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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팝의 르네상스 2013.10.03 19:52

샤데이(Sade), 80년대 감각적인 재즈풍의 팝송 '스무스 오퍼레이터(Smooth Operator)'






샤데이(Sade), 80년대 감각적인 재즈풍의 팝송

'스무스 오퍼레이터(Smooth Operator)'

 

'샤데이'는 냉정하게 말해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광범위 어필할만한 그런 팝스타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샤데이가 80년대 대중들의 기억 속에 남긴 대표곡을 하나 꼽자면 그건

바로 '스무스 오퍼레이터(Smooth Operator)'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팝스타이기는 하지만 팝송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기억에 가물가물할지도 모를 그런 곡이다. 'Smooth Operator'는 발음하기도

참 그래놔서 한글로 '스무스 오퍼레이터' 이렇게 표기하자니 무척이나 분위기 죽는다. -_-;;

 

 

 

 

어쨌든 샤데이의 이 '스무스 오퍼레이터'라는 곡을 알게된 것도 한창 80년대 팝송을 즐겨듣던

당시엔 나 역시 모르고 지나쳤다가 언젠가 영화를 통해서였던가, 어떤 계기를 통해 처음 들었을 때

재즈풍의 분위기가 물씬 멋드러지게 풍기는 이 곡에 흠뻑 빠졌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샤데이의

음반을 사들고 집에 돌아왔던 기억도 있다. 매우 감성적이고 분위기와 더불어 부드러운 목소리로

감각적으로 부르는 창법 자체도 독특했지만, '샤데이'라는 그룹이 가지고 있는 음악세계를 면밀히 살펴

보노라면 이들이 단지 팝가수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과 감각을 겸비한

꽤 능력있는 뮤지션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재즈 매니아는 아니지만, 그래도 재즈풍의 분위기가

멋드러지게 풍기는 이와같은 멋진 팝송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10월로 접어들어 가을 분위기에 걸맞는 팝송을 하나 찾다가 오늘 샤데이를 소개한다.

 

 

 

▲ 샤데이(Sade) - Smooth Operator

 

1960년 1월 16일,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에서 영국계 어머니와 나이지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출생한 샤데이 아두(Sade Adu)는, 부모의 이혼으로 4살부터 어머니와 함께 영국에서 살게

되었다. 소녀 시절부터 소울 뮤직에 심취한 샤데이는 특히 마빈 게이와 알 그린, 빌리 홀리데이 등의 가수를

좋아했다. 17세가 되어 그녀는 런던의 St. Martin's School of Art(성 마틴 예술학교)에 진학하여 의상학을 전공하며
졸업 후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던 중, 취미 삼아 런던의 로컬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현재 그녀의 매니저인
리 배리트에게 발탁되어 프라이드(Pride)라는 그룹의 보컬리스트로 프로휠드에 입문하게 되었다.

 

 

 

 

스튜어트 매튜먼(기타·색소폰), 앤드류 헤일(키보드), 폴 덴맨(베이스), 그리고 샤데이 아두가

보컬리스트로 발탁되며, 프라이드는 그녀의 이름을 전면으로 내세운 Sade로 그룹 이름을 교체한 후, 84년

데뷰 앨범 'Diamond Life'를 선보여 화려한 발돋움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가창력은 크게 돋보여

전 세계의 팝과 재즈 팬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여, 데뷰 앨범 'Diamond Life'는 유럽 시장에서 2백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수립했고, 미국 시장에서도 호조를 보여 싱글인 'Smooth Operator'가

Top-5에 오르며 플래티넘 앨범을 획득하였다.

 

 

 

 

이국적인 마스크와 재즈적 요소가 다분히 가미된 소울, 독특한 허스키 보이스, 그리고
탁월한 그녀의 작곡법이 조화를 이루어, 85년말에 두번째 앨범 'Promise'를 내놓게 되어, 이 앨범에서
더욱 원숙해진 그녀의 창법과 테크닉, 그리고 세련된 밴드의 연주로 또다시 싱글 'The Sweetest Taboo'가
Top-5에 올랐다. 아름다운 용모와 이국적 마스크로 비디오적 요소와 진한 커피빛의 허스키 보이스,
그리고 재능있는 작사, 작곡으로 오디오적인 요소를 알맞게 조화시킨 매력있는 가수이다.

 

 

 

 

샤데이

(Sade)
가수
멤버
샤데이 아두(Sade Adu, 보컬),
스튜어트 매튜맨(Stuart Matthewman, 기타),
폴 스펜서 덴만(Paul Spencer Denman, 베이스),
앤드류 하레(Andrew Hale, 키보드)
데뷔:1984년 1집 앨범 [Diamond Life]
경력:1982 그룹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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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팝의 르네상스 2013.09.07 22:06

킴 칸스(Kim Carnes)의 모든 재능이 담긴 명곡 'Bette Davis Eyes'






킴 칸스(Kim Carnes)의 모든 재능이 담긴 명곡 'Bette Davis Eyes'

 

80년대를 수놓았던 여가수 중 '킴 칸스(Kim Carnes)'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재능에 비해 상업적 성공과는 별 인연이 없었던 편이었던 그녀의 가수로서의

활동에 있어 모든 재능을 담은 대표곡 중 하나인 'Bette Davis Eyes'는 80년대를 살아본 사람이라면,

팝을 좋아하는 이상 이 곡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거라 생각된다. 당시 중1 때였던가 확실히

기억나진 않지만 어쨌든 킴 칸스가 부른 이 'Bette Davis Eyes'란 곡이 모 음료수 CF로 TV에

나오던걸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단 한번 듣고도 머릿 속에 콱 박혔던 그런 곡이다.

