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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때리는영화/아시아영화 2013.07.31 10:16

7인의 사무라이, 세계화를 앞당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최고 걸작






7인의 사무라이, 세계화를 앞당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최고 걸작

 

7인의 사무라이는 진작부터 꼭 보고 싶던 영화였음에도 번번히 기회를 놓치다가

2004년 극장개봉마져 놓친 직후에 DVD를 구입하고서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를 두어 편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앞서 포스팅 했던 '라쇼몽'과 '7인의 사무라이'다. 1954년 작품으로

'라쇼몽'(1950) 이후 이미 세계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이 영화는 헐리우드판 '황야의 칠인'으로 리메이크 되어 성공한 사례가 있다. 이 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나라에서 '7인의 사무라이' 플롯을 그대로 옮겨다가 영화를 만든 사례가 셀 수 없이 많다.

 

 

 

 

그만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는 전 세계적으로 아주 오랫동안

일본문화를 알리는데 확실하게 일조했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우리가 흔히 '한류'라고

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던 것처럼 당시 세계는 '일본문화', '일본 사무라이'에 열광할 정도로 

아주 일찌감치 부터 큰 붐을 일으켰다. 때문에 이처럼 잘 만든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패망했던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친화적으로 바뀌며 확실한 문화콘텐츠를 형성

했다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요즘 우리의 '한류'는 갈수록 퇴색하는 분위기라 안타깝다.

일관된 정부지원도 없고, 정권이 바뀔 때 마다 흐지부지하니...뭐.-_-;;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 같은 영화를 통해 일본문화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는 것은 어쨌든 명백한 사실이다. 때문에 '가장 일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말과도

일치한다. 우리가 보통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하는 이 말은 사실 일본이

먼저 사용했다. 우리가 '친일파'에 분노하기도 하지만, 사실 음성적으로 여러면에서 일본의 문화를

따라한게 엄청나게 많다. 지정학적 특수성 때문에(위로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 공산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즉, 미국문화를 양성적으로 받아들였다면, 일본문화는 음성적으로 흡수하고

영향받았던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말들은 당시 일본문화의 영향을 받는 문화, 예술인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파되어 마치 우리가 그런 말을 먼저 쓰게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어쨌든, 가장 한국적인게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도 맞는 말이기는 하다.^^

 

 

 

▲ '칠인의 사무라이'(Seven Samurai, 1954) HD trailer

 

'7인의 사무라이'가 일본영화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분명 아시아를 대표하는 감독이었고, 알고보면 헐리우드에서도 그의 영화와

작품세계에 대해 광적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는 마력이 분명 존재했으니까 말이다. 그만큼 오늘날

아키라 감독만의 독특한 영화세계는 수많은 영화인들에게 은연중에 너무도 많은 영향을 미쳤던게 사실이고,

여전히 일본의 문화예술작품만이 가진 독창성은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례로 워쇼스키 남매가

연출했던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는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를 통해 탄생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너무나 유명하다. 한국의 박찬욱 감독이 만든 '올드보이'도 사실은 일본만화가 원작 아니던가.

그만큼 일본이라는 섬나라가 가진 독특한 색채와 정신세계는 어쩌면 세계화로 가는데 있어

오히려 더 유리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사무라이 영화들은 대게 사실적 폭력묘사와 극적인 효과의 극대화에

있었다. '7인의 사무라이'나 '요짐보' 등에서 볼 수 있는 결투나 전투장면들은 그 때까지 전통적으로

은유적 표현을 해왔던 일본 사무라이 극을 서구적인 표현방식에 입각해 사실적인 방향으로 바꾸어 놓았다. 

때문에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이후의 수 많은 사무라이 영화들에서는 팔다리가 잘리고 피가 튀는

자극적인 장면들이 일상화 되어 나중에 그는 이러한 경향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7인의 사무라이에서는 개별 무사들이 하나둘 모이게 되는 과정도 오밀조밀한 매력이 있으며  대장

(시무라 다케시, Takashi Shimura)과 개개의 무사들이 치밀하게 작전을 구상하여

마적들에게 대항하고 있는 장면은 뒤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재미있게 펼쳐진다.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에서 사무라이 액션의 사실적인 묘사 외에 또 다른 특징을 꼽자면, 바로

휴머니즘과 유머이다. 그의 시대극을 제외하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답을 찾는 영화들

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영화들이 전개되는 두가지 축이 휴머니즘과 유머인 것이다. 이를테면

현명한 노인들의 살아가는 방식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배울 수 있다거나, 밑바닥에 등장하는 최하층민들도

