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스페샬로또

90년대 영화, 80년대 팝, 스타, 미드, 영화배우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우리눈을 가리는 재미난 이야기들을 만나보세요~^^

Rss feed Tistory
인물(People)/유명인사 2013.05.12 14:34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 에이리언과 터미네이터 그리고 아바타까지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 에이리언과 터미네이터

그리고 아바타까지 헐리우드 최고의 흥행사

 

헐리우드에서 가장 성공적인 영화감독을 꼽으라면 제임스 카메론을 주저없이

꼽게 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등 두루 통털자면 훨씬 더 존경할

만한 영화감독은 제임스 카메론 말고도 많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흥행과 작품성을

두루 갖추면서도 아카데믹한 요소에 충실한 가운데 그가 가진 상상력을 통해 현대인들

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대표적인 영화들을 두루 만들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야말로 금세기 최고의 위대한 감독이라 추켜세우고 싶다.

 

 

 

 

일단 그를 떠올리면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장본인이다. 그러면서도 지난해

동생 토니 스콧 감독을 떠나보낸 거장 리틀리 스콧 감독의 1987년작 '에이리언'의

속편을 멋지게 소화해낸 '에이리언2'의 감독이기도 하다. 한국의 청소년을

10년 이상 미치게 빠져들게 만들었던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경우 구석구석

'에이리언2'에서의 영감이 영향을 주었다라는 인상을 받았었다. 특히 게임을 만든

블리저드(Blizzard)社의 자랑거리인 시네마틱 비디오 영상을 보면 더욱

이 부분에 대해 공감한 분들 많을거라 생각된다.

 

 

 

 

 

 

▲ 게임 스타크래프트에서 드랍쉽에서 나는 교신소리가 생각는 장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런 SF적 영화 외에도 1997년작 '타이타닉'으로

유명하다. 그는 일찌기 부터 드넓은 우주공간과 깊은 바다에 대해 깊이있는

관심을 가져온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관심사는 언제나 하늘(우주)과 바다이다.

이처럼 우주삼라만상에 관한 그의 무한한 상상은 철학적 요소와 어우러져

2009년 최고의 흥행작 '아바타'에서 완성도를 높였다.

 

 

 

 

아바타 영화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지금의 아메리카 대륙을

콜롬브스가 처음 발견한 이래 원래의 땅 주인이었던 인디언을 몰아내고 제국을

완성한 미국의 뼈 아픈 침략사가 양심적으로 묻어나 있다는 생각이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다보면 이따금 이처럼 아픈 과거사 '인디언 침략사'를

영화에 심어넣는 감독이 또 한명 있다. 바로 올리버스톤 감독이다.

실제 월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던 올리버스톤 감독은 그런 역사적 아픔과

기억들을 자신의 영화에 곧잘 심어 넣었다. 제임스 카메론 역시

그와 같은 맥락에서 그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 많다.

 

 

 

 

 

제임스 카메론

(James Cameron, James Francis Cameron)

출생:1954년 8월 16일 (캐나다)

신체188cm

가족: 배우자 수지 에이미스

학력: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물리학 학사

데뷔: 1978년 영화 '제노제네시스'

수상: 2010년 제36회 새턴 어워즈 시상식 감독상
2010년 그린 플래닛 영화 시상식 최우수 감독상

 

 

 

 

제임스 카메론은 캐나다계 미국인 감독, 각본가, 제작자, 편집자 및 투자자이고

미국 헐리우드에서도 가장 성공한 영화감독으로 그의 이름을 새겨 넣는데 성공했다.

영화를 좋아하면서 출세한 이들의 개인사를 둘러보다 보면 참 독특한 경우들이

많은데 일전에 이야기했던 펄프픽션의 히어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역시도

한 때 비디오 가게 점원으로 일하면서 틈틈히 영화 시나리오를 썼던 사례가 있다.

제임스 카메론 역시 젊은 시절엔 카센터에서도 일했고 트럭운전사로도 일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꿈꾸던 일을 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분명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성공했다.

개인사 만으로도 참 영화같은 이야기이지만, 아메리카 라는 나라에서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등한 기회가 부러울 따름이다.

 

 

 

 

그의 대표적 영화들과 더불어 그의 일대기와 세계적으로 흥행한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일화를 몇개만 소개하도록 하겠다. 타이타닉과 아바타에

얽힌 이야기는 빠졌지만, 유년기와 더불어 영화감독으로 입신(立身) 또는

출세(出世)하게 만든 작품들이 집중되어 있는 초창기 히스토리를

터미네이터와 에이리언2 이야기로 살펴보기로 한다.

 

 

 

 

카메론은 캐나다 온타리오 주 카푸스카잉에서 예술가이자 간호사였던 어머니

시즐리와 엔지니어인 아버지 필립스 카메론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그곳에서 자랐고

1971년에는 캘리포니아 주 브레아으로 이사를 간다. 그는 캐나다에서 이주할 때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어 지역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Fullerton College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였으나 영문학으로 전과하였고, California State University Fullerton'로

편입하였다. 그는 스타워즈를 좋아했고 그래서 스타워즈의 감독 조지루카스가

다녔던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도서관을 자주 방문하여 많은 도서를 읽게 되었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 대학을 중퇴한 후 그는 영화에 흥미를 갖고 단편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식당웨이터, 오렌지카운티 지역 트럭 운전수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77년 '스타 워즈'를 관람하게 되는데 이것을 보고 나서 그는 바로  운전수

로서의 일을 그만두고 영화 제작소에서 일하게 된다. 그가 영화극본가 시드 필드에

책인 '스크린플레이'를 읽고 그것은 과학과 예술을 통합시키는 걸 가능케 한다고 했다.

그는 그 후 과학서적이나 픽션을 읽게 된다. 본격적인 영화 제작을 위해

그는 그의 지인들과 함께 돈을 모았고 카메라, 필름, 렌즈, 스튜디오 등을

빌림으로써 그의 커리어가 시작됐다.

