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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팝의 르네상스 2014.10.29 22:19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 기타 하나로 팝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그룹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 기타 하나로 팝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그룹

 

80년대 팝송은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앨범이 문득 생각나 한 곡을 꺼내 들어도

정말 이 때만큼 팝의 전성기는 없었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된다. 마이클 잭슨, 마돈나 처럼

대중적으로 아주 잘 알려는 팝스타 말고도 다이어 스트레이츠 처럼 세월이 흘러도 변치않을 불후의

명곡을 만들어낸 팝 아티스트들이 넘쳐나던 팝의 중흥기, 팝의 르네상스 시기였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Brothe In Arms'앨범을 테이프로

마이마이에 넣어 늘어질 때까지 듣던 그 시절이 어느덧 30년 전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_-;;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음악을 처음 들었던건 아마도 1985년 경이었을 것이다.

'머니 포 낫씽(Money For Nothing)을 처음 들어 알게 되었는데 이 곡은 다이어스트레이츠의

다섯번째 앨범 'Brother In Arms'에 수록되었던 곡이다. 밴드의 앨범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앨범차트 정상에 올라 9주 동안 머물렀고, 멀티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또 1985년에 영국에서
석 달 동안 차트 1위에 머물렀고,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으며, 1백만 장이 넘게
팔린 첫 번째 CD로 기록되었다. 바로 이 앨범 안에 들어있던 곡 중에 'So Far Away'야말로

가장 좋아하는 곡이자 가장 다이어 스트레이츠 다운 곡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 다이어 스트레이츠- 'So Far Away'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1977년 조직된 영국 출신의 4인조 그룹이다.
흑인의 블루스에서 펑크 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 형태를 연주하는 뉴 웨이브 그룹

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보컬이었던 마크 노플러(Mark Knopfler)는 원래 신문사 기자로 활약

했었다고 한다.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던 마크 노플러의 동생 데이비드 노플러(David Knopfler), 

베이시스트 존 일슬리(John Illsley), 그리고 드러머 픽 와이덜스(Pick Withers)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룹 결성 초기에는 런던에 있는 무명 클럽에서 연주를 하면서,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DJ 겸, 팝 컬럼니스트인 챨리 질레트에게 자신들의 곡을 보내 방송에 소개하기도 했다.

 

 

 

▲ 다이어 스트레이츠를 이끌던 마크 노플러(Mark Freuder Knopfler)

 

엄밀히 말하자면 펑크 뮤지션이 아니었던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당시 펑크와 뉴웨이브

쪽에 가까웠고 영국 미디어와 차트를 지배하던 1978년 당시 이들의 음악풍은 낯설었다.

때문에 이들이 추구하고자 하던 음악의 색깔은 쉽게 미디어 쪽에서 받아들여지질 못했었다.

더군다나 미국 블루스 뮤지션에게 영향받은 이 4인조 그룹을 반기는 이들은 없었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이들의 음악을 알아본 인물은 런던의 방송인 찰리 질레트였는데, 그는

다이어 스트레이츠를 자신의 쇼에 출연시켰던 적이 있다. 일회성으로 말이다.

 

 

 

▲ 다이어스트레이츠의 '머니 포 낫씽(Dire Straits - Money For Nothing)

1985년 당시만 해도 MTV에서는 매우 획기적인 애니메이션이었다. -_-;;

 

그리고 1978년에 첫 번째 싱글 ‘Sultans Of Swing’을 영국에서 발표했지만, 나이많은

뮤지션으로 구성된 밴드 이야기를 그린 이 싱글은 그저 그런 주목을 끄는 데 그쳤다.
워너 브러더스가 스트레이츠와 계약을 체결하고, 미국에서 이 노래가 차트 5위까지 오르는

것을 본 후에야 영국은 자신들이 큰 실수를 저질렀음을 알아차렸다. 싱글을 발표하고 6개월이

지나서야 앨범이 공개되었고, 영국 앨범차트 5위에 올랐다. 미국에서는 차트 3위까지 오르면서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출발은 매끄럽지 못했지만, 1980년대 초반부터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밴드가 되는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Why Worry'

 

마크 노플러의 독특한 기타 연주를 중심으로 한 깨끗하고 스트레이트한 사운드를
특징으로 삼고 있는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곡들은 한 마디로 영혼을 울린다고 말해야 할 듯

하다. 기본기가 탄탄할 뿐만 아니라 이들이 창조해내는 선율은 특유의 일렉트로닉

기타연주와 더불어 80년대를 한껏 풍미하던 그룹으로 기억되고 있다. 아마도 80년대 팝에

심취했던 분들이라면 오램난에 듣는 이들의 대표적인 곡 3곡을 통해 또 한번

80년대 팝송에 대한 감회와 향수에 젖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이어 스트레이트
(Dire Straits)
가수
멤버:마크 노플러(Mark Knopfler, 보컬, 기타),
알란 클락(Alan Clark, 키보드), 존 일슬리(John Illsley, 베이스),
가이 플레처(Guy Fletcher, 키보드, 보컬)
데뷔:1978년 1집 앨범 [Dire Straits]

 

 

 

 

 

 

 

 

 

마크 노플러
(Mark Freuder Knopfler)
가수 출생1949년 8월 12일(영국)
학력리즈대학교 영문학 학사
데뷔1978년 다이어 스트레이츠 1집 앨범 [Dire Straits]
경력1978~1995 밴드 '다이어 스트레이츠' 멤버
영국 요크셔이브닝포스트 견습기자

 

 

 

  

 

Brothers In Arms

Dire straits 5th Album, (1985)

 

동명의 데뷔앨범을 발표하고 6년, 밴드의 라인업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남아있는 원래 멤버는 리더 마크 노플러와 베이시스트 존 일슬리뿐이었다. 이렇게 멤버가

바뀐 상황이라 그룹의 페르소나가 바뀌는 것도 당연했다. 두 명의 키보디스트 앨런 클락과

가이 플레처가 노플러의 동생이자 리듬 기타리스트인 데이빗의 자리를 대신했고,

웨일스 출신의 드러머 테리 윌리엄스는 픽 위더스로 교체되었다.

 

 

 

 

'So Far Away', 'Money For Nothing', 'Walk Of Life'와 'Brothers In Arms'는
 영국과 미국에서 히트 싱글이 되었고, 특히 스팅과 함께 작업한 곡으로 강렬한 리프를 담은
'Money For Nothing'은 가장 큰 히트곡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MTV를 겨냥한 최첨단 애니메이션

비디오가 돋보였던 이 곡은 미국차트 정상에 오른 첫 번째 싱글이 되었다. 이 노래가 MTV를

빈정대는 가사를 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타이틀트랙은 앨범의

평균치보다 덜 무모하고 더 이상적인 곡으로, 전쟁 도발자에 관한 반성적인 명상이

마크 노플러의 절제된 기타로 소박하게 반주되는 곡이다.

 

 

 


'Brother In Arms'는 높은 이상과 소박한 제작과정을 거쳐 만들어낸 앨범으로,
누구나 다이어 스트레이츠가 전성기에 만든 앨범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이후에 발표하는

앨범은 여기서 보여준 마술이 부족했다. 마크 노플러는 1990년대에  솔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이렇게 시간을 뛰어넘는 앨범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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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팝의 르네상스 2014.10.11 10:37

수도 에코(Pseudo Echo)의 '펑키타운(Funky Town)'






수도 에코(Pseudo Echo)의 '펑키타운(Funky Town)',

 

 

'수도 에코'라는 그룹은 몰라도 '펑키타운'이라는 곡이 있었다는 사실은 기억할거라 본다.