칠인의 사무라이에 나오는 몰락 무사들도, 숨은 요새의 세 악인에 나오는 공주와 부하들도 모두 유머를

안다. 이러한 유머는 활극과 현대극 양쪽에서 스토리 전개의 긴장감 속에 여유를 불어넣는

역활을 하게 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페르소나로 통하는 미후네 토시로(Toshiro Mifune) 역시

라쇼몽 이후 '7인의 사무라이'에서 희극적 인물 '기쿠지요'역으로 나와 이런 활력을 불어넣는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망원렌즈를 즐겨 사용하여 프레임을 평면적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이는 카메라를 배우에게서 떨어뜨리는 것이 배우들의 연기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동시에 여러 대의 카메라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 방법을 통해 여러 각도에서의 화면을 잡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화면의 분위기를 날씨로 많이 조절하기도 했다. 7인의 사무라이에 등장하는

빗속의 전투장면이나, 거미집의 성에서 보았던 안개같은 것들도 다 이러한 연출방식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도 그렇지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이동할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일관되게 움직이는 것도 특징이다.

 

 

 

 

 

'7인의 사무라이'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세계를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수준 높은 흑백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던 농민과 영광스러운 전성기를

다 보낸 사무라이들은 이전만 해도 어울릴 수 없는 갈등 관계이었지만 구로사와의 휴머니즘으로 절묘하게

융화된다. 또한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 처럼 '전쟁에서 이긴 것은 사무라이가 아니라 농민이다'에서도

구로사와의 휴머니즘과 철학, 진정한 의로운 존재에 대한 대중들의 갈망을 엿볼 수 있다.

 

 

 

 

 

7인의 사무라이는 악을 물리치고 정의를 실현하는 사무라이의 존재에 대한 일본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고 한다. 그것이 비록 '사무라이'라는 일본 특유의 무사이기는 했지만, 어느 국가 어느

사회건 반드시 존재하는 개인 또는 집단 간의 갈등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었기 때문에 세계인들로부터

공감을 얻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칠인의 사무라이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특유의

연출력이 돋보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관련 포스팅: 라쇼몽(羅生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페르소나(Persona) 미후네 토시로

 

7인의 사무라이
七人の侍, Seven Samurai, 1954

일본
상영시간:205분
국내개봉:2004년4월16일

감독:구로사와 아키라(Akira Kurosawa)

 

출연

미후네 토시로(Toshiro Mifune), 시무라 다케시(Takashi Shimura),
츠시마 케이코(Keiko Tsushima), 시마자키 유키코(Yukiko Shimazaki),
후지와라 카마타리(atari Fujiwara), 카토 다이수케(Daisuke Kato),
키무라 이시오(Isao Kimura), 치아키 미노루(Minoru Chiaki) 외

 

수상
오스카 후보 : So Matsuyama(미술감독), Kôhei Ezaki(의상),

베네치아 영화제 : Akira Kurosawa(은사자상), 황금사자상 후보

 

 

 

▲ 7인의 사무라이- Seven Samurai (1954) HD trailer1

 

구로사와 아키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일본 감독이다. 그의 긴장감 넘치고

설득력 있는 인간적 서사시 '7인의 사무라이'는 오래도록 인기를 누리며 가장 많이 상영된 걸작이다.

구로사와의 작품을 모델로 한 서부영화로 1950년 작 '라쇼몽'을 리메이크한 '아웃레이지'(1964)와,

1961년작 '요짐보'를 그대로 옮겨놓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획기적인 스파게티 웨스턴

'황야의 무법자'(1964)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깊이는 덜하지만 '7인의 사무라이'를

리메이크한 '황야의 7인'이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구로사와는 존 포드의 서부극에서 영감을 얻어 일본의 중세를 판타지적 세계로 표현함으로써

검술에 중점을 두던 일본 시대극의 제한된 전통에서 대담하게 벗어났다. '7인의 사무라이'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경이로운 액션과 희극적 사건, 재난과 사회 드라마, 아름다운 인물, 의무와

욕망의 갈등은 철저히 사실주의적 시선으로 다루어졌다.

 

 

 

 

 

16세기 중반 일본은, 중앙 정부의 세력은 약해지는 반면 지방 정치 세력은 점점 강해져

내분이 잦았다. 잦은 내분으로 혼란스러운 정국을 틈타 산적 무리들이 매년 강간과 살인, 도적질을

일삼는 침략에 시달리던 한 가난한 농촌 마을 사람들이 그들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고 '로닌'

(주인 없이 떠도는 사무라이)을 고용한다. 보수로 줄 거라고는 약간의 쌀뿐인 그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고용할 칼잡이를 찾아 나섰는데, 운 좋게도 아무 대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명예롭고 동정적인 캄베이(시무라 다카시)를 만난다.

