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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People)/영화배우 2016.08.23 19:27

영화 '아가씨'의 갓태리, 김태리~!! 촉망되는 배우






 영화 '아가씨'의 갓태리, 김태리~!! 촉망되는 배우

 

 

 

 

 


영화 '아가씨'를 얼마전에 보았는데 박찬욱 감독의 연출은 물론이거니와 조진웅, 하정우, 김민희 등 출연배우들의 연기며 음악, 미술 모든 게 다 참 예쁘고 아름답다 느꼈는데 특히 눈에 들어오는 배우가 한 명 있었습니다. 바로 요즘 '갓태리'란 별명을 얻으며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신예 배우 김태리가 그렇습니다.

 

 

 

 

 

 

1990년생이니까 올해로 한국나이 27살인데요. 지난해 '문영'과 '락아웃'을 통해 존재를 알렸지만 확실히 거장 반열에 오른 박찬욱 감독을 만나면서 큰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제 역량을 마음껏 뽑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아가씨'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쟁쟁한 선배 배우들이 있었음에도 전혀 신예답지 않은 기량으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는데요. 연기력 또한 전혀 손색 없을 정도라 앞으로 매우 기대되고 촉망되는 배우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거에도 박찬욱 감독은 신예배우 발굴에 일가견이 있을 정도로 캐스팅에 꽤 많은 신경을 기울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과거 '올드보이'로 일거에 스타반열에 올랐던 강혜정씨가 대표적인데(요즘 타블로와 결혼 이후 육아에 전념해서인지 다소 뜸합니다만) 영화 '아가씨'에서도 신예 김태리를 캐스팅한데에는 그만한 안목이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영화 '아가씨' 자체에 대해서는 사실 할 말도 많고 구석구석 디테일하게 신경 쓴 흔적이 많아 심층적으로 이야기를 해볼까도 싶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피력한지라 오늘 오랜만에 블로그 포스팅하면서 문득 생각난 배우 김태리에 대해서만 살짝 언급하고 넘어갈까 합니다.

 

 

 

 

 

 

 

 

 

영화 '아가씨'에서 배우 김태리의 연기력이 꽤 괜찮구나라고 느꼈던 부분은 굉장히 많습니다. 아니 거의 모든 부분에서 자신의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었고 연기력 또한 어지간한 중견배우 뺨치게 너무 좋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오히려 한참 선배인 김민희의 연기가 무색할 정도였다라고 말한다면 좀 지나칠까요? 아뭏든 여배우라고 해봐야 두 사람이 주인공인만큼 나머지 남자배우와 비교할 것도 없이 단연 압권이었다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영화 '아가씨'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영화를 통해 좋은 연기력을 무궁무진하게 보여주길 기대해 봅니다. 사실 한국영화에서 내로라하는 남자배우는 정말 쌔고 쌨을 정도인데 그에 반해 상대적으로 여배우들은 좀 너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많았었는데요. 배우 김태리가 그런 자리를 확실하게 꿰차길 기대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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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People)/영화배우 2014.09.30 20:41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핀업 걸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핀업 걸즈

( Portrayed as Pinup Girls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핀업 걸즈

 핀업사진이 벽에 걸어 놓는 미인사진인 거 아시죠.

벽에 걸어 놓고 보면 즐거울 것 같습니다.즐감하세요.

무단 복사나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하트3

 

 

 

 

 

 

 

 

 

 

 

 

 

 

 

 

 

 

 

 

 

 

 

 

 

 

 

 

 

 

 

 

 

 

 

 

 

 

 

 

 

 

 

 

 

 

 

 

 

 

 

 

 

 

 

 

 

 

 

 

 

 

 

 

 

 

 

 

 

 

 

 

 

 

 

 

 

사랑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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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People)/영화배우 2014.09.25 21:24

존 말코비치의 역사속 인물 재연






 

존 말코비치의 역사속 인물 재연

 

 

 

 

 

존 말코비치 (John Gavin Malkovich, 1953년 12월 9일~ )

 

 

영화배우 존 말코비치가 역사속 인물을 재연한 코스프레를

사진작가 산드로 밀러가 담았습니다. 즐갑하세요.

 

 

 

 

< 존 말코비이의 아인슈타인 재연 >

 

 

 

 

< 살바도르 달리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재연한 존 말코비치 >

 

 

 

 

< 존 말코비치가 재연한 의도되지 않은 의도 >

 

 

 

 

< 히스레저의 완벽 재연을 꿈꾸는 존 말코비치 >

 

 

 

 

< 인디안 아저씨 코스프레 >

 

 

 

 

< 나이를 초월하는 존 말코비치의 기발함 >

 

 

 

 

< 성을 초월한 존 말코비치의 마릴린 먼로 따라하기 >

 

 

 

 

< 피카소의 선한 눈빛은 담아내지 못 한 존 말코비치 >

 

 

 

 

< 피부톤까지 완벽하게 재연해 낸 존 말코비치 >

 

 

 

 

< 백악관의 청소부(?) 아줌마는 내 친구 >

 

존 말코비치의 역사속 인물 재연, 안되는 게 없네요.

남녀노소를 초월한 존 말코비치의 기발한 발상이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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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People)/영화배우 2014.09.10 15:32

영화 '군도:민란의시대'에서 노사장 역으로 인상적이었던 배우 이성민






영화 '군도:민란의시대'에서 노사장 역으로 인상적이었던 배우 이성민

 

 

추석연휴 기간에 보았던 한국영화 '군도:민란의시대'에서 가장 발군의 연기를

보여주었던 배우를 하나 꼽자면 노사장 역의 중견배우 이성민을 꼽을 수 있겠다. 그리

잘생긴 얼굴도 아닌데다가 그동안 그가 보여주었던 역활들이라는게 사실 느끼해보이거나

코믹스럽거나 심지어는 변태스럽거나 혹은 특이해놔서 그리 호감가는 인물은 아니었기에

그를 기억하거나 알아보는 사람들은 사실 많지 않을거라고 짐작해 본다.

 

 

 

 

 

 

 

 

 

배우 '이성민'을 처음 알게 되었던건 몇년 전 보았던 한국영화 '고고70'이었다.