1980년대를 수놓았던 수많은 아티스트들을 일일히 다 기억하기도 쉽지않은데 우연한 기회에 이처럼

오랫동안 기억에서 잠시 사라졌던 '수도 에코'의 펑키타운'이 오늘 소개할 추억의 80년대 팝송으로 선정

되었다. 이들은 호주 출신 밴드인데 80년대 팝을 이야기할 때면 언제나 강조하게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오직 그들만의 창작곡'이라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수없이 많은 실력자들이 쟁쟁한 노래실력과 비주얼까지 강조하며

당시보다는 훨씬 여러면에서 시청각을 모두 황홀할 정도로 여러면에서 세련되게 만족을 주고는

있지만, 왠지 80년대 처럼 진짜 '아티스트'는 그리 흔치 않다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오늘 소개하려는

수도 에코의 '펑키카운'은 사실 그들의 창작곡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곡을 리메이크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여느 곡들보다 훨씬 더 그들을 기억하게끔 만들어준 대표곡으로 '펑키타운'을

성공의 발판으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일단 감상부터 해보시기 바란다.

 

 

 

 

 

▲ 수도 에코(Pseudo Echo)의 'Funky Town'(1986)

 

 

 

 

 

 

 

수도 에코의 '펑키타운'은 사실 미국의 디스코 밴드 '립스 잉크(Lipps, Inc.)'가 1980년에

발표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던 히트 곡을 록 버전으로 편곡한  것이었다. 요즘말로

리메이크 곡에 해당하는 'Funky Town'은 그저 막간을 이용한 싱글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보란듯이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6위에 올랐고 영국의 싱글 차트에서도 8위까지 진출하는

대히트를 거둔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도 에코의 최대 성공작이 되었던 것이다.

 

 

 

 

 

 

 

 

호주 출신의 뉴 로맨틱 밴드 '수도 에코(Pseudo Echo)'는 다른 80년대 팝아티스트들이

으례 그러햇듯이 학교 친구 사이인 '브라이언 캔햄'과 '피에르 지글리오티'의 주도 하에 1982년

결성되었다. 수도 에코의 결성 이전에 두 사람은 이미 같은 밴드에서 5년간 호흡을 맞춰 왔던 사이로

'듀란 듀란(Duran Duran)'과 '스팬다우 발레(Spandau Ballet)' 같은 밴드에 의해서 뉴 로맨틱시대가

도래하자 그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 뉴웨이브 음악 지향의 밴드인 수도 에코를

결성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1982년 수도 에코는 토니 러톤까지 팀에 합류시키면서 3인조 밴드가 되었고 이 때부터

지금의 '수도 에코'라는 그룹명을 가지게 된것인데, 신디사이저의 사용 설명서에 적혀 있던

수도 에코 머신(Pseudo Echo Machine)이라는 단어를 발견하면서 즉석에서 밴드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우연한 기회에 당시 호주를 대표하는 음악 프로그램인 카운트다운(Countdown)의

담당자 눈에 띄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할 수 있는 행운을 거머쥐게 된다.

 

 

 

 

 

 

 

 

 

수도 에코의 데뷔 싱글은 그해 11월에 호주 싱글 차트에서 3위 까지 진출하는 성공을

거두었으며, 1984년 5월에 발표된 수도 에코의 데뷔 음반 'Autumnal Park'는 호주의 앨범 차트에서

10위 까지 진출하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이후 팀 멤버의 잦은 변화와 탈퇴 등이 번복되며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우여곡절 끝에 1986년 1월 수도 에코의 두번째 음반은 호주 앨범 차트 10위권에

진입하면서 첫번째 음반에 이어 두번째 음반 까지 앨범 차트의 10위권에 진출하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바로 이 무렵 새로운 싱글 'Funky Town'을 발표한 것인데, 전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빅히트를 기록하게 되며 세계적인 명성을 수도 에코에게 안겨주게 되었다.

 

 

 

 

 

 

 

 

 

 

수도 에코

(Pseudo Echo)

멤버

브라이언 캔함(Brian Canham, 보컬/기타),
피에르 피에르(Pierre Pierre, 베이스), 대런 다니엘슨(Darren Danielson),
벤 그레이슨(Ben Grayson)
데뷔1983년 싱글 앨범 'Listenning'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아래 사진처럼 '조기축구회' 아저씨들 처럼 변모한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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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팝의 르네상스 2014.08.27 23:25

그룹 허트(Heart)의 ALONE, 이 가을에 들어줄만한 80년대 팝송






그룹 허트(Heart)의 ALONE, 이 가을에 들어줄만한 80년대 팝송

 

 

80년대 팝송은 참 좋은 곡들이 많았다. 오늘 짧게 소개하는 그룹

허트(Heart)의 'Alone' 역시 1987년 곡으로 여전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곡이다. 어느덧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30년에서 3년 모자란 27년전

노래가 되어버렸다. 그때는 참 스모키하게 짙은 화장에 펑키한 패션 그리고 야성진

창법과 기타를 연주하는 여성보컬의 모습이 그렇게 멋져보였었다.

 

 

 

 

 

 

 

 

 

요즘처럼 넘치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 딱히 어떤 것이 좋다라고

말하기에도 그렇고 무작정 트랜드를 따라가기에도 그런 때에 오래전 들었던

80년대 팝송은 이따금 신선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오늘 소개하는

허트의 'ALONE'역시 그런 의미에서 다가오는 가을 꼭 한번쯤 들어줄만한 곡으로

전혀 손색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단 감상부터 해보시기 바란다.

 

 

 

 

 

 

▲ HEART - ALONE (1987) MV

 

 

 

 

그룹 허트는 1963년 Steeve Fossen과 Roger, Mike Fisher 형제가 록그룹

'Army'를 결성하면서 이 세상에 처음 등장했다. 그러던 것이 70년대로 넘어오면서 이름을

'White Heart'로 바꾸었다가 윌슨 자매(Ann Wilson과 Nany Wilson)의 합류 이후

본격적으로 대중들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록그룹으로 성장해 나갔다.

 

 

 

 

 

 

 

 

 

 

 

지금처럼 이들이 그룹이름을 최종적으로 'Heart'로 바꾸어 완전하게 자리잡은건

1977년 6인조 밴드로 그룹을 재구성하면서부터 였다. 그리고 이들의 첫번째 공식앨범

'Dreamboat Annie' 이후 놀라운 판매고와 함께 인기 그룹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그리고 여러 우여곡절을 겪던 끝에 이들 그룹을 내가 처음 알게된 것은

1987년 그 무렵 'ALONE'이란 곡을 통해서였다.

 

 

 

 

 

 

 

 

 

 

 

가을에 참 듣기 좋은 이 곡을 당시 10대시절에 센티하게 즐겼던것 같다.

오랜만에 그룹 'HEART'의 'ALONE'을 감상해보시기 바란다. 참 오랜만에 다시

들으면서 요즘 이마만큼 파워풀한 가창력과 더불어 전율하도록 감성을

전달해 줄 수 있는 뮤지션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다.

 

 

 

 

 

 

▲ 하트(HEART)의 ALONE(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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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팝의 르네상스 2014.05.13 23:09

브라이언 아담스(Bryan Adams)의 해븐(Heaven), 요즘같은 때 다시들어보는 80년대 팝송






브라이언 아담스(Bryan Adams)의 해븐(Heaven),

요즘같은 때 다시들어보는 80년대 팝송

 

 

브라이언 아담스Bryan Adams)에 대한 기억은 80년대 초반 굉장히 호소력

깊은 목소리로 영혼을 울리는 기타연주와 목소리로 Heaven을 불렀던 그 때의 모습이

여전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빛바랜 청바지 스타일로 우수 섞인 목소리로,

 거칠고도 호소력 짙은 사운드를 구사해내는 가수로 잘 알려졌던 그가 남긴

이 불후의 명곡 'Heaven'은 여전히 30여년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여전히 기억되고 있는 최고의 명곡이라 할 수 있겠다.

