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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팝의 르네상스 2013.08.10 10:11

폴리스(The Police)의 'Every Breath you take', 드라이빙 하면서 듣기 좋은 80년대 팝






폴리스(The Police)의 'Every Breath you take',

드라이빙 하면서 듣기 좋은 80년대 팝

 

그룹 '폴리스'의 'Every Breath you take'란 노래를 멜로디는 아는데 노래 제목이

생각 안나는 바람에 몇일 애를 먹었다. 자동차 운전을 하면서 듣기에 너무나 좋은 이 곡을 80년대 팝

코너에 포스팅 해야겠다고 생각한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해외에서 자동차 리뷰하는 영상을

보다가 이 노래 제목을 알게 되었다. 인포테인먼트라고 요즘 좋은 차들은 네비게이션을 포함한 오디오

정보까지 모든 정보를 LCD화면에서 보여주는데, 때 마침 폴리스의 'Every Breath you take'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클로즈업 됀 화면에 이 노래의 제목이 나오고 있어 알게 되었다.

 

 

 

 

'폴리스'는 80년대 R & B, 록, 레게, 펑크 록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정선되고 간결한 사운드를

구사하던 영국 출신의 록 그룹이다. 이들이 83년 5집 앨범을 발표하면서 내놓은 대표적인 히트곡이 바로

오늘 소개하려는 'Every Breath you take'란 노래다. 차를 타고 운전하면서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 많은데, 특히

80년대 팝송을 즐겨 듣는 분이라면 꼭 mp3로 파일을 구해서 들어보셨으면 한다. 오디오가 훌륭하다면

폴리스의 'Every Breath you take'란 노래를 훨씬 더 풍부한 음색으로 신나게 들어줄 수 있을 듯 하다.

이 곡은 당시 빌보드 차트에 8주간이나 정상에 머물면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었다.


 

 

 

▲ 폴리스의 대표곡 Every Breath You Take(1983, The Poilce)

 

 

 

 

 

 

당신의 모든 숨결마다

Every Breath You Take

 

당신의 모든 숨결마다 당신의 행동 하나 하나를. 당신이 무너뜨리는 약속 하나 하나마다.

당신의 걸음걸이 하나 하나를 나는 지켜 볼 것입니다. 날이면 날마다 당신의 말 하나 하나를 당신이

즐기는 게임마다 당신이 지새우는 한 밤 한 밤을 나는 지켜볼 것입니다. 오, 당신은 모르시나요.

나에겐 그대뿐이라는 것을. 당신의 걸음걸이마다 짓밟히는 나의 약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당신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당신이 깨어버린 언약, 당신의 거짓된 미소, 당신이 주장하는 모든 것들을 나는 지켜볼 것입니다.

당신이 가버린 이후로 나는 당신을 흔적도 없이 잃어버렸어요. 매일 밤 꿈속에는 당신의 얼굴뿐이랍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당신의 자리를 메울 수는 없답니다. 나는 당신의 포옹을 필요로 해요.

그대여 그래서 나는 울고 또 운답니다.

 

 

 

 

폴리스의 ' Every Breath You Take'를 들으며 평소와 다른 바이오리듬을 확인했으면 한다.

폴리스의  'Every Breath You Take'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차에서 듣기 좋은 팝송으로 주말

야외로 드라이빙 할 일 있으면 차 안에서 크게 틀고 들어줄 만한 곡으로 추천한다.^^

 

폴리스는...

 

그룹 폴리스의 출발은, 1978년 영국 런던 교외에서 각자 독특한 음악적 경력을 갖고 있던

베테랑 아티스트들이 좀더 새롭고 명쾌한 사운드를 추구하자는 결의 아래 그룹을 결성했고, 그룹 명칭도

음악계의 질서를 잡겠다는 뜻에서 경찰(Police)로 하였다. 폴리스의 1979년 데뷰 앨범'Outlands D'Amour'가

세상에 발표되었을 때 록계에서는 비상한 관심을 가졌다. 그것은 예전에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사운드며

독특한 리듬이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리듬과 단순한 보이스 컬러에 신세사이저도 없으며, 브라스는 물론

풍부한 기타 휴즈 사운드로 미약한 이들의 노래는 신선한 감정을 주었으며 로큰롤의 새로운 감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들의 음악은 영국 출신 그룹이지만 탁월한 연주기법과 새로운 감각으로 일찍부터 미국의

록 팬들에게 인기 대상이 되었다. 이들의 앨범은 곧 100만장 이상의 매상고를 올렸으며, 이 앨범에서 커트한

연주곡 'Reggatta De Blanc'는 1981년 제2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록 인스트루멘탈상을 획득하여

전례없는 행운을 잡게 되었다. 이 때부터 폴리스는 세계적인 그룹으로 더욱 큰 인기를 얻게 되는데 리드 보컬인

Sting의 인기는 모든 음악지에 최우수 아티스트로 뽑혔다. 폴리스의 음악적인 기본은 결코

레게 사운드가 아니며 리듬 앤 블루스와 록에 있다는 기타리스트 앤디 써머스의 얘기로,

이들의 음악적 기질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80' 팝의 르네상스 2013.08.07 17:52

에디 헌팅톤(Eddy Huntington)의 'U.S.S.R' 추억의 80년대 댄스곡






디 헌팅톤(Eddy Huntington)의 'U.S.S.R' 추억의 80년대 댄스곡

 

'에디 헌팅톤'이라는 러시아 가수가 부른 '유에쓰에쓰알'이란 댄스곡이 있었다.

80년대 후반 유로댄스 뮤직이 한창 룰러장 등에서 유행하던 당시 이른바 '닭장'이라고 하는

나이트클럽에 가면 어김없이 흘러나오던 추억의 댄스곡인데, 사실 80년대 유망한 팝송만을 다루려 했던

당초 계획과 달리 생각나는 대로 쓰다보니 댄스곡이던 발라드던 가릴 것 없이 쓰게 되었다.

그래도 에디 헌팅톤의 '유.에쓰.에쓰.알(U.S.S.R)'은 무더운 여름날씨가 계속 되는 가운데 이런 신나는

곡과 함께 추억에 잠겨보는 것도 괜찮을 법 하다. 멜로디 자체가 요즘 음악과는 많이도 다르지만,

그래도 나름 러시아 다운 풍미가 잔뜩 묻어있다는 생각에 신선한 느낌이 든다.

 

 

 

 

에디헌팅톤이 USSR이란 댄싱곡을 불렀을 때만 해도 러시아, 그러니까 구 소련은 큰 변화를

겪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소련(蘇聯)'이라고 부르는 말은 '소비에트 연방(Soviet Union)'의 준말이다.

공산국가에 대한 반감 때문에라도 강하게 발음하여 "쏘련"이라고 불렀고, 과거 1983년에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 전투기에 격추당하는 아픈 기억도 있다. 당시 사건은 음모론과 얽히면서 여전히 미스테리한

부분들이 남아있기도 한데, 그 무렵에 초중고생 모두가 동원돼어 궐기대회, 규탄대회를 벌였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참 심각했던 그런 시절도 있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에디헌팅톤의 USSR 곡을 소개하려다가 구 소련 이야기가 나오다보니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상식이라 생각되어 언급해 보았다. 아뭏든 에디 헌팅톤의 USSR이 나오던 그 무렵, 정확히

1990년 고르바초프가 냉전종식을 선언한 이래 1991년 12월31일 부로 소련(소비에트 연방)은

해체되면서 지금의 러시아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 에디 헌팅톤의 유.에쓰.에쓰.알: Eddy Huntington - U.S.S.R. (best audio)

 

에디 헌팅톤의 USSR을 들으면 알겠지만, 우리가 오락실에 가서 흔하게 접했던

'테트리스'의 멜로디가 연상될거란 생각이 든다. 비록 직접적으로는 다르겠지만, 추운지방 러시아의

전통 멜로디가 연상됀다. 적어도 오랫동안 극동지역에서부터 동유럽까지 거대한 동토(凍土), 얼음대륙을

지배하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위용이나 특유의 분위기 정도는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자세한 가사내용까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에디 헌팅톤과 그가 부른 USSR 곡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온라인 상에서 찾아내기도 쉽지는 않다. 다만, 오랜만에 떠오른 추억의 댄스뮤직 U.S.S.R을

들으며 과거의 향수와 더불어 러시아, 구 쏘련에 대한 개념정리도 좀 해보게 된다.