2008년작인데 조승우와 신민아를 대동 그룹'데블스'의 후원자이자 팝칼럼니스트였던

이병욱을 연기했던 바로 그 배우가 이성민이다. 실존인물이자 얼마전 타계한 드렁큰타이거의

아버지 '서병후'씨가 롤모델 아니었나 싶은데, 어쨌든 어디까지가 팩트이냐를 떠나 누가

 보아도 한눈에 당시 최고의 팝칼럼니스트였던 서병후씨를 모델로 삼았던 바로 그 캐릭터가

영화 '고고70'의 이병욱이란 캐릭터였고, 배우 이성민은 개성있는 캐릭터로서의

이병욱 역활을 매우 인상적으로 잘 소화내었던 그런 배우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후 이런저런 수많은 영화와 방송에서 배우 이성민은 나름대로 튀지는

않아도 악역이었건 느끼한 남자였건 아니면 정의로운 사람이었건 나름대로 완벽한

배역을 잘 소화해내는 그런 배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 '군도' 이전에는 '방황하는

칼날'에서 배우 정재영과 함께 수사관 '장억관' 역을 맡았었다. 하지만 그가 가진 무한한

끼와 특유의 성격파 연기에 비하면 다소 안어울리는 배역이다 싶었는데, 어쨌든 

특유의 마스크를  알아보는데는 별 무리가 없었고 아쉽긴 해도 나름 그런 역활도

하는구나라며 뜻밖의 배역에 조금 놀랐던 기억이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영화 최대의 기대작으로 주목을 끌었다가 개봉후

논란의 핵심에 있던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는 노사장 역을 맡았던 배우가

이성민이란 사실을 처음엔 알아채지 못했다. 얼굴살도 몰라보게 뺀데다 그동안 맡아왔던

배역 성격상 노사장 역을 맡은 배우가 이성민 일거란 생각은 전혀 짐작도 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사람 얼굴 알아보는 눈썰미가 좀 약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영화 중후반까지도

그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고, 오히려 신선한 마스크의 저 배우가 누구일까 궁금하던

끝에 영화를 다 보고나서 배역 검색을 하다가 그제서야 알고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사람 얼굴 쉽게 못알아본다고는 하지만 아뿔싸!! 예고편도 여러번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두툼하고 다소 느끼해보이기까지 했던 얼굴살을 아무리 뺐다고는

해도 사람을 그리 못알아보아서야...하지만 결기 마져 느껴지는 민중봉기의 선봉장 노사장

역활을 하던 그의 목소리는 그동안 그가 보여주어왔던 배역들에서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발견할 수가 없었던 매우 신선한 모습이었던게 사실이다. 게다가 긴 칼을 들고 출중한

무예실력까지 선보이며 '조윤'역의 '강동원'과 맞서 싸우는 그는 내가 알던 배우 이성민이

아니었다. 완전 신예 쯤으로 여기며 그가 과연 누구일까 찾아보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 만 것이다. 결과적으로 역활변신에 완전 성공한 셈이다.

 

 

 

 

 

 

 

 

 

 

 

 

 

영화 '군도:민란의시대'는 개봉전 부터 예고편에서 보았듯이 이성민의

우렁차고 기개에 찬 목소리와 함께 엄청난 기대를 불러모았던 그런 영화였다.

단순 활극영화라기 보다 이제껏 한국영화에서는 좀체 찾아보기 힘들었던 영화일거란

기대를 불러모았다. 게다가 반봉건시대를 살았던 도적떼들의 반란이라고 하는 다소

자극적인 설정과 화려한 캐스팅 그리고 '범죄와의전쟁'을 만들었던 윤형빈 감독의

작품이라는 여러 요소들로 하여금 기대만발하던 그런 영화였다. 

 

 

"힘있는 자가 약한자를 핍박하고 가진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착취하니

우리는 그러한 세상을 바로잡으려고 한다!!"

 

 

 

 

▲ 영화 '군도:민란의시대' 예고편에서 노사장 역의 배우 이성민의 목소리는 좌중을 압도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나니 때마침 천만관객 돌파를 우습게 뛰어넘는

영화 '명량'등 여러 영화들이 포진하고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관객들

반응은 여기저기서 실망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때문에 나역시 이 영화를 단숨에

보려했던 계획을 접었다가 이제서야 보게 된것이다. 영화 '군도'를 두고

많은 이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관객평가가 절하되면서 평점 또한 종잡을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일단 재미있게 잘 보았던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영화 '군도:민란의시대'는 관객평점과 관객반응이 기대에 못미쳤다.

혹은 기대가 너무 컸다라는 식으로 평가절하되고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배우 이성민 외에도 수많은 배우들의 좋은 연기와 더불어 볼거리도 참 많았고,

무엇보다도 쇄락해가는 망국의 길을 달리던 조선말의 시대상을 제대로 반영 하듯한

풍자극이라는 사실도 마음에 들었다.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라는 시도 자체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또 그냥 단순히 도적떼들의 활극영화로서만이 아닌 실제 역사상으로도

어지러운 세상을 살다간 난세의 영웅들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풀어냈다고 본다.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이다. 여기에서 무얼 더 바라겠는가. 물론 영화적

완성도로서는 부족한 면면이 일부 보이기는 했으나 그래도 우려했던 것보다는 썩

나쁘지 않은 좋은 영화였다고 평가해 주고 싶다. 한편으론 아마도 많은 이들은내심 지금의

이런 어지러운 시대분위기를 대변해 줄 수 있는 무언가 확실한 영웅을 원했을런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군도에서 진짜 영웅을 찾지 못하다 보니'명량'에서 익히

잘 알고 있음에도 관객은 최민식표 이순신에 열광하지 않았던가 싶으니

말이다. 실제로 기자나 평론가들 평은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배우 강동원의 섬뜩한 카리스마는 뭐 두말할 나위 없었지만,

영화 '군도:민란의시대'에서 개인적으로 꼽을 수 있는 최고의 배우 중 한 사람으로

노사장 역의 배우 '이성민'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해 본다. 조윤과의 일전 끝에 목숨을

잃는다는 점은 좀 아쉽기는 해도 이성민이 '군도'에서 보여준 연기는 꽤 좋은 점수를

아낌없이 주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영화 '군도:민란의시대'에 대한 혹평 때문에

영화보기를 주저했던 분들은 구지 겁먹을 필요없다. 아쉬운 부분들을 메꿀 수 있는

요소들도 제법 많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이다.

이 안에서 홍길동이 튀어나오지는 않는다. ^^*

 

 

 

 

 

 

 

 

 

 

이성민
탤런트, 영화배우
출생:
1968년 10월 15일
신체:178cm
소속사:호두엔터테인먼트
수상:2013년 제8회 골든티켓어워즈 연극 남자배우상
2012년 MBC 연기대상 올해의 연기자상
경력:극단 '차이무'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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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People)/스타 2014.09.04 20:49

배두나 화보 공개 - 배두나 화보 모음






 

 

배두나 화보 공개

 

 

 

 

 

 

배두나의 화보가 공개됐습니다. 9월 4일 발행하는 스타 스타일

매거진 '하이컷' 은 배두나의 가을 메이크업을 담은 화보를 공개했습니다.