 

 

 

 

 

 

 

브라이언 아담스의 'Heaven'이란 곡은 노랫말로 보면 사실 요즘의

상황과는 좀 무관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의 대한민국이 온통 세월호 참사로 슬픔에

잠겨있는 속에서 불의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난 수많은 영혼들을 기리며

들어볼만한 곡이 뭐가 있을까 싶다가 오랜만에 다시 듣게 된 곡이다.

 

 

 

 

 

 

 

▲ 브라이언 아담스(Bryan Adams)- Heaven

 

 

 

노래를 들으면서도 과연 '천국'이란 있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데,

왜 그토록 누구나 가고싶어하고 꿈꾸는 천국이란게 있다면 꼭 가엾은 영혼들을

이런식으로 거두어야하나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 수많은

어린학생들과 어린 딸을 둔 한 집안의 가장, 엄마아빠 등등...

수많은 영혼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목숨을 거두어야 했을까. 이상하게도 오늘은

브라이언 아담스의 Heaven을 들으면서 수많은 의문이 꼬리를 문다.

 

 

 

 

 

 

 

 

 

 

 

세월호 참사는 확실한 인재에 의한 사고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깝게

희생되었는데, 이 사고를 두고도 슬픔에 먹칠을 하고 희화하 하며 욕보이는

자들이 많은데, 하느님은 그렇게까지 그들의 악의어린 말과 행동에 한없이

관대하면서 가엾은 자들을 어찌 그리 한꺼번에 데려갈 수 있는 것인지...

종교계는 희안하게도 이번 세월호 참사에 지독하게도 조용한 것도

개인적으로는 너무도 신기하기만 하다.

 

 

 

 

 

 

 

 

 

 

 

 

 

 

 

 

 

 

 

어쨌든, 오늘은 80년대를 대표하는 팝송 중에서도 오랜만에

요즘의 상황과 걸맞는지는 몰라도 많은 생각들을 갖게 해준 곡으로

브라이언 아담스의 'Heaven'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노래를 듣는 동안 만큼만이라도 이번 참사로 희생된 수많은 영혼들이

꼭 '천국'이라고 하는 단어의 그곳이 아니더라도 부디 좋은 세상으로

이승에서의 짐을 내려놓고 가벼이 떠나기를 바래볼 따름이다.*

 

 

 

 

 

 

 

 

브라이언 아담스
(Bryan Adams, Bryan Guy Adams)
가수
출생:1959년 11월 5일(캐나다)
신체:173cm
가족:배우자 앨리샤 그리멀디, 딸 버니, 룰라 로지리아
데뷔:1980년 1집 앨범 [Bryan Adams]
수상:1991년 제34회 그래미 어워드 영화 및 TV부문 최우수 노래상

 

 

 

 

 

 

 

브라이언 아담스(Bryan Adams)는 1959년 11월, 캐나다 남부에 있는

온타리오주의 킹스톤에서 영국계의 부모로부터 출생하였다. 그는 15세 때 캐나다의

남서부에 있는 브리티쉬 컬럼비아주에 정착할 때까지 영국, 포르투칼,

이스라엘 등지에서 살았다. 16세 때부터 클럽가의 그룹에서 기타를 연주하였는데,

그러던 중 드러머 짐 밸런스를 만나 함께 작곡 생활을 하게 된다. 이 두 사람은

79년 데모 테이프를 공동으로 제작하여 캐나다의 A & M 레코드사를 찾게 되었고,

이 테이프를 들은 레코드사 측은 이들과 계약을 맺게 된다. 그리하여 80년 2월에

솔로앨범 'Bryan Adams'의 출반을 보게 된다.

 

그후 80년 6월, 두번째 앨범인 'You Want It-You Got It'의 출반과
83년 1월에 세번째 앨범 'Cuts Like A Knife'의 출반을 갖게 되는데, 그는
이 앨범의 싱글 'Straight From The Heart'을 빌보드지 10위를 기록하면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나게 되었다. 아울러 'Cuts Like A Knife'는 플래티넘을 기록한다.
꾸준히 정진의 정진을 거듭해가며 브라이언 아담스는 'Heaven'이 담긴
오리지날 사운드 트랙 앨범 'A Night In Heaven'을 내놓았고,

83년에는 주노(Juno)상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는 다시 84년 11월, 네번째 앨범 'Reckless'의 출반을 보게 된다.

또한 티나 터너와의 공연도 펼쳐 그의 불뿜는 듯한 힘을 과시했으며, 티나 터너와

'It's Only Love'를 듀엣으로 녹음하기도 했다. 'Heaven, 'Run To You', 'Summer of ’69',

'One Night Love Affair' 등을 계속 챠트에 올리며, 작곡과 작사, 노래 등

다재다능한 그의 창조력을 표출해내는 브라이언 아담스는 국내에서도

높은 호응을 얻은바 있는 전설의 아티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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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팝의 르네상스 2014.03.03 15:09

유럽 파이널 카운트다운, 1986 발생한 챌린저호 폭발사고에 대한 추모곡






유럽 파이널 카운트다운, 1986 발생한 챌린저호 폭발사고에 대한 추모곡

 

 

유럽 파이널 카운트다운 은 록음악을 좋아하는 매니아들 사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불후의 명곡이기도 하겠지만, 음악적 완성도나 유럽이라는 밴드의 음악성을 논하기에 앞서

1986년 발생했던 불운의 챌린저호 폭발사고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인류의 우주탐사, 우주에

대한 위대한 도전에 있어 어쩌면 한번쯤 거쳐가야 할  관문이었을지도 모를 이 사건은 80년대

최고의 록밴드 중 하나인 유럽(Europe)에 의해 'The Final Countdown'이라는 추모곡으로

우주개발의 역사와 더불어 대중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우리네 상식으로는 어떻게 유럽의 파이널 카운트다운이란 곡이 추모곡이라

할 수 있을까 의아할 수도 있다. 록음악에 대한 선입견이나 상식으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챌린저호의 예기치 않은 사고는 불운했어도 인류가 숙원하는 

우주로의 원대한 도약과 뜻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겠다. 유럽의 파이널 카운트다운 음악은

그래서 들을 때 마다 당시의 챌린저호 사고장면과 더불어 이 우주선에 탑승해 평생을 꿈꾸던

우주인에 대한 꿈을 막 이루려했던 우주인들의 숭고한 넋을 기려보게 된다.

 

 

 

 

 

 

 

 

유럽 파이널 카운트다운은 신나는 신디사이저와 더불어 파워풀한 록 특유의 힘이

물씬 넘치는 음악에 누구나 쉽게 열광할 수도 있지만, 보컬인 조이 템페스트(Joey Tempest)의

매력적이면서도 애절한 창법에 힘입어 챌린저호에 대한 꿈을 온몸으로 느껴볼 수 있게 된다.

특히 도입부는 노래제목 그대로 마지막 카운트타운이 될 수도 있을 비장함과 웅장함이 서려있는데

그룹 '유럽'의 음악이 으례 그렇기도 하지만, 이내 특유의 박력있는 록 사운드와 더불어 마치

챌리저호가 불의의 사고로 이루지 못한 우주로의 영원한 도약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거침없이

시원한 멜로디를 뿜어내고 있다. 마치 그들을 대신해 록 음악으로 시원스레 그들의

넋이라도 우주를 향해 쏘아올리듯 격정적인 음악으로 승화된 곡이라 할 수 있겠다.

