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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때리는영화/2000년대영화

노잉(Knowing, 2009), 엔딩씬을 보며 가져보는 영화적 환상

노잉(Knowing, 2009), 엔딩씬을 보며 가져보는 영화적 환상

 

영화 '노잉'을 연출했던 알렉스 프로야스(Alex Proyas) 감독은 1994년

브루스 리 이소룡의 아들 브랜드리를 주연배우로 캐스팅해 영화 '크로우'를 연출했던

감독으로 유명하다. 이후 1998년 다크시티에 이어 2003년 리버월드 그리고 2004년

윌 스미스 주연의 아이,로봇을 연출했다. 때문에 영화 '노잉'은 오로지 감독의 명성만

보고 보게 된 영화인데, 의외로 평점이 높지는 않다. 미스테리물 치고는 일단 소재자체가

매우 참신하고 신선하다고 봤는데 뜻밖이었다. 눈에 띄는 댓글 중엔 "멕시코만의 해협

기름유출을 이영화가 1년전에 예언했다는것 만으로도 평점 10점 준다."였다.

 

 

 

 

노잉은 미스테리한 사건을 통해 프리즘 처럼 인류종말 이후의 세계를

그려내기까지 했는데, 난 노잉의 엔딩씬을 보면서 정말 막연하게나마 그런 환상적인

장면에 대한 기대를 막연하게나마 꿈꾸어 보기도 했었다. 지난 7월7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사고가 있었지만, 영화 '노잉'에도 비행기가 추락하는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지하철 사고도 일어나고 엄청난 재앙이 계속 이어진다.

 

 

 

▲ 영화 '노잉'에서 항공기가 추락하는 장면. 우연이란 없다!

 

노잉의 엔딩씬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야기 되어 온

그런 종교 이상의 탈개념적 발상이 등장한다. 인류가 말해 온 천사(외계인)를 통해 구원

받아 또 다른 세계가 열리게 되는 듯한 장면을 판타스틱하게 잘 그려냈다고 보았다.

 

 

 

▲ '노잉'에서 보여준 인류종말은 태양폭풍 때문이었다. 그리고 '선택'받은 소수의

인간들만이 새로운 에덴으로 이동하게 된다는, 어찌보면 성경에 충실한 내용을 담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유독 환타지 장르의 영화가 관객들의 외면을 받는

편이기는 하다지만, 포털에 나온 평점과 댓글을 보았을 때 사람들은 정말 눈에 보이는

것들만을 믿고 살아가길 원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흔치 않지만, 그런류의 사람들은 솔직히 영화를 평가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그런 사람들은 '노잉'같은 영화를 선택할게 아니라, 자신들이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를 좀 더 신중히 선택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노잉'같은 영화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대게 영화를 창작물로서 바라보는

'느낌(Feel)'으로서의 접근이 아닌 '안다(Know)'라는 개념적 접근으로 먼저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의 사람들은 미술 전시장에 가서 작품을

바라 볼 때도 똑같은 접근을 한다. 비구상(추상)작품을 보면서 내뱉는 말이 흔히

'뭘 그린건지 모르겠어'라고 말을 하니까 말이다. 창의력 위주의 교육이 아닌

주입식 교육의 폐단 차원의 이야기이다.

 

 

 

 

 

 

영화 역시도 판타지 장르의 영화라고 한다면, 작품 그 자체에서

그려내는 이야기와 느낌들 그리고 상상의 즐거움을 만끽하면 되는 것인데

꼭 '스토리'를 이해하려고 접근하고, 자신이 관념을 기준으로 익숙한 이야기

전개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가차없이 볼멘소리를 하기 일쑤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다. 다시 말해 스토리만 가지고 모든걸 판단할 수

만은 없다. 영화 노잉은 적어도 신선한 소재에 대한 시도 자체만으로도 썩 괜찮은

 작품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태양폭풍으로 종말을 고하는 와중에서도 구원을

꿈꾸는 장면은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 아니더라도 유사이래 인류의 문명이

늘 숙원해 온 그런 염원을 신비롭게 잘 표현했다고 보여진다.

