모른다. 2012년

MBC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무신'을 보면 최우와 강화도 항쟁의 이야기가 잘 묘사되어 있는데, 어쨌든

이 강화도를 김경징이란 졸렬한 인물 하나 때문에 어이없이 함락당하고 인조가 갈 수 있는 곳은

오직 남한산성 뿐이었다. 제대로 된 싸움 한번 못하고 처음부터 '기방'이었다.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가 어이없이 함락당하던 때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강화도에 난입한 청군이

강화도를 얼마나 쑥대밭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젖먹이 아이 뿐 아니라 여자들은 물론이고 양반 상놈할 것

없이 초토화시켜 버렸다. 얼마나 파죽지세로 청나라가 위세를 떨쳤던지 인조라는 임금이 제 몸 하나 건사하겠다고

허둥대는 동안 전국은 청의 말발굽 아래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짓밟혔고 인조가 갈 수 있는 곳은 그렇게

남한산성 뿐이었으며, 이 마져도 혀 깨물고 죽지 못해 청 태종 앞에 나아가 머리를 아홉번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의 항복식을 거행하기에 이른다. 그것도 저 높이 계단 위에 앉아있는 청태종의 귀에 소리가

잘 안들린다하여 이마가 깨지고 피가 철철 흐르도록 연신 머리를 조아릴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역사에 있어 이렇게 참혹한 순간이 있었을까? 권세란 약한 백성들 앞에서 떵떵거리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힘 없는 약한 백성을 외세로부터 지켜낼 때 빛이 난다는 것을 내 알바 아니라며 왕노릇 하던 자들에

의해 그렇게 철저히 짓밟히던 시절이 어디 이 때 뿐이었을까. 인조 다음으로 욕 먹는 임금 선조 역시도

그런 비판들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임금이었다. 인조 처럼 적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삼전도 삼배구고두례를

겪지는 않았지만, 일찌감치부터 왜구의 침략기미를 아뢰는 충신들의 말을 무시하다가 결국 침략을 받자

제일 먼저 보따리 싸들고 도망치는 졸렬함을 보인 바 있다. 게다가 이를 극적으로 막아내는 민족의 영웅이신

성웅 이순신을 시기하고 깎아내리며 끝까지 경계하던 그런 못난 임금이란 자가 어찌 오늘날 칭송받는

임금으로 대접이나 받겠나 싶다. 역적이 따로 없는 밥값 못하던 왕들은 조선시대 내내 있어왔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란 말도 요즘에 와서는 '조일전쟁(趙日戰爭)'이라고 고쳐불러야 할 정도로

역사를 임의적으로 축소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하는데, 사실 임진왜란은 어쩌면 성웅 이순신이라는 걸출한

위인이 있어 초기엔 일방적으로 당해도 후에 왜군을 몰아냈기 때문에 그 규모나 기간으로만 보아도 일개 난(亂)이

아닌 전쟁으로 보는게 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임진왜란 때도 온 국토가 왜놈들에게 유린당한

쓰라린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과 30여년 만에 또다시 청나라로부터 이런 역사에 씻지 못할 오욕을 남긴 인조는

차마 왕다운 왕이라 할 수 없겠다.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를 겪고나서도 한 인간으로 보았을 때 어찌나 속 좁고

비루했던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아들 소현세자를 독살하고 그의 비였던 강씨에게 마져

사약을 내리는 이 극악무도한 임금 인조. 그의 묘호는 어질 '인(仁)'자의 인조(仁祖)라 할게 아니라

'잔인하다'할 때의 '忍'자를 써서 '忍祖'라고 하는게 옳을 것이다.

 

 

 

 

▲ 인조의 무덤이다. 파주 장릉(長陵).

 

 

 

경기 김포에 가면 장릉(章陵)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인조가 조선왕조계보에도 없는

'원종(元宗)'이란 묘호를 붙여 만든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묘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경기

파주에도 '장릉(長陵)'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인조가 묻힌 릉이라고 한다. 장릉이란 묘 이름은 사실

여러곳에 쓰이고 있는데, 단종의 능 역시 장릉이다. 어쨌든, 인조가 묻힌 파주의 장릉은 1970년

무렵부터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하는데 짐작엔 아마도 문중에서 이런 눈꼴 사나운 역사속 임금의

묘가 계속 원망과 지탄이 대상인지라 훼손을 염려해 출입을 제한하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실제로도 문화제를 훼손하는 사례는 왕왕 일어나기 때문이다.

 

 

 

 

 

 

 

 

 

▲ 청나라 태종이 세웠다하는 '삼전도비(三田渡碑)'

 

 

그리고 청태종이 세웠다는 삼전도에서의 삼배구고두례를 기념비(삼전도비)는 최근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복원이 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 비석은 원래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라

쓰여 있어 청나라의 태종이 손수 조선에 병사를 이끌고 내려와 인조로부터 삼배구고두례를 받으며

항복을 받고 회군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후에 치욕의 역사를 담았다 해서 1895년 고종의 명으로

땅에 묻혔다가 일제강점기에 다시 세워졌다. 그러던 것이 다시 또 한번 치욕의 역사를 상기시킨다하여

광복 후 다시 땅속에 묻혔다가 1963년 홍수로 모습이 드러났고 석촌동 내에서도 2~3차례 이전을 거듭해

왔다. 2007년에는 붉은 페인트로 훼손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는데, 이제 다시 문화재청에 의해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거쳐 1639년 인조가 삼배구고두례를 했던 장소인 석촌호수 서호 언덕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현재 CCTV 등까지 갖춰 이곳을 역사교육의 현장이자 명소로 활용하고 있다. 결국

인조가 남긴 것은 삼배구고두례의 치욕을 남긴 삼전도비 뿐인 셈이다.

 

 

 

 

 

 

 

 

 

 

고종이 그러했듯 감춘다고 해서 사라질 역사가 아니다. 감출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치부를

떳떳이 드러내 후세에 알려야 다시는 이와같은 치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게 된다. 엄중한 역사적

사실을 명심하고 무능한 왕과 정부가 들어서면 국가가 어디까지 망가지며 바닥을 치게 되는지

똑똑히 알아야 한다. 일개 왕족의 부끄러움이나 높으신 님네들의 창피한 일이라 하여 가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치욕적인 역사라 해도 역사란 있는 사실 그대로를 기억해야 하고 반복되는게 역사인지라 오늘날 처럼

일부 세력에 의해 왜곡까지 서슴치 않는 소홀한 역사교육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줄로 안다.

고작 이백여년 밖에 안된 미국이란 나라의 고등학교 역사수업 시간은 우리보다 몇배는 더 많다는 사실

조차 요즘 엄마들은 모른다. 영어교육에 목을 메며 말로만 반만년 유구한 역사라 할 게 아니라 역사교육의

중요성 부터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도 극동아시아에서 전략적 요충지로 통하는 대한민국은

앞으로 훗날 미국과 중국의 대립 그리고 일본의 한반도 재진출의 야욕 등 수많은 외세의 간섭과 압력 앞에

가로놓일게 뻔하다. 더불어 남북한 대립은 이런 와중에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 어떤 불똥이 튀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저들은 서로 이 땅의 배경과 상황을 이용하려 들 것이 자명하다. 역사적 전례를

바로 알고 과연 어떤 선택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고 민족의 중흥에 올바른 선택일지를 국가는

잘 판단하여야 할 것이라 생각하며 글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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