 

 

 

 

 

 

 

 

 

챌린저호와 승무원들이 못다한 꿈과 한을 대신하듯 유럽의 파이널 카운트다운은

이처럼 열기를 가득 뿜어내며 가슴뭉클함마져 전달하고 있는데, 이 음악은 정말 심장을

터뜨릴만큼 강력한 사운드 아래서 듣다보면 누구에게나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발견하게 되는 진정한 록 음악이라는 발견을 하게 된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만큼

살아숨쉬는 영혼이 담긴 진정한 록 음악이라 할 수 있겠다.

 

 

 

 

▲ 유럽 파이널 카운트다운(The Final Countdown)

 

 

 

 

 

 

 

유럽의 파이널 카운트다운은 이처럼 챌린저호를 기리며 만든 추모곡이지만,

록 음악 특유의 색은 최대한 살려내면서도 불의의 사고와 사망한 승무원들에 대한 세계적인

애도물결을 이끌었다. 좀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이건 거의 일종의 '살풀이'수준이란 생각

마져 든다. 우리나라식으로 표현하자면 씻김굿과도 같은 의미가 담겼다고 할 정도다.

 

 

 

 

 

 

 

 

 

챌린저호의 사고는 그랬다. 1983년 4월 1차 비행에 이어 같은 해 6월 2차 비행에서

미국 최초로 여성인 샐리 라이드가 탑승해 화제가 된 이후 1986년 1월 28일 또 한번의 우주여행을

앞둔 챌린저호가 플로리다 주의 케이프커내버럴 기지에서 발사된 후 73초 만에 공중 폭발한 것이다.

선장 프란시스 스코비를 포함한 승무원 7명 전원이 사망했다. 승무원 중에는 최초의 민간인

탑승으로 화제를 모았던 민간 우주 비행사 제1호인 고교 교사 크리스타 매콜리프

(Sharon Christa Corrigan McAuliffe, 1948.9.2~1986.1.28)도 포함되어 있었다.

 

 

 

 

 

 

 

 

 

챌린저호가 폭발하는 순간의 극적인 모습은 TV방송으로 실황 중계되어 그 충격과
비극성을 더해 주었다.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설치된 대통령조사위원회는 오른쪽 고체연료
로켓 이음새 부분의 결함으로 발표하였으나 과학기술을 과신한 인재라는 측면도 뒤늦게 드러나
챌린저호 사건은 전 인류에 커다란 경종을 울려 주었다. 이 사고로 미국의 유인 우주왕복선

계획이 막대한 차질을 빚었고, 이후 발사계획은 대폭 미루어졌다가 사고 후 2년 9개월 만인

1988년 9월 29일 우주왕복선 비행이 디스커버리호에 의해 재개됐다.

 

 

 

 

 

 ▲ 1986년 1월 28일 우주왕복선 챌린저 폭발 사고 영상

 

 

 

 

 

 

 

 

위의 영상은 1986년 챌린저호 사고 당시 동영상이다. 이륙 후 73초만에 폭발로 이어진다.

바로 이런 생생한 장면이 생방송으로 미국 전역에 방송이 되고 있었고 폭발과 화염에 뒤덮히는 장면은

우주비행사의 가족으로 보이는 관계자들의 절규로 이어진다. "Oh my God~!!" 처음엔 설마

믿겨지지 않는 이 모습에 망연자실하는듯 했지만 이내 현장은 울음바다로 변한다.

 

 

 

 

 

 

 

 

자식이 저 비행선에 타고 있었는데 지켜보는 노부부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우주개발 역사에 있어 최악의 참사로 남은챌린저호 폭발사고는 그렇게 오래도록

전세계인들을 충격과 슬픔에 젖게 만들었고 애도 기간 또한 꽤 오래 이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로 이런 때에 유럽의 파이널 카운트다운은 전지구적 슬픔과 비통함을 달래줄 수 있는

80년대 대표적 록 음악의 하나로 우리곁에 다가왔던 것이다.

 

 

  

 

 

 

 

 

유럽

(Europe)
스웨덴의 록 밴드
멤버

Joey Tempest(보컬), John Norum(기타), John Leven(베이스),

Mic Michaeli(키보드), Ian Haugland(드럼)
데뷔:1983년 1집 앨범 'Europe'
경력:1991 Metallica와 토쿄 돔 투어
1988 Bon Jovi, Skid Row, Vixen와 미국 투어
1985 앨범 판매 소득 이디오피아 기증
1982 Swedish rock talent contest 'Best Lead Singer', 'Best Guitarist'

 

 

 

 

▲ Europe - The Final Countdown (Live)

 


그룹 유럽은 파이널 카운트다운을 통해 그렇게 명실상부 최고의 록 밴드로 거듭났다.

이처럼 1982년 결성된 스웨덴 출신의 5인조 록 그룹 유럽에게도 초창기에는 우상이라 할 수 있는

록 그룹들이있었으며, Rainbow, U.F.O, LedZeppelin, Deep Purple 등이 바로 그들이 추고하고자 했던
록그룹이었던만큼 초기 음악적 성향은 음악 스타일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다고 한다.

 

 

 

 

 

 

 

 

처음엔 스웨덴 아마추어 록 그룹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1983년 데뷔앨범의

출반기회를 잡게 되었는데, 이게 바로 그들의 데뷔앨범인 '유럽(Europe)'이다. 그리고 1984년

'Wings of tomorrow' 를 공개하면서 세계시장에 알려지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그들에게 평생의 최대

히트곡이었던 'The Final Countdown'은 1986년 챌린저호의 폭발사고와 더불어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된다. 추모곡이기도 했던 이 곡 하나만으로도 플래티넘 앨범에 기록됨 550만장이라는 판매고와

함께 전세계 차트를 누비며 이들의 존재를 일거에 널리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멜로디컬 헤비메틀의 대표적인 밴드인 유럽은 북유럽 특유의 애수와 서정이 깃든

멜로디컬한 음들을 잘 뽑아내는 것으로 유명한데, 보컬인 조이 템페스트(Joey Tempest)의

애절한 목소리와 더불어 진가를 발휘한다. 강한 비트와 경쾌함 속에서 때로는 아픔답고 때로는

구슬픈 메틀을 연주해 The Final Countdown,open your herat, carrie등의 곡들을

연이어 히트시켰다. 아래는 이들의 또다른 대표곡 'Carrie'다.

 

 

 

 

▲ Europe - Carrie

 

 

 

그러나 87년 말부터 그룹 '유럽'은 내부 분열로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기타리스트 존 노럼이

그룹을 탈퇴하고 솔로로 전향해버리며 위기를 겪기도 하낟. 하지만 마르셀로를 새로 영입해 만든

4집 'Out of this world' 앨범은 플래티넘을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 91년 5집 앨범 'Prisoners in

Paradise'를 공개하며 하드록을 구사하는 등 새로이 변모된 또다른 유럽의 사운드를 들려주기도

하며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어쨌든 유럽에게 있어 챌린저호 사건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었으며 이들이 부른 'The Final Countdown'은 불후의 명곡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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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팝의 르네상스 2013.10.09 17:33

리말(Limahl)이 부른 영화 '네버엔딩스토리'(The NeverEnding Story) 주제곡






리말(Limahl)이 부른 영화 '네버엔딩스토리'(The NeverEnding Story) 주제곡

 

리말(Limahl)이란 가수는 좀 생소해도 '네버엔딩스토리'란 영화가 있었다는 사실과

80년대를 풍미했던 팝송 중에 영화 '네버엔딩스토리'와 동명의 제목으로 OST 주제곡이 있었다는

사실은 다들 알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적어도 80년대를 지나오면서 팝송 꽤나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틀림없이 리말이 불렀던 이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멜로디 자체도 독특하고 창법도 독특하고

영화 주제만큼이나도 매우 판타스틱한 분위기가 넘쳐나는 그런 80년대 팝송이다.