 

 

 

 

이 영웅적 인물은 음식이나 재미를 얻는 것만으로도 기꺼이 싸우겠다는 다섯 명의 떠돌이를

더 모아오고, 그중에는 마음씨 좋은 노인과 촉촉한 눈망울의 젊은 수련생, 거의 말이 없는 검술의

대가도 포함되어 있다. 성급하고 충동적인 젊은 농부 기쿠지요(미후네 도시로)는 그 무리에

끼려다가 노련한 사무라이에게 거부당하지만, 캄베이에게 자신을 증명하겠다는

일념으로 사무라이처럼 위장하고 그들을 따라다닌다.

 

 

 

 

처음에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신뢰하지 않지만 점점 그 사이에 유대가 형성되고

사랑도 피어나고 아이들은 영웅들을 잘 따르게 된다. 캄베이는 뛰어난 전략을 세워 침략자들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고 결국 그들을 무찌른다. 영화는 필요 없는 설명은 생략하고 빠른 속도로

거침없이 진행되는데 이런 방식은 신비감을 유발하면서 불안감을 유지한다. 예컨대 농부들이 자신들을

보호해줄 사무라이를 찾으러 다니고 캄베이에게 사정을 설명하는 과정은 짧은 쇼트와 빠른

편집으로 이루어진다. 시각적 요소와 정서적 요소가 압도적인 장면도 곳곳에 등장한다.

 

 

 

 

불타는 방앗간에서 죽어 가던 여인이 혼신의 힘으로 기어 나와 자기 아기를 기쿠지요

(미후네 토시로)에게 건네준다. 그는 충격상태에서 냇가에 주저앉아 흐느끼며 울부짖는다.

“이 아기가 나야. 내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었어.” 그의 뒤에는 물레방아가 불붙은 채 돌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위대한 순간은 결말이다. 세 명의 생존자가 동지들의 무덤을 보살피는 동안

지난 일은 다 잊은 듯 희희낙락하며 모내기에만 열중하고 있는 농부들의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구로사와 아키라
黑澤明(흑택명)くろさわ あきら
Kurosawa Akira
영화감독
출생:1910년 3월 23일(일본)
사망:1998년 9월 6일
신체:182cm
데뷔:1943년 스가타 산지로

 

 

 

 

도쿄 부 에바라 군 오이 정(현:도쿄 도 시나가와 구)의 학교법인일본체육회(현재 일본체육대학)의

부속지역에서 4남 4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키타 현 나카센 정 (현:다이센 정) 출신의

전직 군장교, 체육교사, 학교법인일본체육회이사였다. 그는 중학교 졸업후 그림공부를 했는데 권위있는

미술상도 받고 일본프롤레타리아 미술동맹에도 참가할 정도로 열정이 있었다. 1936년에

도호의 전신인 PCL에서 조감독으로 영화산업에서의 이력을 시작했다.

 

 

 


그는 야마모토 가지로(山本嘉次郞)의 조감독으로 일하던 1943년에 '스가타 산시로'로

데뷔하였는데 조감독으로 일하던 도중에도 각본가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초기작들은 전쟁 중인

일본 정황을 관조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종종 민족주의적인 주제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가장 아름다운'은 군수공장에서 일하는 여공에 대한 선전영화적인 느낌이 있고, 속 스가타

산시로에서는 명백한 반미감정과 미국 권투에 대한 일본 유도의 우수성이 묘사되어 있다.

 

 

 

 

 

반면에 그의 초기 전쟁영화인 우리 청춘 후회없다는 체포된 우익분자의 아내에 관한

영화로 일본제국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을 찍은 후 주연 야구치

요코(矢口陽子)와 결혼하여 딸과 아들을 두었는데, 손녀는 배우로 유명한 구로사와 유우(黒澤優)이다.)

러시아 문학과 존 포드의 영화에 영향을 받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맥베드,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

막심 고리키의 밑바닥,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덤불 속 등을 개작하여 다양한 문예영화를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칠인의 사무라이, 숨은 요새의 세 악인 등의 순수 오락영화 시대극도 있고,

이키루, 천국과 지옥 등의 휴먼드라마 현대극 등도 있다. 주정뱅이 천사(1948년)부터 붉은 수염

(1965년)까지 주연으로 미후네 도시로(三船敏郎)를 자주 기용하였다.