오랜만에 즐거운 감상 되시길 바란다. ^^

 

 

 

▲ 2011년에 있었던 에디헌팅톤의 공연, 화려한 군무와 더불어 USSR을 감상해보시기 바란다.

 

 

 

 

 

 

 

 

USSR

 

 USSR의 의미:'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을 말하며 일반적으로 '소비에트 연방' 또는

'구 소련'이라고 부른다. 소련은 1922년부터 1991년까지 존재했던 여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구성된 최초의 사회주의 연방국가이다. 동유럽에서 북아시아 및 중앙아시아에 걸친 광대한 영역을 차지하고

15개의 독립공화국과 20개의 자치공화국, 8개의 자치주, 10개의 민족관구로 구성되어 있었다.

 

 

  

 

 

독립공화국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우즈베크스탄·카자흐스탄·아제르바이잔·몰다비아·

키르키스탄·타직키스탄·아르메니아·투르크멘스탄·그루지야·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이 있었다.

다양한 소수민족들로 형성되어 각 민족은 민족어와 공용어인 러시아어를 사용하였고 카톨릭, 개신교,

희랍정교, 이슬람교, 불교, 샤머니즘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했다. 하지만 공산당 일당독재에 의한

강력한 중앙집권의 연방을 이루고 지역적인 행정 단위에 대한 정치적 혹은 경제적 독립을 사실상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소련은 말로는 연방이었지 가장 중앙집권화된 국가였다.

 

 

 

 

 

 

 

 

 


80' 팝의 르네상스 2013.08.07 09:38

심플 마인즈(Simple Minds)의 '돈츄(Don't You)', 어느덧 30년전 노래로...






심플 마인즈(Simple Minds)의 '돈츄(Don't You)', 어느덧 30년전 노래로...

 

'심플 마인즈'라는 그룹은 80년대 팝 아티스트들 중에 그렇게 누구에게나 쉽게

기억돼는 존재는 아니었다. 다만, 심플 마인즈의 '돈츄(Don't You)'라는 곡만큼은 한번쯤

누구나 들어보았을 멜로디가 담겨있는데 이게 참 얼마나 독특한 멜로디인지, 어느덧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오랜만에 다시 들었을 때 "아~! 이 멜로디..."라며 기억을 떠올릴만큼 심플 마인즈의

이 곡은 분명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따. 30년전이면 중학교 2학년 때인가 3학년 때인가? -_-;;

아뭏든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한창 사춘기를 지나가는 무렵에 들었던 곡들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들면서 신기함 마져 발견하게 된다.

 

 

 

 

물론, 80년대 팝의 르네상스 시절은 오늘날과는 다른 확실한 그 무엇이 존재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80년대가 특히 팝의 전성기로 발전하게 된 데에는 대중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전파할 수 있는 다양한 매체가 요즘같지 않았기 때문에 그게 더 가능햇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래서 '심플 마인즈'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개성있는 팝아티스트들이 창궐(?)하는

수준으로 계속해서 탄생하게 되었고 팝의 중흥기를 불러오게 된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즉, 자신의 노래실력이나 작품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이런 창작활동 말고 그 시대 젊은이들에게 자신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다른 문화와 매체가 또 있었나 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국가에서 굉장히 창의적인 팝 아티스트들이 넘쳐날 수 밖에 없는 시대적 특수성이

그렇게 80년대 내내 자리잡게 되었고 뮤직비디오의 탄생은 이를 가속화한 것이라고 본다.

 

 

 

▲ 심플 마인즈 Simple Minds - Don't You (Forget About Me)

 

어쨌든, 심플 마인즈의 '돈츄'를 처음 듣게 되었던 중학생 시절, 정말 풋내기에

불과했음에도 그 때 들었던 이 음악이 중년이 되는 이날까지도 기억에 남을 줄은 몰랐다.

우연한 기회에 차에서 다시 듣고는 '느낌표'가 머리에 떠오르면서 이 그룹에 대해 궁금증이 마구

피어오른 나머지 그 기억을 블로그에 남겨야 겠다는 생각에 오늘 심플마인즈라는 그룹과

그들의 대표곡 '돈츄(Don't You)'를 포스팅해 본다.  돈츄의 원래 제목은 뒤에 따라 붙는 구절이

있다. Don't You (Forget About Me)가 정확한 제목이다. 어느덧 30년 세월을

묻혀있던 심플 마인즈의 돈츄를 들으며 한동안 잊고 지냈던 아날로그적 감성을

꺼내보는 것도 좋은 순간이 될거라 생각해 본다.

 

 

 

 

심플 마인즈
(Simple Minds)
가수
멤버
짐 커(Jim Kerr, 보컬), 찰리 버칠(Charlie Burchill, 기타),
멜 게이나(Mel Gaynor, 드럼), 마크 테일러(Mark Taylor, 키보드),
에디 더피(Eddie Duffy, 베이스)
데뷔1979년 1집 앨범 'Life in a Day'

 

 

 

 

심플 마인즈(Simple Minds)는 Jim Kerr(리드 보컬), Charles Burchill(어쿠스틱·일렉트릭 기타),
Berek Forbes(베이스 기타)와 Mel Gaynor(드럼)와 Michael Macneil(키보드) 등 5명으로,
1977년 영국 글래스고우에서 결성하였다. 이들은 글래스고우에서 클럽 밴드로 전전하다가 아리스타

레코드사에 발탁되어, 79년 3월에 앨범 「Life In A Day」을 발표한다. 심플 마인즈의 멤버중 핵심이 되는

짐 커와 찰리 버칠은 어릴때부터의 친구로, 짐은 록시 뮤직과 레드 제플린을 무척 좋아하는

록 매니어였고, 찰리는 클래식에 매료를 느낀 클래식 매니아였다.

 

 

 

 

클래식과 록의 결합으로써 현란치 않고 유니크한 그룹으로 인정받은 이들은, 두번째 앨범

'Real To Real Gacophony'를 79년 11월에, 그리고 80년에는 세번째 앨범 'Empires & Dance'를 내놓았다.

이들은 서사적이며 서정적인 가사와 목가적인 성격을 띈 사운드를 구사하여, 한때 ‘촌놈들의 촌음악’이란

평을 듣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사운드를 자신들의 특성으로 살려 계속 정진해 나갔다. 81년 9월에

'Son And Fascination', 82년 2월에 'Celebration', 그리고 여섯번째 앨범인 'New Gold Dream'을 82년

9월에 발표하였는데, 이 'New Gold Dream'으로 이들은 실로 새로운 황금의 꿈을 만끽한다.

 

 

 

 

종교적인 색채를 물씬 풍기며, 철학적인 요소가 다분히 가미된 이들은 84년 2월에는 또다시

'Sparkle In The Rain'이란 앨범을 내놓는데 한층 더 깊어진 심플 마인즈의 사운드를 이 앨범에서 엿볼 수

있다. 계속하여 ‘The Breakfast Club’에 삽입된 싱글 'Don't You'가 발표되어 미국 시장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코러스의 앙상블로 보다 다이나믹해진 사운드, 그리고 종교적인 깊이의 가사 등 훨씬

원숙해진 멋을 느낄 수 있는 여덟번째 앨범 'Once Upon A Time'을 발표하여 이들의

저력을 과시했다.(네이버 팝스타 소사전)

 

 

 

 

  

 

 

 

  

 

 

 

 

 

 

 

 

 

 


80' 팝의 르네상스 2013.07.16 12:16

앤지 골드(Angie Gold)의 Eat You Up, 양혜승의 '화려한 싱글'원곡






앤지 골드(Angie Gold)의 Eat You Up, 양혜승의 '화려한 싱글'원곡

 

80년대 중반 앤지 골드(Angie Gold)의 'Eat You Up'처럼 유로댄스가 강세를

펼치던 때가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양혜승의 '화려한 싱글'이란 노래의 원곡이기도

한데, 당시엔 롤러장 등에서 많이 울려 퍼지던 대표적인 댄스곡이다. 오늘 소개할 곡은

80년대 유로댄스의 절정기에 큰 인기를 누렸던 앤지골드의 'Eat You Up'이다.