 

 

 

 

 

노잉의 엔딩씬에 등장하는 에일리언 같은 이들에 의해 주인공의

아들이 구원을 얻지만, 그들이 성경에 나오는 천사라고 말할 수도 없고 딱히

누구라고 꼬집어 말할 수도 없다. 에덴과도 같은 곳으로 새 생명을 인도하는 그들이

인간이 늘 이야기하던 하느님인지 또는 창조주인지 그 누가 알까.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현실주의를 떠나 그 순간만큼은 닫혀진 영혼의 창이라도 활짝 열어 제치고

보여지는 그대로 즐기면 그만이다. 고정관념에 스스로를 가둬둘 필요도 없다.

단지 우리는 그런 탈개념적 환상을 진지하게 묵도하는 것 뿐이다.

 

 

 

 

 

영화 노잉은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연출에 의해 그렇게 누구나 

가져보았음직한 막연한 믿음과 환상을, 혹은 개념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의 닫힌

영혼에 자극을 주기 위해서라도 이런 그림을 그려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효과적으로

잘 그려냈다. 신앙생활이 두터운 사람에게는 씨알도 안먹힐 수 있는 장면이겠지만,

사실 이런 발상은 종교행위가 아니다. 그저 영화일 뿐이고 오히려 이러한 발상과

창의적인 상상은 기독교 국가를 자청하는 나라에서 만들어졌다.  

 

 

 

 

 

 

 

노잉
Knowing, 2009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상영시간:121분
개봉:2009년4월16일

감독:알렉스 프로야스(Alex Proyas)

출연:니콜라스 케이지(Nicolas Cage-존 코스틀러),

챈들러 캔터버리(Chandler Canterbury-존의 아들 캘럽)

 

 

 

 

줄거리

 

1959년, 미국의 한 초등학교. 아이들이 그린 미래의 모습이 타임캡슐에 담긴다.

그로부터 50년 후인 2009년. 타임캡슐 속에서 알 수 없는 숫자들이 가득 쓰여진 종이를

발견한 캘럽은 그 종이를 MIT 교수인 아버지 테드(니콜라스 케이지 분)에게 전해준다.

종이에 적힌 숫자들이 지난 50년간 일어났던 재앙을 예고하는 숫자였음을 알게 된

테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고를 막기 위해 필사적인 사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주인공 존 코스틀러(니콜라스 케이지)에 대해

 

'노잉'의 주인공 존은 비극적 우연의 피해자이다. MIT 교수이자 천체물리학자인

그는 호텔 화재 사고로 아내를 잃었다. 그래서 지금은 아들 케일럽을 혼자 키우며 살고

있고, 어느 날 그는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우주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가지 상반된 시각에

대해 얘기한다. 우주 현상에는 어떤 목적이 있으며, 그것은 이미 결정되고 있고,

예정되어 있다는 결정론과 모든 건 단순히 우연의 일치일 뿐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복잡하고 피할 수 없는 화학적 사건과 생물적 변화의 결과일 뿐이지 거창한 의미도

없고 의도도 없다는 무작위론이다. 이 중에서 존은 무작위론을 신봉한다.

사고로 아내를 잃은 후 무작위론에 대한 그의 신념이 더욱 굳어졌다.

그가 목사인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이런 신념의 차이 때문이다.

 

 

 

 

영화 '노잉'에는 ost로 두 곡의 클래식 음악이 나온다. 구스타프 홀스트의 관현악

모음곡 '행성' 중 '목성'과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의 2악장이다. 이 중에서 영화의 내용과

직접적으로 부합되는 것은 물론 홀스트의 '목성'이다. 1959년, 윌리엄 도스 초등학교에서

개교기념일 행사의 일환으로 50년 후에 개봉될 타임캡슐을 묻을 때, 학생들로 구성된

관악 밴드가 연주하는 곡으로 나온다. 영화의 성격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 홀스트 (Gustav Theodore Holst)- The Planets Op.32 'Jupiter'

 

※ 홀스트 Gustav Theodore Holst(1874.9.21~1934.5.25)

홀스트는 본 윌리엄스와 더불어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