 

 

 

 

킴 칸스의 'Bette Davis Eyes'는 신디 사이저 멜로디가 환상적으로 배경에 깔리면서

그녀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1981년 'Mistaken Identity' 앨범을

발표하면서 싱글 커트된 킴 칸스의 'Bette Davis Eyes'는 그렇게 오랜 세월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마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처럼 상업적 수혜를 누리지 못한데 대한 보상 처럼 이 한곡으로 모든걸 한방에

날려버렸다고 할 수 있다. 이 곡은 19882년도 제24회 그래미에서 최우수 레코드와

최우수 작사, 작곡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 킴 칸스(Kim Carnes)의 인생음악에 있어 가장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Bette Davis Eyes'(1981)


오랜 세월 많은 형태의 음악 스타일로 가고 다듬어진 킴 칸스의 실력은 'Bette Davis Eyes' 이 한곡에
모두 드러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당시 모든 매스컴으로부터 확실한 주목을 받았던게 사실이다.

또 한편으로는 앨범 'Mistaken Identity'도 16주간 앨범 챠트 1위에 머물고 있던 REO Speedwagon의

'Hi-Infidelity'를 물리치고 당당히 1위에 올라 앉았다.

 

 

 

 

금발의 킴 칸스는 1954년 헐리우드에서 태어나 아주 어린시절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클래식 피아노 레슨을 받았던 킴 칸스는 어릴 때부터 작곡을 하는 등 선천적 재능을 보여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곡을 쓰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노래를 담은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Bell Records사에 발탁이 되는 행운을 잡기도 했었다. 그만큼 일찌기 음악적 재능을 마음껏

뽐내며 음악활동을 시작했고 그 무렵 훗날 남편인 작곡가 Dave Ellingson과 알게 되었으며, 이들은

킴 칸스의 첫 앨범 'Rest On Me'에서 함께 작곡, 작사를 하게 되었다.

 

 

 

▲ 킴 칸스 - Bette Davis Eyes (1981)

 

그러나 음악 전문가들이나 평론가들 사이에서 그녀의 초기활동은 좋은 평판을 받는데 반해

대중적 호응은 그닥 흥행에 있어 기대에 미치질 못했었다. 그러던 중 킴 칸스의 두번째 앨범 'Sailin''에서

싱글 커트한 'Warm Love'와 'Sailin''은 FM방송국 모든 시간의 애청곡이 될 정도로 저변적인 인기를 얻었다.

앨범 'Sailin''은 대부분의 곡들이 Kim carnes와 지금은 그녀의 남편이 된 Dave Ellingson과 함께

작곡한 곡으로 이루어졌는데 그중 'Love comes From Unexpected Place'란 곡은 1977년

동경가요제에서 우승을 차지한 곡으로 유명세를 누렸다. 이 때부터 킴 칸스는 서서히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결국 오늘 소개하려는 1981년 작 'Bette Davis Eyes'에서 빛을 발한다.

 

 

 

 

킴 칸스의 목소리는 쉰듯하면서도 아주 굵은 목소리이면서도 때론 그 이상으로

아름다운 목소리로 듣는 이들에게 독특한 매력을 전해주었다. 재능에 비해 오랜시간 동안 대중들의

인기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킴 칸스는 그래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음악적 열정을 불태웠고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Bette Davis Eyes'를 통해 모든 한을 풀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겟다. 그녀에게

오래도록 드리워져 있던 흥행에 대한 불운은 어쩌면 그동안 대중들이 알아차리기에는 너무도 깊은 내면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평론가들은 종종 말한다. 그렇게 킴 칸스의 노래는 EMI에서 발표한

첫 앨범 'St. Vincent's Count'에 담긴 곡들 모두와 더불어 진정한 힘을 뿜어내게 되었다.

킴 칸스에 대한 음악평론가들의 최종 평가는 80년대의 음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으며,
특히 컨츄리 음악의 세로운 차원을 모색한 데 의의를 두고 있다.

 

 

 

 

 

킴 칸스
(Kim Carnes)
가수
출생:1945년 7월 20일(미국)
데뷔:1972년 1집 앨범 'Rest on Me'
수상:1981년 제24회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레코드상
경력:1966~1970 그룹 '뉴 크리스티 민스트럴스'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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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팝의 르네상스 2013.06.03 08:30

듀란듀란(duran duran), 80년대 "꺅!"소리나던 오빠들






듀란듀란(duran duran), 80년대 "꺅!"소리나던 오빠들

 

듀란듀란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5인조 밴드그룹으로 이들에 대해

잘 모른다해도 007영화 중 '뷰투어킬'이란 ost를 부른 팝 아트디스라는 것쯤은

다들 알거라고 생각된다. 얼마전 김지윤감독의 헐리우드 입성작 '라스트스탠드'를

김 빠져라 봤는데, 여기서 주연으로 나온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내뱉던 대사를 잊을

수 없다. 전처럼 액션이 안되는 노쇄한 아놀드가 "늙으면 죽어야 해!"라는

대사를 내뱉았기 때문이다. 정말 세월 앞에 장사 없다지만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다는 생각을 곱씹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 오랜만에 80년대를 대표하던

오빠부대 '듀란듀란'을 오랜만에 보니 마찬가지로 그런 생각이 들 수 밖에.

 

 

 

 

80년대 팝의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했던 듀란듀란의 멤버는 원래 5명이었다.

존 테일러(베이스), 닉 로즈(키보드), 로저 테일러(드럼), 사이몬 르 봉(보컬)

그리고 탈퇴한 앤디 테일러까지 5인조였다. 이들은 당시만 해도

비틀즈 이후 영국에서 등장한 가장 강력한 밴드가 아니었을까 싶은데(물론

비틀즈라는 전설을 뛰어넘긴 힘들지만), 적어도 80년대 초중반은

완전 그들 세상이었고 이 오빠부대에 열광하는 소녀팬들의 비명소리가

그칠 줄을 몰랐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시대를 기억하는 언니들은

아마 이 포스팅을 보면서 아련한 추억이 떠오를 것이다.

 

 

 

 

보컬 사이몬 르 봉의 독특한 창법과 음성은 듀란듀란을 상징한다.