강한 비트와 열정적인 목소리로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는 앤지골드의 이 화려한

댄스곡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양혜승의 '화려한 싱글'

원곡으로서의 가치를 다시 한번 발견했으면 한다.

 

 

 

 

80년대 유로댄스가 궁금해서 '잇츠업' 혹은 'EAT YOU UP'등으로 검색해

보면 난데없이 보아의 같은 제목 노래가 나오기도 하는데, 어쨌든 이 명곡을 불렀던

가수 앤지 골드(Angie Gold)에 대한 정보는 정말 찾아내기 쉽지 않다.

85년에 발표한 1집 앨범이라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제목이 'Eat You Up'이라고 해서

직역으로 "널 먹어버릴거야" 이렇게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ㅠ.ㅠ 직역하면

매우 상스럽고 과격한 호러 같은 노래가 되기 때문이다. 의역을 해야 한다.

 

 

 

▲ 앤지 골드(Angie Gold)의 'Eat You Up'

 

앤지 골드가 부른 'Eat You Up'의 경우 개인적으로는 도입부가 마음에 든다.

마치 쥬라기 공원에 울려퍼지는 익룡의 울음소리 같은게 들리는데 이게 어떤 의도

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독특하다. 이런 시도를 30년 전에 했다는게 놀랍다.

앤지골드의 'Eat You Up'은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 다시 들어도 전혀 싫증이 나지 않는다.

이런 테크노 댄스류의 음악들이 8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양산되었지만, 세월이

근 30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전혀 촌스럽지 않게 들린다.

 

 

 

 

80년대 팝의 르네상스 시절엔 가수들을 '아티스트'라고 불렀다.

유행가를 부르다 노래와 함께 쉽게 잊혀져 버리는 가수가 있는가 하면, 세월이

흘러서 다시 들어도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팝 아티스트들이라고 생각한다. 앤지 골드 또한 'Eat You Up'이란

곡 하나만을 남겼지만, 그런 평가를 받기에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Eat You Up-Angie Gold(앤지골드)

 

You told me once that you loved me
You said that I was the only one

It took sometime, but now I know
That you're the proverbial
Surrender bitch, now!

Messin' with me wasn't wise, boy
Cos I've been around for too long

And now you're gonna pay
for those lies, boy
I'm gonna put you back down
Where you belong, boy

I'm gonna eat you up, eat you up,
And run you right into the ground

I'm gonna wind you up, turn you on
And burn all your bridges right down

I'm gonna eat you up, eat you up,
Here you should never come around
I'm gonna wind you up, turn you on
And run you right out of this town

You're such a fool to believe in
That I let you two-time on me
And I know all about your deceivin'
I'm paying back this to you
Just wait and see now

You thought you took me for a ride, boy
I was only a part of your game

The joy had more than the wise, boy
You'll never do it again
You missed her big
I'm gonna eat you up, eat you up,
And run you right into the ground
I'm gonna wind you up, turn you on
And burn all your bridges right down

I`m gonna, I`m gonna
I`m gonna, I`m gonna


80' 팝의 르네상스 2013.06.11 22:32

'비지스(Bee Gees)'의 '홀리데이(1967)' 오리지널 감상






'비지스(Bee Gees)'의 '홀리데이(1967)' 오리지널 감상

 

비지스의 명곡 '홀리데이'(Hollyday,1967)는 다양한 영화에 사운드트렉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영화 OST에 사용된 곡은 홀리데이 외에도 여러곡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존 트라볼타가 나오는 1977년작 '토요일밤의 열기'란 영화에서는

비지스의 'Saturday Night Fever'곡이 사용되어 당시 영화와 함께 선풍적인

디스코 열풍을 선도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었다.

 

 

 

 

배우 존 트라볼타는 이미 1990년대 영화 중 쿠엔티의 '펄프픽션'에서도

특유의 춤 솜씨를 보이기도 했지만, 이미 진작부터 헐리우드에서 알아주는 춤꾼이었다.

오늘은 정서적으로 한국인들에게 가장 잘 맞는 비지스의 대표곡 '홀리데이'(Holiday)와

함께 이들 삼형제 밴드에 대해 간단히 소개할 까 한다.

 

 

 

 

한국영화 중에는 대표적으로 이명세 감독의 1999년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2005년 탈옥수 지강헌의 이야기를 다룬 양윤호 감독의 '홀리데이'가 있다.

극장에서는 흥행에 참패했지만, 악역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남긴 최민수가

그만 배우 이성재를 집어삼키지 않았던가 싶기도 하다. 한 마디로 운이 좀 없었다.

이들 영화에 쓰였던 비지스의 '홀리데이'는 아마도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차라리 제대로 효과를 보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 Bee Gees - Holiday (1967)

아마도 이 오리지널 영상을 본 사람은 드믈 것이다.

 

외국에는 형제들이 뭉쳐 그룹을 만들어 음악활동을 하는 경우가 참 많다는 것을

발견한다. 또 영화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아예 마이클 더글러스나 찰리쉰 또는 알랙볼드윈

같은 유명한 배우들은 부모형제 모두 집안 자체가 대대로 배우로 활동하는 사례를

많이 보아왔다. 그런데 오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룹 '비지스'의 멤버들이 삼형제로

구성되어 꽤 오래도록 공전의 히트곡들을 남겨온 것도 대단하지만, 그들 형제가 하나 둘

늙어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함께 해왔다라는 점은

매우 아름다운 모습으로 길이 기억될만 하다고 생각해본다.

 

 

 

 

영국의 더글라스에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부모의 영향으로 음악적 재능과

함께 자연스럽게 가수의 길을 가게 된 이들 삼형제는, 베리 깁(Barry Gibb, 1946.9.1),

베리의 쌍동이 형제인 로빈 깁 그리고 모리스 깁(Robin Gibb, Maurice Gibb,

1949.12.22일)은, 영국의 맨체스터에서 댄스 밴드를 갖고 있던 부친과

싱어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쩌면 이미 배경환경을 비롯해

모든 조건이 천부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음악 가정에서 태어난 이들은 호주의 브리스베인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성장했고, 어딜 가나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났던 이들은 1956년 드디어 자연스럽게 

B. G. S.라는 아마츄어 록 그룹을 결성해 연주 활동을 시작했는데 호주의 해안 도시

시드니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중 1962년에 그룹 이름을 Bee Gees로 개명했다. 
깁 형제(Brothers Gibb)의 첫 자를 따 BG's로 활동하다가 '비지스(Bee Gees)'로

이름을 고친 것이다. 그리고 1966년 'Spicks & Specks'라는 곡으로 정식 데뷔했다.

 

 

 

 

이후 1967년 영국에 다시 돌아온 비지스는 첫 앨범 'The Bee Gee's 1st'를

내놓았고 'Massachusettes'를 시작으로 'Holiday', 'World Words', 'I Started a Joke',

'To Love Somebody','First of May' 등의 히트곡을 연달아 냈다.

1969년에는 팀 해체의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1970년 재결성, 미국 시장으로 건너가

풍부한 멜로디와 하모니, 댄스리듬의 디스코 음악을 전성기를 열었다.

 

 

 

▲ Bee Gees - Stayin' Alive

 

1975년 차트 1위에 오른 'Jive Talkin' 을 비롯해 'You Should Be Dancing' 등을

히트시킨 후 1977년 영화 '토요일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의 사운드트랙

앨범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Stayin Alive'와 , 'How Deep Is Your Love',

'Night Fever' 등이 수록된 이 앨범은 당시 2800만 장이 팔리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

했으며 존 트라볼타의 영화와 더불어 70년대 디스코 열풍을 이끌었다.