 

 

 

 

80년대 팝송을 세월이 흘러 다시 듣다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처럼 오디션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세상을 보노라면 대게의 노래들에 '개성'과 '영혼'이 빠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물론

부정하는 분들도 매우 많겠지만) 정말 그렇다. 음악에도 다양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적어도 80년대 팝의 르네상스 시절과 비교해 볼 때 특히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각각의 노래와 선율 등은 서로를 의식하고 서로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크게 다를 것 없이 그만그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나 소속사 등과 같은 '업체'(?)를

통해 음악이 생산되다보니 모험보다는 안정을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상업적인 것들에

우선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유행에 편승해 대중들이 무난하다고

느끼거나 이런게 대세라고 하는 쟝르에 연연해 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소개하는 리말이 아니더라도 80년대 팝송만 들어보아도 굉장히 많은 뮤지션들이 어디에도 국한되지 않는

자기만의 독특한 색채를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떻게 이런 선율을 만들어냈을까

싶을 정도로 그들은 정말 엄청난 다양함 속에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을 담아 세상에 없는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쏟아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그냥 뮤지션이 아니라

아티스트라고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 당시 그들은 정말 그렇게 달랐다.

 

 

 

▲ 리말(Limahl)이 부른 영화 '네버엔딩스토리'의 주제곡

 

영화 네버엔딩스토리의 주제곡으로 리말이 부른 동명의 주제곡 또한 어디에도 없는

아주 독특하면서도 영화적 특성을 잘 담아냈다고 보여진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80년대 팝송,

'네버엔딩스토리' 언제 들어도 똑같은 판타지가 느껴지는 이 곡에 그래서 찬사를 보낸다. 물론 당시

1984년에 구 서독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오늘날의 영화특수효과와 비교해보면 투박하고 세련되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음악만큼은 무려 30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음에도 느껴지는 그 감흥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바로 이런게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변하지 않는 영원함을 그려낼 수 있는 그런 것이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다시 화자되어질 수 있는 예술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80년대 팝송을 부르던

그들을 그냥 뮤지션이 아닌 아티스트라고 부르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해 본다.

 

 

 

 

 

 

 

 

리말
(Christopher Hamill)
가수
출생1958년 12월 19일(영국)
소속그룹카자구구
데뷔1983년 카자구구 싱글 앨범 'Too Shy'
경력1981~1983 카자구구 보컬리스트

 

 

 

 

네버엔딩 스토리
The NeverEnding Story, 1984

독일(서독)
94분
1988.07.16 개봉

감독: 볼프강 페터젠

노아 헤서웨이(아트레유), 바렛 올리버(바스티안)


어머니가 돌아가신 바스티안(Bastian: 바렛 올리버 분)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몽상을 좋아하는

국민학생이다. 등교길에 못된 아이들에게 시달리게 되자 어느 서점에 숨게 됐는데 거기서 '끝없는 이야기

(The Neverending Story)'라는 아주 이상한 책을 발견하게 된다. 바스티안은 그 책을 가지고 나와

학교 다락에서 읽기 시작한다. '환타젠'이라는 환상의 세계에 나씽이라는 괴물에 의해 점차 호수와 산들이

하루 아침에 없어지고 있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수 많은 종족들이 공포에 떨고 있고, 이것을 여왕

'천진한 소녀'에게 보고키 위해 요귀와 난쟁이가 길을 떠난다. 하지만 여왕은 이름 모를 병에 죽어가고

있는데, 여왕의 병을 고칠 방법을 찾기 위해 소년 아트레이유(Atreyu: 노아 해서웨이 분)가 단신으로

구세주를 찾아 기나긴 여행길에 오른다. 근심의 늪에서 애마 알텍스도 잃고, 펠콘(Falkor)이라는 행운의 용을

타고 마침내 거울문에 당도한다. 그곳에는 진실된 인간의 아이 바로 책을 읽고 있는 바스티안의 모습이

비친다. 그리고 여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인간 세상의 아이가 여왕의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어야 된다는 비법을 알게 된다.

 

 

 


  아트레유는 환타젠을 구할 수 있는 인간의 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환상의 나라의 끝으로

날아가지만 폭풍에 휘말려 펠콘에서 떨어진다. 아트레유는 동굴 속에서 나씽의 부하 괴물을 처치하지만

결국 환타젠을 구할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주에 떠있는 산산히 부서진 환타젠의 파편 속에서

여왕이 있는 곳을 발견하고 돌아온다. 하지만 여왕은 웃으면서 그가 찾고 있는 인간의 아이가 다름 아닌

바스티안이라고 말해준다. 믿기지 않던 바스티안은 결국 우레가 치는 창문 속으로 여왕의 새 이름을 외친다.

이어 펠콘을 탄 바스티안은 소생된 환상의 나라를 돌아서 현실의 세계로 와 불량배를 혼내준다.

소년의 새로운 모험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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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팝의 르네상스 2013.10.03 19:52

샤데이(Sade), 80년대 감각적인 재즈풍의 팝송 '스무스 오퍼레이터(Smooth Operator)'






샤데이(Sade), 80년대 감각적인 재즈풍의 팝송

'스무스 오퍼레이터(Smooth Operator)'

 

'샤데이'는 냉정하게 말해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광범위 어필할만한 그런 팝스타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샤데이가 80년대 대중들의 기억 속에 남긴 대표곡을 하나 꼽자면 그건

바로 '스무스 오퍼레이터(Smooth Operator)'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팝스타이기는 하지만 팝송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기억에 가물가물할지도 모를 그런 곡이다. 'Smooth Operator'는 발음하기도

참 그래놔서 한글로 '스무스 오퍼레이터' 이렇게 표기하자니 무척이나 분위기 죽는다. -_-;;

 

 

 

 

어쨌든 샤데이의 이 '스무스 오퍼레이터'라는 곡을 알게된 것도 한창 80년대 팝송을 즐겨듣던

당시엔 나 역시 모르고 지나쳤다가 언젠가 영화를 통해서였던가, 어떤 계기를 통해 처음 들었을 때

재즈풍의 분위기가 물씬 멋드러지게 풍기는 이 곡에 흠뻑 빠졌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샤데이의

음반을 사들고 집에 돌아왔던 기억도 있다. 매우 감성적이고 분위기와 더불어 부드러운 목소리로

감각적으로 부르는 창법 자체도 독특했지만, '샤데이'라는 그룹이 가지고 있는 음악세계를 면밀히 살펴

보노라면 이들이 단지 팝가수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과 감각을 겸비한

꽤 능력있는 뮤지션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재즈 매니아는 아니지만, 그래도 재즈풍의 분위기가

멋드러지게 풍기는 이와같은 멋진 팝송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10월로 접어들어 가을 분위기에 걸맞는 팝송을 하나 찾다가 오늘 샤데이를 소개한다.

 

 

 

▲ 샤데이(Sade) - Smooth Operator

 

1960년 1월 16일,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에서 영국계 어머니와 나이지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출생한 샤데이 아두(Sade Adu)는, 부모의 이혼으로 4살부터 어머니와 함께 영국에서 살게

되었다. 소녀 시절부터 소울 뮤직에 심취한 샤데이는 특히 마빈 게이와 알 그린, 빌리 홀리데이 등의 가수를

좋아했다. 17세가 되어 그녀는 런던의 St. Martin's School of Art(성 마틴 예술학교)에 진학하여 의상학을 전공하며
졸업 후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던 중, 취미 삼아 런던의 로컬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현재 그녀의 매니저인
리 배리트에게 발탁되어 프라이드(Pride)라는 그룹의 보컬리스트로 프로휠드에 입문하게 되었다.