공개된 화보에서 배두나는 도자기처럼 매끈한 피부와 선명한 입술

컬러로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겼습니다.


 

 

 

 

 

 

 

 

 

 

 

 

 

 

 

배두나 화보 공개에 이어 촬영 일정에 대해 묻는 질문에 

"현재 아이슬란드에서 촬영을 하고 있다"며 "9월 초에 케냐 나이로비로

넘어간다. 여기서 열흘 조금 넘게 촬영을 하고 9월 중순 쯤 서울로

들어가 9월말 정도까지 촬영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배두나 화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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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People)/스타 2014.08.17 17:10

영원한 디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에 대한 기억






영원한 디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에 대한 기억


 

90년대 절정의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팝의 영왕 휘트니 휴스턴은 지난

2012년 2월11일 우리 곁을 떠났다. 당시 믿겨지지 않는 이 뜻밖의 비보에 나 역시 매우

놀랐던 기억이 나지만, 워낙 유명세를 달리하던 수많은 스타들이 하나둘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우리곁을 떠나고 있다보니 어느순간 그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때마다 또 한번 진한 아쉬움을 갖게 되는듯 하다. 이제는 더이상 우리곁에 남아있지

않지만, 우리들 기억속에 영원한 디바로 남아있는 휘트니휴스턴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그녀의 여러 대표곡들 중 오늘 두개의 곡을 소개할까 한다.

 

 

 

 

 

 

 

 

 

 

오늘 포스팅하게 되는 휘트니 휴스톤을 갑자기 떠올리게 된 계기는,

우연히 차안에서듣게 된 그녀의 1987년 히트곡 'I Wanna Dance With Somebody'을

들으면서이다. 솜털이 곤두서고 머리가 쭈뼛해질 듯 시원한 가창력이 뿜어져 나오던 절정기의

이 신나는 댄스곡을 들으면서 다시한번 이마만큼 최고의 훌륭한 선율을 선사하며 그녀를

대신할만한 가수가 아직까지는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매우 진한 아쉬움을 던져준다.

휘트니 휴스톤이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7회 연속 1위 기록을 보유한 최초의 가수였다는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가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따금 음악프로를 듣다보면 누구든 뛰어난 솜씨를 마음껏 발휘하고는 있지만,

언제나 '마치 휘트니 휴스턴 같은' 혹은 '흡사 누구누구에 버금가는', '누구를 연상캐하는

뛰어난 가창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을 뿐이다. 미국의 가수 겸 배우였던 휘트니 휴스턴은

이처럼 풍부한 성량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수많은 후배 가수의 본보기가 되었으며, R&B,

댄스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며 한 시대를 확실하게 풍미했던 그런 대표적인 팝가수였다.

비록 그녀의 인생 말로가 비참한 최후로 끝나버리기는 했지만, 우리들 기억 속엔 언제나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의 팝의여왕으로서의 당당했던 휘트니 휴스턴의 모습만이 남아있다.

당당하고 활기찼던 모습으로 무대를 사로잡던 영욕의 시절들이 무상하게 느껴진다. 

 

 

 

 

 

 

▲ Whitney Houston - I Wanna Dance with Somebody(1987)

 

 

 


휘트니 휴스턴은 1963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태어났다. 소울,가스펠 가수인 어머니

시시 휴스턴(Cissy Houston)과 알앤비 가수인 숙모 디온 워윅(Dionne Warwick)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다. 10대 시절에는 교회 성가대로 활동하기도 했다.

미국 알앤비·디스코 그룹 마이클 제이거 밴드(The Michael Zager Band)의
'라이프즈 어 파티(Life's A Party)'(1978)에 백 보컬로 참여하며 음반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휘트니 휴스턴은 팝 밴드 머티리얼(Material)의 '메모리스(Memories)'(1982),

미국 싱어송라이터 폴 자바라(Paul Jabara)의 '이터널 러브(Eternal Love)'(1983) 등에 보컬로

참여하며 경력을 쌓았다. 1984년 미국 시트콤 '김미 어 브레이크!(Gimme A Break!)'의

‘케이티스 칼리지(Katie's College)’ 편에 출연하며 배우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드라마와

시트콤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1985년 데뷔앨범 '휘트니 휴스턴'을 발표했다.

 

 

 

 

 

 

 

 

 

 

그리고 드디어 휘트니 휴스턴의 시대가 개막되었음을 선포한다.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기록한 '세이빙 올 마이 러브 포 유(Saving All My Love For You)'

(1985),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Greatest Love Of All)'(1986), '아이 워너 댄스 위드 섬바디

(후 러브스 미)(I Wanna Dance With Somebody (Who Loves Me))' (1987), '디든트 위

올모스트 해브 잇 올(Didn't We Almost Have It All)'(1987) 등으로 인기를 얻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게 된 휘트니 휴스턴은 1990년대 가수 활동과 연기 활동을 병행하며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면모도 과시하기 시작했다. 믹 잭슨(Mick Jackson) 감독의 1992년 영화

'보디가드'에서 주연을 맡으며 영화배우로 데뷔했고, 포레스트 휘테커(Forest Whitaker)감독의

1995년 영화 '사랑을 기다리며(Waiting To Exhale)', 페니 마셜(Penny Marshall) 감독의

1996년 영화 '프리처스 와이프(The Preacher's Wife)' 등에 출연하며

휘트니 휴스턴은 연기자로서의 경력도 꾸준히 쌓아가게 된다.

 

 

 

 

 

 

 

 

 

 

'보디가드'의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1992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와 '아임 에브리 우먼(I'm Every Woman)'(1993년 4위), '사랑을 기다리며'의

'엑스헤일 (슙 슙)(Exhale (Shoop Shoop))'(1995년 1위), '프리처스 와이프'의 '스텝 바이 스텝

(Step By Step)'(1997년 15위) 등 사운드트랙의 음악으로도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 오랜만에 영화 '보디가드'의 주제곡 " I Will Always Love You" (1992)을 감상해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영화 '보디가드'의 성공과 더불어 인기의 최고절정을 걷던 휘트니 휴스턴은

1992년 미국 알앤비 가수 바비 브라운(Bobby Brown)과 결혼을 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남편과 불화를 겪고 있으며 마약에 중독됐다는 소문이 계속해서 나왔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2002년

앨범 '저스트 휘트니…(Just Whitney...)'로 활동을 지속하며 재기를 노려보기도 했지만

전작들에 비해 상업적 성과는 저조했다. 결국 2007년 바비 브라운과 이혼했고 비슷한 시기 그동안

부인해 왔던 마약 복용에 대해 시인했다. 2009년 '아이 룩 투 유(I Look To You)'를 발표하며

또한번 재기에 성공하나 싶었으나 2012년 베벌리힐스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휘트니 휴스턴은 풍부한 성량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수많은 후배 가수의

본보기가 되었다. 미국 알앤비 가수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캐나다 가수 셀린 디옹

(Celine Dion)과 함께 '1990년대 최고의 여성 보컬 3인'으로 여겨진다. 알앤비, 어덜트

컨템퍼러리, 댄스음악, 가스펠 등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함으로써 팝의 아이콘으로 인정받았다.
매체로부터 '퍼스트레이디 오브 알앤비(First Lady Of R&B)', '퀸 오브 팝 뮤직(Queen

 Of Pop Music)' 등의 칭호를 들었다.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7회 연속 1위 기록을

보유한 최초의 가수이기도 하다.