지금은 여느 일반인들 처럼 두툼한(?) 아저씨가 되어버린데다 어릴적 카랑카랑

했던 목소리도 나이를 먹은만큼 조금은 가라앉아 보이기도 하지만, 당시 10대들은

이들의 헤어스타일과 뛰어난 패션감각에 열광했었고 두발자유화 이후

용감한 학생들은 언제나 빗을 챙겨들고 다니며 스타일을 쫒았다. 선생님들은

이들을 일명 '날날이'라 불렀고 그들을 추격했다. 다들 기억나실게다.

 

 

 

 

지금이야 솔로 가수시대를 넘어 우에 따라서는 완전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아이돌 그룹이나 걸그룹이 많은데, 과거에 비하면 지독하게도

상업화되었고 꽤나 전문적으로 조직화되어 있는게 요즘의 KPOP 현실이다.

그리고 알고보면 '듀란듀란' 같은 세계적 팝아티스트들이 판 치던

그 시절 우리나라엔 아마도 조용필 오빠나 전영록 혹은 이문세 오빠 정도의

가수들 밖에 없었다. 오늘날과 비교하면 당시 한국가요는 거의

베트남 수준이었다라고 해야 할까? ㅠ.ㅠ

 

 

 

▲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A Views To A Kill'

 

어쨌든 86년 앤디 테일러가 탈퇴하기 전까지 '듀란듀란'은

명실공히 전세계를 주름잡는 파격적인 팝아티스트로서의 명성을

이어나갔고 1985년 007영화 '뷰투어킬'의 OST에 이들의 동명 곡이 삽입

되는 영광을 누린 이후 정점을 찍게 된다. 1986년 기타리스트 앤디테일러가

팀을 탈퇴하던 당시 불화설도 있었고 전 세계 팬들도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이들의 해체설 등 잡음에 곤혹스럽고 실망스러워 했었다.

후에 'Notorious'로 돌아오지만, 이미 정점의 순간을 지나온 뒤였다.

 

 

 

 

오늘은 80년대팝의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5인조 밴드

'듀란듀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요즘은 이렇게 골고루 최고의 감성과 끼가

창의력과 실력으로 완전 결합된 아티스트들이 별로 없어 보이는게 아쉽다.

영원히 기억될만한 작품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기교만 익은 친구들이 많아 보인다.

 

 

 

 

 

  

 

 

 

 

 

듀란듀란

(Duran Duran)
가수
멤버:존 테일러(베이스), 닉 로즈(키보드), 로저 테일러(드럼),

사이몬 르 봉(보컬), 앤디 테일러(기타)

데뷔:1981년 1집 앨범 [Duran Duran]
수상:1983년 제26회 미국 그래미어워드 최우수 비디오앨범,
최우수 단편비디오
경력:1993 할리우드 록앤롤 명예의 전당 헌액
1986 앤디 테일러 탈퇴
1978 그룹 결성

 

 

 

 

영국에서 시작된 이들 5인조 댄싱 그룹은 그들의 그룹 결성 동기를
“이제 펑크나 기타 로큰롤들은 지겹고 흥미 거리가 사라졌으며 생동감을 줄 수

있는 음악, 즉 신나게 춤추고 무언가 직접적으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든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영화 'Barbarella'의 극중 인물의 이름 중에서

Duran Duran이란 이름을 따왔다고 하는데 이들은 멜로디 라인과 리듬 비트를

부각시킨 경쾌하면서도 윤곽이 뚜렷한 사운드와 독특한 패션 스타일 등은 이들의

헤어 스타일과 함께 듀란 스타일이라고 할 정도로 유럽 전역에서 일대 센세이션과

유행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일부 평론가들은 이들을 가리켜 브리티쉬 뉴 로맨틱

그룹이라고 평을 하기도 하는데 그룹의 리더인 리 본은 자신들이나 다른

그룹이라도 어떤 한 쟝르에 국한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하면서 그의 초쟝르적인 의견을 피력하였다.

 

 

 

▲ '와일드 보이(Wild Boys)', 반항기 넘치는 10대시절 처음 들었다.

 

 

78년, 런던 출신의 리 본이 중심이 되어 이색적인 트리오로
처음 출발했으나 이들이 현재와 같은 멤버 5명의 선이 그어지기까지는 리 본은

학업에 열중해 있었다. 이들이 모여 약 한달간 실험 활동을 펴본 후에

정식으로 팝계에 데뷰하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되자 그들의 디스크를

출반할 레코드사를 물색하기 시작하는데 이들은 소규모 회사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세계적인 대규모 회사들에게만 데모 테이프를 보내자

돌아오는 것은 기대만큼이나 커진 실망뿐이었다.

 

 

 

 

그것은 이들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그룹인데다가
도를 지나친 특이한 개성과 이색적인 연주 라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렇게 큰소리를 쳤다. “우리의 음악이 당장은 생소하고 어색하게 들릴지 몰라도

머지않은 장래에 크게 환영 받게 될 것이다.” 이들의 장담은 곧 맞아 들어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의 음악과 비슷한 형태의 사운드를 구사하는 그룹들이

늘기 시작했고, 팬들도 점차 호의적인 반응과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 'Planet Earth'-Duran Duran

그 시절 팝아티스트들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많이 촌스럽다. ㅠ.ㅠ

그러나 음악만큼은 이미 시대를 넘어섰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게 된다.

즉, 비주얼은 당시 트랜드에 머둘지언정 그들이 추구하던 음악성은

한 시대에 머물지 않더란 사실을 나이 먹어서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은 EMI와 레코딩 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러 본격적인

활동을 펴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첫 싱글인 'Planet Earth'는 새로운 댄스

록의 사운드로 히트했으며, 데뷰 앨범 'Duran Duran'은 영국 앨범 챠트

최고 3위까지 랭크되는 등 순조로운 스타트를 끊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6월에

내놓은 앰범과 첫라이브 스테이지가 엉망으로 돌아가자 크게 실망한 끝에

돌아오게 되는데, 82년에 발표한 'Rio'부터 조금씩 알려지게 되어

7월부터 챠트에 등장해 6주만에 122위로 기록되었다.