 

 

 

 

 

터미네이터
 
카메론은 '터미네이터'의 대본을 완성한 뒤 이것을 영화로 제작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프로젝트 회사가 그와 계약했지만 그의 계획을 꺼려했다.

결국 그는 헴데일 픽쳐스과 작업하기로 했고 영화 제작자이자 극본가이며, 당시

그녀만의 개인 회사를 차렸던 게일 엔 허드를 만났고 시나리오에 대해 들은

그녀는 그의 시나리오를 단 1달러에 샀다. 그녀는 그를 프로듀서로서 고용했고

마침내 처음으로 총감독이 되어 영화를 제작하게 된다.
 

 

 


제작에 돌입한 그는 배역을 누가할지 고민했는데 특별히 그는 근육질의

남성을 바라진 않았다. 그는 처음에 자신의 영화의 출연한 바 있는 렌스 헤릭슨을

만났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함께 점심을 같이하면서

배역에 대해 고민하던 중 그가 배역 중 한 명인 카일 리스에 정해졌었지만

다시 짜여져 결국에는 오늘날과 같은 배역이 짜여졌다.
 

 

 


'터미네이터'는 박스오피스에서 대성공을 이루었다.

640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여 7천 8백만 달러의 이익을 남겼고, 당시

공상 과학 액션 영화의 정상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 THE TERMINATOR OST - MAIN TITLE

 

 

 

 

 


에이리언 2
 

 

▲ 에이리언2 팬샷

 

카메론은 리들리 스콧이 1979년에 제작한 영화 에이리언의 새 속편을 제작

하기로 했다. 그는 이 속편의 이름을 '에이리언즈'(Aliens)로 정하고 전편의 주역

이었던 배우 시고니 위버를 '엘렌 리플리'로 섭외한다. 그러나 그와 함께

프로젝트를 했던 직원은 이 속편 제작에 대해 반발했고 그를 믿지 못했다.

이 밖에도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영화는 박스오피스에서 성공적이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상 후보자에 올랐고 매인 캐릭터였던 위버에게는

'베스트 여성 연기상', '베스트 아트 디렉션상', '베스트 영화 제작상',

'베스트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상', 이렇게 네 부문에 후보가 되었었다. 게다가

'베스트 사운드 제작상', '베스트 비주얼 영향상' 부문에서는 대상을 수여 받았고,

'타임즈'에서도 영화에 대해 소개하며 호평을 안겨주었다. 이때부터 그의

프로젝트 팀은 그가 바라는 대로 영화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고

팀도 카메론을 신뢰했다고 한다.
 

 

 


1987년에는 사운드트랙들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의해 공연된

바 있으며 1억 3천 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벌어들였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따금 연기에도 관심이 있었는지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고,

다큐멘터리 영화들도 곧잘 찍었는데 나레이션은 물론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 등장

하기도 했다. 재미있는건 지난해 3월, 평소 그렇게도 깊은 바다에 관심 많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직접 잠수정을 타고 심해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특수 제작된 잠수정 ‘딥씨 챌린저’호를 타고 세계에서 가장 깊은 태평양 괌 근해

마리아나 해구 1만898m 잠수에 성공했는데, 이는 세계 최초로 지구 상 가장 깊은 곳까지

 단독 잠수한 신기록이라고 한다. 그만큼 그의 관심사가 어느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는 소식이었다. 아! 하나 더 재미있는건 1997년 '타이타닉'을 찍을 당시에 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어찌나 물에 젖는 걸 싫어하던지, 촬영이 지연되는 일이 잦았고

촬영을 다 마친 직후에 디카프리오가 스킨스쿠버 자격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당시에 아주 목을 비틀어 죽이고 싶었다고 고백한 적도 있었단다. ㅋㅋㅋ

다음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대표작들이다.

 

1978 제노제네시스
1981 피라나2(연출.각본)
1981 공포의혹성(미술)
1984 터미네이터(연출)
1985 람보2(각본)
1986 에이리언2(연출.각본)
1989 어비스(연출.각본)
1991 터미네이터2:심판의날(연출.각본.제작)
1991 폭풍속으로(기획)
1994 트루 라이즈(제작.연출)
1995 스트레인지 데이즈(제작)
1997 타이타닉(연출.각본.제작)
2000 다크엔젤(각본.기획)
2002 솔라리스(제작)
2002 비스마르크호의 비밀(연출.제작)
2003 심해의영혼들(연출.제작)
2005 에이리언 오브더딥(연출.제작)
2007 잃어버린 예수의 무덤(기획)
2009 아바타(연출.제작)
2010 생텀(제작)
2012 태양의 서커스 월드 어웨이(제작)
2014 아바타2(연출)

 

 

▲ 1997 타이타닉 주제곡 세린디온 'My Heart Will Go On'

 

 

▲ 2009년 최고의 화제작 아바타(AVATA)

 

 

 

 

 

 

 

 

 

 

 

 

 

 

 

 

 

 

 

 

 

 

 

 

 

 

 

 

인물(People)/유명인사 2013.05.09 21:46

'손석희의 시선집중' 하차하는 손석희 교수 종편 jtbc 총괄사장으로 취임 예정






'손석희의 시선집중' 하차하는 손석희 교수 

종편 jtbc 총괄사장으로 취임 예정

 

한국을 대표하는 간판 앵커, 참 언론인으로 존경받는 손석희 교수가 9일

인기 라디오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하차하고 종편 jtbc 총괄사장으로 취임

한다고 JTBC가 밝혔다. 좀 갑작스러운 소식이다. 항간에 떠돌던 소문으로는

그 말 많고 탈 많던 MBC 김재철 사장 사퇴 이후 새롭게 mbc를 이끌 차기 리더로

적합한 사람은 손석희 교수 뿐 아니겠느냐 추측들을 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예상이 좀 빗나가기는 했지만, 손석희 교수는 내일 10일을 끝으로

'손석희의 시선집중'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되고 오늘 성신여대 교수직에서

물러난다며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아~ 그럼 11일 아침부터는 더이상 오래도록

아침 출근길 이성을 일깨우던 그의 목소리를 더 이상 못듣게 되는 것인가.