 

 

 

▲ 영화 '토요일밤의 열기' 존 트라볼타 주연.

Saturday Night Fever - Night Fever (Bee Gees)

 

 

 

 

 

 

관련포스팅: 영화사에 길이남을 명장면 '펄프픽션' 존트라볼타 & 우마서먼 댄스

 


이후에도 'Tragedy','Too Mush Heaven','Love You Inside Out'등의

히트곡을 남기며 꾸준히 음악활동을 해온 비지스는 1978년 제21회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 최우수 그룹 팝보컬 상을 수여하였으며, 1997년 '록큰론

명예의 전당'과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 The Bee Gees- 'Massachusetts'

초기 비지스는 발라드 풍의 감미로운 곡들 위주로 발표했었다.


그 후 2003년 막내인 모리스 깁이 사망하면서 비지스는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2010년엔 모리스 깁의 쌍둥이 형인 로빈 깁이 결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다

2012년 5월 20일 향년 62세로 사망하였다. 이후 로빈 깁이 1640억 원이라는

거액의 유산을 가족에 남긴 것이 전해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네이버 시사상식사전)

 

 

 

 

 

 

▲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다시 들으면서 그들의 일대기를 돌아본다.

 

 

 

 

 

 

 

 

 

 

 

 

 

 

 

 

 

 

 

 

 

 

 

 

 


80' 팝의 르네상스 2013.06.03 08:30

듀란듀란(duran duran), 80년대 "꺅!"소리나던 오빠들






듀란듀란(duran duran), 80년대 "꺅!"소리나던 오빠들

 

듀란듀란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5인조 밴드그룹으로 이들에 대해

잘 모른다해도 007영화 중 '뷰투어킬'이란 ost를 부른 팝 아트디스라는 것쯤은

다들 알거라고 생각된다. 얼마전 김지윤감독의 헐리우드 입성작 '라스트스탠드'를

김 빠져라 봤는데, 여기서 주연으로 나온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내뱉던 대사를 잊을

수 없다. 전처럼 액션이 안되는 노쇄한 아놀드가 "늙으면 죽어야 해!"라는

대사를 내뱉았기 때문이다. 정말 세월 앞에 장사 없다지만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다는 생각을 곱씹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 오랜만에 80년대를 대표하던

오빠부대 '듀란듀란'을 오랜만에 보니 마찬가지로 그런 생각이 들 수 밖에.

 

 

 

 

80년대 팝의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했던 듀란듀란의 멤버는 원래 5명이었다.

존 테일러(베이스), 닉 로즈(키보드), 로저 테일러(드럼), 사이몬 르 봉(보컬)

그리고 탈퇴한 앤디 테일러까지 5인조였다. 이들은 당시만 해도

비틀즈 이후 영국에서 등장한 가장 강력한 밴드가 아니었을까 싶은데(물론

비틀즈라는 전설을 뛰어넘긴 힘들지만), 적어도 80년대 초중반은

완전 그들 세상이었고 이 오빠부대에 열광하는 소녀팬들의 비명소리가

그칠 줄을 몰랐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시대를 기억하는 언니들은

아마 이 포스팅을 보면서 아련한 추억이 떠오를 것이다.

 

 

 

 

보컬 사이몬 르 봉의 독특한 창법과 음성은 듀란듀란을 상징한다.

지금은 여느 일반인들 처럼 두툼한(?) 아저씨가 되어버린데다 어릴적 카랑카랑

했던 목소리도 나이를 먹은만큼 조금은 가라앉아 보이기도 하지만, 당시 10대들은

이들의 헤어스타일과 뛰어난 패션감각에 열광했었고 두발자유화 이후

용감한 학생들은 언제나 빗을 챙겨들고 다니며 스타일을 쫒았다. 선생님들은

이들을 일명 '날날이'라 불렀고 그들을 추격했다. 다들 기억나실게다.

 

 

 

 

지금이야 솔로 가수시대를 넘어 우에 따라서는 완전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아이돌 그룹이나 걸그룹이 많은데, 과거에 비하면 지독하게도

상업화되었고 꽤나 전문적으로 조직화되어 있는게 요즘의 KPOP 현실이다.

그리고 알고보면 '듀란듀란' 같은 세계적 팝아티스트들이 판 치던

그 시절 우리나라엔 아마도 조용필 오빠나 전영록 혹은 이문세 오빠 정도의

가수들 밖에 없었다. 오늘날과 비교하면 당시 한국가요는 거의

베트남 수준이었다라고 해야 할까? ㅠ.ㅠ

 

 

 

▲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A Views To A Kill'

 

어쨌든 86년 앤디 테일러가 탈퇴하기 전까지 '듀란듀란'은

명실공히 전세계를 주름잡는 파격적인 팝아티스트로서의 명성을

이어나갔고 1985년 007영화 '뷰투어킬'의 OST에 이들의 동명 곡이 삽입

되는 영광을 누린 이후 정점을 찍게 된다. 1986년 기타리스트 앤디테일러가

팀을 탈퇴하던 당시 불화설도 있었고 전 세계 팬들도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이들의 해체설 등 잡음에 곤혹스럽고 실망스러워 했었다.

후에 'Notorious'로 돌아오지만, 이미 정점의 순간을 지나온 뒤였다.

 

 

 

 

오늘은 80년대팝의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5인조 밴드

'듀란듀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요즘은 이렇게 골고루 최고의 감성과 끼가

창의력과 실력으로 완전 결합된 아티스트들이 별로 없어 보이는게 아쉽다.

영원히 기억될만한 작품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기교만 익은 친구들이 많아 보인다.

 

 

 

 

 

  

 

 

 

 

 

듀란듀란

(Duran Duran)
가수
멤버:존 테일러(베이스), 닉 로즈(키보드), 로저 테일러(드럼),

사이몬 르 봉(보컬), 앤디 테일러(기타)

데뷔:1981년 1집 앨범 [Duran Duran]
수상:1983년 제26회 미국 그래미어워드 최우수 비디오앨범,
최우수 단편비디오
경력:1993 할리우드 록앤롤 명예의 전당 헌액
1986 앤디 테일러 탈퇴
1978 그룹 결성

 

 

 

 

영국에서 시작된 이들 5인조 댄싱 그룹은 그들의 그룹 결성 동기를
“이제 펑크나 기타 로큰롤들은 지겹고 흥미 거리가 사라졌으며 생동감을 줄 수

있는 음악, 즉 신나게 춤추고 무언가 직접적으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든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영화 'Barbarella'의 극중 인물의 이름 중에서

Duran Duran이란 이름을 따왔다고 하는데 이들은 멜로디 라인과 리듬 비트를

부각시킨 경쾌하면서도 윤곽이 뚜렷한 사운드와 독특한 패션 스타일 등은 이들의

헤어 스타일과 함께 듀란 스타일이라고 할 정도로 유럽 전역에서 일대 센세이션과

유행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일부 평론가들은 이들을 가리켜 브리티쉬 뉴 로맨틱

그룹이라고 평을 하기도 하는데 그룹의 리더인 리 본은 자신들이나 다른

그룹이라도 어떤 한 쟝르에 국한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하면서 그의 초쟝르적인 의견을 피력하였다.

 

 

 

▲ '와일드 보이(Wild Boys)', 반항기 넘치는 10대시절 처음 들었다.

 

 

78년, 런던 출신의 리 본이 중심이 되어 이색적인 트리오로
처음 출발했으나 이들이 현재와 같은 멤버 5명의 선이 그어지기까지는 리 본은

학업에 열중해 있었다. 이들이 모여 약 한달간 실험 활동을 펴본 후에

정식으로 팝계에 데뷰하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되자 그들의 디스크를

출반할 레코드사를 물색하기 시작하는데 이들은 소규모 회사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세계적인 대규모 회사들에게만 데모 테이프를 보내자

돌아오는 것은 기대만큼이나 커진 실망뿐이었다.

