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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때리는영화/아시아영화 2014.08.29 19:59

홍콩영화 살파랑(殺破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액션씬 그리고 배우 오경(吳京)






홍콩영화 살파랑(殺破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액션씬 그리고 배우 오경(吳京)

 

 

홍콩영화 '살파랑'은 2005년에 개봉된 작품이다. 뒤늦게 2007년 무렵에야

이 영화를 보았음에도 영화속 화려한 액션씬의 주인공 견자단 보다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배우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오경이 오늘 포스팅의 주인공이다. 서글서글하니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마스크이면서도 그가 보여주는 무술실력이나 연기는

상당히 오랫동안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배우 오경은 원래 중국출신이다. 어려서부터 무술인으로 잔뼈가 굵었는데

배우가 되기 이전에 이미 1992년 준국 무술시합 마스터스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영화 살파랑에서 함께 연기했던 홍금보나 견자단이야 말이 필요없는 무술계 대선배이자

연기선배이기도 하지만 오경이 가진 잠재력과 무술실력을 제대로 알아본 사람은

어쩌면 이 영화 '살파랑'의 감독 겸 배우로 출연했던 홍금보인지도 모른다.

 

 

 

 

 

 

 

 

 

영화 살파랑에서 배우 오경의 무술연기는 대략 두 군데에서 진면목을

보여준다. 첫번째 등장씬에서는 형사를 무자비하게 도륙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사실 그보다는 배우 견자단과의 일대일 대결씬이 훨씬 인상적이다. 팽팽한 긴장감의

연속이자 아무리 연기로 짜고 하는 액션이라지만 마치 실제 격투씬을 방불케할 정도로

백미라 할 수 있다. 특히나 골목에서 두 사람이 겨루는 팽팽한 무술실력은 촬영기법상

롱테이크(Long Take) 덕분에 긴장감이 더 잘 살아나는 분위기라 할 수 있다.

 

 

 

 

 

▲ 홍콩영화 '살파랑'에서 견자단과 오경의 결투씬

 

 

 

▲ 홍콩영화 '살파랑'에서 오경의 등장 후 첫 액션씬

 

 

 

 

영화촬영에 있어서 이런 롱테이크 기법은 여러 영화들에 자주 등장하는데

과거 90년대영화 중에 대표적인 롱테이크 씬을 꼽으라하면 아마도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아닐까 한다. 이후에도 이러한 롱테이크 기법은 자주 보게 되는데, 근래 가장

유명했던 장면중 하나는 영화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이 사설감옥을

탈출하는 씬이 가장 유명할지도 모르겠다.

 

 

 

 

 

 

 

 

 

 

 

 

 

 

올드보이 이후 실제로 많은 감독들이 이와같은 롱테이크 기법을

도용했는데 이게 '오마쥬(Hommage)'이든 아니든간에 그 때를 연상캐하는건

어쩔 수 없는듯 하다. 영화 살파랑에서도 두 사람이 서로 물러서거나 피할 수도 없는

극도의 긴장감을 서리게 하는데 있어 골목이라는 배경은 훌륭한 장소였음엔

틀림없다. 그리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들의 격투씬은 극도의 긴장감을 선사해주고

있다. 견자단 또한 뭐 두말하면 잔소리라 할 수 있는 무술고수이고, 오경은

장래가 촉망되는 신예 스타인 셈! 이 둘의 결투장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래

개봉했던 홍콩무술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손꼽힐 수 있을 것이다.

 

 

 

 

 

 

 

 

 

 

 

 

 

배우 홍금보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연륜이 묻어나고

스스로 직접 액션연기를 하기 보다는 영화인으로서, 영화제작자로서의 입지를

좀 더 굳혀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배우 오경이 영화 '살파랑' 이후

이연걸이나 견자단 등을 뛰어넘는 차세대 액션연기자로 계속

자리매김하길 기대해 본다.

 

 

 

 

 

 

 

 

 

오경

(吳京 , Wu Jing, Jacky Wu)
영화배우
출생:1974년 4월 3일(중국)
신체:174cm, 65kg
학력:베이징체육대학교
수상:1992년 전국 무술시합 마스터스 대회 사격술, 대련부문 우승
1991년 전국 무술시합대회 사격술, 대련부문 우승
1989년 전국 무술시합대회 권술, 창, 칼, 대련부문 우승
경력:1980 베이징 무술팀 단원

 

 

 

 

 

 

 

출연작품

 

2014 전랑
2012 아시특충병지리인출초
2011 개심마법
2011 샤오린:최후의 결전
2010 월광보합
2010 전성계비
2010 서풍렬
2009 기기협
2008 랑아
2008 아적최애
2008 탈수
2008 미이라3:황제의무덤
2008 쿵푸덩크
2007 쌍자신투
2007 남아본색
2006 흑권
2005 살파랑
2002 철마류 3:취마류
2001 촉산전
2000 책마소서풍
1999 태극권3
1996 태극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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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때리는영화/아시아영화 2014.05.12 18:46

[버스 44] 세월호 참사 속 주목받는 실화바탕으로 한 중국영화






[버스 44] 세월호 참사 속 주목받는 실화바탕으로 한 중국영화

 

 

중국영화 '버스 44'는 지난 2001년 제58회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등 수많은

수상 이력을 지닌 11분짜리 영화다. 무려 13년이 된 이 영화가 갑자기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속에 부끄러운 우리 사회를 되돌아본다는 관점에서 어느순간 네티즌들 사이에

빠르게 퍼지고 있는 영화로 뒤늦은 관심이 이채로워 보인다. 특히나 이 영화 '버스 44'는 실제로

중국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기에 영화가 던져주는 충격이나

파장은 관객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버스 44는 상영시간이 단 11분에 불과하지만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충격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강렬한 작품이라고 한다. 때문에 뒤늦게나마 세월호 참사 속에 주목을 받고 있는 실화 바탕의

중국영화 '버스 44'를 10여분간에 걸쳐 보게 되었다. 번역된 자막은 없어도 내용과

뜻을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다. 역시도 영화가 던져주는 메세지는 컸다.

 

 

 

 

 

 

 

혹시라도 아직 이 영화 '버스 44'를 못보신 분들이라면 11분이라는 짧은 런닝타임이라

지금 바로 감상하실 수 있겠다. 아래를 보시면 영화 '버스 44' 동영상을 보실 수 있다.

 

 

 

 

▲ Bus 44 - Award-Winning Short Film

 

 

 

영화 '버스 44'의 스토리는 대략 이렇다. 2시간 동안 버스를 기다렸던 한 남성이

버스에 오르면서 영화가 시작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돈을 노리고 침입한 강도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남자는 버스기사인 여자를 성폭행하려 하자 구하려고 홀로 이들에게 맞서는

과정에서 남자는 강도가 휘두른 칼에 다리를 다치고 여자 버스기사는 끝내 버스

강도에게 성폭행당한다. 그리고 다른 승객들은 그저 남성을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도

버스에서 내려 도와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이 모든 광경을 수수방관한 것이다.

 

 

 

 

 

 

 

 

성폭행을 당한 여자 기사는 버스에 오른 뒤 차내에 남아있던 승객들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눈물 짓지만, 누구도 그런 그녀를 위로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냥 다들 모른채 할 뿐...이윽고 다리를 다친 남성에 낑낑 대며 버스에 오르려 하지만, 버스기사는

이 남자에게 "내리라"고 말한다. 심지어 버스에 있던 그의 가방을 밖으로 내던진 뒤

그를 홀로 남겨둔 채 버스를 몰고 떠난다. 하지만, 영화는 이게 끝이 아니다.

 

 

 

 

 

 

 

허탈한 남성은 다른 차를 얻어 타고 가던 중 믿기지 않는 상황에 그대로 멈춰 서고 

마는데, 바로 자신을 버린 기사가 버스를 낭떠러지로 몰아 차에 남아있던 승객들과 목숨을 끊고

만 것이다. 기사는 자신을 위해 싸운 남성에게 일종의 은혜(?)를 베푼 셈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영화 '버스 44'가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세월호 참사'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무능하게

찍힌 정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려는 의도로 보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번 세월호 참사를 놓고 정부와 관계당국이 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특히나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 순간 무려 40여분을 그냥 멍청~하게 넋 놓고 도대체 무얼 했었나

모두가 그냥 멍하니 그저 지켜보고만 있던 모습은 영화 '버스 44'에 나오는 승객들과

마찬가지로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그런 모습으로 오버랩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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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때리는영화/아시아영화 2014.02.17 16:58

초한지 영웅의부활(The Last Supper, 2012), 역사 속 항우와 유방 그리고 한신에 대한 진실 파헤치기






초한지 영웅의부활(The Last Supper, 2012), 역사 속 항우와 유방

그리고 한신에 대한 진실 파헤치기

 

 

초한지 영웅의부활(The Last Supper, 2012), 이 영화는 중국 고전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보셔야 할 만큼 추천할만한 영화라 하겠다. 삼국지와 더불어 초한지는 중국을 대표하는 고전문학의

최고봉으로 문학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즐겨다루는 소재인데, 이번에 보게된 초한지 영웅의부활은

사실 중국당국의 검열에 5개월 동안 개봉을 하지도 못한 영화였다. 중국하면 한고조 유방을

기치로 여전히 한족이 실질적 주독권을 잡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기 때문이었을까.

 

 

 

 

 

 

 

초한지 영웅의부활은 실제로 우리가 기존에 알고있던 것과는 다른 관점에서 수년간 철저한

역사적 고증작업을 거쳐 200억이라는 제작비를 쏟아부어 만든 수작이다. 이 영화에서 한고조 유방역을

맡은 배우가 앞전에도 소개한 바 있는 배우 유엽(유예)인데, 그는 이 영화를 만든 감독 루 추안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는 듯 하다. 2009년작 '난징난징'에서도 류엽과 함께 작업을 했으니 말이다.