13년 동안 인기를 끌어온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는데, 지난 2009년 100분토론 하차

이후 두번째로 큰 아쉬움을 던져주고 있다.

 

 

 

▲ 손석희의 시선집중[2013.05.09]

앞으로 이 목소리를 듣기 어려워진다니...-_-;; 아쉬운 마음에 오늘 아침 방송을

올려본다. 내일(10일)이면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마지막 방송이다.

 

 

 

 

 

손석희 교수는 다음주 부터 아마도 jtbc로 출근할 모양이다.

 jtbc 보도본부 사장이 된 이후 앞으로 어떤 업무와 어떤 활동들을 펼쳐나갈지는

좀 더 기다려 보아야 윤곽이 나올듯 하다. 그동안 JTBC 말고도 여러군데서 손길을

뻗어 왔겠지만 어쨌든 다수의 예상과 달리 손석희 교수는 최근 MBC 사장

선임 절차가 마무리된 뒤 거취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손석희

 

출생:1956년 6월20일

교수, 언론인, 방송인

신체178cm, 75kg

소속:성신여자대학교 (교수)

가족:배우자 신현숙

학력:미네소타대학교 대학원 저널리즘 석사

데뷔:1984년 MBC 앵커

수상:2012년 제39회 한국방송대상 라디오진행자상

 

 

 

활동

 

1984년 - 1992년 이 외에도 보도국 사회부 기자로도 활동하였음.
1985년 MBC 1분뉴스, MBC 아침뉴스, 현장85 앵커,청소년 특별기획 MC
1986년 MBC 0시뉴스 앵커, 건강 100세 MC
1986년 여기는 MBC 앵커
1987년~1989년 MBC 뉴스데스크 주말 앵커
1989년 MBC 뉴스센터 앵커, 장학퀴즈 MC
1990년 MBC 저녁뉴스 앵커
1993년 MBC 생방송 아침만들기 MC, 선택 토요일이 좋다 MC,

음악이 있는 곳에 게스트, 새벽을 연다 MC
1994년 MBC 뉴스와이드 앵커, 비디오산책 게스트, 한여름밤의 재즈콘서트 MC,

94MBC 강변가요제 MC, 손석희가 여는 아침 DJ
1995년 MBC 뉴스투데이 앵커
1997년 MBC뉴스 굿모닝 코리아 앵커, 손석희의 미국탐험 MC
1998년 박상원의 아름다운TV얼굴 게스트
1999년 MBC 아침뉴스2000 앵커
2001년 MBC 와! e멋진세상 MC
2002년 - 2009년 MBC 《MBC 100분 토론》
2010년 MBC 창사특집 HD자연다큐멘터리 《라이온 퀸》...내레이션

 

 

약력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겸임 교수를 거쳐서 2006년 2월에 MBC에서

물러난 후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를 맡고 있다.

1984년 ~ 2003년 MBC 아나운서 겸 보도국 기자
2005년 ~ 2006년 MBC 아나운서국 국장
2006년 ~ 2013년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13년 ~ 현재 JTBC 보도부문 총괄 사장


수상

 

1995년 제22회 한국방송대상 아나운서상
2003년 2003 한국아나운서상 대상
2006년 제18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라디오 진행자 부문 출연자상
2007년 제3회 한국참언론인대상 시사토론부문
2008년 MBC 브론즈 마우스
2009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부문 최우수상
2012년 제39회 한국방송대상 라디오진행자상

 

 

 

 

 

 

-----------------------   아래는 손석희 교수와 관련한 참고자료다.  ---------------------

 

[펌] 2009년 100분 토론 하차

 

 

 

2009년 10월 12일, 경향신문은 시사주간지 '시사IN'의 보도를 인용하여

손석희 교수(성신여대)가 MBC '100분 토론'을 떠난다고 보도했다.
'시사IN'에 따르면 MBC 경영진은 가을 개편이 시작되는 시점에 손 교수를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교체 이유는 '비용 절감'으로, 출연료가 높은 외부 진행자를 MBC

내부 인사로 교체하겠다는 것이 경영진의 입장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시사IN'은 "그동안 보수 진영의 '손석희 흔들기'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 외압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 소식통은 "노조의 반발을 의식한

경영진이 은근히 '자진 사퇴' 의사를 타진했지만, 손 교수는 그만둘 수는 있어도

자진 사퇴는 곤란하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시사인은 덧붙였다.

 

 

 

한편 진행자 교체설에 대해 손석희 교수는 "아직 할 말이 없다"며 말을 아꼈고

어떤 발표가 나든 "회사 측 결정을 따를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 하였다.
 

 

 


정치적 외압설이 나온 뒤 열흘 만인 2009년 10월 22일, 손석희 교수는

MBC 100분 토론의 시청자 게시판에 '시청자 여러분, 손석희입니다.'란 제목으로

글을 올려 자진하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손 교수는 이 글에서 "제가 상황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만, 회사 측도 어느 쪽으로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 들었다"며

"저의 퇴진 문제와 관련해서 공식 발표된 것은 없으나 이미 저의 퇴진 문제가 공론화된

마당에 모두에게 부담만 드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결국 이 글은 마지막 인사차 올리는 글" 이라면서 "혹 제가

'100분 토론'에 남게 되더라도 이 상황에서는 프로그램에 도움이 되질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제가 드리는 말씀을 그대로만 받아들여 주셨으면 한다.

어떤 정치적 배경도 없으며, 행간의 의미를 찾으실 필요도 없다"란 문장과 함께

"저의 퇴진문제가 프로그램의 새로운 출발과 연관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뜻에서

더 이상의 논란은 없었으면 한다"고 작성하여 정치적 외압을 부인하였다.