 

 

 

▲ Duran Duran - Rio (From "Rio - Classic Album")

 

한편 이들이 유럽에서 가히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5명의 각기다른 개성이 조화되는 사운드, 즉 로저 테일러의 안정감있고

규칙적이며 리드미컬한 스틱터치와 존 테일러의 흑인 휠링과 유사한

두터운 베이스터치, 그리고 흡사 정신이 나간듯한 앤디 테일러의 기타 플레이는

스테이지를 압도하며 키보드 주자인 닉 로데스는 순간적인 상황이나 장소의

분위기에 맞게 연주를 해주고 있어 스스로 소음창조자

(Noise Maker)라 부르고 있다.

 

 

 


보컬 리스트이자 리더인 리 본의 산뜻한 보컬과 부담없고 경쾌한

이들의 사운드는 뉴 웨이브의 새로운 댄싱 그룹이 되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들의 최고 히트 싱글이라고 할 수 있는 'Rio'는 자마이카의 레게 리듬을 도용한

흥겨운 댄스 곡으로 1983년 6월의 싱글 챠트를 살펴보면, 20주

이상을 탑 10에 머물고 있어 그들의 인기도를 짐작케 했다.

 

 

 

▲ Is There Something I Should Know Live 1984 - Duran Duran

 

 'Rio'의 인기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또 다른 한곡의 싱글이 챠트에

등장하고 있는데, 'Is There Something I Should Know'라는 싱글은 챠트에

처음 등장하면서 57위에 오르는 빠른 속도로 인기를 얻기도 했다.

(네이버 백과)

 

다음은 듀란듀란의 대표적인 곡들 몇개를 더 모아보았다.

추억의 80년대 팝에 흠뻑 빠졌던 분들이라면 오랜만에 이들의 유명곡들을

감상함으로써 추억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 Duran Duran - Hungry Like The Wolf

 

 

 

▲ Union of the Snake - Duran Duran (Live from London)

 

 

 

▲ Duran Duran - Save A Prayer

 

 

 

▲ Duran Duran - Notor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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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팝의 르네상스 2013.05.23 15:33

보니엠(Boney M), 80년대 배경 한국영화 '써니'에서의 원곡 'Sunny'






보니엠(Boney M), 80년대 배경 한국영화 '써니'에서의 원곡 'Sunny'

 

요즘 오월이 한참 무르익어 신록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보니 그룹 '보니엠'

생각이 났다. 아마도 5월 중에 소풍이다 수학여행이다 떠나는 중고생들이 많이 눈에

띄다보니 그만할 때가 언제였던가 추억도 떠오르고 해서였나 보다.

보니엠은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얼마전 한국영화 '써니'가 개봉된 적 있었고 거기서도 촌스러운 복장과 더불어

보니엠의 원곡 'Sunny'가 있었다. 요즘 한참 10대를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추억의 80년대 팝을 기억할 것이고 오늘 바로 그 주인공 만난다.

 

 

 

 

80년대 청소년들의 놀이문화라는게 요즘과 비교하면 거기서 거기인듯

하지만, 사실 무척 촌스러웠다. 소풍가면 잔듸밭에 앉아 손수건 돌리기 하거나

카세트 오디오 틀어놓고 보니엠 노래를 들어며 '브레이크 댄스'라도 추면 완전대박이던

그런 시절이었다. 너무도 유명한 곡 '해피송(Happy Song)'은 'Sunny'에 비하면

한참 뒤에 나온 곡이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패턴이나 신나는 리듬 풍은 크게 다를게

없었다. 그래도 매우 아날로그적으로 놀던 시절이었지만, 충분했다.

 

 

 

▲ Boney M. - Sunny - Disco '77

 

보니엠은 1976년 독일에서 결성하여 1986년 해체하기까지 내놓는 곡마다

엄청난 인기를 불러일으키며 팝계에 태풍을 몰고 다녔다. 프로듀서 프랭크 패리언

(Frank Farian)이 발탁한 4명의 인디안 혼성 보컬그룹으로 활동했지만 정작 미국진출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 걸쳐 7, 80년대를 완전 접수했다.

 

 

 

 

1977년 `Daddy Cool`이 영국차트 탑10에 오르며 이들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Sunny`, `Ma Baker`, `Rivers of Babylon` 등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국제가요제 참가차

내한한 경력이 있으며 80년대 중반에는 디스코에서 하이에너지 사운드로

진보한 `Happy Song`으로 재기했다.

 

 

 

▲ Baby's Gang Feat. Boney M - Happy Song(해피송)

 

보니 엠

(Boney M)

가수
멤버:리즈 미첼(Liz Mitchell, 보컬),
토니 애쉬크로프트(Tony Ashcroft, 댄스, 아크로바틱),
캐롤 그레이(Carol Grey, 백보컬), 패트리샤 포스터

(Patricia Foster, 백보컬)
데뷔:1976년 1집 앨범 Take The Heat Off Me
경력:1994~ 멤버 '토니 애쉬크로프트' 영입
1993~ 멤버 '캐롤 그레이' 영입

1993~ 멤버 '패트리샤 포스터' 영입
1982~1989 멤버 '마들린느 데이비스'

 

 

 

 

보니엠(Boney M)은 독일 출신의 인기 프로듀서였던 프랭크 패리언

(Frank Farian)에 의해 1975년 결성되었다. 보니엠의 탄생은 그들의 독보적인

인기 만큼이나 특별한 것이었다. 1975년 당시 TV 시리즈의 음악을 담당했던 프랭크는

트렌디한 프로듀싱 감각으로 직접 곡을 쓰고 스튜디오 뮤지션들을 동원해 흑인

수사물에서 착안한 보니 엠(Boney M.)이라는 이름으로 그 음악들을 발표했다.