 

 

 

 

스튜어트 매튜먼(기타·색소폰), 앤드류 헤일(키보드), 폴 덴맨(베이스), 그리고 샤데이 아두가

보컬리스트로 발탁되며, 프라이드는 그녀의 이름을 전면으로 내세운 Sade로 그룹 이름을 교체한 후, 84년

데뷰 앨범 'Diamond Life'를 선보여 화려한 발돋움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가창력은 크게 돋보여

전 세계의 팝과 재즈 팬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여, 데뷰 앨범 'Diamond Life'는 유럽 시장에서 2백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수립했고, 미국 시장에서도 호조를 보여 싱글인 'Smooth Operator'가

Top-5에 오르며 플래티넘 앨범을 획득하였다.

 

 

 

 

이국적인 마스크와 재즈적 요소가 다분히 가미된 소울, 독특한 허스키 보이스, 그리고
탁월한 그녀의 작곡법이 조화를 이루어, 85년말에 두번째 앨범 'Promise'를 내놓게 되어, 이 앨범에서
더욱 원숙해진 그녀의 창법과 테크닉, 그리고 세련된 밴드의 연주로 또다시 싱글 'The Sweetest Taboo'가
Top-5에 올랐다. 아름다운 용모와 이국적 마스크로 비디오적 요소와 진한 커피빛의 허스키 보이스,
그리고 재능있는 작사, 작곡으로 오디오적인 요소를 알맞게 조화시킨 매력있는 가수이다.

 

 

 

 

샤데이

(Sade)
가수
멤버
샤데이 아두(Sade Adu, 보컬),
스튜어트 매튜맨(Stuart Matthewman, 기타),
폴 스펜서 덴만(Paul Spencer Denman, 베이스),
앤드류 하레(Andrew Hale, 키보드)
데뷔:1984년 1집 앨범 [Diamond Life]
경력:1982 그룹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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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팝의 르네상스 2013.09.07 22:06

킴 칸스(Kim Carnes)의 모든 재능이 담긴 명곡 'Bette Davis Eyes'






킴 칸스(Kim Carnes)의 모든 재능이 담긴 명곡 'Bette Davis Eyes'

 

80년대를 수놓았던 여가수 중 '킴 칸스(Kim Carnes)'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재능에 비해 상업적 성공과는 별 인연이 없었던 편이었던 그녀의 가수로서의

활동에 있어 모든 재능을 담은 대표곡 중 하나인 'Bette Davis Eyes'는 80년대를 살아본 사람이라면,

팝을 좋아하는 이상 이 곡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거라 생각된다. 당시 중1 때였던가 확실히

기억나진 않지만 어쨌든 킴 칸스가 부른 이 'Bette Davis Eyes'란 곡이 모 음료수 CF로 TV에

나오던걸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단 한번 듣고도 머릿 속에 콱 박혔던 그런 곡이다.

 

 

 

 

킴 칸스의 'Bette Davis Eyes'는 신디 사이저 멜로디가 환상적으로 배경에 깔리면서

그녀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1981년 'Mistaken Identity' 앨범을

발표하면서 싱글 커트된 킴 칸스의 'Bette Davis Eyes'는 그렇게 오랜 세월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마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처럼 상업적 수혜를 누리지 못한데 대한 보상 처럼 이 한곡으로 모든걸 한방에

날려버렸다고 할 수 있다. 이 곡은 19882년도 제24회 그래미에서 최우수 레코드와

최우수 작사, 작곡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 킴 칸스(Kim Carnes)의 인생음악에 있어 가장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Bette Davis Eyes'(1981)


오랜 세월 많은 형태의 음악 스타일로 가고 다듬어진 킴 칸스의 실력은 'Bette Davis Eyes' 이 한곡에
모두 드러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당시 모든 매스컴으로부터 확실한 주목을 받았던게 사실이다.

또 한편으로는 앨범 'Mistaken Identity'도 16주간 앨범 챠트 1위에 머물고 있던 REO Speedwagon의

'Hi-Infidelity'를 물리치고 당당히 1위에 올라 앉았다.

 

 

 

 

금발의 킴 칸스는 1954년 헐리우드에서 태어나 아주 어린시절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클래식 피아노 레슨을 받았던 킴 칸스는 어릴 때부터 작곡을 하는 등 선천적 재능을 보여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곡을 쓰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노래를 담은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Bell Records사에 발탁이 되는 행운을 잡기도 했었다. 그만큼 일찌기 음악적 재능을 마음껏

뽐내며 음악활동을 시작했고 그 무렵 훗날 남편인 작곡가 Dave Ellingson과 알게 되었으며, 이들은

킴 칸스의 첫 앨범 'Rest On Me'에서 함께 작곡, 작사를 하게 되었다.

 

 

 

▲ 킴 칸스 - Bette Davis Eyes (1981)

 

그러나 음악 전문가들이나 평론가들 사이에서 그녀의 초기활동은 좋은 평판을 받는데 반해

대중적 호응은 그닥 흥행에 있어 기대에 미치질 못했었다. 그러던 중 킴 칸스의 두번째 앨범 'Sailin''에서

싱글 커트한 'Warm Love'와 'Sailin''은 FM방송국 모든 시간의 애청곡이 될 정도로 저변적인 인기를 얻었다.

앨범 'Sailin''은 대부분의 곡들이 Kim carnes와 지금은 그녀의 남편이 된 Dave Ellingson과 함께

작곡한 곡으로 이루어졌는데 그중 'Love comes From Unexpected Place'란 곡은 1977년

동경가요제에서 우승을 차지한 곡으로 유명세를 누렸다. 이 때부터 킴 칸스는 서서히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결국 오늘 소개하려는 1981년 작 'Bette Davis Eyes'에서 빛을 발한다.

 

 

 

 

킴 칸스의 목소리는 쉰듯하면서도 아주 굵은 목소리이면서도 때론 그 이상으로

아름다운 목소리로 듣는 이들에게 독특한 매력을 전해주었다. 재능에 비해 오랜시간 동안 대중들의

인기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킴 칸스는 그래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음악적 열정을 불태웠고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Bette Davis Eyes'를 통해 모든 한을 풀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겟다. 그녀에게

오래도록 드리워져 있던 흥행에 대한 불운은 어쩌면 그동안 대중들이 알아차리기에는 너무도 깊은 내면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평론가들은 종종 말한다. 그렇게 킴 칸스의 노래는 EMI에서 발표한

첫 앨범 'St. Vincent's Count'에 담긴 곡들 모두와 더불어 진정한 힘을 뿜어내게 되었다.

킴 칸스에 대한 음악평론가들의 최종 평가는 80년대의 음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으며,
특히 컨츄리 음악의 세로운 차원을 모색한 데 의의를 두고 있다.