 

 

 

 

 

 

 

 

 

 


인물(People)/유명인사 2013.05.03 11:55

성철 스님 친필 유시 18년만에 회수 소식






성철 스님 친필 유시 18년만에 회수 소식

 

성철 스님의 친필 유시가 도난당해 사라진지 18년만에 회수에 성공했다 한다.

1993년 입적한 성철 스님이 생전 남긴 친필 유시가 18년 만에 회수되기는 했는데

어찌된게 이처럼 유명인사가 남긴 유품을 도난하려 드는 사람들이 꼭 있다.

도대체 사는 내내 어떤 깨달음도 신념도 좌우명도 없을 사람들 같다.

여기서 유시란 타일러 가르치는 글을 말한다.

 

 

 

 

평소 특별한 종교에 얽메이거나 편승하는 편은 아니고 조심스러운 영역

이기도 한데, 성철 스님 이야기가 나와 관련기사를 읽던 중 성철 스님 친필 유시가

18년만에 회수되었다고 해서 반길만한 희소식인지라 이런 소식은

포스팅해서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종교라는건 때론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과 맞물릴 때 혼탁한 이야기로 뻗어나가기

쉽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개인적으로 어떤 종교던 비판할 때는 가차없이 비판하기도 하는

편인데, 종교는 인간을 위한 종교여야 하지, 종교를 위한 인간이 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편이다. 종교종파를 떠나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나 지질학적으로나 전통적으로

동양적 토테미즘 사상이 너무도 뿌리깊이 박혀있는지라 이게 종교와 한번 잘못 맞물리다 보면,

이따금 신상화하거나 신격화하려 드는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종교를 위한 종교 내지는

무작정 숭배하는 성향들을 발견할 때마다 염증을 느끼는 편이다.

하지만 종교 종파를 떠나 존경할만한 분이라면 누구든 관심있게 보는 편이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밝힌 바에 따르면, 성철 스님 친필 유시를 훔친

이모(57)씨를 절도혐의로 입건하고 이씨로부터 유시를 사들인 공모(65)씨를 장물취득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서울 종로구 모 스튜디오의

보조 사진사로 일하던 지난 1995년 1월 성철 스님 일대기에 넣을 사진자료 촬영 중

유시를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이씨는 공소시효 만료를 기다렸다

범행 17년여 만인 지난해 1월20일 공씨에게 유시를 판매했다.

 

 

 

 

종로에서 미술품 경매업체를 운영하는 공씨는 성철 스님 친필 유시가

장물임을 알고도 1000만원을 주고 사들였다. 성철 스님 친필 유시는 지난해 3월

경매에서 2100만원에 낙찰됐다. 성철 스님 친필 유시는 1981년 8월 불국사와

월정사 주지 임명 과정에서 작성됐다. 당시 성철 스님은 주지 임명을 둘러싼 불협화음에

67.2㎝, 세로 68.7㎝ 종이에 ‘지계청정(持戒淸淨·계율을 지키되 맑고 깨끗하라’

‘화합애경(和合愛敬·서로 화목하게 어울리고 공경하고 사랑하라)’

‘이익중생(利益衆生·부처님 가르침대로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라)’

이라는 가르침을 적었다. 

 

 

 

 

당시 성철 스님을 모시던 원택스님은 성철 스님에 관한 책자를 발행하기 위해

평소 알고 지낸 유명 사진작가에게 유품 촬영을 맡겼다. 이씨는 촬영 뒤 남겨진 유시를

몰래 챙겼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훔치려던 것은 아니다. 촬영 장소에

남기고 간 것을 보관해 오다 돈이 될 것 같아 돌려주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씨의 절도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이미 만료돼 형사처벌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편 회수된 성철 스님 친필 유시는 당시 두 점 작성됐지만 현재 한 점만 남아있다.

조계종 종단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귀중한 기록 유산으로 평가된다.

 

 

 

 

 

성철
性澈


호: 퇴옹(退翁)
출생-사망: 1912년 ~ 1993년 11월 4일

출신지:경상남도 산청

본관:합천(陜川)

대표관직:해인총림 초대 방장, 조계종 제7대 종정

 

본관은 합천(陜川). 속명은 이영주(李英柱). 호는 퇴옹(退翁). 법명은 성철(性澈).

경상남도 산청 출신. 아버지는 상언(尙彦)이며, 어머니는 진주(晉州) 강씨(姜氏)이다.

8년 동안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행하는 등 평생 철저한 수행으로 일관하였으며

돈오사상(頓悟思想)과 중도사상(中道思想)을 설파하였다.
 
성철은 열 살 무렵부터 유서(儒書)를 읽고 각종 경서를 독파하였다.

1930년진주중학교를 졸업하고 청소년기에 이르자 동서양의 철학·문학·논리학 저서를

탐독하였다. 1935년경영가(永嘉)의 '신심명증도가(信心銘證道歌)'를 읽고 지리산의

대원사(大願寺)에 가서, 거사로서 수행하다가 출가하였다.
 
해인사 백련암에서 혜일(慧日)을 은사로 모시고 수계·득도한 뒤,

10년간 금강산의 마하연사, 수덕사의 정혜선원, 천성산의 내원사, 통도사의 백련암 등에서

안거를 지냈다. 1940년 29세 되던 해에 동화사 금당에서 동안거 중 견성하고,

1941년부터 1963년까지 송광사, 파계사 성전암, 봉암사, 묘관음사, 문수암

천제굴 등에서 수십 회 안거를 지냈다.
 
1993년 11월 4일 열반하였으며, 다비 후 진신사리가 수습되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

.

.

.

.

.

.

.

.

.

.

.

.

.

.

.

.

.