 

 

 

 

그것은 이들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그룹인데다가
도를 지나친 특이한 개성과 이색적인 연주 라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렇게 큰소리를 쳤다. “우리의 음악이 당장은 생소하고 어색하게 들릴지 몰라도

머지않은 장래에 크게 환영 받게 될 것이다.” 이들의 장담은 곧 맞아 들어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의 음악과 비슷한 형태의 사운드를 구사하는 그룹들이

늘기 시작했고, 팬들도 점차 호의적인 반응과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 'Planet Earth'-Duran Duran

그 시절 팝아티스트들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많이 촌스럽다. ㅠ.ㅠ

그러나 음악만큼은 이미 시대를 넘어섰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게 된다.

즉, 비주얼은 당시 트랜드에 머둘지언정 그들이 추구하던 음악성은

한 시대에 머물지 않더란 사실을 나이 먹어서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은 EMI와 레코딩 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러 본격적인

활동을 펴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첫 싱글인 'Planet Earth'는 새로운 댄스

록의 사운드로 히트했으며, 데뷰 앨범 'Duran Duran'은 영국 앨범 챠트

최고 3위까지 랭크되는 등 순조로운 스타트를 끊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6월에

내놓은 앰범과 첫라이브 스테이지가 엉망으로 돌아가자 크게 실망한 끝에

돌아오게 되는데, 82년에 발표한 'Rio'부터 조금씩 알려지게 되어

7월부터 챠트에 등장해 6주만에 122위로 기록되었다.

 

 

 

▲ Duran Duran - Rio (From "Rio - Classic Album")

 

한편 이들이 유럽에서 가히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5명의 각기다른 개성이 조화되는 사운드, 즉 로저 테일러의 안정감있고

규칙적이며 리드미컬한 스틱터치와 존 테일러의 흑인 휠링과 유사한

두터운 베이스터치, 그리고 흡사 정신이 나간듯한 앤디 테일러의 기타 플레이는

스테이지를 압도하며 키보드 주자인 닉 로데스는 순간적인 상황이나 장소의

분위기에 맞게 연주를 해주고 있어 스스로 소음창조자

(Noise Maker)라 부르고 있다.

 

 

 


보컬 리스트이자 리더인 리 본의 산뜻한 보컬과 부담없고 경쾌한

이들의 사운드는 뉴 웨이브의 새로운 댄싱 그룹이 되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들의 최고 히트 싱글이라고 할 수 있는 'Rio'는 자마이카의 레게 리듬을 도용한

흥겨운 댄스 곡으로 1983년 6월의 싱글 챠트를 살펴보면, 20주

이상을 탑 10에 머물고 있어 그들의 인기도를 짐작케 했다.

 

 

 

▲ Is There Something I Should Know Live 1984 - Duran Duran

 

 'Rio'의 인기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또 다른 한곡의 싱글이 챠트에

등장하고 있는데, 'Is There Something I Should Know'라는 싱글은 챠트에

처음 등장하면서 57위에 오르는 빠른 속도로 인기를 얻기도 했다.

(네이버 백과)

 

다음은 듀란듀란의 대표적인 곡들 몇개를 더 모아보았다.

추억의 80년대 팝에 흠뻑 빠졌던 분들이라면 오랜만에 이들의 유명곡들을

감상함으로써 추억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 Duran Duran - Hungry Like The Wolf

 

 

 

▲ Union of the Snake - Duran Duran (Live from London)

 

 

 

▲ Duran Duran - Save A Prayer

 

 

 

▲ Duran Duran - Notorious

 

 

 

 

 

 

 

 

 

 

 

 

 

 

 

 

 

 

 

 

 

 

 

 

 

 

 

 

 

 

80' 팝의 르네상스 2013.05.23 15:33

보니엠(Boney M), 80년대 배경 한국영화 '써니'에서의 원곡 'Sunny'






보니엠(Boney M), 80년대 배경 한국영화 '써니'에서의 원곡 'Sunny'

 

요즘 오월이 한참 무르익어 신록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보니 그룹 '보니엠'

생각이 났다. 아마도 5월 중에 소풍이다 수학여행이다 떠나는 중고생들이 많이 눈에

띄다보니 그만할 때가 언제였던가 추억도 떠오르고 해서였나 보다.

보니엠은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얼마전 한국영화 '써니'가 개봉된 적 있었고 거기서도 촌스러운 복장과 더불어

보니엠의 원곡 'Sunny'가 있었다. 요즘 한참 10대를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추억의 80년대 팝을 기억할 것이고 오늘 바로 그 주인공 만난다.

 

 

 

 

80년대 청소년들의 놀이문화라는게 요즘과 비교하면 거기서 거기인듯

하지만, 사실 무척 촌스러웠다. 소풍가면 잔듸밭에 앉아 손수건 돌리기 하거나

카세트 오디오 틀어놓고 보니엠 노래를 들어며 '브레이크 댄스'라도 추면 완전대박이던

그런 시절이었다. 너무도 유명한 곡 '해피송(Happy Song)'은 'Sunny'에 비하면

한참 뒤에 나온 곡이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패턴이나 신나는 리듬 풍은 크게 다를게

없었다. 그래도 매우 아날로그적으로 놀던 시절이었지만, 충분했다.

 

 

 

▲ Boney M. - Sunny - Disco '77

 

보니엠은 1976년 독일에서 결성하여 1986년 해체하기까지 내놓는 곡마다

엄청난 인기를 불러일으키며 팝계에 태풍을 몰고 다녔다. 프로듀서 프랭크 패리언

(Frank Farian)이 발탁한 4명의 인디안 혼성 보컬그룹으로 활동했지만 정작 미국진출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 걸쳐 7, 80년대를 완전 접수했다.

 

 

 

 

1977년 `Daddy Cool`이 영국차트 탑10에 오르며 이들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Sunny`, `Ma Baker`, `Rivers of Babylon` 등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국제가요제 참가차

내한한 경력이 있으며 80년대 중반에는 디스코에서 하이에너지 사운드로

진보한 `Happy Song`으로 재기했다.

 

 

 

▲ Baby's Gang Feat. Boney M - Happy Song(해피송)

 

보니 엠

(Boney M)

가수
멤버:리즈 미첼(Liz Mitchell, 보컬),
토니 애쉬크로프트(Tony Ashcroft, 댄스, 아크로바틱),
캐롤 그레이(Carol Grey, 백보컬), 패트리샤 포스터

(Patricia Foster, 백보컬)
데뷔:1976년 1집 앨범 Take The Heat Off Me
경력:1994~ 멤버 '토니 애쉬크로프트' 영입
1993~ 멤버 '캐롤 그레이' 영입

1993~ 멤버 '패트리샤 포스터' 영입
1982~1989 멤버 '마들린느 데이비스'

 

 

 

 

보니엠(Boney M)은 독일 출신의 인기 프로듀서였던 프랭크 패리언

(Frank Farian)에 의해 1975년 결성되었다. 보니엠의 탄생은 그들의 독보적인

인기 만큼이나 특별한 것이었다. 1975년 당시 TV 시리즈의 음악을 담당했던 프랭크는

트렌디한 프로듀싱 감각으로 직접 곡을 쓰고 스튜디오 뮤지션들을 동원해 흑인

수사물에서 착안한 보니 엠(Boney M.)이라는 이름으로 그 음악들을 발표했다.

 

 

 

 

그런데 예상 외로 실험적인 삽입곡 "Baby, Do You Wanna Bump"가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단 시간에 인기가 치솟았다. 문제는 보니엠이 가상의 밴드인

관계로 대중에게 보여줄 실체가 없었다는 점이다. 프랭크는 신속하게, 그러나 신중하게

오디션을 진행하여 치열한 경쟁을 뚫고 리즈 미첼(Liz Mitchell)을 리드 보컬로 하는

자메이카 출신의 4인조 블랙그룹을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의 음악은 자메이카의 토속 음악인 레게 뮤직을 근간으로 당시 대세였던

디스코 댄스 리듬을 접목시킨 신선한 장르로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들의 데뷔 싱글 "Daddy Cool"에 이어 우리에게 친숙한 멜로디의

"Sunny"가 빅히트를 기록했고 "Ma Baker"가 뒤이어 영국 챠트 1위를 점령하는

기염을 토하였다. 유라시아 전역은 물론 국내에서 더욱 큰 사랑을 받았던

 "Rivers Of Babylon"과 "When A Child Is Born" 등의 발라드 넘버들도

우리들의 70년대의 추억을 장식하고 있는 곡들이다.