 

 

 

 

 

 

 

 

 

 

루 추안(육천)감독은 평소 역사물을 자신의 작품에서 많이 다루는 편이었는데, 삼국지

적벽대전에 이어 이번엔 중국내에서도 '초한지'쪽에 포커스를 맞추는 분위기 속에서 이런 영화가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초한지 영웅의부활을 보면 그동안 우리가 책에서만 읽어온 것과 달리

다른 시각에서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겠는데

영화는 주인공인 한고조 유방의 시각에서 진행된다. 즉, 진나라에 항거하여 거병하고 일어난 항우와

유방 그리고 이들 사이에 아깝게 사라져간 또 한명의 영웅 한신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영화는 전개되고 있다. 한신역에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 장첸이 캐스팅되었다.

 

 

 

 

 

▲ 한신(韓信)역의 장첸(Chang Chen)

 

 

평소 역사에 관심은 좀 있어도 고전영화는 일부러 찾아가며 보는 성격은 아니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왠지 이런류에 더 관심이 간다. 게다가 과거와 달리 요즘의 중국영화라는 것이

의외로 상당히 잘 만든 작품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부터 어줍잖은 책으로 중국고전을 만나는 것보다

차라리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을 한 이후로 이따금 이런류의 영화를 좀 즐겨보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인지 최근 만나 본 초한지 영웅의부활은 참 잘만들었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 초한지:영웅의 부활 예고편(2012, 감독: 루 추안)

 

 

 

 

 

 

 

 

 

 

 

언젠가 이문열씨가 쓴 삼국지를 읽으면서 다른 도서들도 그랬지만 정말 책을

이렇게 밖에 못쓰나라고 한탄한 적이 있었다. 그분들께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제일 짜증났던건

있는 그대로를 가져다 옮기는 것도 별 의미가 없을 뿐더러 재미도 없고, 고리타분한데

작가적 해석 마져도 그냥 사대주의적 관점에서 어려운 한자나 뒤섞어 놓거나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을 전혀 배려해주는 것도 없이 그냥 유식한척 늘어놓은듯한 문체에 눈만 아팠다.

 

 

 

 

 

▲ 초한지 영웅의부활 또다른 예고편

 

 

 

 

 

 

 

 

 

 

 

때문에 요즘 세대들이 아무리 역사에 관심이 없는 세대라고 할 지언정, 비주얼을 좀

따지는 편인 신세대라면 차라리 괜찮게 잘 만든 영화를 통해 이런 고전역사물을 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서론이 좀 길었지만 초한지 영웅의부활은 한고조 유방과

걸출한 영웅 항우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얼마든지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떤 젊은 용 한신의

이야기를 빼어난 영화적 연출기법으로 재미있게 엮어냈다는 평을 해주고 싶다.

 

 

 

 

 

 

 

 

 

 

 

초한지를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유방의 아내 여치는 중국의 역사에 있어

3대 악녀로 꼽히는 인물인데 그냥 평범하고 순수했던 그녀가 권력에 대한 탐욕에 물들면서

잔인하게 변모해 가는 모습은 남자들끼리의 치고박는 전쟁보다 오히려 더 소름돋을 정도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아! 여치 이야기를 하다보니 앞서 이 영화가 중국내에서 당국 검열에 발목을

 잡혀 5개월이나 개봉이 지연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부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한족이 중추역활을 하는 중국이라 유방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은 이 영화에 대해

시선이 곱지 않을 수 밖에 없기도 했지만, 권력을 둘러싼 여치의 개입이나 주변 인물들의

정황관계 등을 보면 요즘의 중국 정세와 관련이 있지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지난해 실각한 보시라이와 부인 구카이라이의 이야기와도 겹친다는 분석이 있다.

 

 

 

 

 

 

 

 

미국 뉴욕 타임즈에서 초한지 영웅의부활에 대해 중국 검열당국이 개봉 보류를

할 수밖에 없었던 두 가지 이유를 분석해 놓은게 있는데 나름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우선 첫째, 유방을 사랑하는 평범한 아내였으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탐욕과 분노에 젖은

여치의 모습이 지난 여름 실각한 보시라이의 부인 구카이라이와 묘하게 겹치는 점이다. 즉,

구카이라이는 한참 상승가도를 달리던 보시라이를 영국인 살해 혐의로 무너뜨렸는데

그런 모습이 초한지 영웅의부활 속 여치와 겹쳐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본편에서 서초패왕 항우는 자신을 배신하고 천하를 얻고자 하는

유방에게 경고하는데 그 장면이 중국 검열당국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는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부패한 권력은 독재로 향하기 쉽다는 점을 지적하는 '초한지'의

교훈이지만 현재 중국 당국을 향한 비판으로도 느껴질 수 있다는 점에서이다.

 

 

 

 

 

 

 

 

 

 

 

 

어쨌든 이 영화 초한지 영웅의부활에서 아름다운 장면중 하나를 꼽자면

중국 경극 '패왕별희' 속의 한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유방의 30만대군에 쫒기던

항우가 우미인과 죽음으로 이별하고 28명의 결사대와 끝까지 결사항전하던 끝에 자결하는

장면이 그대로 담겨있다. 굉장히 극적인 장면으로 항우 역을 맡았던 배우 다니엘 우

(Daniel Wu)의 기개있는 모습도 상당히 멋지게 보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명장면을 꼽으라면 바로 한신의 죽음에 이르는 대목을 들 수 있다.

유방에 대한 기억들, 첫만남, 항우 진영으로부터 탈출해 다시 합류하여 진나를 멸하자고 외치던

기억들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바로 그 장면들이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정사(正史)에 어디까지 나오는 이야기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를 찍기에 앞서 감독과

제작진은 다양한 각도에서 역사적 사료를 최대한 고증을 거친 끝에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고 신빙성이 또한 매우 높아 보인다.

 

 

 

 

 

 

 

 

 

 

 

 

 

 

 

네이버에서 대충 두들겨 보아도 한신에 대한 기록은 그다지 걸출한 영웅감은

못돼는 것처럼 나오지만, 그런 미천한 인물을 구지 왜 한나라의 황제와 황후가 죽이려고

했을까 생각해보면 답은 나온다. 왜 그를 그렇게 유방과 여치가 견제해야 했는지, 심지어

장자방으로 불리는 장량과 소하까지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적으로서의 한신을

제거할 수 밖에 없었다면 역사적 평가와 기록들과 달리 한신은 항우 다음가는 영웅이었을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어쨌든 중국 스스로가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재해석으로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자체부터가 매우 신선하고 놀라웠다.

 

 

 

 

 

 

 

 

 

 

 

 

영화 초한지 영웅의부활은 그런 영화였다. 영화의 시작과 더불어 처음부터

유방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은 말미에 그가 좀 더 솔직하게 고백하는 이야기로 막을

내린다. 사람들이 유방의 역사가 홍문연(鴻門宴)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스스로는 자신의 인생자체가 아예 홍문연이었다고 독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다더냐!"외치던 유방의 말보다 이 독백이 훨씬 더

크게 와닿을 수 밖에 없는 영화가 바로 초한지 용의부활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평소 역사물 좀 관심있는 분이던, 그렇지 않은 분이던 꼭 놓치지 말고 보셨으면

하는 영화가 바로 오늘 소개한 초한지:영웅의 부활이라 하겠다. 괜히 아무 상관도 없는

서양의 햄릿이니 하는 그런 역사물을 보는 것보다 역사적, 지리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중국의 이야기가 훨씬 더 가슴에 와닿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 유방 역활을 했던 배우 유엽(류예)은 얼마전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 2014'에도 출연했다.

 

 

 

 

 

 

초한지: 영웅의 부활
王的盛宴, The Last Supper, 2012

중국
상영시간:116분
개봉:2013년3월28일

감독:루 추안

 

출연

 

류예(유엽, 유방), 오언조(Daniel Wu Yin-Cho 항우),
장첸(Chang Chen 한신), 진람(Lan Qin 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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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때리는영화/아시아영화 2014.02.16 19:11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 2014, 액션을 기대하기 보다는 유엽과의 드라마에 촛점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 2014, 액션을 기대하기 보다는

유엽과의 드라마에 촛점

 

 

'폴리스 스토리 2014'는 지난 1월29일 설 대목을 앞두고 개봉한 영화였다. 언제나

한국의 명절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단골 영화 중 하나가 바로 성룡의 무협액션영화였는데, 

세월이 한참 흘렀어도 추석이던 설이던 명절에 한국을 찾아오는 모습은 여전하다는 생각을

해보며 이 영화를 보았다. 물론 CF에 나와던 것처럼 성룡의 화려한 액션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최근 중국영화들이 과거처럼 황당한 액션연기에 치우치기 보다 사실적인 묘사에 무게를

두고 중국만의 특별한 볼거리를 담는 식으로 큰 변화가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폴리스 스토리 2014는 원래 제목이 ' Police Story 2013' 혹은 '警察故事 2013'이다.

한국에서 2014년에 개봉하면서 제목을 그렇게 바꾼듯 한데, 과거 80년대~90년대로 넘어오는

동안 성룡이 보여주었던 그런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지 않고 보았기 때문인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나름대로 볼만했다. 특히 신세대 기대주라고 할 수 있는 배우 '유엽'과의 연기대결에

촛점을 두고 무협액션물이 아닌 드라마로 본다면 그런대로 재미있게 볼만하겠다.