 

 


인물(People)/유명인사 2013.04.25 14:46

알렉스 존스(Alexander Emerick Jones), 음모론주의자들은 왜 그에게 열광할까






알렉스 존스(Alexander Emerick Jones), 음모론주의자들은 왜 그에게 열광할까

 

'알렉스 존스'라는 이름을 여태껏 전혀 모르고 살아왔다라면, 평소 음모론주의자들의

이야기를 그저 터무니 없는 낭설 쯤으로 치부해 버리거나, 혹은 이 세상 골 아픈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별 관심도 없고 나 하나 살기도 힘든 세상에 그와같이 소설같은 쑥덕거림엔

일찍이 담을 쌓아둔지 오래인 분들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된다. 때문에 알렉스 존스라는

인물은 이런 분들에게 너무도 생소하고 금시초문일 수 박에 없을 것이다.

 

 

 

 

솔직히 이 세상에 '음모론'(Conspiracy Theories)이란건 어느정도 반드시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역사적 사건들만 되돌아보아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지나간 과거를 다시 되돌아보고 재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거론이 된다라고 하면 어떨까. 이런 이야기들에 있어 알렉스 존스는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이슈의 핵심에 있는 사람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알렉스 존스의 본명은 알렉산더 에머릭 존스(Alexander Emerick Jones)다.

1974년 2월 11일 생으로 현재 미국의 라디오 쇼 호스트, 영화 제작자이다.
라디오 쇼 '알렉스 존스 쇼'는 미국 60개 이상의 AM. FM 방송국에서 방송되며,

유투브의 TheAlexJonesChannel은 현재 2억 이상의 뷰어

수를 자랑하는 인기 채널이다.

 

 

 

▲ Shadow Gov't Strikes Again at Boston Marathon (TheAlexJonesChannel)

 

알렉스 존스를 내가 처음 알게 된 것도 미국의 911 테러 이후 한참 지나서야

알게되었다. 그런데 음모론주의자들 혹은 음모론을 믿는 사라들 사이에서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이들이 그의 설득력 강한 주장과 이론, 확실한 근거와 논리에

열광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생각보다 매우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그가 이렇게 까지 유명해지기 전에 이미, 바로 911 무역센터 테러 2개월 전에

이미 이를 간파하고 예언에 가까운 주장을 펼쳤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 일로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이나 마찬가지 되는데, 당시  9·11 테러 음모론,

우생학자에 의한 인구 감소 계획과 같은 다양한 음모론을 제기하였다.

그의 활동내역을 좀 더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995년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에 분명히 미국 정부가 관여하고있는 것을 규탄했다.

이후 미국의 테러리즘의 역사와 그것을 빌미로 총기 규제와 경찰의 강화를

도모하는 연방 정부의 공모 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2001년 9월 11일 테러 공격 2개월 전에 자신의 라디오에서 미국의 군산 복합체가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이용하여 자작 연출의 테러를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하며 의원에 "정부가 테러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있다."고
청취자에게 호소하여, 예언적인 발언으로 화제가 된다.

 

 

 

 

2007년 9월 11일에는 뉴욕 맨해튼에서 9·11 진상 규명 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2011년 10월 월 가를 점령하라 운동의 일환으로 Occupy The Fed

(연방 은행을 점거하라) 운동을 시작, 댈러스 연방 준비 은행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고 은행의 독점과 같은 통화 발행권의 폐지를 호소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참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바로 제거 당하거나 길 가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할 각오로 덤벼들어야 하는데

한편으로는 인기에 부합하여 작당을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매우 논리적인 부분들이 많다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이 때문에 

왜, 어째서 그렇게 매우 많은 이들이 알렉스 존스의 논리와 주장에 공감하고

동조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가 주장한 내용들 중에는 다소 황당한 부분들도

없잖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들도 아니다보니

절반만 새겨들어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다고 본다.

 

 

 

 

 

 

 

 

 

 

 

 

 

 


인물(People)/유명인사 2013.04.10 09:20

'전쟁개시자' 리처드 엥겔(Richard Engel) 입국, 전쟁발발 기정화 되는건가






'전쟁개시자' 리처드 엥겔(Richard Engel) 입국, 전쟁발발 기정화 되는건가

 

'전쟁개시자'라는 별명이 붙어 유명한 리처드 엥겔 종군전문기자가 한국에 입국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온라인이 들썩이는 풍경이다. 전쟁개시자 리처드 엥겔은 지금껏

왠만한 전세계 분쟁지역을 모두 돌면서 취재를 해 온 기자이다보니 그가 냄새를 맡고

방문한 지역에서는 반드시 전쟁이 발발했더라는 이유에서 '전쟁개시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고하니 어째 느낌이 심상치 않다.

 

 

 

 

요즘 그렇잖아도 연일 자고일어나면 계속되는 북한발 리스크로 일이 손에

안집힐 정도로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위협은

예정대로 오늘이고, 오늘 한기의 미사일 또는 여러 기의 미사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사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게 어디가 될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때를 즈음하여

전쟁개시자 리처드 엥겔이 한국에 입국했다라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리처드 엥겔은 1996년부터 중동

특파원으로 12년 이상을 보냈다. 2003년 이라크전을 비롯해 바그다드, 카불,

예루살렘, 베이루트 등 분쟁지역을 취재했다. 특히 전쟁 위기가 고조된 지역을

중점적으로 찾아다녀 ‘전쟁 개시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도 한국에 왔던 엥걸은 5일 NBC 방송의

‘나이틀리 뉴스’에서 서울 종로와 명동의 분위기를 전했다. 엥걸은 이날 리포트에서

북한이 중거리 미사일을 동해상으로 이동시켰다는 내용을 보도하며 무수단 미사일과

북한의 군사력,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 등에 대해 언급했다.

 

 

 

 

언론에서 쉴새 없이 입방아 찧어대는 것과 별개로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개인적으론 그 어느 때보다도 심상치 않은 보통 심각한 분위기가 아니라고 본다.