 

 

 

 

그런데 예상 외로 실험적인 삽입곡 "Baby, Do You Wanna Bump"가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단 시간에 인기가 치솟았다. 문제는 보니엠이 가상의 밴드인

관계로 대중에게 보여줄 실체가 없었다는 점이다. 프랭크는 신속하게, 그러나 신중하게

오디션을 진행하여 치열한 경쟁을 뚫고 리즈 미첼(Liz Mitchell)을 리드 보컬로 하는

자메이카 출신의 4인조 블랙그룹을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의 음악은 자메이카의 토속 음악인 레게 뮤직을 근간으로 당시 대세였던

디스코 댄스 리듬을 접목시킨 신선한 장르로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들의 데뷔 싱글 "Daddy Cool"에 이어 우리에게 친숙한 멜로디의

"Sunny"가 빅히트를 기록했고 "Ma Baker"가 뒤이어 영국 챠트 1위를 점령하는

기염을 토하였다. 유라시아 전역은 물론 국내에서 더욱 큰 사랑을 받았던

 "Rivers Of Babylon"과 "When A Child Is Born" 등의 발라드 넘버들도

우리들의 70년대의 추억을 장식하고 있는 곡들이다.

 

 

 

 

보니엠은 70년대에만 전세계 통산 6천 만장이라는 경이적인 앨범 판매를

기록하여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1978년에는 팝 아티스트로는

처음으로 구 소련에서 초청 공연을 가질 만큼 전세계적으로 실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지상 유일의 진짜 보니엠-Boney M featuring Liz Mitchell 80년대로 들어서면서

 "Happy Song"과 "Young Free And Single" 등 히트곡을 내긴 했지만, 멤버교체 등

불안정한 노선을 걸으며 1986년 잠정적으로 활동이 중단되기도 하였다.

 

 

 

▲ Boney M."Young Free And Single"


그동안 많은 가짜 보니엠들이 나타나 활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부터

리드싱어 리즈 미첼을 중심으로 활동을 재개한, 제작자 프랭크 패리언이 유일하게 인정한

진짜 보니엠은 리즈 미첼이 이끄는 보니엠 하나 뿐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히트곡의
목소리는 그녀의 것이다. 리즈 미첼의 보니엠은 현재 전세계 투어를

돌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리즈 미첼

(Liz Mitchell, Elizabeth Rebecca Mitchell)
출생:1952년 7월 12일 (자메이카)
소속:그룹보니 엠
경력1976~ 그룹 '보니 엠' 멤버

 

 

 

▲ Boney M. - Bahama Mama 1979

 

 

▲ Boney M - One Way Ti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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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팝의 르네상스 2013.05.05 22:04

팔코(Falco)의 지니(Jeanny), 아마데우스를 꿈꾼 오스트리아 출신 팝아티스트






팔코(Falco)의 지니(Jeanny), 아마데우스를 꿈꾼 오스트리아 출신 팝아티스트

 

오늘 소개할 80년대 팝은 팔코(Falco)의 'Jeanny'다.
팔코를 떠올리면 지니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Rock me Amadeus'야말로
그의 이름을 제대로 알린 곡이라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면
팔코는 오스트리아 태생이다. 그리고 '록미아마데우스'는 1984년 모짜르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아마데우스'를 보고 크게 영감을 얻은 팔코가 만든 곡이기 때문이다.

 

 

 


모짜르트 역시 오스트리아 출신이다. 음악적 자긍심에서랄까?

어쨌든 천부적으로 절대음감을 가지고 태어나 일찍이 재능을 인정받은 팔코는 그렇게

'록미 아마데우스'를 통해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클래식 보다는 팝에 더 심취했던

그가 만든 곡들은 매우 독특한 곡들이 많았고 그 중에 오늘 소개하려는 'Jeanny'야말로

한국인에게 정서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팔코의 대표곡으로 기억되고 있다.
1987년 이 무렵 나는 내가 자주가는 레코드 점에서 팔코의 음반을 구입했었다.

 

 

 

▲ 1984년 밀로스 포먼(Milos Forman)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

 

 

팔코(Falco)
본영: Johann Holzel

1957년 2월 19일 출생 (오스트리아) - 1998년 2월 6일 사망
학력:빈시립음악원
데뷔:1982년
1집 앨범 Einzelhaft

대표곡: Rock Me Amadeus

 

 

 


유년기 때부터 일찌감치 타고난 재능을 보였던 팔코는 비엔나 예술학교에서
클래식 음악교육을 받았으나 결국 대중음악으로의 꿈을 위해 학업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통일전의 동독 스키 점프 선수 팔코 바이스폴로크에게서 영감을
얻어 지금 우리에게 알려진 팔코(Falco)로 개명을 했다고 한다.

 

 

 

▲ 팔코(Falco)가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고 이에 영감을 얻어 만든

'Rock me Amadeus'란 곡이다. 유일하게 빌보드 핫 100 넘버원에 오른 곡이다.

 

 

팔코라는 가수는 몰라도 80년대 팝의 르네상스에 있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노래는 역시도 'Jeanny'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 노래 보다는 'Rock me Amadeus'란 곡만이 유일하게 빌보드 핫 100 넘버원 곡으로

올라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라고 하는데 80년대 당시에

팔코의 앨범을 내가 사게 된 이유는 사실 바로 '록미아마데우스'란

곡 때문이 아니었던가 기억된다.

 

 

 

▲ 그 유명한 팔코의 지니(Jeanny).

 

역시도 특유의 전율이 느껴지는 곡이고 매우 독창적인 팔코만의 분위기가 있다.

적어도 80년대 팝은 지금보다는 훨씬 창의적이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때문에 난 이들을 단순히 '가수'라고 부르기보다는 '아티스트'라고 불러주고 싶다.

 

 

 

 

물론 이 앨범엔 'Vienna Calling'이란 곡이나 다른 좋은 곡들도 많았는데

유독 한국적 정서에 맞는 곡은 아마도 'Jeanny'가 아니었을까 싶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독특한 이 곡에는 살인 외에 어두운

내용들이 많아 미국의 라디오 등에서는 방송금지를 당했다고도 한다.