 

 

 

 

1960년에 자신의 프로덕션을 차려 독립하게 되지만 이후 계속 자금난에 시달리게 된다.

이 시기에 사무라이 오락물이 많이 등장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일본영화의 침체기에 빠져든 60년대에

그는 오히려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기획들을 내놓았고 영화사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된다. 게다가

그 타협을 모르는 엄격한 제작태도때문에, 영화제작이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 붉은 수염 제작 이후

도호와 관계가 악화되어 구로사와는 미국에서 폭주기관차의 제작을 준비하나 제작방침이 바뀐

미국측과의 심각한 대립이 발생하여 영화는 제작되지 못했다.(이후 이것은 안드레이

콘차롭스키 (Andrei Konchalovsky) 에 의해 구로사와의 각본을 원안으로 삼아 영화화된다.)

 

 

 

 

1968년에 미일 합작으로 도라 도라 도라의 일본측 감독으로 일하게 되지만, 미국측

제작사였던 20세기폭스나 그 일본인 브로커 등과 촬영 시작부터 스케줄이나 예산 등을 둘러싸고

격렬한 충돌이 일어나 감독에서 물러나게 되고 자살 미수사건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구로사와의 대신으로는 마쓰다 도시로(舛田利雄)、후쿠사쿠 킨지(深作欣二) 등이 공동 감독이 되었다.

(크레딧에는 공동감독으로 나왔지만 사실은 특수촬영이나 전투기 콕핏신 등에서의 조감독

역할을 했다)덧붙여 구로사와 본인의 의향에 따라 크레딧에는 이름이 없지만 각본은

구로사와가 쓴 것이 대부분 사용되었다.

 

 

 


그 이후 영화제작에서 멀어져있다가, 소련 영화계의 전면지원으로 데루스 우잘라를,

조지 루커스, 프란시스 코폴라를 프로듀서로 카게무샤를, 프랑스와의 합작으로 란을, 워너브라더스

제작(크레딧에는 스필버그 제공으로 나온다)으로 꿈을 만드는 등 해외 자본으로 영화를 계속

만들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팔월의 광시곡, 마다다요를 감독하였으나 차기작으로 예정된 비 그치다의

각본을 쓰던 중 교토의 여관에서 넘어져 골절을 당하는 바람에 영화 제작은 불가능해졌다.

1998년 9월 6일에 뇌졸중으로 사망하였고, 같은해 10월 1일에 일본 국민영예상을 받았다.

 

  

 

 

수상


1950년, 라쇼몽 : 베니스영화제 금사자상,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 블루리본상 (영화)
1954년, 칠인의 사무라이 :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
1958년, 숨은 요새의 세 악인 : 베를린 국제 영화제 은곰상 (감독상)
1975년, 데루스 우잘라 :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1980년, 카게무샤 : 칸영화제 그랑프리, 영국 아카데미상 감독상
1982년, 베니스영화제 평생공로상
1984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
1985년, 란 (영화) : 전미 비평가 협회상 최고 영화상, 영국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
1985년, 문화훈장
1990년, 아카데미 평생공로상,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상
1995년, 국민영예상

 

 

 

주요작품

 

1943년 스가타 산시로(姿三四郎)

1944년 가장 아름답게(一番美しく)

1945년 속 스가타 산시로(続姿三四郎)

호랑이 꼬리를 밟은 사내들(虎の尾を踏む男達)

1946년 내 청춘에 후회 없다(わが青春に悔なし)

1947년 멋진 일요일(素晴らしき日曜日)

1948년 주정뱅이 천사(酔いどれ天使)

1949년 조용한 결투(静かなる決闘)

1949년 들개(野良犬)

1950년 추문(醜聞)

1950년 라쇼몽(羅生門)
1951년 백치(白痴)

1952년 이키루(生きる)

1954년 7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

1955년 생존의 기록(生きものの記録)

1957년 거미집의 성(蜘蛛巣城)

1957년 밑바닥(どん底)

1958년 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隠し砦の三悪人)

1960년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悪い奴ほどよく眠る)

1961년 요짐보(用心棒)

1962년 쓰바키 산주로(椿三十郎)

1963년 천국과 지옥(天国と地獄)

1965년 붉은 수염(赤ひげ)

1970년 도데스카덴(どですかでん)
1975년 데루스 우잘라(デルス・ウザーラ)

1980년 카게무샤(影武者)

1985년 란(乱)

1990년 꿈

1991년 팔월의 광시곡(八月の狂詩曲)

1993년 마다다요(まあだだよ)