 

 

 

  

 

 

 

 

성룡이 1954년생이니까 올해로 60살이 된 셈인데, 환갑을 맞은 나이에 찍은

폴리스 스토리 2014가 과거 성룡이 보여주었던 액션만큼 재치발랄하면서도 날렵한 액션이

나올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었으리라 보는데, 이 영화는 2009년

'대병소장'을 연출했던 딩예(Ding Sheng)감독의 연출작품이다.

 

 

 

 

 

 

 

 

폴리스 스토리 2014에는 종반장 역으로 나오는 주인공 성룡 외에 눈에 익었던

배우가 하나 있었는데,바로 성룡의 상대역이자 악역(?)으로 나오는 우사장 역의 유예(劉燁)라는

배우였다. '유엽'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이 배우는 2005년 첸카이거 감독이 한국의

장동건을 캐스팅하면서 화제가 되었던 중국영화 '무극'에서 '검은늑대'역으로 출연한바 있어 아마도

기억하는 분들 계실줄로 안다. 아니면 장예모 감독의 '황후화'에서 '원상왕자'역으로 출연했던

그를 기억할 수도 있는데,  최근 포스팅 했던 일본의 대학살극을 그렸던 영화 '난징난징'에서

인상 강한 중국혁명군으로 나왔던 유엽을 기억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폴리스 스토리 2014에서 유엽이 보여준 연기는 어쩌면 너무도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

성룡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모습들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내용이 좀 지루할 법도

한데, 111분이라는 런닝타임이 사실 조금은 루즈한 감도 없잖아 있다. 줄거리 뿐만 아니라

상황을 조금만 더 긴박감 있게 다뤘더라면 훨씬 더 보는 재미가 있었을 법 한데, 성룡의 액션을

조금이라도 기대했던 분들이라면 실망이 따를 수도 있겠다.

 

 

 

 

 

▲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 2014 예고편.

 

 

 

 

 

 

 

폴리스 스토리 2014
警察故事 2013, Police Story 2013

중국
상영시간:111분

개봉:2014년1월29일

감독:딩성(Ding Sheng)

성룡(Jackie Chan-종 반장), 류예(우), 경첨(Jing Tian-마오),

우영광(Yu Rong Guang-우 반장), 은도(Yin Tao-난난),유의위(우총)

 

 

 

 

 

 

 

 

 

 

 

 

하지만, 적어도 방금 소개한 유엽이라는 배우가 연기하고 있는 우사장과 성룡이

풀어나가는 드라마적 요소에 촛점을 두고 지켜보자면 그런대로 볼만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아직 못보신 분들도 있기 때문에 영화의 내용과 줄거리를 모두 소개할 수는 없겠으나, 과거

성룡이 출연했던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 처럼 종횡무진하는 모습보다는 시종일관 인질로

잡혀있는 성룡의 모습에 무기력함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정도만 말을 흘리겠다.

 

 

 

 

 

 

 

 

 

 

폴리스 스토리 2014 에서 배우 유엽은 역시도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최소한

부족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지금껏 보았던 최근의 중국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를

꼽으라면 장예모 감독의 '황후화'를 꼽을 수 있겠는데, 상당히 볼거리가 풍부했던 이 영화에서

배우 유엽이 보여준 원상왕자 역은 나쁘지 않았으나 원걸왕자 역의 주걸륜이 워낙에

강렬하면서도 화려한 액션연기를 선보였기 때문에 그냥 묻힐 수 밖에 없었다.

 

 

 

 

 

 

▲ 좌측에서 두번째 배우가 유엽이다.(황후화,2006)

 

 

 

 

그래도 계속해서 발전하는 중국영화를 보면서 배우 유엽은 앞으로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는 배우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을 폴리스 스토리 2014를 보면서

또 한번 해보게 된다. 다만, 이제 나이 60이 다 된 성룡이 배우로서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번 경우처럼 연륜에 맞는 노련한 연기자로 변모해가는데 대해 세월무상함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런 그의 선택이 현명하다고 본다. 종반장 역의 성룡이 보여준 연기와 역활은 비록

과거처럼 끝내주는 성룡식 전매특허 액션이 없었다 하더라도 오히려 진짜 연기자로

거듭나고 있는 성룡의 모습을 새로이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할 듯 하다.

 

 

 

 

 

 

 

 

 

과거 전설적인 배우 이소룡은 최고의 전성기에 그렇게 빨리 세상을 떠나면서

영원한 히어로, 영웅으로 남아 후세에 기억되는 영예를 누렸다라고 한다면 배우 성룡은

세월의 변화에 맞게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바꾸어 적응해 나갈 줄 아는 진짜 연기자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폴리스 스토리 2014는 이런 성룡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영화라 할 수 있겠다. 배우 유엽과의 팽팽한 연기대결이 관전포인트다.

 

 

 

 

 

 

 

 

 

 

 

 

 

 

 

 

 

 

유엽

(유예 | 劉燁 | Liu Ye)
영화배우
출생:1978년 3월 23일(중국)
신체:186cm, 75kg
학력:중앙희극학원
데뷔:1999년 영화 '그 산, 그 사람, 그 개'
수상: 38회 금마장 영화제 최우수남우주연상

 

 

 

 

 

출연작품


2014 몽키킹 3D
2013 살계
2013 폴리스스토리 2014
2013 주자,희자,비자
2012 초한지:영웅의 부활
2011 부재양니고단
2011 건당위업
2011 봉배도저
2011 웨이팅
2010 애출색
2010 3중 충돌
2009 철인
2009 난징!난징!
2009 건국대업
2008 어 포비든 러브스토리
2008 경한
2008 커넥트
2007 천당구
2007 다크 매터
2007 미니
2006 황후화
2005 아수
2005 청춘애인사건
2005 의신의귀
2005 무극
2004 모리화
2003 미인초
2003 꿈꾸는 풍경
2003 퍼플 버터플라이
2002 소재봉
2001 란유
1999 그 산, 그 사람, 그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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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때리는영화/아시아영화 2013.07.31 10:16

7인의 사무라이, 세계화를 앞당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최고 걸작






7인의 사무라이, 세계화를 앞당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최고 걸작

 

7인의 사무라이는 진작부터 꼭 보고 싶던 영화였음에도 번번히 기회를 놓치다가

2004년 극장개봉마져 놓친 직후에 DVD를 구입하고서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를 두어 편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앞서 포스팅 했던 '라쇼몽'과 '7인의 사무라이'다. 1954년 작품으로

'라쇼몽'(1950) 이후 이미 세계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이 영화는 헐리우드판 '황야의 칠인'으로 리메이크 되어 성공한 사례가 있다. 이 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나라에서 '7인의 사무라이' 플롯을 그대로 옮겨다가 영화를 만든 사례가 셀 수 없이 많다.

 

 

 

 

그만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는 전 세계적으로 아주 오랫동안

일본문화를 알리는데 확실하게 일조했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우리가 흔히 '한류'라고

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던 것처럼 당시 세계는 '일본문화', '일본 사무라이'에 열광할 정도로 

아주 일찌감치 부터 큰 붐을 일으켰다. 때문에 이처럼 잘 만든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패망했던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친화적으로 바뀌며 확실한 문화콘텐츠를 형성

했다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요즘 우리의 '한류'는 갈수록 퇴색하는 분위기라 안타깝다.

일관된 정부지원도 없고, 정권이 바뀔 때 마다 흐지부지하니...뭐.-_-;;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 같은 영화를 통해 일본문화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는 것은 어쨌든 명백한 사실이다. 때문에 '가장 일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말과도

일치한다. 우리가 보통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하는 이 말은 사실 일본이

먼저 사용했다. 우리가 '친일파'에 분노하기도 하지만, 사실 음성적으로 여러면에서 일본의 문화를

따라한게 엄청나게 많다. 지정학적 특수성 때문에(위로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 공산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즉, 미국문화를 양성적으로 받아들였다면, 일본문화는 음성적으로 흡수하고

영향받았던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말들은 당시 일본문화의 영향을 받는 문화, 예술인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파되어 마치 우리가 그런 말을 먼저 쓰게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어쨌든, 가장 한국적인게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도 맞는 말이기는 하다.^^

 

 

 

▲ '칠인의 사무라이'(Seven Samurai, 1954) HD trailer

 

'7인의 사무라이'가 일본영화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분명 아시아를 대표하는 감독이었고, 알고보면 헐리우드에서도 그의 영화와

작품세계에 대해 광적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는 마력이 분명 존재했으니까 말이다. 그만큼 오늘날

아키라 감독만의 독특한 영화세계는 수많은 영화인들에게 은연중에 너무도 많은 영향을 미쳤던게 사실이고,

여전히 일본의 문화예술작품만이 가진 독창성은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례로 워쇼스키 남매가

연출했던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는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를 통해 탄생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너무나 유명하다. 한국의 박찬욱 감독이 만든 '올드보이'도 사실은 일본만화가 원작 아니던가.

그만큼 일본이라는 섬나라가 가진 독특한 색채와 정신세계는 어쩌면 세계화로 가는데 있어

오히려 더 유리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사무라이 영화들은 대게 사실적 폭력묘사와 극적인 효과의 극대화에

있었다. '7인의 사무라이'나 '요짐보' 등에서 볼 수 있는 결투나 전투장면들은 그 때까지 전통적으로

은유적 표현을 해왔던 일본 사무라이 극을 서구적인 표현방식에 입각해 사실적인 방향으로 바꾸어 놓았다. 