 

 

 

 

 

킴 칸스
(Kim Carnes)
가수
출생:1945년 7월 20일(미국)
데뷔:1972년 1집 앨범 'Rest on Me'
수상:1981년 제24회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레코드상
경력:1966~1970 그룹 '뉴 크리스티 민스트럴스'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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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팝의 르네상스 2013.09.02 11:47

제퍼슨 스타쉽(Jefferson Starship)이 부른 80년대 영화 '마네킨'의 주제곡 'Nothing's Gonna Stop Us Now'






제퍼슨 스타쉽(Jefferson Starship)이 부른 80년대 영화 '마네킨'의 주제곡

'Nothing's Gonna Stop Us Now'

 

80년대를 살아왔던 중년층이라면 '제퍼슨 스타쉽(Jefferson Starship) 혹은 '스타쉽'을

모를리가 없을 것이다. 80년대 팝송 중에서도 미국적 냄새가 상당히 풍기는 곡을 많이 불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특히 이들 그룹 '스타쉽'의 대표적 히트곡 중 하나인 'We Built This City'는 중학교 3학년 때 정말

신나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AFKN 라디오 방송을 통해 빌보드 TOP10을 청취했을 분들도 많을 텐데 아뭏든

그 당시엔 팝송을 그런식으로 접했다. 나중에 LP판으로 긴급 입수를 하기도 했었는데 근 30년이 지나 다시 들어도

여전히 신나고 촌스럽지도 않다는 것이 다른 여느 곡들과 마찬 가지로 80년대 팝송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일 것이란 생각을 또 한번 해보게 된다. 오늘 소개할 곡은 이들 '제퍼슨 스타쉽'의 노래 중 1987년에

개봉했던 영화 '마네킨(Mannequin)'의 주제곡이기도 했던 'Nothing's Gonna Stop Us Now'이다.

 

 

 

 

'제퍼슨 스타쉽'은 원래 1965년에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이란 그룹명으로

시작했었고 6인조 포크 록을 구사했었다. 마치 영화 '도어즈'에나 나올법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만큼

이 그룹은 여러번 해체위기를 겪기도 했었다. 위기와 기회를 반복하던 끝에 가장 성공적인

시기를 보내며 한국팬들에게도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던 것은 아마도 '스타쉽(Starship)'이란 이름으로

1986년 '위 빌트 디스 시티(We Built This City)가 빌보드챠트 1위에 당당히 랭크되면서일 것이다.

 

 

 

 

그리고 1987년 스타쉽의 또다른 곡 'Nothing's Gonna Stop Us Now'는 그해 가을에

개봉했던 영화 '마네킨'의 O.S.T에 삽입곡으로 잘 알려졌다. 영화 '마네킹'은 지금에 와서 보면

유치하기 그지 없을 80년대 영화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당시 이 영화는 10대 나이로 보기에 적절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름 10대 취향에 맞을만도 한 판타지 멜로물쯤으로 이야기해야

할까. 어쨌든 당시로서는 비교적 성공적인 영화였고 특히 이 영화의 주제곡으로 스타쉽이 부른

'Nothing's Gonna Stop Us Now'란 곡과 더불어 속편까지 등장할 정도로 제법 흥행에도 성공했다.

아마 기억이 가물가물한 분들에게는 포스터 한장만 보아도 감회가 새로울 듯 하다.

 

 

 

▲ 제퍼슨 스타쉽의 'Nothing's Gonna Stop Us Now', 영화 '마네킨'의 주제곡으로 쓰였다.

 

제퍼슨 스타쉽이 부른 수많은 곡들 중에 적어도 개인적 기억으로는 이처럼 영화 '마네킨'의

주제곡이었던 'Nothing's Gonna Stop Us Now'와 'We Built This City' 그리고 또 하나 'Sara'란

곡까지 세곡을 꼽고 있다. 사실 '제퍼슨 스타쉽'의 가장 유명한 곡들이라 할 수 있는데

지금에 와서 다시 들어도 매우 신선한 느낌을 전해준다. 오랫만에 80년대의 향수에 젖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란 생각에 이 세곡을 모두 소개한다. 제법 가을로 접어든 날씨가 아침부터

선선한데 We Built This City'는 신나게, 그리고 나머지 두 곡은 가을이라는 계절에 맞는 감성적

요소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들으면서 추억을 떠올려볼만 하다고 추천한다.

 

 

 

▲ Starship - We built this City (1986년 빌보드 정상에 올랐던 곡)

 

 

▲ 감미로운 분위기의 노래 'Sara'(starship-sara)

 

 

 

 

 

 

 

 

 

마네킨
Mannequin, 1987

미국
89분
1987.10.01 개봉

마이클 고틀립

앤드류 맥카시(Andrew McCarthy), 킴 캐트럴(Kim Cattrall),
에스텔리 게티(Estelle Getty), 에스텔리 게티(Estelle Getty),
제임스 스페이더(James Spader)

 

 

 

 

 

제퍼슨 스타쉽
Jefferson Starship


1965년에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이란 그룹 명으로 결성된 6인조

포크 록 그룹 제퍼슨 스타쉽(Jefferson Starship)은 현재까지 사랑과 우정을 노래하는 그룹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미국의 오하오주 신시내티 출신의 보컬리스트인 마티 밸린(Marty Balin)과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기타리스트 폴 캔트너(Paul Kantner)를 주축으로 해서 결성된 제퍼슨 에어플레인은,

워싱턴 출신의 기타리스트 요머 코코넨(Jorma KauKonen)과 베이시스트 잭 캐서디(Jack Casady),

드러머 스펜서 드라이덴(Spencer Dryden), 그리고 멤버 중 유일한 여성이며, 제퍼슨 에어플레인에

가입하기 전의 남편 제리 슬릭(Jerry Slick)과 함께 그레이트 소사이어티(Great Society)란 5인조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던 모델 출신의 여성 보컬리스트 그레이스 슬릭(Grace Slick)을 포함시켜 결성한

이들은, 웨스트 코스트 뮤직 씬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으면서 데뷰를 장식했다.

 

 

 

 

1966년 초에 발표한 데뷰 앨범 'Jefferson Airplan Takes off'는 골드 앨범으로 기록되었으며,

이 앨범에서 싱글 커트된 'Somebody To Love'는 여성 보컬리스트인 그레이스 슬릭이 남편인 제리 슬릭과

공동으로 작곡한 곡으로, 이들에게 커다란 성공을 안겨 주었다. 또한 최초로 공연을 벌였던

필모어 공연장에서는 강한 비트가 섞인 사운드와 사이키델릭 조명을 처음으로 사용해,

팝계에 커다란 변화를 주기도 했다.

 

 

 

 

1969년에는 롤링 스톤즈와 우드스탁 훼스티발에 참여하여 광적인 환호를 얻기도 했던 이들은,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갖가지 사고가 겹치기 시작해 불안한 그룹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멤버 중

잭 캐서디와 요머 코코넨이 새로운 그룹을 만들기 위해 탈퇴하는가 하면, 여성 보컬리스트

그레이스 슬릭이 남편인 제리 슬릭과 이혼하고 기타리스트인 폴 캔트너와 결혼해, 그녀를 좋아하던

마티 밸린이 제퍼슨 에어플린을 떠나, 실상 해체된 그룹으로 활동 없이 지냈다.

 

 

 

 

그러나 1974년에 폴 캔트너와 그레이스 슬릭은 세션 맨으로 활동하던 뮤지션을 모아

제퍼슨 스타쉽(Jefferson Starship)이란 이름으로 재기하면서, 데뷰 앨범 「Dragonfly」를 발표했다.

이 앨범에는 탈퇴하였던 마티 밸린이 참여하여 자신의 곡을 삽입시키기도 했는데, 1975년에 발표한

두번째 앨범 'Red Octopus'를 발매하고는 완전히 제퍼슨 스타쉽을 떠났다. 이 앨범은

제퍼슨 스타쉽 최초의 플래티늄 앨범으로 각광을 받았으며, 두번째 플래티늄은 1978년에 RCA

레코드사에서 발매한 'Earth'란 앨범이 차지하였는데, 이 'Earth'에서는 팝의 명곡으로

불리우는 'Count On Me'가 수록되어 있는 앨범으로 대단한 성공을 보았다.