 

 

 

 

 

 

 

 

 

 

 

 

 

 

대표앨범으로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기록한 '휘트니 휴스턴'(1985)과

'휘트니'(1987) 등이 있다. 대표곡으로 '세이빙 올 마이 러브 포 유', 미국 재즈·알앤비 가수

조지 벤슨(George Benson)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 '디든트 위 올모스트

해브 잇 올', 미국 컨트리 가수 돌리 파튼(Dolly Parton)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 미국 싱어송라이터 샤카 칸(Chaka Khan)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아임 에브리 우먼' 등이 있다.

 

 

 

 

 

 

  

 

 

 

 

 

 

휘트니 휴스턴
(Whitney Houston)
출생:1963년 8월 9일(미국)
사망:2012년 2월 11일
신체:173cm
가족:딸 바비 크리스티나 브라운, 어머니 씨씨 휴스턴
데뷔:1985년 1집 앨범 'Whitney Houston'
수상:1999년 제42회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여성 R&B 보컬상

 

 

 

 

 

 


[디스코그래피: 스튜디오 앨범]

1985년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1987년 휘트니(Whitney)
1990년 아임 유어 베이비 투나이트(I'm Your Baby Tonight)
1998년 마이 러브 이즈 유어 러브(My Love Is Your Love)
2002년 저스트 휘트니…(Just Whitney...)
2009년 아이 룩 투 유(I Look To You)

[디스코그래피: 사운드트랙 앨범]
1996년 더 프리처스 와이프(The Preacher's Wife)

 

[필모그래피: 영화]

1992년 보디가드(The Bodyguard) 레이철 머론 역
1995년 사랑을 기다리며(Waiting To Exhale) 사바나 잭슨 역
1996년 프리처스 와이프(The Preacher's Wife) 줄리아 빅스 역
1997년 신데렐라(Cinderella) 요정 대모 역
1997년 스크래치 더 서피스(Scratch The Surface) 본인 역
2012년 스파클(Sparkle) 엠마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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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People)/스타 2014.08.09 20:21

사극전문 배우 류승룡, 시대별로 바라 본 출연영화






사극전문 배우 류승룡, 시대별로 바라 본 출연영화

 

 

요즘 김한민 감독의 영화 '명량'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배우 류승룡에

대해 또 한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사극전문 배우가 아닌가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알고보면 시대극이건 사극이건 어떤 쟝르에서건 완벽하게 배역을

소화해내는, 2014년 8월 기준으로 역시도 변함없는 흥행배우의 반열에서 좀체 내려올

생각을 않는 그런 멋진 배우라고 생각된다. 오늘은 문득 어느덧 흥행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힌

배우 류승룡이 출연했던 영화들을 돌아보면서 사극을 중심으로 시간순 배열을 한번

해보자는 재미있는 생각이 들어 그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할까 한다.

 

 

 

 

 

 

 

 

 

사극전문 배우라고 하면 류승룡은 어쩌면 별로 듣기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가 개성강한 마스크로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준 작품들 중 상당수가 사극

이었다는 점을 돌아보면 굳이 부인하지는 않을 줄로 안다. 그냥 술술 나열해봐도

'광해 왕이된남자', '최종병기활','평양성'...그리고 지금 한창 최단기간 1000만 고지를

넘보는 '명량'에 이르기까지 역시도 사극이 상당히 많다. 사극은 아니지만 여기에 시대극이라

할 수 있는 '고지전'까지 끼워넣으면 현대물 보다는 아무래도 사극 쪽에 더 가깝지 않나 싶은

생각에 수식어를 일부러 가져다 붙여 본 것이다. 사극전문 배우....음...개인적으론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 부득불 아니라고 한다면 뭐 할 수 없다.

 

 

 

 

 

 

 

 

 

 

하긴 최근 모 CF 광고만 하더라도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며 삼국유사에서

볼 법한 이미지연출까지 해가며 '배달의 민족'  운운한걸 보면 뭐 꼭 부정할 일만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어쨌든, 2004년 늦깍이(?) 나이에 데뷔했던 데뷔작 '아는여자' 이후

그는 히트를 쳤건 못쳤건, 또 스크린이 아닌 TV드라마가 되었건 간에 유독

사극과 시대극 등에서 좀 더 두각을 보였다는 생각에 오늘 본인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이렇게 내용증명을 해보려 한다. 나이가 동갑이다 보니 왠지 허락받지 않고 그래도

되지 않나 싶은데 뭐 어디까지나 이건 내 표현의 자유일 뿐! 오늘 극장에 가서

'명량' 속에 나오는 사극전문배우(핫!;;) 류승룡이 연기하는 '구루지마'의 모습은 또

어떠할지 한번 유심히 지켜볼 참이다. 그르지마? 아니 그를래~ ㅎㅎ

 

 

 

 

 

▲ 배우 류승룡이 출연했던 CF '배달의 민족', 사시사철 천지사방 불철주야!!

 

 

 

 

▲ 배우 류승룡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우선 배우 류승룡이 2004년 '아는여자'로 데뷔한 이후 흥행배우로 뜨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해주고 싶다. 그리고 처음부터 이 배우가

사극전문 배우로 나온 것도 아니고 초기엔 대게 현대물에 출연을 했었다. 그러다가

2007년 '천년학'으로 시대극에 출연하는가 싶더니 같은 해 영화 '황진이'를 통해 조선시대로

시간 이동을 하게된다. 이후 별순검이나 바람의 화원같은 사극으로 TV방영물에 얼굴을

비칠 때도 사실 이 류승룡이란 배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7급공무원이나 불신지옥, 아이리스, 굿모닝 프레지던트 등의 영화에서도

조연이나 단역 혹은 특별출연으로 얼굴을 알리던 그가 또다시 사극영화에 제대로 출연하게

되었는데 다름아닌 이준익 감독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통해서이다. 이후에도 이준익 감독과

인연은 이어져 황산벌의 후속작인 '평양성'에서도 고구려 장군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사실

그가 출연했던 사극영화들 중 역사적 시간순으로 보면 평양성을 맨 앞에 놓아야 하지 않나 싶다.