 

 

 

 

보니엠은 70년대에만 전세계 통산 6천 만장이라는 경이적인 앨범 판매를

기록하여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1978년에는 팝 아티스트로는

처음으로 구 소련에서 초청 공연을 가질 만큼 전세계적으로 실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지상 유일의 진짜 보니엠-Boney M featuring Liz Mitchell 80년대로 들어서면서

 "Happy Song"과 "Young Free And Single" 등 히트곡을 내긴 했지만, 멤버교체 등

불안정한 노선을 걸으며 1986년 잠정적으로 활동이 중단되기도 하였다.

 

 

 

▲ Boney M."Young Free And Single"


그동안 많은 가짜 보니엠들이 나타나 활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부터

리드싱어 리즈 미첼을 중심으로 활동을 재개한, 제작자 프랭크 패리언이 유일하게 인정한

진짜 보니엠은 리즈 미첼이 이끄는 보니엠 하나 뿐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히트곡의
목소리는 그녀의 것이다. 리즈 미첼의 보니엠은 현재 전세계 투어를

돌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리즈 미첼

(Liz Mitchell, Elizabeth Rebecca Mitchell)
출생:1952년 7월 12일 (자메이카)
소속:그룹보니 엠
경력1976~ 그룹 '보니 엠' 멤버

 

 

 

▲ Boney M. - Bahama Mama 1979

 

 

▲ Boney M - One Way Ticket

 

 

 

 

 

  

 

 

 

 

 

 


80' 팝의 르네상스 2013.05.05 22:04

팔코(Falco)의 지니(Jeanny), 아마데우스를 꿈꾼 오스트리아 출신 팝아티스트






팔코(Falco)의 지니(Jeanny), 아마데우스를 꿈꾼 오스트리아 출신 팝아티스트

 

오늘 소개할 80년대 팝은 팔코(Falco)의 'Jeanny'다.
팔코를 떠올리면 지니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Rock me Amadeus'야말로
그의 이름을 제대로 알린 곡이라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면
팔코는 오스트리아 태생이다. 그리고 '록미아마데우스'는 1984년 모짜르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아마데우스'를 보고 크게 영감을 얻은 팔코가 만든 곡이기 때문이다.

 

 

 


모짜르트 역시 오스트리아 출신이다. 음악적 자긍심에서랄까?

어쨌든 천부적으로 절대음감을 가지고 태어나 일찍이 재능을 인정받은 팔코는 그렇게

'록미 아마데우스'를 통해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클래식 보다는 팝에 더 심취했던

그가 만든 곡들은 매우 독특한 곡들이 많았고 그 중에 오늘 소개하려는 'Jeanny'야말로

한국인에게 정서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팔코의 대표곡으로 기억되고 있다.
1987년 이 무렵 나는 내가 자주가는 레코드 점에서 팔코의 음반을 구입했었다.

 

 

 

▲ 1984년 밀로스 포먼(Milos Forman)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

 

 

팔코(Falco)
본영: Johann Holzel

1957년 2월 19일 출생 (오스트리아) - 1998년 2월 6일 사망
학력:빈시립음악원
데뷔:1982년
1집 앨범 Einzelhaft

대표곡: Rock Me Amadeus

 

 

 


유년기 때부터 일찌감치 타고난 재능을 보였던 팔코는 비엔나 예술학교에서
클래식 음악교육을 받았으나 결국 대중음악으로의 꿈을 위해 학업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통일전의 동독 스키 점프 선수 팔코 바이스폴로크에게서 영감을
얻어 지금 우리에게 알려진 팔코(Falco)로 개명을 했다고 한다.

 

 

 

▲ 팔코(Falco)가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고 이에 영감을 얻어 만든

'Rock me Amadeus'란 곡이다. 유일하게 빌보드 핫 100 넘버원에 오른 곡이다.

 

 

팔코라는 가수는 몰라도 80년대 팝의 르네상스에 있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노래는 역시도 'Jeanny'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 노래 보다는 'Rock me Amadeus'란 곡만이 유일하게 빌보드 핫 100 넘버원 곡으로

올라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라고 하는데 80년대 당시에

팔코의 앨범을 내가 사게 된 이유는 사실 바로 '록미아마데우스'란

곡 때문이 아니었던가 기억된다.

 

 

 

▲ 그 유명한 팔코의 지니(Jeanny).

 

역시도 특유의 전율이 느껴지는 곡이고 매우 독창적인 팔코만의 분위기가 있다.

적어도 80년대 팝은 지금보다는 훨씬 창의적이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때문에 난 이들을 단순히 '가수'라고 부르기보다는 '아티스트'라고 불러주고 싶다.

 

 

 

 

물론 이 앨범엔 'Vienna Calling'이란 곡이나 다른 좋은 곡들도 많았는데

유독 한국적 정서에 맞는 곡은 아마도 'Jeanny'가 아니었을까 싶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독특한 이 곡에는 살인 외에 어두운

내용들이 많아 미국의 라디오 등에서는 방송금지를 당했다고도 한다.

 

 

 

 

이랬던 아티스트 팔코란 가수에 대한 소식은 사실 다른 여느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좀체 들을 일 없었다가 얼마전에서야 이미 한참 전에 사망한 사실도 알게되었다. 1998년 2월.

도미니카를 여행하던 중 과속하던 버스와 충돌사고로 40세라는 짧은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진정 아마데우스를 꿈꾸었을지도 모를 이 젊은 아티스트의

짧은 생애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대표곡들을 한참 세월이 지난 지금 다시금

들어보며 그의 음악세계를 조금이나마 이해해보고자 한다.

 

 

 


'Jeanny'곡에서 후반부에 경찰싸이렌 소리가 나고
방송에서 나오는 듯한 독일어 말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 부분만
해석해 옮기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미국의 라디도에서 방송금지 될만한
내용인데, 지금와서 알게되니 다소 섬뜩함마져 느껴진다.

뮤직비디오도 그렇고...ㅠ.ㅠ

가사는 아래와 같다.

 

Newsflash:
In den letzen Monaten ist die Zahl
Der vermißten Personen dramatisch angestiegen
Die jüngste Veröffentlichung der lokalen Polizei-
Behörde berichtet von einem weiteren tragischen Fall.
Es handelt sich um ein neunzehnjähriges Mädchen,
Das zuletzt vor vierzehn Tagen gesehen wurde.
Die Polizei schließt die Möchligkeit nicht aus, daß es
sich hier um ein Verbrechen handelt.

 

뉴스속보입니다.
최근 몇 달 동안 실종자 숫자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경찰당국은 근래에 또 한 건의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사건은 열아홉 살 소녀와 관련된 것으로서 그 소녀는 지난 14일 동안
소식이 두절되었다고 합니다. 경찰측은 이 실종 사건이

범죄와 연루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데우스

Peter Shaffer's Amadeus, 1984

 

솔 제인츠 제작. M.포먼 감독. F.M.에이브러햄 주연.

1984년도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주연남우상 등 8개 부문 수상. 1985년 그래미상

최우수 클래식 레코드상 수상. 원작을 작가 자신이 다시 손질하여 시나리오를 썼다.

정신착란증에 걸린 한 노인(살리에리)이 창문을 열고 빈 시민에게 "모차르트, 나를 용서해 다오.

내가 너를 죽였어" 하고 외치는 고백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천재 모차르트를 마주한

범용(凡庸)한 예술가 살리에리의 질투와 고뇌를 통하여 관객에게 '자기와 같은 인간'을

발견하게 해 준다. 음악감독 N.마리너가 지휘하는 아카데미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모차르트 음악이 현란한 분위기로 전면을 감싸 감동을 더해 준다.