영혼을때리는영화/아시아영화 2013.07.25 17:19

라쇼몽(羅生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페르소나(Persona) 미후네 토시로






라쇼몽(羅生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페르소나(Persona) 미후네 토시로

 

일본영화의 거장이자 전설인 구로사와 아키라(Kurosawa Akira)감독의 '라쇼몽'

(羅生門, In The Woods)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도 작품이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첫번째

걸작에 해당하는 '라쇼몽'은 당시 헐리우드 오스카상 후보(미술감독)에 올랐고, 결국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명예상을 수상했다. 또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이탈리아 평론가상까지

거머쥐는 영광을 누렸던 걸작이다. 배우 미후네 토시로(Toshiro Mifune)는 '7인의 사무라이'에도

등장하지만, 일본인 답지 않은 서구적인 마스크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잘생긴 배우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아키라 감독에게 시무라 다카시와 함께 페르소나(Persona)로 잘 알려져 있다.

 

 

 

 

페르소나(Persona)란,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로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하는 말이다. 연극이나 영화에 있어서 인생이라는 연극의 배우인 인간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어쨌든, 배우 '미후네 토시로'는 한국의 신성일 처럼 잘 생긴 배우였을 뿐만 

아니라 감정표현이 매우 풍부했던 배우로 기억된다. 진지할 때는 기가 막히게 진지한 사무라이 같은

역활로 나오기도 하지만, 엉뚱할 때는 마치 만화책에 나오는 캐릭터 처럼, 혹은 방송인 노홍철 처럼

희극적인 역활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던 배우이기도 했다.

 

 

 

 

미후네 토시로는 1997년 지병으로 타계했지만, 잘생긴 그가 사무라이 역활로 등장하는

영화 속 등장인물 처럼 개인적으로는 한 때 미친듯이 좋아했던 비디오 게임의 캐릭터도 그의

이미지를 그대로 따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일본에서 국민배우로 대접 받았을 법도 한데

충분히 그러했거나, 아니면 그런 이미지를 선호할 지도 모른다. 바로 대전게임 '소울칼리버2'의 캐릭터 중

하나인 '미츠루기'가 바로 미후네 토시로가 아니었나 그렇게 짐작해 본다. 이 게임을 아는

분들은 공감하시리라 본다. 일반적인 일본인은 그리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 '라쇼몽(Rashomon)' 메인 트레일러- (Akira Kurosawa, 1950)

 

 

영화 '라쇼몽'은 요즘 같이 장마가 계속되는 먹구름 낀 우중충한 날에 한번쯤 흑백영화를

감상해 보는 묘미가 있을 줄로 안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63년 전에 만든 이 영화 '라쇼몽'이

서구사회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다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꼭 놓치지 말아야

할 걸작 명화로 꼭 놓치지 않고 챙겨 보아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 영화라'는 선입견을 먼저 버리돼,

또 일본영화라고 해서 칼날이 번뜩이는 '사무라이 영화'일 것이라는 기대나는 잠시 접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라쇼몽'은 문학적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한 예로 헐리우드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를

떠올려 본다면 그들에게 '라쇼몽'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해 보게 될 것이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의 줄거리는 생각보다 조금 복잡하다. 하지만 조금만

집중하다 보면 어려운게 아니라 재미있게 이야기가 얽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게다가 일본의

독특한 문화를 체험해 보는 묘미도 있다. 잘 알다시피 일본이란 나라는 우리와 가장 인접한 아시아

국가이면서도 우리와는 비슷한 듯 완전히 다른 독특한 섬 문화 양식이 곳곳에 베어있다. 그들의 의상과

헤어스타일, 화장법 등 배경에 흐르는 음악도 그렇고 매우 이색적이다. 그러면서도 이 흑백영화를 보노라면

어느정도 낯 익다는 생각도 들 것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일제시대를 벗어나기는 했어도

6.25 전란 이후 서둘러 전후복구를 해야하고 다시 일어서야 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일본문화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세 명의 여행자가 폭풍우가 치는 날 폐허가 된 절에 모여든다. 나무꾼(시무라 다카시)과

승려(치아키 미노루)와 평민(우에다 기치지로)은 불을 지피고 어떤 이상한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함께 풀어낸다. 그리하여 숲에서 만난 한 부부와 도둑에 관한 이야기 속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중에 나무꾼이 남편의 시체를 발견하고 경찰서에서 일어난 일들을 증언한다. 그의 설명에 승려는

겁을 먹고 평민은 재미있어 하는데, 그렇게 하나의 범죄에 관한 각기 다른

네 가지 이야기가 폭풍우 치는 내내 그들을 사로잡고 있다.