감독이나 제작진 그리고 관객들도 어쩌면 이 무렵부터 그가 현대물  보다는 사극에

더 잘 어울리지 않나 그렇게 인식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역사적인 배경, 시대순으로 보았을 때 원래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

그 다음 순으로 올라와야 할 듯 하나 단지 조연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소개하지는 않겠다.

물론 조선시대 '황진이'도 있지만 시대배경이 모호한 관계로 제외시킨다면 그 다음 시대순으로

출연한 작품은 지금 한창 상영중인 '명량'이 된다.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아직 출연한 작품이 없으니

대략 500년에서 600년은 그냥 훌쩍 뛰어 넘어간다. 다만, 임진왜란이 벌어진 1592년

그 무렵 류승룡은 조선을 침략한 일본 왜군의 장수 '구르지마'로 등장한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끝이 나고(물론, 정유재란이 있지만)나서 전후 피해를 복구하고

민심을 수습하며 재건에 힘쓰던 임금 '광해군' 시절에 다시 그는 충성스러운 광해의 신하

'허균'역으로 다시 조선시대에 등장하게 된다. 허균은 '홍길동전'의 바로 그 허균이다. 역사적 고증이

어떻게 된건지는 몰라도 훗날 역모에 연루되어 반대세력에 의해 능지처참을 당한 비운의 인물이다.

참고로 허균의 형제들은 대게 천재였다. 누나는 허난설헌이다. 이 집안 대게가 다 그랬다.

 

 

 

 

 

 

 

 

 

 

물론 반대파에 풍지박산이 나고 몰락의 길을 걸어야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역사적으로도 그런 허균은 개혁 군주 '광해'와 맞아 떨어지고 정말 비서실장 역활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상에서는 짐짓 어색하지 않았다. 실화(실록)을 바탕으로 어차피 픽션인 이상 실제

역사적 사실여불르 떠나서라도 구지 이 부분은 흠잡을 대목은 아닌듯 하다. 배우 류승룡은 그렇게

광해군의 최측근으로 복귀를 하게 된다. 어디까지나 영화속 시대별 순서일 뿐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은 이랬던 배우 류승룡이 다시 시대별 순서로 나열할 때

정말 재미있게도 다음 영화작품 속 시대상황 속에 다시 등장하게 되는 것은 청나라 장수로

등장하게 된다. 바로 '최종병기 활'이 그렇다. 참 재미있지 않은가? 이렇게 역사적 시대배경 순으로

나열해볼 생각은 누구도 해본적 없을 듯 하다. 류승룡이라는 배우가 출연했던 이들 작품들은

공교롭게도 모두가 흥행대작들이다. 괜히 천만관객 동원배우가 아닌 것이다.

 

 

 

 

 

 

 

 

 

 

명량해전을 겪고 광해군 시대에 등장했다가 다시 또 '병자호란'을 맞이하여

말타고 달려내려와 조선의 온 국토를 말발굽으로 짓밟던 아주 더럽고 잔인하며 참혹하기

이를데 없던 바로 그 시절에 배우 류승룡은 청나라 장수 '쥬신타'가 되어 활을 쏘았다.

아마도 여태껏 출연했던 모든 작품들 중에 가장 카리스마 작렬하는 배역이 아니었나 싶은데

얼마전 명량 시사회 현장 인터뷰에서 배우 류승룡은 "저는 한국사람입니다~~~"라고

볼멘 목소리로 농을 던져 관객들을 한참 웃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고로 하나 더 말하자면, 임진왜란이 발발한 시기는 1592년.

그리고 정확히 44년의 시간이 지난 1636년 조선은 또 한번의 국난을 맞이한다. 앞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뭐 그 피해와 참혹함은 역사교과서에서 쪽팔려서 다루고 있지 않지만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당시 개만도 못한 임금 선조가 숨어서 개겼던 성터가 바로

'남한산성'이다. 얼마전 유네스코 문화재에 등재되었다고 국가적 경사라고 호들갑들 떤것 같은데

역사공부 다시하고 보면 진짜 각혈을 할 정도로 수치스러운 곳이 바로 남한산성이다.

 

 

 

 

 

 

 

 

 

쪽팔리니까 끝끝내 버티며 나라를 수호해낸 자랑스러운 성지 같이 미화시켰지만,

알고보면 '삼배구고두례'의 쓰라린 기억을 안고있는게 바로 병자호란이다. 병신같던 임금

인조는 결국 항복하고 청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대가리가 터지도록 머리를 돌계단에 짖찧었다.

뒈져도 시원찮았을 임금...개가 물어죽여도 시원찮을 임금이 바로 인조였던 것이다.

참고로 하나 더 놀라운 사실, '인조'의 '인'자는 어질인이나 참을인이 아니다. 잔인할 '인'이다.

청나라에 잡혀간 조선백성이 수십만이었고 당시의 참혹함은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도

어느정도 그려내고 있는데 실상은 이보다 더 참혹했다. 지하에서 이순신 장군이 각혈을 하고도

남을 이 일이 임진왜란 발발 이후 고작 44년만에 벌어진 것이다. 한심하지 않나?

어쨌든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 배우 류승룡은 진짜 청나라 사람처럼 머리까지 '변발'로

깍고 능수능란하게 말을 달린다. 활도 슉슉 잘쏘고 말이다.

 

 

 

 

 

 

 

 

 

자~! 그럼 그다음으로 그가 등장하는 또다른 역사극에는 어떤 작품이

있을까? 앞서 황진이, 바람의화원,별순검 등등의 고만고만한 픽션성향이 강한 작품들을

모두 배제한다고 했을 때 그는 다시 300여년을 껑충 건너 뛰어 이번엔 인민군 장교로 등장한다.

바로 영화 '고지전'이다. 이 영화에서는 사실 고수와 신하균이 중추적 역활을 했고 배우 류승룡은

단지 초기 6.25발발 직후 "이 전쟁...1주일이면 끝나게 돼있어"라며 기고만장했던 인민군

장교역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름 존재감이 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어느덧 수십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로 넘어오면 2012년 최고의

히트작 '내아내의 모든것' 그리고 '7번방의 선물'이라는 상반대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7번방에서는 약간 모자라지만 마음만큼은 순박했던 용구역으로,

그리고 '내아내의 모든 것'에서는 다소 엉뚱하면서도 진실된 남자 장성기 역을 맡는다.

이렇듯 근래 대한민국 영화의 대표작들, 천만관객을 아우르는 여러작품들에서 배우 류승룡은

그야말로 종횡무진 달려왔다. 오늘 시간순으로 시대별로 각각의 작품을 나열해보면서도

그가 과연 얼마만큼 한국영화의 종지부를 제대로 찍고 있는지 다시한번 실감해 본다.