한국에서는 1985년 말 상영되었다.(두산백과)

 

 

 

 

 

 

 

 

 

 


80' 팝의 르네상스 2013.02.01 23:34

아하(A-HA), 뮤직비디오 'Take On Me'와 함께 혜성처럼 등장한 노르웨이 뮤지션






아하(A-HA), 뮤직비디오 'Take On Me'와 함께 혜성처럼 등장한 노르웨이 뮤지션

 

80년대를 지나오면서 진정한 음악성으로 승부하기에는 '아하(a-ha)'가 2%

부족하지 않았을까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른다. 물론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노르웨이 출신 3인조 밴드인 그룹 '아하'에 대해 진짜 음악성이라는 부분을 평가하기도 전에 

잘생긴 외모와 신선한  이미지 때문에라도 소녀팬들의 환호와 아우성에 완전히 파묻혀

이런 부분을 언급할 겨를도 없었고 또 'Take on me'뮤직비디오 자체가 워낙 파격이었던지라

이들의 인기와 성공에 토를 단다는 자체가 어쩌면 당시엔 무의미했을지도 모르겠다.

 

 

 

 

28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야 'Take on me'뮤직 비디오를 다시 보면

그렇게 파격적이고 신선했던 영상이 왠지 엉성하게까지 보일법 하지만, 아이디어

자체가 워낙 신선했다. 마치 플립북을 펼쳐보는것처럼 만화적 요소와 실사가 세련된

곡의 내용과 잘 어우러져 이러한 방식의 뮤직비디오가 매우 신선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보컬 모튼 하켓(Morten Harket)의 등장자체가 파격이었다.

 

 

 

아하(A-HA)

 

그룹 '아하'는 모튼 하켓(Morten Harket, 보컬), 폴 왁타(Paul Waaktaar, 기타),

마그네 푸루홀멘(Magen Furuholmen, 키보드) 등 3인조로 구성된 노르웨이 출신 그룹이다.

1985년 1집 앨범 'Hunting High and Low'로 데뷔했으며 이 첫 앨범에 들어있던

곡이 바로 그 뮤직비디오로 유명한 'Take on me'다. 일단 다시 한번 감상해보시길.

 

 


 ▲ A ha Take On Me Official Music video

 

 

 

 

'아하(A-HA)'는 1집 'Hunting High and low'앨범으로 혜성과 같이 등장했지만

정작 히트친 곡은 'Take on me'였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앨범 타이틀과 동명의 곡인

'Hunting High and low'를 사실 더 좋아한다. 물론 이 곡 외에도 Train Of Thought와

The Sun Always Shines On TV 이 두곡도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Hunting High and low'와 'The Sun Always Shines On TV' 두곡 모두 올린다.

 

 

 

▲ Hunting High And Low

 

 

 

▲ The Sun Always Shines On TV

(나는 아직도 3분45초 이후의 신디사이저 소리에 지금까지도 광분하게 된다. -_-;;)

 

 

a-ha의 1집 앨범은 이처럼 모든 것 자체가 다 신선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대게 우드스톡 이후 만연한 자유주의적 비주얼과 정통적인 록이나
메탈그룹 일색이던 팝시장에 신디사이저로 무장하고 잘생긴 외모와 감미로운 미성이 돋보이는

보컬 모튼 하켓의 모습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일 수 밖에. 요즘말로 비주얼가수의 등장이자

아이돌 그룹의 출몰과도 같았다고 해야할까. 게다가 이들은 노르웨이 출신이다보니 영어발음이

좀 이색적으로 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여성팬들에게는 이런 이국적인

느낌들이 마치 어느 멋진 동화나라 속에 나오는 왕자님이 혜성처럼 등장한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Visual 중심의 신세대 밴드에 광분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대충 이러하지 않았을까 나름대로 분석해 보았다.

 

   

 

 

 

 

 

 

 

결과적으로 그룹 아하(a-ha)의 여러 성공요인 중에는 보컬인 모튼 하켓의 비중이

매우 컸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여기서 그룹 아하에 대해 좀더 심층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1959년생인 모튼 하켓 (Morten Harket)과 폴 왁타(Paul Waaktaar), 맥스 후르뎀

(Magne Furuholmen)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디 갈란드와 도어즈를 좋아하는 폴 왁터와

비틀즈와 도어즈를 좋아하는 맥스 후르뎀은 10대 초반부터 함께 곡을 쓰며 오슬로의 클럽이나

댄스 파티에서 연주를 했다고 한다. 모튼 하켓은 오슬로의 다른 밴드에서 활약하고 있었는데,

리듬 앤 블루스와 소울 뮤직을 좋아했고 폴과 맥스는 오래 전부터 유망한 그룹이 될 것을

꿈꾸어 왔는데, 모튼 하켓을 가담시키면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83년 초,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의 랑데부 스튜디오 매니저인 존 라트크리프를 만나게

되는데, 존 라트크리프는 전 EMI의 레코드 부장 테리 슬레이터에게 이들을 소개하였다.

이 두 사람이 워너 브러더스사와의 레코딩 계약 체결을 주선함으로써 이들의 데뷰 앨범인

'Hunting High & Low'의 출범을 보게 된다. 이 앨범에서 싱글 커트된 'Take on Me'는 챠트의

정상을 차지하였으며, 'The Sun Always Shine On T.V.'도 호응을 얻게 된다.

싱글 'Take On Me'가 선보이기 전에 먼저 나왔던 비디오 'Take On Me'는 미국 MTV에서

이미 열렬한 찬사를 받았다. 이 비디오는 실제와 만화 세계를 교묘하게 연결시킨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이 비디오를 위해 만들어진 스틸 사진만도 3,000장 이상이 찍혔다고 한다.

10대의 우상으로 급격히 부상되고 있는 이들은 레코딩 도중에 영국의 엘리자벳 여왕의 방문도

맞게 되며, 28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도 개스팅되어 연주하게 된다.

유능한 스탭진의 홍보와 단정하고 깔끔한 용모, 그리고 야무지고 경쾌한 사운드로,

이들은 10대 팬들을 사로잡으며 화려한 음악 생활을 장식하고 있다.(네이버백과)

 

 

 

 

당시엔 10대들 사이에서도 감성이 조금 예민한 편이라고 하는 친구들은 남녀 구분없이

브로마이드를 사다 날랐다라는 사실 기억할거다. 물론 나도 그러했고 위의 사진은 직접 그림

으로 옮겨보기도 했었는데 그만 잃어버렸다.  정말 똑같이 그렸었는데 ㅋ

정말 잊고 있었는데 너무도 오랜만에 다시 보는 모습에 감회가 새롭다.

그때가 16살 무렵이니... 거 참.

 

 

▲ 1집 앨범 'Hunting High and low'앨범 쟈킷도 인상적이었지만, 1집 앨범에 대한

인기가 절정에 달할 무렵 2집 앨범이 나왔다. 저 2집앨범 쟈킷도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모른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네. 타이틀 곡은 'Scoundrel Days'였다. 일단 감상부터.

 

 

 

▲ 2집 타이틀 곡 Scoundrel Days

 

2집 앨범까지가 아마도 내가 즐겨듣던 앨범이자 소장했던 앨범들이 아닐까 한다.

당시에 카세트 테입은 물론 LP판으로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1집 이후 2집으로 와서 아하는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흔적이 역력했다. 이 앨범에서 대중들에게

그래도 어필했던 곡은 'Cry wolf'와 'I've been losing you'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지금도 촌극으로 기억되는건 'Cry wolf'를 직역한 경우도 있었는데 저건 의역을 해야 한다.

'거짓 경고' 쯤으로 해두어야 맞다. 두 곡도 듣겠다.

 

 

 

▲ Cry Wolf

 

 

▲ I've Been Losing You

 

'아하'는 이후 영화 '007 리빙데이라이트'의 주제곡까지 불렀지만 이후 점차

대중들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군대까지 다녀오고 났더니 해체설까지 나오고

그러면서 어느덧 모튼 하켓의 솔로선언과 더불어 그룹 '아하'는 대중들 기억속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물론 지금도 이들은 각자 저마다 활동을 하고 있긴 하지만, 제일 처음

좋아하는 음악활동과 더불어 '모튼 하켓'을 발견했던 폴과 맥스는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잊혀져갔다. 물론 나중에야 당시를 회고하며 다시 뭉쳐도 보곤 하지만, 이젠 그들도 늙었고

모두 지난날의 추억일 뿐이니 원래 인상이란 그런것이려니 해야지 별 수 있을까.