북한의 이러한 위협이 그저 말로만 끝날 수도 있고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바꿔말하면 이미 전쟁은 50%이상의 확률로 우리 현실안에 가까이 다가왔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런 리스크가 발생하기 전의 평상시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지나쳐 왔다. 이미 개성공단도 폐쇄되고 한번 닫힌 남북

대화, 또는 협상의 문은 이제 다시 열기에는 불가능에 가깝다.

 

 

 

 

문제는 이러기까지 정부부처(통일부)가 얼마만큼 긴밀하고도 능력껏 대처를

했는가하는 궁금증인데, 사실 냉정히 말하자면 아무것도 한게 없다. ㅠ.ㅠ

외형적으로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듯 하고, 매우 신중하고도 차분하게 감정적으로

맞대응 하지 않고 예의주시하고 있다라고 말하지만, 다시보면 아무것도 하는게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그렇다. 부처간 의사소통이나 정보교환도 헛점이

드러나고...마치 팔짱 껴고 자존심 대결을 펼치며 언론보도에서 말하듯

북한의 위협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연장선상에 있다. 언제나처럼 벼랑끝 전술을

선호하는 습성대로 같은 맥락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등 그런 말들만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이럴 때 보면 능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듯 하다.

여기까지 밖에 안되는가 싶은게, 여전히 강대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인상이

많이 든다. 한,미,일 동맹관계가 있고 여러 복잡한 외교적 정치적 논리가 작용하는

줄은 알겠지만, 정말 심하게 말해 주체적으로 능동적인 노력을 하는게

아무것도 하는게 없다. 이러다보니 역으로 이런 생각마져 든다.

 

 

 

 

혹시 뭔가를 기다리는게 아닌가.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예전처럼 남북간 긴장이 발생하면 구원투수로 나섰던 지미 카터(Jimmy Carter)

대통령도 발이 묶여선지 노환 때문인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혀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 이 부분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여진다.

 

 

 

 

북한은 마치 작정한 듯 이전과는 달리 미리 계획이라도 한 것처럼, 쓸 수 있는

모든 카드를 척척 그 때마다 잘도 꺼내놓고 있다. 즉흥적이어 보이지도 않고 매우

계획적이다. 이 말은 전쟁을 각오하거나 준비했다는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다.

게다가 강대국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노라면, 미국의 경우 겉으론 평소와 별반 다름없거나,

심지어는 무기력하거나 당황하기도 하는 등의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난색을 표하고 우려를 표하면서도 한발 물러서는 방조자적 모습마져 보이는데

이런건 미국의 단골메뉴 아니었던가. 전략적으로 말이다.

 

 

 

 

그렇다라면 비약이 심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이미 저 너머 사람들은 모든걸

인지하고 넘어갔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늘 세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세력에 의해 움직여지니까 말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전쟁개시자' 리처드 엥겔의 입국이 이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여진다.

 

 

 

 

리처드 엥겔 (Richard Engel)
방송기자출생1973년 9월 16일소속NBC (특파원)
학력스탠퍼드대학교 국제관계학
수상2010년 그레이시상
2009년 조지 포스터 피바디상
경력1996~ NBC 특파원

 

 

 

 

 

 

 

 

 

 

 

 

 

 

 

 

인물(People)/유명인사 2013.02.19 14:30

박철수 감독 별세, 1996년 영화 '학생부군신위'에서처럼






박철수 감독 별세, 1996년 영화 '학생부군신위'에서처럼

 

박철수 감독이 별세했다는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세월이 흘러 사람이 늙다보면 죽는거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박철수 감독의 별세는

그런 자연사가 아닌 갑작스러운 사고사였기에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박철수 감독의 영화는 1979년 '밤이면 내리는 비'말고도 '접시꼿 당신'이나 '오세암'

등 다수의 작품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자면

1996년작 '학생부군신위'를 들 수 있겠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당혹스러운 마음마져

들었는데 자꾸만 갈수록 좋은 사람들, 유명한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나는 듯 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욕 실컷 먹는 나쁜놈들은 명도 길기만 한데 말이다.

 

 

 

 

박철수 감독의 별세 소식은 경기 용인 죽전동에서 어제밤 자정, 1시 30분쯤 횡단보도를

건너다 만취 운전자의 승합차에 치여 현장에서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30대 운전자는

혈중알콜농도가 이미 면허취소 수준일 정도로 만취상태였다고 한다. 향년 65세로 뜻하지 않은

죽음를 맞은 박철수 감독은 최근 차기작으로 '러브 컨셉츄얼리'를 준비중이었는데 작업실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중에 이런 사고를 당해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故人이 된 박철수 감독은 1948년 11월 20일 경북 청도 출생으로 성균관대학교를 나와

영화 '골목대장'으로 충무로에 데뷔, 1979 밤이면 내리는 비, 1986 안개기둥,

1988 접시꽃 당신, 1990 물 위를 걷는 여자, 1990 오세암, 1995 301 302, 1996 학생부군신위,

1996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 1997 산부인과, 2011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 등

다수의 작품을 연출.제작하였다. 1980~90년대 한국영화계를 이끌던

박철수 감독의 별세 소식에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길 없다. 사람의 인생이란

참으로 덧없다는 생각을 해보게되는 하루다.

 

 

 

 

 

▲ 1996년작 '학생부군신위' 잠시 감상해보시길 바란다. 첫 장면에 박감독이 상주로 나온다.

극중 故人으로 나오는 배우 최성씨는 2009년 작고하여 분당 스카이캐슬 추모공원에 잠들었다.

 

 

 

 

영화 학생부군신위, 1996

 

1996년 박철수필름이 제작하였고, 김상수가 각본을 썼다. 감독 박철수(朴哲洙)가

직접 큰아들 역을 맡고 방은진(方銀珍), 최성, 문정숙, 권성덕(權成德), 김일우, 박재황,

추귀정 등이 출연하였다. 상연시간은 119분이다. 황지우(黃芝雨)의 시 '여정(旅程)'에서 모티브를

얻어, 살아 있는 자들의 잔치판같이 떠들썩한 상갓집의 풍경을 블랙코미디 형태로 묘사하였다.