오늘 보고오게될 '명량'에서 그가 맡은 배역이 또 어떨지 사뭇 궁금해지는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언제까지고 배우 류승룡이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배우로

남기를 바라면서 오늘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겠다.^^*

 

 

 

 

 

 

 

 

 

 

류승룡
영화배우
출생:1970년 11월 29일
소속사:프레인TPC
학력: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데뷔:2004년 영화 '아는 여자'
수상:2013년 제50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출연작품

 

2014 표적
2014 리오2
2013 별에서 온 그대
2013 명량 회오리바다
2013 캡틴 하록
2012 7번방의 선물
2012 내 아내의 모든 것
2012 가디언즈
2012 광해, 왕이 된 남자
2011 최종병기 활
2011 아이들...
2011 고지전
2010 오늘 그댈 사랑합니다
2010 지구대표 롤링 스타즈
2010 평양성
2010 개인의 취향
2010 퀴즈왕
2010 베스트셀러
2010 된장
2010 구름믈 버서난 달처럼
2009 불신지옥
2009 굿모닝 프레지던트
2009 시크릿
2009 7급 공무원
2009 아이리스
2008 바람의 화원
2007 내사랑
2007 열한번째 엄마
2007 황진이
2008 천년학
2007 별순검
2006 착한 아이
2006 거룩한 계보
2006 열혈남아
2005 박수칠 때 떠나라
2005 고마운 사람
2005 다섯 개의 시선
2004 아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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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People)/유명인사 2014.07.03 21:37

호나우드, 포루투칼 호날두와는 비교할 수 없는 21세기 최고의 사커






호나우드, 포루투칼 호날두와는 비교할 수 없는 21세기 최고의 사커

 

 

 

90년대는 축구사에 있어 그야말로 호나우드의 시대였다.

21세기에 다시 없을 최고의 스트라이커, 최고의 사커로 살아있는 전설이 되어버린 그는

은퇴 이후 어느덧 많은 이들의 기억으로부터 점차 멀어져갔다. 공교롭게도 그 자리를 같은 이름의

젊은 포루투칼 축구선수가 대신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브라질의 호나우드와는 비교조차

안되는 애송이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런데 불명예스럽게도 하필 이름이 'Ronaldo'로 스펠링 조차

같다. 발음까지 같아야겠지만 엄밀히 구분짓자면 브라질의 축구스타는 '호나우드, 포루투칼

축구스타는 '호날두'라고 구분지어 발음해주는게 그나마 정확한 표현이라고 한다.

 

 

 

 

 

 

 

 

 

현재 2014 브라질 월드컵이 한창 진행중이다. 원조 호나우드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 경기는 7월로 넘어오면서 8강을 모두 결정지었다. 독일,프랑스,벨기에,네델란드,

코스타리카,아르헨티나,콜롬비아 그리고 브라질 8개 국가이다. 포루투칼의 호날두는

진작에 짐싸서 자기네 나라로 돌아갔다. 이번 월드컵에서 완전히 맥을 못추더라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솔직히 축구를 잘 모르는 나도 잘생긴 외모 하나로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었다고 해서

유명스타이지 실력으로 말하자면 나머지 유럽의 수많은 축구영웅들과 종이 한장 차이밖에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왕년의 브라질 원조 호나우드랑은 감히 비교조차 안되는

그저 그런 실력임엔 틀림없다.(아니라고 우긴다면 말고...-_-;;)

 

 

 

 

 

 

 

▲ 역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열광하는 것들 보면 백인우월주의 신봉자들 맞다. -_-;;

 

 

 

 

브라질의 원조 호나우드와 현재의 호날두에 대해 방송에서 조차 이 둘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를 계속 범하고 있는데, 사실 '호날두'라고 발음하는게 맞다.

과거 브라질이 포루투칼의 식민지였다지만 'Ronaldo'에 대한 포루투칼식 원어발음은

'호날두'에 가깝고 브라질식 발음으로는 '호나우드'라고 발음하게 된다. 즉, 앞부분 'R'에 대해선

양쪽 국가 모두 'ㅎ'발음에 가깝지만 'L'에 가서는 포루투칼의 경우 그냥 'ㄹ'발음으로 가지만

브라질의 경우 그냥 'ㅜ'발음으로 발음하게 된다. 그래서 브라질식 발음으로는

'호나우드'가 맞고 포루투칼식 발음으로는 '호날두'가 맞게되는 것이다.

 

 

 

 

 

 

 

 

 

 

 

축구를 원래 좋아하는 광팬들이야 진작부터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보면서

호나우드의 존재를 알았겠지만, 내가 이 친구를 알게된건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였다.

당시엔 프랑스를 두고 '아트사커'라고까지 표현하며 지네딘 지단이나 앙리, 프띠 등이 결승전에서

브라질에 호나우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3:0으로 우승을 차지했지만, 토너먼트 내내

사실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선수는 단연 호나우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란한 드리블로 4~5명이 에워싸도 어김없이 돌파해냈고 그 다음엔 폭발적인 스피드로 모든 수비진을

제끼며 골대 앞에서 마지막으로 골키퍼를 농락하기까지 이 신출귀몰하는 귀신같은 축구신동에

놀라지 않을 축구팬들은 없었던 것이다. 지금 다시 보아도 환상 그 자체다.

 

 

 

 

 

▲ 호나우드 전성기 때의 베스트장면 모음(1993년~2011)

 

 

 

 

아마 호나우드를 제대로 알아보는 축구팬들이라면 21세기 두번다시 이런 사커는

두번다시 나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입을 모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메시'가 물론 잘한다는건

알지만... 글쎄 그래도 오늘날 수많은 축구스타들의 발재간이나 드리블 기술들을 보노라면

전부 호나우드를 따라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말이다.

 

 

 

 

 

 

 

 

 

 

 

지난 2002년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 신화를 썼을 때도 브라질에는 호나우드가 있었고

결국 브라질은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21세기에 다시 없을 축구천재 호나우드는 이후 연이은

부상으로 은퇴를 하게된다. 아래는 2008년에 올라왔던 기사내용인데 참고로 보시기 바란다.

 세월이 또 그렇게 흘러 수많은 축구선수들이 지금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활약하고는 있으나

12년전 한일 월드컵 당시만큼 엄청난 축구스타들이 필드를 누비고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아르헨티나의 메시가 있다고는 해도 브라질 축구천재 호나우드 만한

그런 진짜 축구영웅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게 좀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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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기사] 호나우드,무릎부상 선수생활 위기(2008년2월14일.

 

호나우두(32, AC 밀란)가 또 쓰러졌다. 이번에는 선수 생활에 위협을 줄 만한 부상이다.