 

 

 

 

이랬던 아티스트 팔코란 가수에 대한 소식은 사실 다른 여느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좀체 들을 일 없었다가 얼마전에서야 이미 한참 전에 사망한 사실도 알게되었다. 1998년 2월.

도미니카를 여행하던 중 과속하던 버스와 충돌사고로 40세라는 짧은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진정 아마데우스를 꿈꾸었을지도 모를 이 젊은 아티스트의

짧은 생애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대표곡들을 한참 세월이 지난 지금 다시금

들어보며 그의 음악세계를 조금이나마 이해해보고자 한다.

 

 

 


'Jeanny'곡에서 후반부에 경찰싸이렌 소리가 나고
방송에서 나오는 듯한 독일어 말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 부분만
해석해 옮기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미국의 라디도에서 방송금지 될만한
내용인데, 지금와서 알게되니 다소 섬뜩함마져 느껴진다.

뮤직비디오도 그렇고...ㅠ.ㅠ

가사는 아래와 같다.

 

Newsflash:
In den letzen Monaten ist die Zahl
Der vermißten Personen dramatisch angestiegen
Die jüngste Veröffentlichung der lokalen Polizei-
Behörde berichtet von einem weiteren tragischen Fall.
Es handelt sich um ein neunzehnjähriges Mädchen,
Das zuletzt vor vierzehn Tagen gesehen wurde.
Die Polizei schließt die Möchligkeit nicht aus, daß es
sich hier um ein Verbrechen handelt.

 

뉴스속보입니다.
최근 몇 달 동안 실종자 숫자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경찰당국은 근래에 또 한 건의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사건은 열아홉 살 소녀와 관련된 것으로서 그 소녀는 지난 14일 동안
소식이 두절되었다고 합니다. 경찰측은 이 실종 사건이

범죄와 연루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데우스

Peter Shaffer's Amadeus, 1984

 

솔 제인츠 제작. M.포먼 감독. F.M.에이브러햄 주연.

1984년도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주연남우상 등 8개 부문 수상. 1985년 그래미상

최우수 클래식 레코드상 수상. 원작을 작가 자신이 다시 손질하여 시나리오를 썼다.

정신착란증에 걸린 한 노인(살리에리)이 창문을 열고 빈 시민에게 "모차르트, 나를 용서해 다오.

내가 너를 죽였어" 하고 외치는 고백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천재 모차르트를 마주한

범용(凡庸)한 예술가 살리에리의 질투와 고뇌를 통하여 관객에게 '자기와 같은 인간'을

발견하게 해 준다. 음악감독 N.마리너가 지휘하는 아카데미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모차르트 음악이 현란한 분위기로 전면을 감싸 감동을 더해 준다.

한국에서는 1985년 말 상영되었다.(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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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때리는영화/액션 드라마 환타지 2013.05.03 08:30

영화 크라잉게임(Crying Game) OST는 역시 보이조지(Boy george) 목소리로






영화 크라잉게임(Crying Game) OST는 역시 보이조지(Boy george) 목소리로

 

90년대 영화 중에 '크라잉게임'(Crying Game)이라고 있다. 1992년작인데 국내에선

1993년에 개봉되어 본 사람도 있겠지만, 당시로선 파격적인 소재였다. ost 또한 보이조지

특유의 몽환적인 듯 중성적인 목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크라잉게임'은 흥행에도 성공적이었다.

지금 같아서야 신선할건 뭐고 보이조지의 저 패션은 무슨 '룩'이냐며 키득댈만도 한데

아뭏든 그땐 썩 괜찮은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그래서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보이조지 이야기를 오늘 좀 할까 한다.

 

 

 

 

보이조지를 소개하기 전에 일단 영화 '크라잉게임'을 먼저 간단히 소개하겠다.

 

크라잉 게임

THE CRYING GAME(1992)
개봉: 1993 .05 .28
상영시간:112분

제작국가: 영국,일본 (청소년 관람불가)
감독: 닐 조던(Neil Jordan)
출연:포레스트 휘테커(Forest Whitaker),

미란다 리처드슨(Miranda Richardson),
스티븐 레아, 제이 데이비슨 외

 

 

 

 

 

영화 '크라잉게임'은 등장인물의 동성애 성향에 대해 당시엔 말도 많은

영화로 기억되는데, 작가 겸 감독인 닐 조던은 자신만의 독특한 연출기법으로

정치적 음모 속에서 전개되는 등장인물들 간의 묘한 심리적 실타래까지

아주 능수능란하게 풀어나가면서 관객들에게 전혀 새로운 드라마를

보여주었다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후 이 영화는 철면피적인 마케팅 전략과 성적 전복성이 교묘하게 결합되어

흥행에 성공한 획기적인 영화로, 대담하고 불안한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층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놀랄 만한 흥행성적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독립영화를 컬트적 대상에서 수익성이 있는 상품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된 영화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 Boy george- the crying game(뮤직비디오)

 

영화 크라잉게임은 원래 1965년 Dave Berry가 발표한 곡이 원곡이다.

원곡도 한번 비교해서 감상해볼만도 하지만, 이후 이 노래를 수많은 가수들이

리바이벌 해서 다시 부르고 또 불렀지만 역시도 고유의 느낌과 이미지는 보이조지만한

가수가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일단 원곡도 감상해보시면 좋겠다.

 

 

 

 

 

 

▲ 영국가수 Dave Berry.

 

 

 

 

 

 

 

 

 

 

그래도 역시 아무리 원곡자가 따로 있다해도 그 특유의 목소리 임자는 따로 있나보다.