때문에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이후의 수 많은 사무라이 영화들에서는 팔다리가 잘리고 피가 튀는

자극적인 장면들이 일상화 되어 나중에 그는 이러한 경향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7인의 사무라이에서는 개별 무사들이 하나둘 모이게 되는 과정도 오밀조밀한 매력이 있으며  대장

(시무라 다케시, Takashi Shimura)과 개개의 무사들이 치밀하게 작전을 구상하여

마적들에게 대항하고 있는 장면은 뒤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재미있게 펼쳐진다.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에서 사무라이 액션의 사실적인 묘사 외에 또 다른 특징을 꼽자면, 바로

휴머니즘과 유머이다. 그의 시대극을 제외하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답을 찾는 영화들

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영화들이 전개되는 두가지 축이 휴머니즘과 유머인 것이다. 이를테면

현명한 노인들의 살아가는 방식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배울 수 있다거나, 밑바닥에 등장하는 최하층민들도

칠인의 사무라이에 나오는 몰락 무사들도, 숨은 요새의 세 악인에 나오는 공주와 부하들도 모두 유머를

안다. 이러한 유머는 활극과 현대극 양쪽에서 스토리 전개의 긴장감 속에 여유를 불어넣는

역활을 하게 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페르소나로 통하는 미후네 토시로(Toshiro Mifune) 역시

라쇼몽 이후 '7인의 사무라이'에서 희극적 인물 '기쿠지요'역으로 나와 이런 활력을 불어넣는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망원렌즈를 즐겨 사용하여 프레임을 평면적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이는 카메라를 배우에게서 떨어뜨리는 것이 배우들의 연기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동시에 여러 대의 카메라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 방법을 통해 여러 각도에서의 화면을 잡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화면의 분위기를 날씨로 많이 조절하기도 했다. 7인의 사무라이에 등장하는

빗속의 전투장면이나, 거미집의 성에서 보았던 안개같은 것들도 다 이러한 연출방식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도 그렇지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이동할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일관되게 움직이는 것도 특징이다.

 

 

 

 

 

'7인의 사무라이'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세계를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수준 높은 흑백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던 농민과 영광스러운 전성기를

다 보낸 사무라이들은 이전만 해도 어울릴 수 없는 갈등 관계이었지만 구로사와의 휴머니즘으로 절묘하게

융화된다. 또한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 처럼 '전쟁에서 이긴 것은 사무라이가 아니라 농민이다'에서도

구로사와의 휴머니즘과 철학, 진정한 의로운 존재에 대한 대중들의 갈망을 엿볼 수 있다.

 

 

 

 

 

7인의 사무라이는 악을 물리치고 정의를 실현하는 사무라이의 존재에 대한 일본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고 한다. 그것이 비록 '사무라이'라는 일본 특유의 무사이기는 했지만, 어느 국가 어느

사회건 반드시 존재하는 개인 또는 집단 간의 갈등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었기 때문에 세계인들로부터

공감을 얻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칠인의 사무라이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특유의

연출력이 돋보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관련 포스팅: 라쇼몽(羅生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페르소나(Persona) 미후네 토시로

 

7인의 사무라이
七人の侍, Seven Samurai, 1954

일본
상영시간:205분
국내개봉:2004년4월16일

감독:구로사와 아키라(Akira Kurosawa)

 

출연

미후네 토시로(Toshiro Mifune), 시무라 다케시(Takashi Shimura),
츠시마 케이코(Keiko Tsushima), 시마자키 유키코(Yukiko Shimazaki),
후지와라 카마타리(atari Fujiwara), 카토 다이수케(Daisuke Kato),
키무라 이시오(Isao Kimura), 치아키 미노루(Minoru Chiaki) 외

 

수상
오스카 후보 : So Matsuyama(미술감독), Kôhei Ezaki(의상),

베네치아 영화제 : Akira Kurosawa(은사자상), 황금사자상 후보

 

 

 

▲ 7인의 사무라이- Seven Samurai (1954) HD trailer1

 

구로사와 아키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일본 감독이다. 그의 긴장감 넘치고

설득력 있는 인간적 서사시 '7인의 사무라이'는 오래도록 인기를 누리며 가장 많이 상영된 걸작이다.

구로사와의 작품을 모델로 한 서부영화로 1950년 작 '라쇼몽'을 리메이크한 '아웃레이지'(1964)와,

1961년작 '요짐보'를 그대로 옮겨놓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획기적인 스파게티 웨스턴

'황야의 무법자'(1964)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깊이는 덜하지만 '7인의 사무라이'를

리메이크한 '황야의 7인'이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구로사와는 존 포드의 서부극에서 영감을 얻어 일본의 중세를 판타지적 세계로 표현함으로써

검술에 중점을 두던 일본 시대극의 제한된 전통에서 대담하게 벗어났다. '7인의 사무라이'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경이로운 액션과 희극적 사건, 재난과 사회 드라마, 아름다운 인물, 의무와

욕망의 갈등은 철저히 사실주의적 시선으로 다루어졌다.

 

 

 

 

 

16세기 중반 일본은, 중앙 정부의 세력은 약해지는 반면 지방 정치 세력은 점점 강해져

내분이 잦았다. 잦은 내분으로 혼란스러운 정국을 틈타 산적 무리들이 매년 강간과 살인, 도적질을

일삼는 침략에 시달리던 한 가난한 농촌 마을 사람들이 그들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고 '로닌'

(주인 없이 떠도는 사무라이)을 고용한다. 보수로 줄 거라고는 약간의 쌀뿐인 그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고용할 칼잡이를 찾아 나섰는데, 운 좋게도 아무 대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명예롭고 동정적인 캄베이(시무라 다카시)를 만난다.

 

 

 

 

이 영웅적 인물은 음식이나 재미를 얻는 것만으로도 기꺼이 싸우겠다는 다섯 명의 떠돌이를

더 모아오고, 그중에는 마음씨 좋은 노인과 촉촉한 눈망울의 젊은 수련생, 거의 말이 없는 검술의

대가도 포함되어 있다. 성급하고 충동적인 젊은 농부 기쿠지요(미후네 도시로)는 그 무리에

끼려다가 노련한 사무라이에게 거부당하지만, 캄베이에게 자신을 증명하겠다는

일념으로 사무라이처럼 위장하고 그들을 따라다닌다.

 

 

 

 

처음에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신뢰하지 않지만 점점 그 사이에 유대가 형성되고

사랑도 피어나고 아이들은 영웅들을 잘 따르게 된다. 캄베이는 뛰어난 전략을 세워 침략자들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고 결국 그들을 무찌른다. 영화는 필요 없는 설명은 생략하고 빠른 속도로

거침없이 진행되는데 이런 방식은 신비감을 유발하면서 불안감을 유지한다. 예컨대 농부들이 자신들을

보호해줄 사무라이를 찾으러 다니고 캄베이에게 사정을 설명하는 과정은 짧은 쇼트와 빠른

편집으로 이루어진다. 시각적 요소와 정서적 요소가 압도적인 장면도 곳곳에 등장한다.

 

 

 

 

불타는 방앗간에서 죽어 가던 여인이 혼신의 힘으로 기어 나와 자기 아기를 기쿠지요

(미후네 토시로)에게 건네준다. 그는 충격상태에서 냇가에 주저앉아 흐느끼며 울부짖는다.

“이 아기가 나야. 내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었어.” 그의 뒤에는 물레방아가 불붙은 채 돌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위대한 순간은 결말이다. 세 명의 생존자가 동지들의 무덤을 보살피는 동안

지난 일은 다 잊은 듯 희희낙락하며 모내기에만 열중하고 있는 농부들의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구로사와 아키라
黑澤明(흑택명)くろさわ あきら
Kurosawa Akira
영화감독
출생:1910년 3월 23일(일본)
사망:1998년 9월 6일
신체:182cm
데뷔:1943년 스가타 산지로

 

 

 

 

도쿄 부 에바라 군 오이 정(현:도쿄 도 시나가와 구)의 학교법인일본체육회(현재 일본체육대학)의

부속지역에서 4남 4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키타 현 나카센 정 (현:다이센 정) 출신의

전직 군장교, 체육교사, 학교법인일본체육회이사였다. 그는 중학교 졸업후 그림공부를 했는데 권위있는

미술상도 받고 일본프롤레타리아 미술동맹에도 참가할 정도로 열정이 있었다. 1936년에

도호의 전신인 PCL에서 조감독으로 영화산업에서의 이력을 시작했다.

 

 

 


그는 야마모토 가지로(山本嘉次郞)의 조감독으로 일하던 1943년에 '스가타 산시로'로

데뷔하였는데 조감독으로 일하던 도중에도 각본가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초기작들은 전쟁 중인

일본 정황을 관조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종종 민족주의적인 주제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가장 아름다운'은 군수공장에서 일하는 여공에 대한 선전영화적인 느낌이 있고, 속 스가타

산시로에서는 명백한 반미감정과 미국 권투에 대한 일본 유도의 우수성이 묘사되어 있다.

 

 

 

 

 

반면에 그의 초기 전쟁영화인 우리 청춘 후회없다는 체포된 우익분자의 아내에 관한

영화로 일본제국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을 찍은 후 주연 야구치

요코(矢口陽子)와 결혼하여 딸과 아들을 두었는데, 손녀는 배우로 유명한 구로사와 유우(黒澤優)이다.)

러시아 문학과 존 포드의 영화에 영향을 받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맥베드,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

막심 고리키의 밑바닥,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덤불 속 등을 개작하여 다양한 문예영화를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칠인의 사무라이, 숨은 요새의 세 악인 등의 순수 오락영화 시대극도 있고,

이키루, 천국과 지옥 등의 휴먼드라마 현대극 등도 있다. 주정뱅이 천사(1948년)부터 붉은 수염

(1965년)까지 주연으로 미후네 도시로(三船敏郎)를 자주 기용하였다.

 

 

 

 

1960년에 자신의 프로덕션을 차려 독립하게 되지만 이후 계속 자금난에 시달리게 된다.