호나우두는 14일 새벽(한국시간) 스타디오 산 시로에서 열린 07/08 이탈리아 세리에 A 16라운드

리보르노와의 홈 경기에서 교체 투입된지 3분만에 그라운드 위에 눕고 말았다. 후반 14분

호나우두는 오른쪽 측면에서 올라오는 크로스를 따내기 위해 호세 루이스 비디갈과 공중볼 경합을 벌였다.

비디갈은 이 공을 손으로 막아내면서 AC 밀란의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호나우두는 비디갈과 별다른 접촉이 없었음에도 갑자기 비명을 외치면서 쓰러졌고

눈물까지 터트렸다. 이는 마치 8년여 전 라치오와의 코파 이탈리아 경기에서 일어난 일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AC 밀란은 경기가 끝난 뒤 클럽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호나우두의 왼쪽 무릎 슬개건이 완전히

파열됐다"고 발표했다. 호나우두는 지난 1998년과 2000년에도 이와 같은 부상을 당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오른쪽 무릎이었고, 이번에는 왼쪽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이 경우 재활 기간만 해도

최소한 9개월은 필요한 만큼 호나우두는 사실상 은퇴 위기에 놓이게 됐다. 안 그래도 호나우두는

이번 시즌 잦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올 여름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칠 것이라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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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나우드를 회상하는 동영상.

 

 

 

호나우두

(Ronaldo, Ronaldo Luiz Nazario De Lima)
전 축구선수
출생:1976년 9월 22일(브라질)
신체:183cm, 90.5kg
데뷔:1993년 크루제이루 EC 입단
수상:2009년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MVP
2002년 발롱도르(Ballon d’Or)상

 

 

 

 


[경력]

 

 

2011.12 브라질 월드컵 홍보대사

2008.12 ~ 2011.02 SC 코린티안스 (브라질)
2007.01 ~ 2008.06 AC 밀란 (이탈리아)
2006 제18회 독일 월드컵 브라질 국가대표
2002 제17회 한일 월드컵 브라질 국가대표
2002 ~ 2007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2000 유엔개발계획 친선대사
1998 제16회 프랑스 월드컵 브라질 국가대표
1997 ~ 2002 인터밀란 (이탈리아)
1996 ~ 1997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1994 ~ 1996 PSV 에인트호벤 (네덜란드)
1994 제15회 미국 월드컵 브라질 국가대표
1993 남미축구대회 브라질 국가대표
1993 ~ 1994 크루제이루 EC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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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People)/유명인사 2014.05.23 19:09

노무현 서거5주기, 이승환의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뮤직비디오






노무현 서거5주기, 이승환의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뮤직비디오

 

 

가수 이승환이 노무현 서거5주기를 맞아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라는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원래 이 곡은 지난 3월 말에 발표한 11집 '폴 투 플라이(Fall to fly)'

앨범에 수록된 곡이라고 한다. 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참여한 이 노래의 작사는 도종환 시인이,

작곡에는 이승환과 황성제가 공동으로 맡아 11집 앨범 공개 당시 이승환이 직접 이 노래에

대해 돌아가신 노무현 전대통령을 생각하며 부른 헌정곡이라고 밝혀 큰 화제가 된바 있다.

그리고 오늘은 노무현 서거5주기이다.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번에 가수 이승환이 공개한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눈길을 끄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바로 뮤직비디오 마지막에 나오는 애니메이션이다.

故 노무현 전대통령으로 보이는 캐릭터의 뒷모습이 나오는 장면이다. 웹툰작가 강풀이

작화를 맡고 애니메이션 연출은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오성윤 감독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완성했다고 한다. 노래도 노래지만 이 마지막 대목의 애니메이션 속 밀짚모자에

담배를 피우는 캐릭터의 뒷모습은 누가 보아도 노현 전 대통령이다.

 

 

 

 

 

 

 

 

 

오늘 노무현 서거5주기를 맞아 이승환의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는

바로 이 뮤직비디오는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특히나

이승환의 소속사인 드림팩토리 측에서는 애니메이션의 컨셉을 '아버지의 등'으로

설정했다고 하는데 이는 그만큼 권위주의를 타파한 대통령, 진정한 서민의 대통령 등으로

화자되는 故 전 노무현 대통령의 이미지와 상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노무현 서거5주기를 맞이한 오늘,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당신에 대한 그림움이 더더욱 커져만 가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앞서 송강호

주연의 영화 '변호인'이 천만관객을 넘으며 다시금 故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묵직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기도 했지만, 오늘날 역사의 시계바퀴가 거꾸로 돌아가는

행태가 거듭될수록 많은 사람들은 더더욱 더 민주주의의 화신으로 상징되는

故 노무현 전대통령을 떠올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늘 노무현 서거5주기를 맞아 가수 이승환의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뮤직비디오가 봉화마을에서 '노무현 대통령 서거 5주기 공식 추도식'에서 상영되었다.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영상을 통해 이승환의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뮤직비디오를 감상해보시기 바란다.

 

 

 

 

 

▲ 이승환 -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뮤직비디오

 

 

 

그그리고 끝으로 노무현 서거5주기를 맞아 사견을 달자면,

노무현은 100% 자살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세상이 무서운 것이다. 자살이라고...? 훗....씁쓸하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 탄핵사건도 있었고 반대세력에 연일 이리저리 치이던

노무현을 사실 나는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었다. 그의 철학과 신념, 됨됨이야 물론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지나친 자신감과 너무도 낙천적인 대응들에 짜증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를 못잡아먹어 안달나 하던 그 세력들, 눈에 보이던 보이지 않는 세력이던 간에 그들의 실체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노무현은 사라졌다. 제거당한 것이다.

이것이 엄연한 대한민국 정치고 현실이다. 안믿기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주체들의 세상이 되어버린 이 땅에서 참으로 순진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소설같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노무현 서거5주기인 오늘도 세상은 그렇게 웃기게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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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People)/유명인사 2014.04.20 23:08

타이타닉 선장, 캡틴 에드워드 스미스(Captain. Edward Smith) 그리고 개도 먹다버릴 세월호 선장 이준석






타이타닉 선장, 캡틴 에드워드 스미스(Captain. Edward Smith)

그리고 개도 먹다버릴 세월호 선장 이준석

 

 

영화 '타이타닉'을 못 본 사람들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와 운명을 함께 했던 선장의 비장했던 마지막 모습 또한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진한 감동으로 남아있을 텐데, 오늘은 바로 그 타이타닉호의

선장이었던 에드워드 스미스(Captain. Edward Smith)란 분에 대해 언급할까 한다.