 

 

▲ 음...역시!! 역시도 이 노래 임자는 따로 있다. ^^

 

 

 

보이 조지

(Boy george)

본명: George Alan O'Dowd

출생:1961년 6월 14일 (영국)
신체:183cm

소속그룹: 컬처 클럽(Culture Club)
데뷔:1982년 컬처 클럽 1집
앨범 Kissing to Be Clever
수상: 제26회 그래미 어워드 신인상

 

 

 

 

일단, 보이조지(Boy george)의 본명은 George Alan O'Dowd이다.

그는(그녀가 아니다.-_-;;) 1981년 영국에서 결성되 4인조 뉴웨이브 록그룹

'컬처클럽'(Culture Club)의 리더싱어로 유명했다. 일단 보이조지하면 역시 기이하게

보이는 여성분장과 짙은 화장, 그리고 중성적인 목소리까지 이전에 없던 독특한

캐릭터를 확실하게 보여줌으로써 대표적인 몇몇 곡들과 더불어 80년대를 수놓았던

가장 유명했던 팝아티스트 중에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1981년에 영국에서 결성된 4인조 뉴 웨이브 록 그룹 컬쳐 클럽(Culture Club)은,

리더 싱어인 보이 조지(Boy George)의 외모로 색다른 인기를 얻어, 쉽게 성공을 본

그룹이다. 본명이 조지 조우 다우드인 그는 여성을 방불케 하는 짙은 화장과 긴 머리,

그리고 의상까지 여장으로 분장해, 이들이 처음 모습을 나타내었을 때는

여성 리드 싱어를 둔 그룹으로 소개되는 착오를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보이 조지는 자신의 그와 같은 여장은 그룹을 위한 분장이 아니며,

자신의 본래의 성격이라고 말해서 더욱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보이 조지가 팝계에

선을 보인 것은, 뉴 웨이브의 대부로 통하는 말콤 맥클린(Malcolm McLarean)에

의해서인데, 말콤은 70년대 중반에 런던에서 펑크 스타일의 의상을 판매하는
의상실을 경영하면서, 아담 앤츠(Adam Ant)를 위시해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그리고 바우 와우 와우(Bow Wow Wow) 같은 개성 짙은 뮤지션을 발굴해 낸 인물이다.

 

 

 

▲ Culture Club - Karma Chameleon

 

컬처클럽의 가장 대표곡. 컬처 클럽(Culture Club) 멤버들이 작사·작곡했다.

이 곡으로 미국 시장을 석권하는 행운을 누렸으며, 그 여파로 제26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 영국 그룹으로서는 최초로 그래미상을 수상했고,

3주간 정상을 차지했다. 이게 벌써 30년 전 얘기다. ㅠ.ㅠ

 

 

 

 

여자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보이 조지도 그 의상실을 자주 다니면서 말콤을

알게 되었는데, 말콤은 보이 조지를 중심으로 해서 개성 짙은 뉴 웨이브 그룹을 만들

계획이었으나, 보이 조지는 1년 반 뒤에 그를 떠나 자신의 밴드인 컬쳐 클럽을 만들었다.

기타와 키보드 주자인 로이 헤이(Roy Hay)와 베이시스트 마이클 크래이그(Michael Craig),

그리고 드러머 존 모스(Jon Moss)를 기용하여, 1982년 말에 앨범 'Kissing To Be Clever'를

발표해 그 중 'Do You Really Want To Hurt Me'를 1983년 초에 싱글 챠트 2위에까지

등장시켰다. 이 곡은 흑인적인 휠링이 가미된 소울과 레게적인 리듬 비트가 가미된

경쾌한 곡으로, 조지 보이의 맑고 고운 목소리는 여성을 방불케

하고 있어 더욱 진한 멋을 느끼게 하였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크라잉게임'이었고, 그래서 보이조지가 부른 이 영화의

ost 만을 소개하려 했는데 말 나온김에 다른 한 곡 더 소개해볼까 싶다.

 

 

 

▲ CULTURE CLUB · Do You Really Want To Hurt Me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보이조지의 요즘 근황은 과거의 명성은 다 제쳐두고 DJ로 왕성하게 활동한다는

소식 정도밖에 안들린다. 그나마도 이젠 더 이상 과거처럼 화려한 여장분장을 한다거나

하는것 없이 본래의 모습인 '아즈씨'로 돌아온 것으로 최근 그 모습이

포착되었다고도 한다. 물론 중간에 과도기도 좀 크게 있었던 듯 하다. 어쨌거나

원래의 남성은 그냥 나이먹으면 누구나 다 그러하듯 동네에서 볼만한 조기축구회 아저씨

정도의 모습으로 변모한데 대해 한 때 보이조지의 왕팬이었던 언니들은

끔찍한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을지도 모르겠더란 생각 해본다.

 

그래도 이 모습을 공개해야 할라나???

앞서 과도기 모습은 너무 충격적이라 제외시켰다. 단 한장의 사진만

보시고 그만큼 세월이 흘렀고 인생무상이라는걸 상기해주셨으면 한다.

자!! 한번 보시기 바란다. 가장 무난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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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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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My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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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팝의 르네상스 2013.01.29 22:38

본조비(Bon Jovi), 80년대 팝뮤직을 시작하며...






조비(Bon Jovi), 80년대 팝뮤직을 시작하며...

 

오늘부터 80년대 팝의 르네상스 컨텐츠를 추가하며 '본조비'를 그 첫번째 게스트로

초대하려 한다. 물론 80년대 팝을 떠올리면 무수히 많은 아티스트들이 쏟아져나오기 때문에

도대체 누구부터 언급해야할지 모를 지경이다. 하지만 본조비의 가슴을 후련하게 만드는

그 박력있는 사운드와 그들의 헝클어진 머리칼 처럼 자유분방함을 먼저 되새겨보고 싶었기에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미리 밝히지만, 필자는 팝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다. 다만, 소시적의

감성과 여전히 그 때를 떠올리면 되살아나는 그 느낌들을 보다 더 세세하게 전달하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점 먼저 양지해주시기 바란다.