이 시기에 사무라이 오락물이 많이 등장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일본영화의 침체기에 빠져든 60년대에

그는 오히려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기획들을 내놓았고 영화사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된다. 게다가

그 타협을 모르는 엄격한 제작태도때문에, 영화제작이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 붉은 수염 제작 이후

도호와 관계가 악화되어 구로사와는 미국에서 폭주기관차의 제작을 준비하나 제작방침이 바뀐

미국측과의 심각한 대립이 발생하여 영화는 제작되지 못했다.(이후 이것은 안드레이

콘차롭스키 (Andrei Konchalovsky) 에 의해 구로사와의 각본을 원안으로 삼아 영화화된다.)

 

 

 

 

1968년에 미일 합작으로 도라 도라 도라의 일본측 감독으로 일하게 되지만, 미국측

제작사였던 20세기폭스나 그 일본인 브로커 등과 촬영 시작부터 스케줄이나 예산 등을 둘러싸고

격렬한 충돌이 일어나 감독에서 물러나게 되고 자살 미수사건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구로사와의 대신으로는 마쓰다 도시로(舛田利雄)、후쿠사쿠 킨지(深作欣二) 등이 공동 감독이 되었다.

(크레딧에는 공동감독으로 나왔지만 사실은 특수촬영이나 전투기 콕핏신 등에서의 조감독

역할을 했다)덧붙여 구로사와 본인의 의향에 따라 크레딧에는 이름이 없지만 각본은

구로사와가 쓴 것이 대부분 사용되었다.

 

 

 


그 이후 영화제작에서 멀어져있다가, 소련 영화계의 전면지원으로 데루스 우잘라를,

조지 루커스, 프란시스 코폴라를 프로듀서로 카게무샤를, 프랑스와의 합작으로 란을, 워너브라더스

제작(크레딧에는 스필버그 제공으로 나온다)으로 꿈을 만드는 등 해외 자본으로 영화를 계속

만들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팔월의 광시곡, 마다다요를 감독하였으나 차기작으로 예정된 비 그치다의

각본을 쓰던 중 교토의 여관에서 넘어져 골절을 당하는 바람에 영화 제작은 불가능해졌다.

1998년 9월 6일에 뇌졸중으로 사망하였고, 같은해 10월 1일에 일본 국민영예상을 받았다.

 

  

 

 

수상


1950년, 라쇼몽 : 베니스영화제 금사자상,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 블루리본상 (영화)
1954년, 칠인의 사무라이 :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
1958년, 숨은 요새의 세 악인 : 베를린 국제 영화제 은곰상 (감독상)
1975년, 데루스 우잘라 :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1980년, 카게무샤 : 칸영화제 그랑프리, 영국 아카데미상 감독상
1982년, 베니스영화제 평생공로상
1984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
1985년, 란 (영화) : 전미 비평가 협회상 최고 영화상, 영국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
1985년, 문화훈장
1990년, 아카데미 평생공로상,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상
1995년, 국민영예상

 

 

 

주요작품

 

1943년 스가타 산시로(姿三四郎)

1944년 가장 아름답게(一番美しく)

1945년 속 스가타 산시로(続姿三四郎)

호랑이 꼬리를 밟은 사내들(虎の尾を踏む男達)

1946년 내 청춘에 후회 없다(わが青春に悔なし)

1947년 멋진 일요일(素晴らしき日曜日)

1948년 주정뱅이 천사(酔いどれ天使)

1949년 조용한 결투(静かなる決闘)

1949년 들개(野良犬)

1950년 추문(醜聞)

1950년 라쇼몽(羅生門)
1951년 백치(白痴)

1952년 이키루(生きる)

1954년 7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

1955년 생존의 기록(生きものの記録)

1957년 거미집의 성(蜘蛛巣城)

1957년 밑바닥(どん底)

1958년 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隠し砦の三悪人)

1960년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悪い奴ほどよく眠る)

1961년 요짐보(用心棒)

1962년 쓰바키 산주로(椿三十郎)

1963년 천국과 지옥(天国と地獄)

1965년 붉은 수염(赤ひげ)

1970년 도데스카덴(どですかでん)
1975년 데루스 우잘라(デルス・ウザーラ)

1980년 카게무샤(影武者)

1985년 란(乱)

1990년 꿈

1991년 팔월의 광시곡(八月の狂詩曲)

1993년 마다다요(まあだだ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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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때리는영화/아시아영화 2013.07.25 17:19

라쇼몽(羅生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페르소나(Persona) 미후네 토시로






라쇼몽(羅生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페르소나(Persona) 미후네 토시로

 

일본영화의 거장이자 전설인 구로사와 아키라(Kurosawa Akira)감독의 '라쇼몽'

(羅生門, In The Woods)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도 작품이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첫번째

걸작에 해당하는 '라쇼몽'은 당시 헐리우드 오스카상 후보(미술감독)에 올랐고, 결국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명예상을 수상했다. 또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이탈리아 평론가상까지

거머쥐는 영광을 누렸던 걸작이다. 배우 미후네 토시로(Toshiro Mifune)는 '7인의 사무라이'에도

등장하지만, 일본인 답지 않은 서구적인 마스크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잘생긴 배우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아키라 감독에게 시무라 다카시와 함께 페르소나(Persona)로 잘 알려져 있다.

 

 

 

 

페르소나(Persona)란,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로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하는 말이다. 연극이나 영화에 있어서 인생이라는 연극의 배우인 인간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어쨌든, 배우 '미후네 토시로'는 한국의 신성일 처럼 잘 생긴 배우였을 뿐만 

아니라 감정표현이 매우 풍부했던 배우로 기억된다. 진지할 때는 기가 막히게 진지한 사무라이 같은

역활로 나오기도 하지만, 엉뚱할 때는 마치 만화책에 나오는 캐릭터 처럼, 혹은 방송인 노홍철 처럼

희극적인 역활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던 배우이기도 했다.

 

 

 

 

미후네 토시로는 1997년 지병으로 타계했지만, 잘생긴 그가 사무라이 역활로 등장하는

영화 속 등장인물 처럼 개인적으로는 한 때 미친듯이 좋아했던 비디오 게임의 캐릭터도 그의

이미지를 그대로 따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일본에서 국민배우로 대접 받았을 법도 한데

충분히 그러했거나, 아니면 그런 이미지를 선호할 지도 모른다. 바로 대전게임 '소울칼리버2'의 캐릭터 중

하나인 '미츠루기'가 바로 미후네 토시로가 아니었나 그렇게 짐작해 본다. 이 게임을 아는

분들은 공감하시리라 본다. 일반적인 일본인은 그리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 '라쇼몽(Rashomon)' 메인 트레일러- (Akira Kurosawa, 1950)

 

 

영화 '라쇼몽'은 요즘 같이 장마가 계속되는 먹구름 낀 우중충한 날에 한번쯤 흑백영화를

감상해 보는 묘미가 있을 줄로 안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63년 전에 만든 이 영화 '라쇼몽'이

서구사회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다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꼭 놓치지 말아야

할 걸작 명화로 꼭 놓치지 않고 챙겨 보아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 영화라'는 선입견을 먼저 버리돼,

또 일본영화라고 해서 칼날이 번뜩이는 '사무라이 영화'일 것이라는 기대나는 잠시 접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라쇼몽'은 문학적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한 예로 헐리우드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를

떠올려 본다면 그들에게 '라쇼몽'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해 보게 될 것이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의 줄거리는 생각보다 조금 복잡하다. 하지만 조금만

집중하다 보면 어려운게 아니라 재미있게 이야기가 얽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게다가 일본의

독특한 문화를 체험해 보는 묘미도 있다. 잘 알다시피 일본이란 나라는 우리와 가장 인접한 아시아

국가이면서도 우리와는 비슷한 듯 완전히 다른 독특한 섬 문화 양식이 곳곳에 베어있다. 그들의 의상과

헤어스타일, 화장법 등 배경에 흐르는 음악도 그렇고 매우 이색적이다. 그러면서도 이 흑백영화를 보노라면

어느정도 낯 익다는 생각도 들 것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일제시대를 벗어나기는 했어도

6.25 전란 이후 서둘러 전후복구를 해야하고 다시 일어서야 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일본문화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세 명의 여행자가 폭풍우가 치는 날 폐허가 된 절에 모여든다. 나무꾼(시무라 다카시)과

승려(치아키 미노루)와 평민(우에다 기치지로)은 불을 지피고 어떤 이상한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함께 풀어낸다. 그리하여 숲에서 만난 한 부부와 도둑에 관한 이야기 속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중에 나무꾼이 남편의 시체를 발견하고 경찰서에서 일어난 일들을 증언한다. 그의 설명에 승려는

겁을 먹고 평민은 재미있어 하는데, 그렇게 하나의 범죄에 관한 각기 다른

네 가지 이야기가 폭풍우 치는 내내 그들을 사로잡고 있다.

 

 

 

 

각기 다른 관점의 회상을 뒤섞은 플롯과 유려한 카메라의 움직임, 그리고 차양을 씌운 듯

촬영한 '라쇼몽'은 의심스러운 여러 가지 관점을 세밀하게 다룬다. 따라서 등장하는 인물과 묘사된

사건의 진실성은 거짓이거나 오도된 것으로서 제시된다. 증거로 제시된 사실은 즉각 의심의 대상이 된다.