1997년 모튼 하켓은 멜깁슨과 줄리아로버츠가 출연했던 영화 '컨스피러시

(Conspiracy Theory)' 주제곡을 부르며 그 실력을 다시한번 입증한 바 있다.

오늘, 한참이나 지난 날의 80년대 원조 비주얼 그룹, 아하(A-HA)에 대한 포스팅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겠다. 모튼 하켓의 솔로 곡이자 영화 '컨스피러시' 주제곡

 'can't take my eyes off you' 들으며 마친다.

 

 


 ▲ Morten Harket- can't take my eyes off you

 

 

 

 

 

 

 

 

 

 

 

  

 

 

  

 

 

 

 

 

 

 

 

 

 

80' 팝의 르네상스 2013.01.29 22:38

본조비(Bon Jovi), 80년대 팝뮤직을 시작하며...






조비(Bon Jovi), 80년대 팝뮤직을 시작하며...

 

오늘부터 80년대 팝의 르네상스 컨텐츠를 추가하며 '본조비'를 그 첫번째 게스트로

초대하려 한다. 물론 80년대 팝을 떠올리면 무수히 많은 아티스트들이 쏟아져나오기 때문에

도대체 누구부터 언급해야할지 모를 지경이다. 하지만 본조비의 가슴을 후련하게 만드는

그 박력있는 사운드와 그들의 헝클어진 머리칼 처럼 자유분방함을 먼저 되새겨보고 싶었기에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미리 밝히지만, 필자는 팝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다. 다만, 소시적의

감성과 여전히 그 때를 떠올리면 되살아나는 그 느낌들을 보다 더 세세하게 전달하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점 먼저 양지해주시기 바란다.

 

 

 

 

본조비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80년대 팝을 회상해 보면 역시도 그 시대를 살면서

가장 감수성 예민할 때 접해서인지 그 때만큼 팝의 전성기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보다 창의적이며 거침없었고 자유분방하며 표현의 다양성과 개성강한 아티스트들이 마구마구

봇물처럼 쏟아지던 그런 시대였다고 회상된다. 때문에 본조비를 처음 알게되었던 열댓살

무렵의 그 기억들이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생생하다.

 

 

 

 

 

 

 

본 조비(Bon Jovi)

그룹에서 보컬을 맡고 있는 존 본 조비(Jon Bon Jovi)의 이름을 그룹 명칭으로 사용하는
이 밴드는 존과 함께 데이빗 러쉬봄(David Rushbaum), 알렉 존 서치(Alec John Such),

티코 토레스(Tico Torres, drum), 리치 샘보라(Richie Sambora)로 구성된 5인조 그룹이다.

82년 결성된 본 조비는 뉴욕의 라디오 방송국인 WAPT에서 주최한 아마추어 록 콘테스트에서
'Runaway'로 대상을 받으면서 유명해졌다. 이후 83년 폴리그램 산하 머큐리(Mercury)레이블과

계약을 체결하고 84년 첫 앨범을 발매한다. 이 앨범의 수록된 'She Don't Know Me',

'Runaway'가 히트하면서 앨범은 골드를 기록하게 된다.

 

 

 


이후 2집 역시 'Only Lonely', 'In & Out of Love'를 히트시키면서 골드를 기록해 데뷔

2년만에 스타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86년 본 조비는 3집앨범 [Slippery When Wet]을 출반,

'You Give Love a Bad Name'이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하였고 앨범은 발매 4주만에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해 11주간 머물렀다. 그리고 두 번째 싱글'Living on a Prayer' 또한

4주간 1위 자리를 차지했다. 3집은 87년 최고의 베스트 셀러에 선정되었으며, 88년에

내놓은 4집앨범은 발매 2주만에 앨범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후 본 조비 멤버들은 각자 솔로 활동을 하는 등 일시적인 휴지기를 가지다가

92년 5집앨범, 베스트앨범 등을 발표하였고 2002년 새 앨범을 내 놓은 등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 Bon Jovi - You Give Love A Bad Name. 불후의 명곡이다.

요즘은 아이돌 가수들 천지라 그야말로 '애기들의 행진' 또는 '순정만화' 코스프레

같기만 한데, 저 당시엔 정말 모두가 사자갈기 머리에 야성미와 자유주의가 넘쳤다.

물론 파워풀했고 젊음을 발산하는 에너자이저의 특권을 원없이 뿜어주었다.

 

 

 

 

소시적 그 누구 못지않게 POP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이유중에 하나는 미군부대를

가까이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부하건데 일찍이 간접적인 미국문화 체험을 한 셈이다.)

대략 어디쯤일지 짐작하시는 분들도 있을텐데, 아마 그런 문화를 접해본 분들은 알것이다.

지금 이태원을 가도 그렇지만 그 시절 금요일 저녁만 되면 시내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LA가 따로

없었고 이태원이 따로 없었다. 한국인보다 미국인이 더 많을 지경이었고

그들이 노는 문화는 대게 '클럽'위주였고 길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음악들 또한 그들이

좋아할만한 것들 위주이다 보니 당연히 이선희나 조용필보다는 팝이 더 친숙했다.

요즘같아선 부모들이 애들 교육문제로 얼씬도 못하게 했겠지만 그 땐 그런거 없었다.

 

 

 

 

 

 

 

 

 

 

지금도 그 곳을 가보면 당시 헐리우드 키드처럼 팝음악을 탐닉하던 10대 소년이 자주

드나들던 레코드점이 여전히 남아있다. 최근까지도 가게를 운영하던 영감님도 세월의 변화와

노쇄함을 견디지 못한걸까. 얼마전에 지나치면서 보니 가게엔 옛날식 셔터가 내려와

먼지가 수북했다. 그 옛날 이야기가 어느덧 30년 전 이야기라니...ㅠ.ㅠ

몇년 전 그곳을 지나치며 궁금해 일부러 들러 영감님께 CD한 장을 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었던 적이 있다. "요즘은 어떠세요?"라는 질문이 무색할 정도로 세월의 흐름

앞에 영감님도 어찌할 수가 없었나 보다. 당시엔 그 영감님도 김광한 못지않게

멋있다라고 생각했었는데....세월이란...

당시엔 번들번들 광이 날 정도로 성황을 이루던 엄청난 레코드점이었고

찾고자하는 거의 모든 앨범은 다 있었으며 문밖엔 언제나 신나는 팝이 들렸었다.

바로 본조비의 이 노래 처럼 말이다.

 

 

 

▲ Bon Jovi - Livin' On A Prayer

 

 

 

 

그러나 본조비도 나와 마찬가지로 늙어가고 있다. 한창 때의 본조비는 정말 영화배우

해도 아깝지않을 준수한 외모와 사자갈기 머리 그리고 익살 넘치고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랬던 그도 이젠 점잖은 아즈씨 대열에 어느덧

합류하게 된 듯 하다. 인생이란 이처럼 무상한거 아닌가 싶다.

 

 

 

 

요즘의 대중가요(POP)라는 것이 다소 간지러울 지경은 아닌지, 온갖 화려한 기교와

안무 등으로 무장해 한껏 개성을 부리는 듯 하지만, 정작 진짜 개성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나만의 것'이 없어보인다.

이게 다 상업지상주의적 흐름에 의존한 까닭이 아닌가 한다. 트랜드에 맞춰

대중이 원하는 것만을 만들어 잘 팔리는 것만을 만들다 보니 쇠퇴하는 것이다.

때문에 차라리 그 옛날 80년대 팝이 여전히 화려하고 강력하고 진정한 아티스트로

인정해 줄 만한 친구들이 드글드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 메뉴판에서 그렇게 잊혀져가기엔 아까운 아티스트와 뮤지션들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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