 

 

 

 

각기 다른 관점의 회상을 뒤섞은 플롯과 유려한 카메라의 움직임, 그리고 차양을 씌운 듯

촬영한 '라쇼몽'은 의심스러운 여러 가지 관점을 세밀하게 다룬다. 따라서 등장하는 인물과 묘사된

사건의 진실성은 거짓이거나 오도된 것으로서 제시된다. 증거로 제시된 사실은 즉각 의심의 대상이 된다.

남편과 아내와 산적에 관한 서로 겹쳐지는 이야기 사이의 일치하지 않는 점은 간결한 내용을

복잡하게 만든다. 즉 어떤 서술자도 신뢰할 수 없고 영화 전체도 그러하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에게 오스카상을 안겨준 이 작품은 인식론적 악몽 그 자체지만

그 결말은 여전히 선이라는 윤리적 가치를 강조한다. '라쇼몽'이 암시적으로 탐색하는 것은 쇄신과

속죄의 상실된 가능성이지만, 선과 악을 구분함으로써 진실을 발견한다는 주제는 친절과 희생

이라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지탱된다. 산적 타조마루(미후네 도시로)의 시점에서는 불한당인 그가

숲길을 가다가 마사코(쿄오 마치코)를 본 후 그녀를 탐하는데 그녀 역시 기꺼이 그를

받아들였고, 그런 다음 그녀의 사무라이 남편 타케히로(모리 마사유키)를

풀어주고 결투를 하다가 그 남편이 죽었다는 것이다.

 

 

 

 

마사코의 관점에서 볼 때 그녀는 강간과 치욕을 당했고 그러자 남편까지 자신을 내쳐

그 분노로 인한 발작 상태에서 자신이 남편을 죽인 것이다. 영매(혼마 후미코)를 통해 말하는

타케히로는 그들의 주장 중 자신이 죽었다는 점만을 인정하고, 아내가 산적 타조마루에 못지 않은

욕정을 보이면서 산적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요구했다고 말한다. 살인을 해서 얻을 것도 없다고 생각한

타조마루는 달아나고 마사코 역시 달아나 버려 혼자 남은 그는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세 사람은 모두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야기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타조마루는 무자비한

범죄자이며, 마사코는 죄 없는 피해자이며, 타케히로는 명예를 아는 전사다. 나무꾼이 나타나

그늘에 숨어 지켜본 사실을 말하기 전까지는 모두가 사실처럼 보인다. 나무꾼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내가 천박한 태도를 보인 것이 사실이고 산적의 허세는 거짓이며 남편은 겁쟁이였다.

 

 

 

 

하지만 평민이 나무꾼도 그 범죄에 연루되어 있음을 지적하자 진실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것이 된다. 구로사와는 이 암울한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마무리한다. 절간의 폐허 아래서 버려진 아기가

발견된다. 고아를 돌보는 것으로 속죄를 하겠다는 나무꾼을 통해 인간의 선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는 기발한 서사구조 속에서 보여준 '라쇼몽'의 분열증을 염두에 둔다면 일관된 결말이다.

구로사와 감독이 만든 첫 번째 걸작으로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라쇼몽
羅生門, In The Woods, 1950

범죄, 드라마, 미스터리
일본
러닝타임:90분

감독:구로사와 아키라

미후네 토시로(Toshiro Mifune), 쿄 마치코(Machiko Kyo),

모리 마사유키(Masayuki Mori), 시무라 다케시(Takashi Shimura),
치아키 미노루(Minoru Chiaki), 우에다 키치지로(Kichijiro Ueda),
혼마 노리코(Noriko Honma)

 

수상

오스카 : Akira Kurosawa(명예상),
오스카 후보 : So Matsuyama, H. Motsumoto(미술감독),
베네치아 영화제 : Akira Kurosawa(황금사자상), Akira Kurosawa(이탈리아 평론가상)

 

 

 

 

 

 

 

 

 

 

 

   

 

 

 

 

 

 

자! 그럼 이제 배우 미후네 토시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기로 하겠다. 그는 1920년 일본이 아닌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태어났다. 당시는 일본이 제국주의에 미쳐 러시아와 전쟁하고 중국과 전쟁하던

그런 시기였다. 스무살이 되던 1940년에 육군 항공 부대에 입대했는데 우연히 사진 기술을 인정받아

사진부에 배치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중 영화사 '도호'에서 촬영스탭으로 일하는 오오야마 토시하루를 알게

되어 자신도 제대 후엔 그쪽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력서를 넣었는데 엉뚱하게도 이력서는

그가 원했던 촬영부가 아닌 신인 배우 선발 쪽으로 잘못 건네지게 되면서 본의 아니게 영화배우로서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는 에피소드가 유명하다. 그리고는 일본패망 후인 1947년 타니구치 센키치 감독의

데뷔작인 '은령의 끝'(銀嶺の果て)으로 공식 데뷔하게 된다.