영화에서도 보셨겠지만, 그는 전세계에서 배를 모는 모든 선장들에게 있어

전설이나 다름없는 진정한 캡틴이기 때문이다.

 

 

 

 

 

 

 

 

요즘 진도 여객선 침몰 사건으로 연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구조작업과

관련한 상황이 실시간으로 계속 보도되고 있는 가운데 침몰 당시 제일 먼저

도망쳤던 세월호 선장 이준석이란 인간에 대한 고찰이 계속되고 있다.

 

 

 

 

 

 

타이타닉 선장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이 비루한 인간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식을 줄을 모르는데, 사고 직후 구조자들 틈바구니에 껴서 담요를

몸을 덮은 채 선장이 아닌척 하던 그 알량한 모습까지 영상으로 공개된걸 보는 순간

표현 가능한 모든 욕이 쏟아져 나왔었다. 아마 누구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게다가 오늘 저녁 뉴스에서는 해외언론에서 '선장의 명예와 전통을 깨는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는 칼럼내용까지 소개되면서 한 마리의 미꾸라지 같은

인간이 국제적 망신과 함께 국격을 제대로 떨어뜨렸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도

국적을 떠나 전세계 모든 뱃사람들, 특히 세월호 처럼 관광목적의 쿠르즈를

운행하는 선장들로서는 이 어이없고 납득할 수 없는, 선장이라고 불러줄 수도

없는 한 인간의 비루한 행동에 마찬가지로 분노했을 듯 하다.

 

 

 

 

 

 

 

 

 

그런 그가 영화 '타이타닉'을 보기나 했는지, 영화에서 타이타닉 선장은

 승객의 안전을 위해 배의 안전과 책임을 다하고자 어떻게 행동을 했는지 그는 과연

알기나 할까 궁금하다.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선장은 사건이 발생한

지난 16일 침몰 중인 여객선에서 승무원들과 함께 1호로 탈출해 치료를 받았고,

심지어 병원 온돌 침상에서 젖은 돈을 말리고 있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300명에

달하는 어린 청소년과 승객들이 차가운 물 속에서 가족을 떠올리며

살기위해 발버둥 치는 그 순간에 말이다.

 

 

 

 

 

 

 

 

 

 

 

영국 리치필드에 가면 타이타닉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동상 밑에는 이런 말이 써있다고 한다. "영국인 답게 행동하라"(Be British).

평생을 바다에서 배와 함께 인생을 보낸 그가 퇴역을 앞두고 처녀 항해에 나섰던

초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와 함께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며 남긴 말이다.

이 한 마디가 던지는 메세지는 참 우리의 상황과 비교했을 때 감히 비교자체도 못된다.

세월호 선장 이준석은 훗날 감옥에서 뒈지면서 무슨 말을 남길까. 그래도 끝까지 자신은

잘못한게 없다고 할 것인가. 참으로 기가 차서 인간으로서 가져볼 수 있는

이성은 간데 없이 헤아릴 수 없는 쌍욕밖에 안나온다.

 

 

 

 

 

 

 

 

1912년 4월 14일 침몰한 영국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Titanic)의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는 영화에서도 보셨듯이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승객과

함께 했다. 그의 인생 자체가 바다였으며 침몰하는 타이타닉호는 그의 무덤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전세계 항해인들에게 전설이자 배우고 따라야 할 귀감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그래서 영원한 캡틴 에드워드 스미스라 할 수 있다.

 

 

 

 

 

 

 

 

 

 

 

 

저녁 뉴스에서 보니까 해외에서도 세월호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고 사고

규모가 더 크거나 작거나에 상관없이 우리와는 여러모로 다른 그들의 대응요령과

직업윤리의식 그리고 책임을 다하지 못한 선장에 대한 처벌 등이 소개되기도 했는데,

어느 나라의 경우 관제실에서 되돌아 오려는 선장에게 쌍욕까지 해가며 승객을

구하러 되돌아가라 호통치는 장면도 소개되었다. 그리고 이어 세월호 침몰 당시의 교신 내용도

소개되었는데 선장이었던 이준석을 포함해 승무원 대다수가 아마추어였다. 그런 그들에게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의지한 채 바다에 나선것 부터가 잘못이었다.

 

 

 

 

 

 

 

 

 

 

 

 

2012년 1월 이탈리아에서는 호화 유람선이 암초에 부딪혀 좌초되었을 때

프란체스코 세티노 선장의 어이없는 실수로 32명이 숨진 사례가 있다. 무려

4,229명이나 타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경미한 수준이었지만 이탈리아 검찰은 배의

책임자였던 프란체스코 선장에게 형량 2,697년을 구형하기도 했다.


우리의 경우는 침몰한 세월호의 선장에게 몇년을 구형해야 납득이 갈까.

타이타닉 선장 처럼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승객구조에

전력을 다했더라만 한국의 에드워드 스미스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지금으로

봐선 실종자 가족과 사망자 가족들의 끓어오르는 분노에 희생이라도 돼어야 할

판국으로 보인다. 가족들은 지금 정신적 공황상태, 패닉 상태이다. 정부도 병신같이

허접질 하는 판국에 정치인이라는 쓰레기들마져 진도 현장을 찾아 가족들의

울분과 비통함에 위로보다는 휘발류를 끼얹는 꼴을 거듭하고 있다.

 

 

 

 

 

 

 

 

 

서남수 교육부장관이란 자는 그 현장에 가서 가족들이 피끓는 마음으로

찬바닥에 앉아 구조소식을 뜬눈으로 기다리는데 푹신한 상석 깔고 앉아 라면인지

국수인지 처먹고 왔다고 한다. 모 하나 도움 안되는 색히들이 꼭 무슨 일만

터지면 그야말로 유세를 떤다. 어차피 한반도에서 전시상황이 벌어지면 세월호 선장

이준석 처럼 제일 먼저 짐싸서 달아날 종자들 아니던가.

 

이번 사고를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국가비상상황이던 그 어떤 비상상황에서도

상황을 책임져야 할 사람을 제일 먼저 피신시키게 되어있는 모든 메뉴얼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그러면 제2의 이준석, 제3의 이준석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며 국민들에게

최악의 희생을 안겨줄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자들에게서 투철한

직업윤리의식이니 사명감, 희생정신이니를 티끌만치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이타닉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는 그렇게 전세계인의 추앙을 받으며

가장 존경받는 진짜 바다사나이, 전설의 캡틴으로 남았지만, 침몰한 세월호 선장

이준석이는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가장 본받지 말아야 할 부도덕한

선장의 사례로 영원히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선장과 함께 아무것도 한것 없이

살아돌아온 승무원 이 작자들은 오늘 저녁에도 목구멍으로 밥술이 넘어갔나

모르겠다. 뻔뻔한 작자들 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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