시골노인 박씨(최성)의 죽음을 계기로 적막하였던 시골집은 갑자기 활기를 띠며 잔칫집처럼

분주해진다. 영화감독인 큰아들 찬우(박철수) 내외와 미국에 사는 셋째 아들 찬세(박재황),

카페를 경영하는 딸 미선(추귀정)까지 장례식을 위해 시골집에 내려온다. 찬우는 주변을

한 편의 영화처럼 관찰하고, 그리스도교 신자 찬세는 영전 앞에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가장 부모 속을 썩이던 미선은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죽은 오빠의 시신 앞에서 통곡을 하던

박노인의 여동생은 갑자기 보험 세일을 시작하고 행랑방에 사는 씨가 불분명한 악동 바우는

술병 하나를 들고 사방을 휘젓고 다닌다. 상갓집은 읍내 다방의 마담과 비디오가게 주인까지

모여들면서 한바탕 난장판으로 변한다. 감독 박철수가 실제로 부친상을 치르면서 겪은 일들을

기초로 하였다. 영화의 무대가 되는 합천군 가회면 주민들의 협조로 250여 명의 대규모

문상객과 2,000여 개의 술병과 돼지 3마리가 동원되었다. 제3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

작품상, 감독상, 특별상을, 제34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조연상, 각본상을 수상하였다.

 

 

 

 

 

 

 

 

 

 

인물(People)/유명인사 2013.02.13 21:16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 별세, 사진은 사상이다!!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 별세, 사진은 사상이다!!

 

최민식 사진작가는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중에서도 '大家'로 통해왔다.

80년대 후반쯤 처음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의 사진집을 인사동 어느 메에서

보았던 기억이 선한데, 이후에도 각종 사상지나 시사지 등의 도서나 화보집 등을 통해

그런대로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꽤 익숙하게 많이 알려져 왔었다. 그런데 그랬던

최민식 사진작가가 어제 12일 오전 8시 40분 무렵 자택에서 85세의 일기로

노환 끝에 별세했다는 소식을 오늘에서야 뒤늦게 알게 되었다.

 

 

 

 

당시 칼라도 아닌 흑백사진의 힘과 묘한 매력을 어린 나이에 처음 접하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생생하면서도 진실된 순간을 포착하여 한장의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지,

또 한장 한장의 사진들이 어쩌면 그리도 강렬한 흡인력으로 보는 사람의 시선과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을 수 있는지,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의 사진전을 보면서

뭔가 예사롭지 않게 감명깊었던 순간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동안 우리는 디지털 사진의 편리함에 압도되어 단지 빠르고 간편하게

기록할줄만 알았지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의 작품에서처럼 그 어떤 '정신'을

담거나 그런 순간을 포착한다는 것들과는 거리가 멀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다.

더군다나 요즘은 흔히 '디카'라고 하는 디지털 카메라도 아닌, 스마트 폰으로 모든걸

다 해결하는 세상에 살고있기에 이런 아날로그적 냄새가 가득한 사진을 보노라면

격세지감 이전에 문명화 이면에 감춰진 황망스러움마져 발견하게 되는 듯 하다. 

 

 

 

 

저녁녘에 라디오에서 문득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의 지인으로 작가활동 중인 제자분이

인터뷰하는 내용을 들었는데, 이 분 말이 최민식 사진작가는 생전에 자신을 처음

만났을 때 인사말 대신 손을 내밀며 "사진은 사상이다!"라고 말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참 비장하기까지 한 명언인듯 하다. 언론에서도 그에 대해 말하기를," ‘인간’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서민의 고단한 삶과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것으로 유명하다."

라고 전한다. 언제나 가난하고 소외된 삶에 초점을 맞추었던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은

1928년 황해도 연백 출신으로 일본 도쿄 중앙미술학원 유학 중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사진집

'인간 가족'에 매료돼 사진으로 진로를 바꾸었고 1957년 공식적으로 사진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언제나 '인간'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해왔다.

2004년 서울 일민미술관의 '사람만이 희망이다'展을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주목 받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진정한 '시대정신', '사상을 담는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을

기리며 그가 남겨놓은 작품들을 한번 되돌아본다.

 

 

 

 

 

 

 

 

 

 

 

 

 

 

 

 

 

 

 

 

 

 

 

 

 

 

 

 

 

 

 

 

 

 

 

 

 

 

 

 

인물(People)/유명인사 2013.01.05 11:01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 사망, 풍문으로 들었소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 사망, 풍문으로 들었소

 

한 때 폭력조직의 거물로 존재감을 과시했던 BOSS 김태촌이 2013년 새해벽두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보통 조폭이라 하면 사회에서 뿌리 뽑아야 할 '악의 축'세력으로 이야기하지만

솔직히 이 사회엔 조폭보다 더 조폭같은 말종들이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김태촌이라는

사람을 결코 변론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의 활동 전성기 시절인 1970~80년대에는 국가와 사회

자체가 군사정권에 의해 강탈당하고 유린당하는 시대였기에 김태촌 같은 폭력조직이라고 해봐야

그런 위정자들과 권력의 그림자 안에서 하수인 노릇이나 하고 필요할 때면 정치권과 결탁하여

폭력을 행사하여 그들을 비호한 덕에 그들만의 세력유지나 해왔던, 어차피 그때마다 필요하면

이용당하고 버려지는게 폭력조직 아니던가 생각해보게 된다. 늘 정치권력의 뒤에서 그렇게

필요악으로 존재하던게 당시의 폭력조직이었고 그 핵심에 있었던 사람이 김태촌이다.