남편과 아내와 산적에 관한 서로 겹쳐지는 이야기 사이의 일치하지 않는 점은 간결한 내용을

복잡하게 만든다. 즉 어떤 서술자도 신뢰할 수 없고 영화 전체도 그러하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에게 오스카상을 안겨준 이 작품은 인식론적 악몽 그 자체지만

그 결말은 여전히 선이라는 윤리적 가치를 강조한다. '라쇼몽'이 암시적으로 탐색하는 것은 쇄신과

속죄의 상실된 가능성이지만, 선과 악을 구분함으로써 진실을 발견한다는 주제는 친절과 희생

이라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지탱된다. 산적 타조마루(미후네 도시로)의 시점에서는 불한당인 그가

숲길을 가다가 마사코(쿄오 마치코)를 본 후 그녀를 탐하는데 그녀 역시 기꺼이 그를

받아들였고, 그런 다음 그녀의 사무라이 남편 타케히로(모리 마사유키)를

풀어주고 결투를 하다가 그 남편이 죽었다는 것이다.

 

 

 

 

마사코의 관점에서 볼 때 그녀는 강간과 치욕을 당했고 그러자 남편까지 자신을 내쳐

그 분노로 인한 발작 상태에서 자신이 남편을 죽인 것이다. 영매(혼마 후미코)를 통해 말하는

타케히로는 그들의 주장 중 자신이 죽었다는 점만을 인정하고, 아내가 산적 타조마루에 못지 않은

욕정을 보이면서 산적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요구했다고 말한다. 살인을 해서 얻을 것도 없다고 생각한

타조마루는 달아나고 마사코 역시 달아나 버려 혼자 남은 그는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세 사람은 모두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야기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타조마루는 무자비한

범죄자이며, 마사코는 죄 없는 피해자이며, 타케히로는 명예를 아는 전사다. 나무꾼이 나타나

그늘에 숨어 지켜본 사실을 말하기 전까지는 모두가 사실처럼 보인다. 나무꾼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내가 천박한 태도를 보인 것이 사실이고 산적의 허세는 거짓이며 남편은 겁쟁이였다.

 

 

 

 

하지만 평민이 나무꾼도 그 범죄에 연루되어 있음을 지적하자 진실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것이 된다. 구로사와는 이 암울한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마무리한다. 절간의 폐허 아래서 버려진 아기가

발견된다. 고아를 돌보는 것으로 속죄를 하겠다는 나무꾼을 통해 인간의 선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는 기발한 서사구조 속에서 보여준 '라쇼몽'의 분열증을 염두에 둔다면 일관된 결말이다.

구로사와 감독이 만든 첫 번째 걸작으로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라쇼몽
羅生門, In The Woods, 1950

범죄, 드라마, 미스터리
일본
러닝타임:90분

감독:구로사와 아키라

미후네 토시로(Toshiro Mifune), 쿄 마치코(Machiko Kyo),

모리 마사유키(Masayuki Mori), 시무라 다케시(Takashi Shimura),
치아키 미노루(Minoru Chiaki), 우에다 키치지로(Kichijiro Ueda),
혼마 노리코(Noriko Honma)

 

수상

오스카 : Akira Kurosawa(명예상),
오스카 후보 : So Matsuyama, H. Motsumoto(미술감독),
베네치아 영화제 : Akira Kurosawa(황금사자상), Akira Kurosawa(이탈리아 평론가상)

 

 

 

 

 

 

 

 

 

 

 

   

 

 

 

 

 

 

자! 그럼 이제 배우 미후네 토시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기로 하겠다. 그는 1920년 일본이 아닌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태어났다. 당시는 일본이 제국주의에 미쳐 러시아와 전쟁하고 중국과 전쟁하던

그런 시기였다. 스무살이 되던 1940년에 육군 항공 부대에 입대했는데 우연히 사진 기술을 인정받아

사진부에 배치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중 영화사 '도호'에서 촬영스탭으로 일하는 오오야마 토시하루를 알게

되어 자신도 제대 후엔 그쪽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력서를 넣었는데 엉뚱하게도 이력서는

그가 원했던 촬영부가 아닌 신인 배우 선발 쪽으로 잘못 건네지게 되면서 본의 아니게 영화배우로서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는 에피소드가 유명하다. 그리고는 일본패망 후인 1947년 타니구치 센키치 감독의

데뷔작인 '은령의 끝'(銀嶺の果て)으로 공식 데뷔하게 된다.

 

  

 

 

 

 


이처럼 자신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방향으로 운명이 바뀌게 돈 미후네 토시로는 

1948년 '주정뱅이 천사'(醉いどれ天使)를 통해서 평생의 인연이 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을 만난다.
그 뒤로 함께 한 작품들은 들개, 라쇼몽, 7인의 사무라이 등등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대표적인 걸작과

더불어 수많은 작품을 함께 작업해 나간다. 1962년엔 미후네 프로덕션(Mifune Productions)이라는 회사를

직접 설립하여, 자신이 투자도 하고, 작품을 만들기도 하였다. 미후네 토시로는 결국 노년에

건강관리를 잘 못해서인지 합병증 등의 지병으로 인해 1997년 사망한다.

 

 

 

 

 

 

미후네 토시로

(토시로 미푸네)

(みふねとしろう, 三船敏郎, Toshiro Mifune)
영화배우

출생:1920년 4월 1일(중국)

사망:1997년 12월 24일
신체:172cm, 73kg
데뷔:1947년 영화 '은령의 끝(銀嶺の果て)'
수상:1965년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1950년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금사자상

 

 

 

 

 

 

 

 

  

 

주요 출연작품

 

1967 일본의 가장 긴 하루(日本のいちばん長い日)
1965 붉은 수염(赤ひげ Red Beard)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남우 주연상, 2번째 수상
1963 천국과 지옥(天国と地獄 High and Low)
1961 요짐보(用心棒 Yojimbo)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남우 주연상, 1번째 수상
1958 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隠し砦の三悪人 The Hidden Fortress)
1957 거미의 성(蜘蛛巣城 Throne of Blood)
1954 7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 Seven Samurai)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1951 백치(白痴 The Idiot)
1950 라쇼몽(羅生門 Rashomon)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황금 사자상 수상작
1949 들개(野良犬 Stray Dog) 
1948 주정뱅이 천사(醉いどれ天使 Drunken Angel)

 

 

 

 

 

 

 

 

 

 

 

 

 

 

 

구로사와 아키라

(黒澤明 | くろさわあきら | Kurosawa Akira)

영화감독

출생:1910년 3월 23일 (일본)

사망:1998년 9월 6일

신체:182cm

데뷔:1943년 스가타 산지로

수상:1998년 국민영예상
1976년 일본 문화 공로상
1990년 아카데미 특별 공로상
1975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에 대해서는 다음에 별도로 포스팅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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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때리는영화/아시아영화 2013.06.01 10:13

영웅본색(英雄本色)으로 진짜 영웅된 배우 주윤발






영웅본색(英雄本色)으로 진짜 영웅된 배우 주윤발

그리고 홍콩영화에 대한 추억

 

80년대를 되돌아 보면 영화 '영웅본색' 외에도 수많은 홍콩영화들이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면서 그야말로 붐을 이루었다. 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

될 때까지만 해도 정말 헐리우드 영화 그 이상으로 한국 극장가는 홍콩반점보다

많은 홍콩영화들이 완전장악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배우 주윤발이 출연한

영웅본색은 국내 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 미국, 유럽 등 전세계적 반향을 불러

모으며 진짜 영웅으로 주윤발을 세계적 배우 대열에 올려놓게 된다.

 

 

 

 

주윤발과 영웅본색을 떠올리면 기다란 롱코트와 검은 선글래스.

그리고 입에 문 성냥개비와 권총 등을 연상시킨다. 오우삼 감독의 이름을

만방에 알린 이 영화는 스토리 구성도 좋지만, 정통무협액션의 칼싸움에서

총싸움으로 바뀐 독특한 액션 르와르의 세계를 일궈냈다는데 의의가 있다.

 

 

 

 

전에 오우삼 감독의 동의하에 한국에서 송해성 감독이 리메이크 했던 영화 '무적자'를

보기는 했는데 기대에 못미쳤다. 한국실정에 맞게 각색을 하고 작품성도 그럭저럭

괜찮았고 또 기대하지 않았던 조한선의 연기도 빛이 났는데 가장 실망스러웠던 요소는

 '미스캐스팅'이라 할 수 있는 송승헌의 캐스팅을 꼽을 수 있겠다.

그가 대작 '영웅본색'의 주윤발 역활을 했기 때문이다.

 

 

 

▲ 英雄本色(A Better Tomorrow) 當年情-張國榮

이제 다시는 스크린에서 만나 볼 수 없는 배우 장국영이 직접 부른 노래 '당년정' T.T

 

물론, 주윤발이라는 세계적인 배우에 대한 이미지가 워낙 강한 영화라

본인도 부담이 되긴 했을지 모르겠지만, 배우 캐스팅은 정말 결정타였다고 본다.

심하게 말해서 송승헌은 오빠부대나 좋아할 뿐 아직까지는 국내, 그것도

브라운관에 더 걸맞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물론 잘생긴 마스크와

송충이 눈썹은 인정해 준다. -_-;;

 

 

 

 

어쨌든 '영웅본색'의 총소리가 난무하던 그 시대를 열광하며 지나 온

세대라면 홍콩영화에 대한 추억이 아련할 듯 하다. 97년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중국으로 반환된 역사적 사건 '홍콩반환'은 당시 수많은 배우와 영화인 등으로

하여금 공산국가 중국보다는 미국 등 자유국가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이런 날벼락 같은 상황을 맞은 홍콩 영화인들은 그 통에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이제는 더 이상 그들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졌던 '홍콩영화'를 더는

만나보기 어렵게 되었다. 지금의 영화는 그냥 '중국영화'일 뿐이다.