 

 

 

 

본조비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80년대 팝을 회상해 보면 역시도 그 시대를 살면서

가장 감수성 예민할 때 접해서인지 그 때만큼 팝의 전성기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보다 창의적이며 거침없었고 자유분방하며 표현의 다양성과 개성강한 아티스트들이 마구마구

봇물처럼 쏟아지던 그런 시대였다고 회상된다. 때문에 본조비를 처음 알게되었던 열댓살

무렵의 그 기억들이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생생하다.

 

 

 

 

 

 

 

본 조비(Bon Jovi)

그룹에서 보컬을 맡고 있는 존 본 조비(Jon Bon Jovi)의 이름을 그룹 명칭으로 사용하는
이 밴드는 존과 함께 데이빗 러쉬봄(David Rushbaum), 알렉 존 서치(Alec John Such),

티코 토레스(Tico Torres, drum), 리치 샘보라(Richie Sambora)로 구성된 5인조 그룹이다.

82년 결성된 본 조비는 뉴욕의 라디오 방송국인 WAPT에서 주최한 아마추어 록 콘테스트에서
'Runaway'로 대상을 받으면서 유명해졌다. 이후 83년 폴리그램 산하 머큐리(Mercury)레이블과

계약을 체결하고 84년 첫 앨범을 발매한다. 이 앨범의 수록된 'She Don't Know Me',

'Runaway'가 히트하면서 앨범은 골드를 기록하게 된다.

 

 

 


이후 2집 역시 'Only Lonely', 'In & Out of Love'를 히트시키면서 골드를 기록해 데뷔

2년만에 스타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86년 본 조비는 3집앨범 [Slippery When Wet]을 출반,

'You Give Love a Bad Name'이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하였고 앨범은 발매 4주만에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해 11주간 머물렀다. 그리고 두 번째 싱글'Living on a Prayer' 또한

4주간 1위 자리를 차지했다. 3집은 87년 최고의 베스트 셀러에 선정되었으며, 88년에

내놓은 4집앨범은 발매 2주만에 앨범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후 본 조비 멤버들은 각자 솔로 활동을 하는 등 일시적인 휴지기를 가지다가

92년 5집앨범, 베스트앨범 등을 발표하였고 2002년 새 앨범을 내 놓은 등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 Bon Jovi - You Give Love A Bad Name. 불후의 명곡이다.

요즘은 아이돌 가수들 천지라 그야말로 '애기들의 행진' 또는 '순정만화' 코스프레

같기만 한데, 저 당시엔 정말 모두가 사자갈기 머리에 야성미와 자유주의가 넘쳤다.

물론 파워풀했고 젊음을 발산하는 에너자이저의 특권을 원없이 뿜어주었다.

 

 

 

 

소시적 그 누구 못지않게 POP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이유중에 하나는 미군부대를

가까이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부하건데 일찍이 간접적인 미국문화 체험을 한 셈이다.)

대략 어디쯤일지 짐작하시는 분들도 있을텐데, 아마 그런 문화를 접해본 분들은 알것이다.

지금 이태원을 가도 그렇지만 그 시절 금요일 저녁만 되면 시내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LA가 따로

없었고 이태원이 따로 없었다. 한국인보다 미국인이 더 많을 지경이었고

그들이 노는 문화는 대게 '클럽'위주였고 길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음악들 또한 그들이

좋아할만한 것들 위주이다 보니 당연히 이선희나 조용필보다는 팝이 더 친숙했다.

요즘같아선 부모들이 애들 교육문제로 얼씬도 못하게 했겠지만 그 땐 그런거 없었다.

 

 

 

 

 

 

 

 

 

 

지금도 그 곳을 가보면 당시 헐리우드 키드처럼 팝음악을 탐닉하던 10대 소년이 자주

드나들던 레코드점이 여전히 남아있다. 최근까지도 가게를 운영하던 영감님도 세월의 변화와

노쇄함을 견디지 못한걸까. 얼마전에 지나치면서 보니 가게엔 옛날식 셔터가 내려와

먼지가 수북했다. 그 옛날 이야기가 어느덧 30년 전 이야기라니...ㅠ.ㅠ

몇년 전 그곳을 지나치며 궁금해 일부러 들러 영감님께 CD한 장을 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었던 적이 있다. "요즘은 어떠세요?"라는 질문이 무색할 정도로 세월의 흐름

앞에 영감님도 어찌할 수가 없었나 보다. 당시엔 그 영감님도 김광한 못지않게

멋있다라고 생각했었는데....세월이란...

당시엔 번들번들 광이 날 정도로 성황을 이루던 엄청난 레코드점이었고

찾고자하는 거의 모든 앨범은 다 있었으며 문밖엔 언제나 신나는 팝이 들렸었다.

바로 본조비의 이 노래 처럼 말이다.

 

 

 

▲ Bon Jovi - Livin' On A Prayer

 

 

 

 

그러나 본조비도 나와 마찬가지로 늙어가고 있다. 한창 때의 본조비는 정말 영화배우

해도 아깝지않을 준수한 외모와 사자갈기 머리 그리고 익살 넘치고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랬던 그도 이젠 점잖은 아즈씨 대열에 어느덧

합류하게 된 듯 하다. 인생이란 이처럼 무상한거 아닌가 싶다.

 

 

 

 

요즘의 대중가요(POP)라는 것이 다소 간지러울 지경은 아닌지, 온갖 화려한 기교와

안무 등으로 무장해 한껏 개성을 부리는 듯 하지만, 정작 진짜 개성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나만의 것'이 없어보인다.

이게 다 상업지상주의적 흐름에 의존한 까닭이 아닌가 한다. 트랜드에 맞춰

대중이 원하는 것만을 만들어 잘 팔리는 것만을 만들다 보니 쇠퇴하는 것이다.

때문에 차라리 그 옛날 80년대 팝이 여전히 화려하고 강력하고 진정한 아티스트로

인정해 줄 만한 친구들이 드글드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 메뉴판에서 그렇게 잊혀져가기엔 아까운 아티스트와 뮤지션들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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