 

 

 

 

갑상샘 질병으로 건강이 악화디어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1년여 치료바던 김태촌은

1949년생으로 향년 64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동안 각종 위법사항들로 구속을

반복하던 끝에 잠시 전향하는 듯 했으나 역시도 태생자체가 삶을 크게 바꿀수는 없었나

보다. 1975년부터 전남 광주 폭력조직 서방파의 행동대장으로 시작해 1980년대에는 'OB파',

조양은의 '양은이파'와 함께 전국 삼대 폭력조직으로 손꼽혔던 범서방파의 두목 김태촌은

이렇듯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다. 1987년 인천 뉴송도 호텔 나이트클럽 사장 황모씨를

무참히 난자하여 살인교사했던 사건은 유명하다. 2006년에는 영화배우 권상우를 협박

했다는 사실과 관련해 세간에 화재가 되기도 했었다.

 

 

 

▲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한 장면

 

조직폭력배는 분명 사회에 있어 위협이 되는 존재로 영화 '범죄와의전쟁'이나

각종 조폭영화에서 단골소재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이번에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이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는걸 보면서 이 나라엔 여전히 진짜 조폭보다 더 조폭같은, 직접적인

폭력행사보다 더 자인한 간접적 폭력을 행사하는 정치인 집단, 경제인 집단, 종교인

집단 등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상기하게 된다. 세상을 누가 지배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거리의 조폭은 사실 언제나 조연일 뿐이다.

 

 

 

▲ 장기하 '풍문으로 들었소', 김태촌 사망했다는데 하필 이 노래가 떠오를까.

 

 

 

 

 

  

 

 

 

  

 

 

 

 


인물(People)/유명인사 2013.01.04 11:20

워쇼스키(Wachowski)형제에서 워쇼스키 남매로






워쇼스키(Wachowski)형제에서 워쇼스키 남매로

 

오는 9일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Cloud Atlas)' 개봉을 앞두고 내한한 워쇼스키 남매가

강호동이 진행하는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화제가 되었다. 전부터 이들 워쇼스키 감독이

출연할거라고, 이미 녹화도 끝내놓았다고 해서 잔뜩 기대했던게 사실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들 감독은 원래 형제였다. 영화 메트릭스 시리즈를 개봉했을 당시만 해도 분명히

워쇼스키 형제 감독으로 Wachowski Brothers 로 알려져 있었는데 형이었던 '래리 워쇼스키'가

성전환을 통해 이름을 '라나'(Lana Wachowski)로 바꾸었다.

그래서 이들은 이 때부터 형제 감독이 아닌 남매 감독으로 불리게 되었다.ㅠ.ㅠ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서도 라나 워쇼스키는 어릴 때부터 갖고있던 성 정체성 때문에

자살까지 결심했던 일화를 들려줬는데 어지간히도 고민이 많았었나보다. 성소수자로 남게되면

남자에서 여자가 된 이상 더이상  영화감독이나 각본가가 되고 싶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을것 같다고 생각했다나. 남동생인 앤디 워쇼스키는 그래도 누나가 성전환을 통해 지난 날의

고민들을 걷어내면서 스스로 짊어지고 왔던 갈등을 해결하니 차라리 지금이 더 행복해

보인다며 그런 누나를 바라보는 자신 역시 행복해졌다고 한다. 어쩌면 함께 영화작업을

하는데 있어서도 그게 훨씬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각각 1965년과 1967년생으로 워쇼스키들(The Wachowskis) 또는

워쇼스키 스타십(Wachowski Starship)으로 불리워진다. 이제는 더 이상 형제가

아닌 남매로 또 한번 걸작을 남기기 위해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가지고 이번에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물론 주연배우 중에 한 사람으로 배두나라는 한국의 여배우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국내개봉이 중요하기도 하고 아시아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이 예전에 비해

확실히 높아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 홍보차 한국을 방문한 워쇼스키 남매 감독 인터뷰

 

 

 

 

 

 

오는 9일 개봉되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대한 기대감이 때문에 더욱 고조되고 있다.

동양적 사상과 철학을 담은 영화로 예고편에서 개인적으로 발견한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輪廻)'사상과 '인연'(因緣)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무려 500년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런

방대한 스토리가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자체에 대해서 배두나 역시도 신기해하고

놀라워 했으니 말이다. 클라우드 아틀라스 영화는 2004년 발간과 동시에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영국의 작가 데이빗 미첼(David Mitchell)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워쇼스키 남매 감독의 작품으로 오는 9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인물(People)/유명인사 2013.01.03 18:15

혜민스님-'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읽고싶은 책






혜민스님-'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읽고싶은 책

 

요즘 TV에서고 어디서고 혜민(惠敏)스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혜민스님은 원래 출가전 대전 태생으로 촉망받는 수재로 고교 졸업 직후 미국 유학을 떠나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종교학 학사와 하버드대 종교학 석사 이어 프린스턴대 종교학 박사

학위까지 종교에 대한 학구열이 남달리 높았었다. 그러던 분이 지금은 스님이 되어있다.

혜민 스님이 불교에 심취하게 된 사연이야 그렇다치고 요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란 책이 시중에서 출간 3개월 만에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16주간 1위자리를

고수하고 있는데 2012년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으로 9위를 차지하기도 했다고 한다.

 

 

 

 

저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혜민스님은 방송에도 많이 나왔고

헐리우드 배우중 불심 가득하기로 유명한 리처드기어와의 친분도 그렇거니와 지난 1일엔

차인표와 박찬호가 출연한 SBS '땡큐-스님, 배우, 그리고 야구선수'에 대한 시청자들

반응도 매우 뜨거웠다. 아직 혜민스님의 저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읽지

못했지만 조만간 반드시 구입해 읽어야 할 책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어차피 이 세상 살면서 너무나도 평범한 가운데 진리가 숨어있다라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지만, 혜민스님과 같이 순수한 영혼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다른

여느 책들에 비해 더 진심으로 가슴에 와닿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TOTAL 4,227,268 TODAY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