 

 

 

▲ 영웅본색에서 굉장히 기억에 나믄 장면 중 하나는 바로 이 육교씬이다.

 

그러나 여전히 주윤발은 스크린을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가

가진 매력은 여전하다. 다만, 달라진 것이라면 오우삼 감독 등 많은 중화계 홍콩출신

영화인들이 다시 대륙으로 건너와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중국은 과거와 달리

자유화 되었고 시장도 개방되었으며, 이제 명실공히 미국을 넘보는 경제대국으로

변모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전히 엄청난 영향력과 힘을 발휘하는 나라로 성장해 온

중국을 다시 선택하는 것도 어찌보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그들 의지와 상관없이 오직

미국만을 위해 일할 바에야 민족을 선택한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참고로 당시 송자호 역으로 나왔던 적룡이 한 때 우리나라 영화'조폭마누라3'에

출연했던 기억도 난다. 그만큼 한시적으로 많은 홍콩배우들이 방황했던 듯 싶다.

 

 

 

 

그 시절 주윤발은 요즘 말로 완전 '트랜드'였고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 그 자체였다. 아마도 주윤발 덕에 담배도 엄청나게들 피웠을 게다.

늘 영화 속에서 말보로 담배를 물고 다니다시피 했으니까 말이다.

 

 

 

▲ 英雄本色 A Better Tomorrow (1986) - Mark哥身中數十槍而亡的片段

 

요즘도 액션영화나 드라마를 보다보면 주윤발 처럼 얼굴부상 시 거즈를 눈썹

주변쪽에 붙이고 빨간약 바르는 것도 다 이 때부터 정석으로 자리 잡힌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큰 키에 롱코트 휘날리며 담배를 물고 총을 갈겨대던 주윤발의 모습은

정녕 시대를 대표하는 아시아 액션 히어로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 생각해 본다.

 

 

 

 

 

영웅본색
英雄本色, A Better Tomorrow, 1986

홍콩
상영시간:94분
2009.03.27 재개봉,
2008.08.08 개봉

감독:오우삼

출연:적룡(송자호), 장국영(송자걸), 주윤발(소마, 마크),

이자웅(아성), 주보의(재키)

 

1986년 홍콩의 신예성영업유한공사(新藝城影業有限公司)가 제작하고 오우삼(吳宇森)

감독이 연출했던 영화로 칼 대신 총을 든 현대판 무협영화라는 평을 받는 이 영화는 쿵푸

영화의 한계 등으로 침체에 빠진 홍콩영화를 부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필름누아르의 암울한

분위기와 무협영화의 테크닉을 접목하였다는 점에서 국내에서는 홍콩누아르라는

새로운 장르의 명칭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 A Better Tomorrow 1986 Trailer


오우삼 감독은 1987년 속편 '영웅본색2', 1988년 '첩혈쌍웅'을 연출하여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로 스타덤에 오른 주윤발은 이후 여러 작품에서 오우삼의 영화 속

페르소나가 되어 할리우드에도 함께 진출하였다. 1987년 홍콩 금상장영화제에서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주윤발)을 받았다.

 

 

 

 

 

※ 장국영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로 포스팅 할 예정.

 

 

 

 

 

 

 

 

 

 

 

 

 

주윤발
(저우룬파, 周潤發,Chow Yun Fat)
영화배우
출생:1955년 5월 18일 (중국)
신체:185cm
데뷔:1976년 영화 '투태'
수상:1999년 샌디에고 영화비평가협회 우수상
1990년 제9회 홍콩금상장영화제 남우주연상
1988년 제7회 홍콩금상장영화제 남우주연상

 

 

 


1955년 5월 18일 홍콩의 라마섬에서 태어났다. 1965년 홍콩으로 이주하였으나,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인해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집배원·외판원·웨이터 등 각종

직업을 전전하다 1973년 친구의 권유로 텔레비전 방송국의 탤런트 양성소에 들어가면서

연기활동을 시작하였다. 1976년 영화 '지녀(池女)'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뒤,

1981년 '호월적고사(胡越的故事)'를 통해 배우로서 기반을 다졌다.

 

 

 

 

이후 20여 편의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였고, 특히 1983년 출연한 '상해탄

(上海灘)'에서는 갱 역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1984년 '등대여명(等待黎明)'의 주연을

맡아 이듬해 타이완 골든호스상(금마장) 남우주연상과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으면서 홍콩을 대표하는 배우로 이름을 굳혔다.

 

 

 

 

대표작은 1986년 장궈룽[張國榮]과 함께 출연한 '영웅본색(英雄本色)'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코트자락을 휘날리며 성냥개비를 문 채 쌍권총을 쏘아 대는 비극적

이면서도 자기희생적인 주인공을 완벽하게 소화해 냄으로써 이후 아시아 전역은 물론,

유럽·미국 등에서도 홍콩 누아르(액션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잡는다.

 

 

 

 

그 뒤에도 '영웅본색 1·2'(1987·1989), '첩혈쌍웅(牒血雙雄)'(1989), '정전자(征戰者)'

(1990), '도신(賭神)'(1994) 등에서 늘 웃고 있는 얼굴의 이면에 숨어 있는 슬픔과 허무를

무리 없이 소화해 버버리 코트와 쌍권총 하면 저우룬파를 연상할 정도로 영화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홍콩의 중국 반환 후 미국으로 건너간 뒤에도 '와호장룡

(臥虎藏龍'(2000), '방탄승 Bulletproof Monk'(2003) 등에 출연해 미국·유럽 등 서구에서도

아시아를 대표하는 배우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홍콩 금상장 남우주연상 3회(1987·1988·1990), 씨네아시아 평생공로상(1997) 등을 받았고, 2002년에는 미국의

'피플 매거진 People Magazine'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50인'에 선정되었다.(두산백과)

 

 

 

 

이제 나이도 지긋해진 주윤발이 '영웅본색' 시절과는 달리 원숙하게 무르익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장예모 감독의 '황후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주 중화민국, 대륙의 힘과 야심을 질려버릴 정도로 여실히 보여주었던

그 영화에서 황제 역을 멋지게 소화해낸 주윤발의 차기작들도 계속 기대된다.

최근엔 '대상해' 역시 좋은 느낌으로 관람한 영화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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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때리는영화/아시아영화 2013.04.27 14:27

기타노 다케시(Takeshi Kitano), 아웃레이지:비욘드로 다시 돌아오다






기타노 다케시(Takeshi Kitano), 아웃레이지:비욘드로 다시 돌아오다

 

기타노 다케시(きたのたけし)라는 배우를 떠오리면 요즘 유행어로 말해

'사람이 아니무니다'가 딱 맞는건 아닌가 싶다. 아웃레이지(2010) 영화 정도야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야비한 야쿠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르와르 쟝르의 작품이라

할 수 있지만, 기타노 다케시가 그동안 출연해 온 영화들을 보면 참 독특할

뿐만 아니라 오리지 기타노 다케시라는 배우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 나름대로의

섬뜩하면서도 희화화된 캐릭터를 매번 만나보게 된다.

 

 

 

 

바로 몇 일전에도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아웃레이지:비욘드 에서 다시한번 그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비정한

세계를 만났다. 전작에서도 조금은 과장된 듯 하지만 야쿠자라는 세계에서의

비열한 게임의법칙에 참 씁쓸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그러했다.

 

 

 

 

일단 전작 아웃레이지의 스토리는 어두운 조직세계에서 저열하게 벌어지는

그들만의 리그, 게임의법칙을 섬뜩하게 잘 그려냈는데 이번 아웃레이지:비욘드 역시

일본영화 특유의 사무라이가 나오는 이야기들과는 달리 기타노 다케시의 작품답게

날고기를 씹는듯한 특유의 거친맛이 독특한 르와르 분위기는 여전했다.

 

 

 

▲ Outrage Official Movie Trailer #1 - Takeshi Kitano (2011) Movie HD

 

영화를 보는내내 좀 불편함이 느껴지는 대목들이 많다.

그리고 마초본능의 폭력성과 막무가내식 극전개도 여전하다. 막무가내라고는 해도

대책없이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후상황과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배경이 이해는

가지만 왠지 보는내내 씁쓸하기도 하고 거친 모습들에 좀 불편하다는 것이다.

 

 

 

 

이래서 날고기 씹는 맛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일까?

아뭏든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대체로 편안한 영화가 별로 없다. ㅠ.ㅠ

내친김에 기타노 다케시에 대해 오늘 제대로 좀 살펴보기로 하자.

 

 

 

▲ 『アウトレイジ ビヨンド』 悪人から学ぶ劇場マナー養成講座 OUTRAGE BEYOND

 

기타노 다케시

Takeshi Kitano
きたのたけし

출생
1947.1.18

출생지
일본 도쿄
메이지대학교 공학부 중퇴
데뷔: 1974 코미디 그룹 '투 비트'

 

 

 

 

누군가 일본의 슈퍼스타 기타노 다케시를 우디 앨런과 비교한다면,

다케시를 좋아하는 서구의 팬들은 그 비유에 말문이 막힐 것이다. 결국 기타노는

최근 우리 기억 속에서 가장 폭력적인 야쿠자 영화를 만들어 낸 불굴의 극기적인

반영웅이 아닌가. 그러나 이 점은 오히려 세계 시장에서 유명인사로서 그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의 차이점을 더 강조해 준다. 일본에서 그는 '비트' 다케시(매우 엉뚱한 코미디언이며
인기 있는 텔레비전 연예인인)로서가 먼저고 영화제를 석권하며 높은 평가를 받는

영화작가이자 사색적인 배우 기타노는 둘째인 것이다.