 

  

 

 

 

 


이처럼 자신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방향으로 운명이 바뀌게 돈 미후네 토시로는 

1948년 '주정뱅이 천사'(醉いどれ天使)를 통해서 평생의 인연이 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을 만난다.
그 뒤로 함께 한 작품들은 들개, 라쇼몽, 7인의 사무라이 등등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대표적인 걸작과

더불어 수많은 작품을 함께 작업해 나간다. 1962년엔 미후네 프로덕션(Mifune Productions)이라는 회사를

직접 설립하여, 자신이 투자도 하고, 작품을 만들기도 하였다. 미후네 토시로는 결국 노년에

건강관리를 잘 못해서인지 합병증 등의 지병으로 인해 1997년 사망한다.

 

 

 

 

 

 

미후네 토시로

(토시로 미푸네)

(みふねとしろう, 三船敏郎, Toshiro Mifune)
영화배우

출생:1920년 4월 1일(중국)

사망:1997년 12월 24일
신체:172cm, 73kg
데뷔:1947년 영화 '은령의 끝(銀嶺の果て)'
수상:1965년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1950년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금사자상

 

 

 

 

 

 

 

 

  

 

주요 출연작품

 

1967 일본의 가장 긴 하루(日本のいちばん長い日)
1965 붉은 수염(赤ひげ Red Beard)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남우 주연상, 2번째 수상
1963 천국과 지옥(天国と地獄 High and Low)
1961 요짐보(用心棒 Yojimbo)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남우 주연상, 1번째 수상
1958 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隠し砦の三悪人 The Hidden Fortress)
1957 거미의 성(蜘蛛巣城 Throne of Blood)
1954 7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 Seven Samurai)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1951 백치(白痴 The Idiot)
1950 라쇼몽(羅生門 Rashomon)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황금 사자상 수상작
1949 들개(野良犬 Stray Dog) 
1948 주정뱅이 천사(醉いどれ天使 Drunken Angel)

 

 

 

 

 

 

 

 

 

 

 

 

 

 

 

구로사와 아키라

(黒澤明 | くろさわあきら | Kurosawa Akira)

영화감독

출생:1910년 3월 23일 (일본)

사망:1998년 9월 6일

신체:182cm

데뷔:1943년 스가타 산지로

수상:1998년 국민영예상
1976년 일본 문화 공로상
1990년 아카데미 특별 공로상
1975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에 대해서는 다음에 별도로 포스팅 하기로 한다.

 

 


영혼을때리는영화/아시아영화 2013.04.27 14:27

기타노 다케시(Takeshi Kitano), 아웃레이지:비욘드로 다시 돌아오다






기타노 다케시(Takeshi Kitano), 아웃레이지:비욘드로 다시 돌아오다

 

기타노 다케시(きたのたけし)라는 배우를 떠오리면 요즘 유행어로 말해

'사람이 아니무니다'가 딱 맞는건 아닌가 싶다. 아웃레이지(2010) 영화 정도야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야비한 야쿠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르와르 쟝르의 작품이라

할 수 있지만, 기타노 다케시가 그동안 출연해 온 영화들을 보면 참 독특할

뿐만 아니라 오리지 기타노 다케시라는 배우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 나름대로의

섬뜩하면서도 희화화된 캐릭터를 매번 만나보게 된다.

 

 

 

 

바로 몇 일전에도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아웃레이지:비욘드 에서 다시한번 그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비정한

세계를 만났다. 전작에서도 조금은 과장된 듯 하지만 야쿠자라는 세계에서의

비열한 게임의법칙에 참 씁쓸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그러했다.

 

 

 

 

일단 전작 아웃레이지의 스토리는 어두운 조직세계에서 저열하게 벌어지는

그들만의 리그, 게임의법칙을 섬뜩하게 잘 그려냈는데 이번 아웃레이지:비욘드 역시

일본영화 특유의 사무라이가 나오는 이야기들과는 달리 기타노 다케시의 작품답게

날고기를 씹는듯한 특유의 거친맛이 독특한 르와르 분위기는 여전했다.

