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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때리는영화/史劇으로보는 역사

영화 '취화선' 속의 장승업과 갑오 동학혁명, 격동의 조선말 천재화가의 생애

영화 '취화선' 속의 장승업과 갑오 동학혁명,

격동의 조선말 천재화가의 생애

 

 

'취화선'은 2002년 칸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에게 감독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어느덧

10년을 넘긴 영화가 되었는데, 이 영화는 격동의 조선말을 살다간 천재화가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로 개봉당시 썰렁한 극장에서 혼자 본 영화로 기억한다. 개인적으로 미술과는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던지라 누가 등 떠밀지 않아도 꼭 보아야 하는 영화였지만, 당시 모처의 CGV개봉관

안이 그토록 썰렁할 줄은 몰랐다. 역시도 임권택 감독이 칸영화제에서 낭보를 전해오고서

그제서야 극장으로 달려가는 한국이란 나라의 대중들 뒷북은 알아주어야 한다.

 

 

 

 

 

 

 

 

취화선 영화에 나오는 역사적 사실 중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갑오 동학혁명일 것이다.

그리고 올해 2014년은 120년만에 다시 돌아 온 갑오년이다. 즉, 지금으로부터 120년전 그 때에

천재화가 장승업은 소용돌이 치는 조선말의 역사를 처절하게 살다간 산증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1843~1897)을 그렇게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로 최민식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야~이 개자식들아~~!!"라고 외치던 그 목소리에는 당시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양반사회의 위선과 더불어 국운이 급속히 쇄락하는 그 시절에 태어난 천재화가가

할 수 있는 일이란게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갑오 동학혁명이 일어난 때는 1894년, 고종31년이었다. 이듬해 민비가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당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난게 1895년의 일인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 사이

에서는 아직도 '명성왕후'라 칭해야 한다는 쪽과 그저 나라를 망친 '민비'일 뿐이라는 의견이

분분하며 백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역사적 정립이 바로 세워지지 않았다. 하물며 일본을 향해

당당하게 사과를 얻어내기나 했겠는가. 여전히 민비를 직접 죽이는데 사용된 닛뽄도가

일본 어디에 당당히 모셔져 있다고 하는데도 그에 대한 명명백백을 가리려고 힘을 제대로

써보기나 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 칼에는 '여우사냥'이란 글귀가 써있다고 한다.

 

 

 

 

 

▲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서의 민비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그냥 '민비'라고 부른다. 국모로서 일본 낭인에게

참살 당하는 치욕은 참을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진짜로 나라를 망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심지어 뮤지컬을 통해 민비에 대한 미화는 수도 없이 이루어졌다.

그게 민씨 문중의 노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미화시키는 자체부터가 그릇되었다고 본다. 민비가 한 일은 잘라 말해 열강들로 하여금

대놓고 조선을 유린하라고 대문을 활짝 열어준 일 밖에 없다고 평가절하할 뿐이다.

 

 

 

 

 

 

 

 

 

 

영화 취화선 속에도 잠깐 나오지만, 때는 갑오 동학혁명이 일어난 시기였고

이에 당황한 조선의 왕족과 양반들은 모의 끝에 청나라 군과 일본군을 차례로 끌어들여

역사상 최초로 성공할 수도 있던 민중봉기 동학혁명을 완전히 무력화 시켰다. 기껏해야 농기구와

죽창을 들고 전국 단위로 떨쳐일어선 농민들이 우금치(충남 공주)에서 일본군의 기관총 세례에

거의 양민학살 수준으로 죽어나갔다. 우리가 일제시대의 일본만행을 규탄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왕권을 위협하는 농민군이 반란군이라고 뒤짚어 씌워서 그렇지 일본인 혹은 중국인과 같이

타민족에 의해 일방적으로 살해당한건 동학혁명이 더 앞서 일어난 일이다.

 

 

 

 

 

▲ 취화선 예고편(해외버전),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흔히 이라크전에서 1년간 2십만명인가가 죽었다고 하는데 동학혁명은 1년동안

약 4십만명의 조선 백성이 죽었다. 일본군의 무차별 기총소사에 수만명이 그자리에서 쓰러져

죽는다고 상상해 보라. 살아서 도망치던 것까지 끝끈태 뒤를 쫒아 죽이는 장면은 영화 취화선에서

후반부에 장승업이 늙어 추운 어느날 들녘을 걸어가는데서 그대로 살상장면이 펼쳐진다.