 

 

 

 

그러나 1979년에는 그레이스 슬릭과 드러머 존 바바타(John Barbata)가 탈퇴하여 다시

한번 해체 위기를 맞았으나, 과거 엘빈 비숍 밴드(Elvin Bishop Band)에서 활동하던 보컬리스트

미키 토마스(Mickey Thomas)와, 저니 그룹의 드러머였던 에인슬리 덴버(Aynsley Dunbar)가 들어와

앨범 'Freedom At Point Zero'를 발표하고, 'Jane'과 'Girl With The Hungry Eyes'를 히트시켰다.
솔로로 전향한 그레이스 슬릭은 솔로 앨범 'Dreams'를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벌였으며,

마티 밸린은 1981년에 솔로 데뷰 앨범 'Balin'을 발표해, 싱글 'Hearts'를 히트시켰다.

 

 

 

 

1981년 탈퇴했던 그레이스가 다시 모습을 나타낸 앨범 'Modern Times'를 발매하고
1982년에는 'Winds of Change'가 발매되어 'Be My Lady'와 타이틀곡이 인기를 모았다. 그리고
진정한 제퍼슨 스타쉽의 마지막 앨범이라는 'Nuclear Fruniture'가 1984년 발매된다. 하지만

밴드 내에서의 위상이 흔들리던 폴 칸트너는 밴드를 탈퇴하며 남은 멤버들과 법률적인 분쟁을 벌이게 된다.

남은 멤버들은 스타쉽(Starship)이란 이름으로 순항을 계속하면서 오히려 그전보다 더욱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에 각자 활동하던 이들은 1992년 재결성하고 1995년 'Deep Space/Virgin Sky'라는

타이틀로 라이브 앨범을 발매하며 전자음과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동시에 펼치는 투어를 계속 이어갔다.

1999년 이들은 'Windows of Heaven'을 발매하여 정력적인 연주를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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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팝의 르네상스 2013.08.23 11:12

모던토킹(Modern Talking), 드라이브 할 때 듣기 좋은 80년대팝송 추천곡 'You're My Heart You're My Soul'






모던토킹(Modern Talking), 드라이브 할 때 듣기 좋은 80년대팝송

추천곡 'You're My Heart You're My Soul'

 

80년대 팝을 이야기하자면 모던토킹 처럼 30년 세월이 다 지나도록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곡들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소개하려는 모던토킹(Modern Talking)의

곡처럼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다시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곡들도

알고보면 참 무궁무진하게 많다는 사실을 매번 새로 깨닫게 된다. 다만, 기억 속을 뒤젹여 꺼내들어야

하는 만큼 이 블로그에서 영화 못지 않게 주옥같이 많은 80년대 팝송을 일일히 다소개하지 못하고

생각날 때마다 드문드문 포스팅하고 있는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모던토킹의 80년대 팝송을 소개하기에 앞서 잡설을 하나 하자면, 음악이란 것은 워낙

간사해놔서 어떤 곡을 어디에서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감성의 차이도 각양각색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고급 원두커피를 마시는데 있어 영국산 찻잔에 담아 마시느냐, 아니면 되는대로

종이컵에 받아 마시느냐에 따라 그 향과 깊이, 감흥의 정도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처럼, 음악을 감상하는 것도

똑같은 곡을 듣더라도 상황에 따라 그 느낌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게 된다.

 

 

 

 

때문에 오늘 소개하려는 모던토킹의 85년 발표곡 'You're My Heart You're My Soul'은 아무리

막귀라고 해도 최소한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빙 하면서 나름 신바람 나게 들어줄 만한 80년대 팝송이라

생각되어 오늘의 추천곡으로 소개할까 한다. 그런데 그래도 기왕이면 차를 타고 드라이빙하면서 듣더라도

엠프 정도는 있는 사운드 시스템을 통해 듣는게 몇배는 감흥이 더하다는 사실을 염두해 두었으면 한다.

요즘은 자동차에도 워낙 고급 오디오 브랜드가 많은데, 뱅앤 올룹슨이나 마크레빈슨, 렉시콘 같은 호화로운

오디오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보스 오디오 수준이라면 모던토킹의 베이스 리듬이 흥을 돋궈줄

댄스곡을 정말 흥겹게 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뭐 상황이 안되면 할 수 없지만...-_-;

 

 

 

 

모던 토킹(Modern Talking)은 80년대 중반 유럽과 아시아에서 일어난 댄스 믹스 뮤직의

바람을 타고 등장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독일의 팝 댄스 그룹이다. 디이터 볼렌(Dieter Bohlen)과

토마스 앤더스(Thomas Anders)로 구성된 이들은 70년대 후반 디스코의 열풍이 채 식기도 전에

80년대에 이르러 댄스 음악의 대 성황 속에서 85년 'You're My Heart, You're My Soul'을 발표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슈가 팝 풍의 이 댄스 음악은 전 세계 뿐만 아니라 국내의 많은 이들을

선풍적인 댄스의 열기를 몰아갔다. 이들의 히트곡은 Brother Louie, Cheri Cheri Lady, Atlantis is Calling,

You Can Win if You Want, You're My Heart, You're My Soul 등 많은 히트곡이 있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도 오늘은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You're My Heart, You're My Soul'과

'Atlantis Is Calling' 이 두곡을 소개한다. 오랜만에 80년대 팝과 더불어 그 시절 향수를

떠올려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셨으면 한다.

 

 

 

▲ 모던토킹의 '아틀란티스 콜링'(Modern Talking - Atlantis Is Calling-S.O.S. For Love)

 

 

 

▲ 98년 모던토킹의 새로운 뮤직비디오(You're My Heart, You're My Soul '98)

 

 

 

▲ 모던토킹의 롱 믹스 버전("You're My Heart, You're My Soul" Long Mix 84)

 


You're My Heart You're My Soul
  당신은 나의 심장, 나의 영혼이라네

 

내 가슴 깊은 곳엔 언제나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있어요.
내 가슴 깊은 곳엔 시작하려는 욕망이 있어요.
나는 감격해서 죽을 지경이랍니다. 나의 세속적인 환상이지요.
나는 나의 꿈속에서 살고 있어요. 당신은 나의 심장, 나의 영혼입니다.
내가 어딜 가든지 소중히 간직할 겁니다. 당신은 나의 심장, 나의 영혼.
나는 영원히 당신을 놓치지 않겠어요. 당신과 함께 있겠어요.
당신은 나의 심장, 나의 영혼입니다.
나는 점점 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그것만이 내가 알고 있는 진실입니다.
문을 닫고 나를 믿으세요.
내 가슴은 활활 타오르고 있어요.
좋다고 느끼면 당신의 가슴은 열릴 겁니다.
나는 촛불을 태워 당신의 몸을 녹이겠어요.

 

 

 

  

 

 

 

 

 


모던 토킹
(Modern Talking)
가수
멤버:디터 볼렌(프로듀싱, 작곡), 토마스 앤더스(보컬)
데뷔:1985년 1집 앨범 'You Can Win If You Want'
수상:2002년 Top Of The Pops Award Top Artist Germany
1998년 독일 Bambi Comeback of the Year
경력:1982 그룹 결성

 

 

 

 

The 1st Album (1985)
Let's Talk About Love (1985)
Ready for Romance (1986)
In the Middle of Nowhere (1986)
Romantic Warriors (1987)
In the Garden of Venus (1987)
Back for Good (1998)
Alone (1999)
Year of the Dragon (2000)
America (2001)
Victory (2002)
Universe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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