 

 

 

▲ Outrage Official Movie Trailer #1 - Takeshi Kitano (2011) Movie HD

 

영화를 보는내내 좀 불편함이 느껴지는 대목들이 많다.

그리고 마초본능의 폭력성과 막무가내식 극전개도 여전하다. 막무가내라고는 해도

대책없이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후상황과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배경이 이해는

가지만 왠지 보는내내 씁쓸하기도 하고 거친 모습들에 좀 불편하다는 것이다.

 

 

 

 

이래서 날고기 씹는 맛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일까?

아뭏든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대체로 편안한 영화가 별로 없다. ㅠ.ㅠ

내친김에 기타노 다케시에 대해 오늘 제대로 좀 살펴보기로 하자.

 

 

 

▲ 『アウトレイジ ビヨンド』 悪人から学ぶ劇場マナー養成講座 OUTRAGE BEYOND

 

기타노 다케시

Takeshi Kitano
きたのたけし

출생
1947.1.18

출생지
일본 도쿄
메이지대학교 공학부 중퇴
데뷔: 1974 코미디 그룹 '투 비트'

 

 

 

 

누군가 일본의 슈퍼스타 기타노 다케시를 우디 앨런과 비교한다면,

다케시를 좋아하는 서구의 팬들은 그 비유에 말문이 막힐 것이다. 결국 기타노는

최근 우리 기억 속에서 가장 폭력적인 야쿠자 영화를 만들어 낸 불굴의 극기적인

반영웅이 아닌가. 그러나 이 점은 오히려 세계 시장에서 유명인사로서 그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의 차이점을 더 강조해 준다. 일본에서 그는 '비트' 다케시(매우 엉뚱한 코미디언이며
인기 있는 텔레비전 연예인인)로서가 먼저고 영화제를 석권하며 높은 평가를 받는

영화작가이자 사색적인 배우 기타노는 둘째인 것이다.

 

 

 

 

기타노는 처음에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출발했고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야

몸소 영화감독이 되어 점점 더 기괴한 영화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1970년대 일본에서

'투 비츠' 코미디 팀의 두 사람 중 한 명으로 유명해졌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본의

수많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 왔다. 주연을 맡고 직접 감독까지 한
'그 남자 흉폭하다(1989)' 이전에도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그 영화는 기타노의 경력에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

 

 

 

 

이 영화를 통해 그는 코미디에서 잔인하고 선혈이 낭자한 갱스터 영화로

넘어갔고 그의 무표정한 터프가이의 방심한 듯한 태도는 느닷없이 폭발하는

폭력으로 한층 강렬한 효과를 얻었다. 이런 영화 중 최고로 꼽을 수 있는

'소나티네(1993)'와 '하나비(1997)'에는 위트도 많이 담겨 있다.

 

 

 


또 기타노는 텔레비전에서도 이 장르의 연기를 계속하면서도,

'모두 하고 있습니까?(1995)'와 '기쿠지로의 여름(1999)'처럼 폭력적이지 않고

코믹한 영화도 만들어 왔다. 감독과 배우 일 외에도 기타노는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이자 시인이자 화가이기도 하다. 그는 주류 영화감독으로 최고의 성공을

거둔 '자토이치(2003)'에서 금발로 염색한 자토이치를 연기한 후,

이 인기 있는 사무라이 인물을 연기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케시즈(2005)'에서 다시 이어 갔다.

 

 

 

 

2004년에는 최양일 감독의 '피와뼈'에 출연했다.
피와뼈는 양석일의 소설이자 이를 원작으로 2004년에 개봉된 최양일 감독의

일본 영화이다. 영화는 2004년에 개봉됐으며, 기타노 다케시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됐다.

키네마 준보 베스트 10 제2위, 각본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오다기리 조),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작품상, 닛칸 스포츠 영화 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제78회 아카데미상 일본 대표작으로 뽑혀 출품됐으나,

본선 후보 5작품에는 들지 못했다.

 

 

 

 

2013년 7회 아시아 필름 어워드 최우수감독상 수상

 

[주요 출연 작품]

 

2012 아웃레이지 비욘드
2012 당신에게
2010 귀국
2010 아웃레이지
2008 기라라의역습
2007 감독만세
2007 그들 각자의 영화관
2005 다케시즈
2004 피와뼈
2003 자토이치
2003 배틀로얄2:레퀴엠
2002 돌스
2000 배틀로얄
2000 브라더
1999 고하토
1999 기쿠지로의 여름
1997 하나비
1996 키즈리턴
1995 코드명J
1993 소나티네
1992 그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1989 그남자 흉폭하다
1985 야사
1983 전장의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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