10대시절 종로 인사동 어드메에서 외국의 고서적을 둘러보던중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당시의

놀라운 사진들이 적나라하게 찍힌 책자를 얼핏 본적이 있었다.

 

 

 

 

 

 

 

만일 당시 갑오 동학혁명이 성공했더라면, 우리가 그렇게 경외감을 갖고 바라보는 

프랑스혁명에 이어 인류사에 있어 기록할만한 혁명이 일어난 셈이다. 썩어빠진 봉건왕조를

무너뜨리고 지독한 신분제에 의해 착취 당하는 민중이 스스로 봉기에 일궈낸 혁명이

될 뻔 했고, 심지어 러시아 혁명 보다 앞서 일어난 혁명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 "Chihwaseon" (drunk on women and poetry)

 

 

 

또한 동학사상이 만천하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민비는

일본군 청나라군을 닥치는대로 끌어들여 제나라 백성을 마구잡이로 죽이도록 허락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본에게 본인도 살해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거듭 일어난 것이다. 아마도

영화 취화선을 보신 분들은 이런 시대적 상황을 제대로들 알고 보셨을까? 나는 영화 취화선을

보면서 천재화가 장승업의 일대기를 보는 것도 좋았지만, 임권택 감독에 의해 고증을

거치며 그려지는 이러한 시대상을 낱낱이 목격하는 데에도 의미를 두었다.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화가 장승업! 장승업의 여자 '매향'역에 배우 유호정이

나오지만, 매향은 조선말 천주교 신자였다. 취화선에 나오는 장면 중 연이은 천주교 박해

장면도 역사를 모르고 보는 분들은 무슨 일인가 싶었을 것이다. 장승업이 태어난 연도로 추정해

보면 그 장면은 '신유박해'나 '기해박해'도 아니었떤 것 같다. 이후에도 천주교 박해는

계속 되었을 것이고 영화적 설정이 아니었나 짐작해 볼 뿐이다.

 

 

 

 

 

 

 

 

 

영화 취화선에서 그려지는 갑오 동학혁명의 장면들은 결연함을 넘어 안타까움으로

이어진다. 그를 뒤에서 밀어주고 오원(吾園)이라는 호까지 지어주며 개화사상에 운명을 던져야 했던

양반 김병문(안성기 분)의 모습도 숙연한 느낌마져 든다. 갯벌에서 노년에 겨우 만나 서로 부등켜 안고

웃기만 하던 그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임권택 감독 특유의 연출과 정일성 촬영감독이담아내는

조선 팔도 산하의 아름다운 정취 또한 이 영화를 감상하는데 있어 백미로 다가온다. 당시 장승업의

그림 그리는 장면을 대역한 사람은 중앙대학교 김선두 교수로 기억한다.

 

 

 

 

 

 

 

 

 

영화 취화선을 보면서 구지 120년 전 갑오년에 일어났던 동학혁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그저 영화로만 바라보아도 상관은 없겠지만, 역사적 사실과 시대상황을 제대로 알고

영화를 감상한다면 그 느낌은 다르게 다가올 줄로 안다. 그리고 장승업 역의 최민식 씨는

이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로 최고의 영예를 누리기는 했지만, 이 영화 '취화선'에서 그가

내뱉는 거의 모든 대사는 하나하나가 어쩌면 그리도 어록을 적어두어야 할 수준인지 모르겠다.

참고로 조선시대 천재화가 장승업의 일대기를 다룬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의

시나리오는 그 유명한 도올 김용옥 교수가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취화선'을 못보신 분들은 아래에 가셔서 유튜브로 감상하실 수 있다.

화질은 크게 기대할만 하지 않지만 보시는데 지장은 없다.

 

 

 

▶ 유튜브 '취화선' 감상하기

 

 

 

 

 

 

 

 

 

 

 

 

취화선

醉畵仙, Chihwaseon, 2002

한국
120분
개봉:2002년5월10일

감독:임권택

최민식(장승업),유호정(매향),안성기(김병문),

김여진(진홍),손예진(소운).정태우(어린 승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