 

 

 

 

기타노는 처음에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출발했고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야

몸소 영화감독이 되어 점점 더 기괴한 영화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1970년대 일본에서

'투 비츠' 코미디 팀의 두 사람 중 한 명으로 유명해졌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본의

수많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 왔다. 주연을 맡고 직접 감독까지 한
'그 남자 흉폭하다(1989)' 이전에도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그 영화는 기타노의 경력에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

 

 

 

 

이 영화를 통해 그는 코미디에서 잔인하고 선혈이 낭자한 갱스터 영화로

넘어갔고 그의 무표정한 터프가이의 방심한 듯한 태도는 느닷없이 폭발하는

폭력으로 한층 강렬한 효과를 얻었다. 이런 영화 중 최고로 꼽을 수 있는

'소나티네(1993)'와 '하나비(1997)'에는 위트도 많이 담겨 있다.

 

 

 


또 기타노는 텔레비전에서도 이 장르의 연기를 계속하면서도,

'모두 하고 있습니까?(1995)'와 '기쿠지로의 여름(1999)'처럼 폭력적이지 않고

코믹한 영화도 만들어 왔다. 감독과 배우 일 외에도 기타노는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이자 시인이자 화가이기도 하다. 그는 주류 영화감독으로 최고의 성공을

거둔 '자토이치(2003)'에서 금발로 염색한 자토이치를 연기한 후,

이 인기 있는 사무라이 인물을 연기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케시즈(2005)'에서 다시 이어 갔다.

 

 

 

 

2004년에는 최양일 감독의 '피와뼈'에 출연했다.
피와뼈는 양석일의 소설이자 이를 원작으로 2004년에 개봉된 최양일 감독의

일본 영화이다. 영화는 2004년에 개봉됐으며, 기타노 다케시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됐다.

키네마 준보 베스트 10 제2위, 각본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오다기리 조),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작품상, 닛칸 스포츠 영화 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제78회 아카데미상 일본 대표작으로 뽑혀 출품됐으나,

본선 후보 5작품에는 들지 못했다.

 

 

 

 

2013년 7회 아시아 필름 어워드 최우수감독상 수상

 

[주요 출연 작품]

 

2012 아웃레이지 비욘드
2012 당신에게
2010 귀국
2010 아웃레이지
2008 기라라의역습
2007 감독만세
2007 그들 각자의 영화관
2005 다케시즈
2004 피와뼈
2003 자토이치
2003 배틀로얄2:레퀴엠
2002 돌스
2000 배틀로얄
2000 브라더
1999 고하토
1999 기쿠지로의 여름
1997 하나비
1996 키즈리턴
1995 코드명J
1993 소나티네
1992 그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1989 그남자 흉폭하다
1985 야사
1983 전장의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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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때리는영화/아시아영화 2013.04.21 13:43

미즈키 이치로(みずきいちろう), 마징가Z를 부른 일본 애니 가수






미즈키 이치로(みずきいちろう), 마징가Z를 부른 일본 애니 가수

 

미즈키 이치로를 모르는 사람은 많아도 '마징가 Z'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줄로 안다. 지금 3040 세대라면 어릴적 흑백TV를 통해서라도 '마징가Z'를 한번쯤은

반드시 보고 자랐을텐데, 당시엔 이런 로봇 애니메이션이 만화영화의 주류를 이루었다.

로보트 태권브이, 그랜다이져, 짱가 등등...헤아려보자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이 넘쳐난다.

 

 

 

 

그 중 마징가 Z 주제곡을 소개하고자 하는데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이 만화는 물론 주제곡까지도 모두 국내산이 아닌 일본산이었다는 사실.

미즈키 이치로(Ichirou Mizuki)는 이 쟝르에서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아마도 국내에서는 대표적인 가수를 꼽으라면 김국환씨와 별셋 아저씨 정도되지

않을까 한다. 그나저나 별셋 아저씨 소식은 궁금하네.

 

 

 

미즈키 이치로

(水木一郎 | みずきいちろう Ichirou Mizuki)
출생: 1948.1.7
데뷔:1968 '너에게 바치는 나의노래'

가장 대표적인 애니가수로 손꼽을 수 밖에 없는데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다양한 활동은 물론 공연활동도 매우 왕성하게 하는 거성 미즈키 이치로씨의

마징가 제트 노래부터 일단 들어보자.

 

 

 

▲ Gran Mazinger Opening Live: Ichiro Mizuki - Mazinger Z

 

80년대는 일본산 마징가 Z와 국내산 로보트태권V와의 대결구도로 갔다지만

사실 알고보면 거의 대부분의 문화, 정치, 경제 등등 아주 많은 것들이 일본을 따라하고

모방했다. 우리는 일본이 모방의 천재국가쯤으로 알아왔지만 우리야말로 진짜

'따라하기의 대가'라고 해줘야 할 정도로 그렇게 상당부분을 일본에 의존했던게 사실이다.

일제 식미지에서의 잔재가 습관적으로 뿌리깊이 남아있어서 였을까? 하기사 주변국이라고

해봐야 당시엔 북쪽으로는 모두 공산권 국가일 뿐 자유진영의 문화를 본 받고 따라갈 수

있는 나라라고는 어차피 일본 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좋던실던

역사적으로나 지리학적으로나 불가피했던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오늘 문득 JPOP 이야기 꺼냈다가 내친김에 미즈키 이치로의

마징가Z를 들어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참고로 당시 마징가Z던 로보트 태권브이던

주인공 쇠돌이나 훈이 목소리는 거의 다 탤런트 김영옥씨가 소화했다라는 사실은

이제 왠만한 분들은 다 알고 있지 않을까 한다. 하긴...

시베리아 귤껍데기의 원조도 알고보면 김영옥씨다.^^

 

 

 

 

아직도 로버트태권브이의 추억과 향수에 집착하는 중년들도 종종 있고

국적을 떠나 일본애니메이션에 심취해 보낼 수 밖에 없었떤 80년대 청소년들에게

있어 이러한 로봇애니는 무한한 공상과학과 정의감으로 불타오르게 해줄 수 있는

자양분과도 같은 추억의 산물이란 생각이 든다. 이후 이러한 애니메이션이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점차 사라지고 순정만화풍의 애니메이션이 많아졌지만, 오히려

그와는 전혀 상관없이 아이들의 정서를 잡아주고 자아를 형성하는데에는

어른들의 노력이 절대적이란 생각이 든다. 다음에 기회되면 추억의 애니메이션을

좀 더 심도있게 다뤄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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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때리는영화/아시아영화 2012.12.23 19:14

사무라이 픽션(Smurai Fiction), 호테이 토모야스를 위한 영화






사무라이 픽션(Smurai Fiction), 호테이 토모야스를 위한 영화

 

1998년에 만들어진 영화 '사무라이픽션'은 다른 것보다 뮤지션으로서의 호테이 토모야스를

확인시켜준 영화가 아닐까 한다. 사무라이 픽션에 나왔던 인상깊은 무사 '카자마츠리'역을

호테이 토모야스가 했기 때문인데 국내에서는 영화배우 '김수로'와 가장 닮은 사람쯤으로 기억

한다. 실제로 두 사람의 인상 많이 비슷하기 때문에 처음엔 나도 놀랐다.

 

 

 

 

'사무라이 픽션'은 1998년 제2회 부천국제환타스틱영화제에서 베스트 오브 부천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극히 몇몇 장면을 빼면 완전한 흑백영화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일본의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사무라이 픽션'이라는 제목에서도 보여주듯 말 그대로

'Fiction'적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감독의 감각적 의도가 아니었을까 한다.

나카노 히로유키 감독은 영화 이전에 광고쪽에서 일을 하며 감각을 다져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 영화를 통해 확실한 존재감을 알린 호테이 토모야스(布袋寅泰  ほていともやす,

Hotei Tomoyasu)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면, 그는 1962년 2월 1일 생으로 원래는

기타 연주자이자 밴드 활동을 하던 뮤지션이다. 1981년 밴드 보위의 기타 연주자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밴드가 해체한 1988년 부터는 솔로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187cm의 훤칠한 키에 B형 혈액형을 가진 그는 이 영화 '사무라이 픽션'에서

카자마츠리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사무라이 픽션(Samurai Fiction).1998

 

SF: Episode One - Samurai Fiction, 1998

 감독: 나카노 히로유키

상영시간: 111분

호테이 토모야스(카자마츠리 란노스케),

오가와 타마키(미조구치)


나만의 평점: 7. 54 ★★★☆

 

 

▲ 이 음악을 들으면 왠지 귀에 익다는 생각을 하게 될거라 생각된다.

사무라이가 나온다고 해서 무서운 영화 아닐까들 생각하겠지만, 이 영화는 코미디적 요소가

더 강한 영화라고 보면 된다. 블랙코미디로 인해 유쾌하게 봐줄만 하다.

 

 

 

▲ Samurai Fiction Title Sequence.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적 요소가 다분하다.

 

 

 

 

 

 

 

 

 

 

 

 

▲ 일본 예고편: 호테이 토모야스는 정말 김수로와 닮았다.ㅋㅋ

 

호테이 토모야스 (布袋寅泰  ほていともやす Hotei Tomoyasu)

 

그는 이 영화에서 주제곡으로 'Save me'란 노래를 불렀다.

또 그가 만든 곡 중에 'Battle Without Honor or Humanity'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KILL BILL)'에 쓰여졌고 국내 TV에서는 무릎팍도사에 테마로도 사용되고 있다.

 

 

 

▲ 호테이 토모야스(布袋寅泰 ほていともやす Hotei Tomoyasu)는 원래 음악가!!

 

 

 

   

 

 

 

  

 

 

 

 

 

 

▲ 킬빌에 나오는 Battle Without Honor or Humanity. 너무 낯익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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