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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때리는영화/한국영화

고지전(高地戰),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의 상흔

고지전(高地戰),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의 상흔

 

영화 포스팅하면서 아마도 한국영화를 작심하고 쓰는건 고지전이 처음일 듯 하다.

2011년에 개봉한 고지전은 당시 '최종병기 활'이나 여름철 헐리우드 블럭버스터 등의 기대작들이

줄지어 늘어서던 여름방학 시즌에 개봉했던 것이 악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게다가 다소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었고, 과거 국민의정부나 참여정부 때와 달리 시대적으로 남북간의

이념이나 전쟁 등을 소재로 한 영화들에 관객들은 어느정도 식상함과 진부함 등을 느끼던 터라

정말 개봉시기에 있어서는 더럽게도 운이 없었던 영화가 아닐까 큰 아쉬움을 가져본다.

 

 

 

 

그도 그럴것이 '고지전'은 간만에 이런 쟝르에서 만나 본 영화 중 상당히 수작이었고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서도 스텝과 배우 모두 억세게도 고생 꽤나 했을법 한데 흥행과 상복에

있어서 많은 것들이 빗겨나갔다는 생각을 하게되니 그 아쉬움이 더 없이 크게 느껴진다.

예전에 박찬욱 감독이 연출해 2000년도에 개봉했던 '공동경비구역 JSA'에서의 낯익던 부분도

나오는 걸로 봐서 작가가 누구일까 보았더니, 마침 그 영화의 원작을 제공했던 박상연

작가가 고지전 각본을 쓴 것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되었다.

 

 

 

 

한국은 공식적으로 말하자면 아직 전쟁이 끝난 나라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한참 전쟁을 하다가 잠시 '휴전'을 선언해 놓고 살다보니 반세기를 넘긴 상태가 되었고

이제는 분단이 고착화 단계에서 벌써 이후로 몇 세대 째를 넘기고 있는 것이다. 

전쟁은 어떤 이유와 명분을 떠나서도 결국에 남는건 오로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상처와

흔적만을 남긴다. 그게 벌써 수십년이 지나 할아버지에서 아들로 손자로 이어내려오고 있고 

이내 백년전 전쟁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동족간의 증오와 원망 적개심이 거듭될수록

민족(民族)이란 개념자체가 영영 사라질 듯 하다. 고려의 태조 왕건이 건국한 이래 천년의

명맥을 이어온 나라가 이렇게 찢어진건 분명 불행이다. 영화 '고지전'을 통해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이고 왜 같은 민족끼리 그렇게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났었는지 의미심장하게

생각해 볼 일인듯 하다. 위정자들의 야욕과 그들의 명분 속에 무고한 젊은 목숨이 너무도

많이 죽어나갔다. 허무하고도 덧없게, 왜 그래야 하는지조차도 결국엔 서로

잊어버린 채 전쟁의 광기에 휩싸여 그렇게들 사라져갔다.

 

 

 

고지전

高地戰, The Front Line, 2011

 

개봉: 2011.07.20

감독: 장훈

상영시간: 113분

출연:

신하균(강은표), 고수(김수혁), 이제훈(신일영)
류승수(오기영), 고창석(향효삼), 류승룡(헌정윤),
김옥빈(차태경), 이다윗(남성식), 조진웅(유재호 대위)

 

나만의 평점: 9.08 ★★★★☆

 

 

▲ [Eng Sub] The Front Line (2011) Trailer | 고지전 (2011) 예고편

 

 

 

 

 

 

 

 

 

 

 

 

 

 

 

고지전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휴전협정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애록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남과 북의 군사적 극한대치를 다루고 있다. 이 애록고지를 사수하기 위한 악명높은 '악어중대'에

적과 내통하는 자가 있다는 첩보에 따라 방첩대 강은표 중위가 이곳을 방문하면서 죽은줄로만

알았던 친구 김수혁을 만나면서부터 베일에 쌓인 이곳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2011년 개봉한

고지전은 쇼박스(주) 미디어플렉스가 100억 원을 투자하고 TPS Company가 제작한 영화이다.

2011년 제20회 부일영화상 최우수 작품상과 남우조연상(고창석), 신인남우상(이제훈),

미술상(류성희) 등을 수상했다. 시기적으로 '개봉 날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뒤늦게 깨닫게

해준 영화로 큰 아쉬움을 남긴다. 예전에 강재규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에 견주자면,

그보다 못할 것도 없는 스케일과 효과 등 썩 괜찮았는데 역시도 아쉬움을 남긴다.

 

 

 

 

 

 

 

 

 

 

 

 

 

시대적 분위기나 효과를 살리는 것도 그렇고 미술상을 받을만도 한 것 같다.

CG 또한 과거와 비교하면 너무나 깜쪽같다. 한국영화가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하면서

마찬가지로 수준급 이상으로 함께 성장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인 듯 하다. 고지전 시작과 함께

영화의 오프닝장면에서 울려퍼지던 신세영씨의 '전선야곡'과 1953년도 거리의 풍경은

전쟁이 종반으로 접어들고 휴전협정이 한창 진행되던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북진통일'을 써붙인 피킷을 들고 저 때는 시위가 자주 있었다고 한다. 당시엔 그만큼 연합군과

함께 얼마든지 전세를 뒤짚고 이 참에 해방과 동시에 갈라졌던 38선을 허물어 '통일'을

이룰 수 있을거란 기대감이 크게 고조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때문에 휴전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그만큼 컸었다.

 

 

 

▲ Serenade in front line - 전선야곡(유튜브에 eun969님이 올린 영상)

 

 

 

 

 

 

 

 

 

 

▲ '고지전'의 장훈 감독


고지전을 연출한 장훈 감독은 1975년 5월 4일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후 김기덕 감독에게 메일을 보내 함께 일하고자 하는 뜻을 비추었던 것이

인연이 되어 연출부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후 김기덕 사단 가운에 한명으로 2005년 영화 '활'에서

조감독을 거친 이후 2008년 김기덕 감독이 각본을 맡은 영화 '영화는 영화다'를 통해 본격적인

감독활동을 시작했고 2010년 '의형제'를 통해 큰 가능성을 열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김기덕 감독과의 불화설도 있었고 또 무엇보다 김기덕 감독이 감독한 모든 영화의 관객수보다

많은 관객수를 기록했다며, 차라리 대중성이 약한 김기덕 감독을 능가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는 누가 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 영화계에서도 분명 충무로를

중심으로 한 주류와 비주류로 나뉘어 영화제 조차도 공정성이 좀 떨어진다는 잡음도

들리기는 하지만, 김기덕 감독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어지간한가 보다. 어쨌거나 결국은

모두가 한국영화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원만하게 거듭나길 바랄 뿐이다.

 

 

 

 

▲  고지전의 해외버전(예고편). The Front Line Trailer (Go-ji-jeon)

 

 

 

 

 

 

 

 

 

'고지전'에는 빛나는 배우들이 참 많이도 나온다. 신하균은 두말하면 잔소리로 아예

말이 필요없는 배우이고 고창석의 재발견, 류승수도 그렇고 출연하기만 했다하면 천만관객 따놓는

배우 류승룡도 그렇고, 조진웅의 발견과 인상적이었던 이제훈의 연기도 그렇고. 특히 이제훈은

차기작의 선택에 좀 신중을 기했으면 하는 개인적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지전'에서 가장 빛났던 배우는 역시도 고수다. 벌써 데뷔한지도 꽤

오래되었지만, 그렇다고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작품도 딱히 선뜻 나타나지도 않았었는데

이제서야 그의 진가를 보여준 걸까? 사실 고수가 처음 등장했을 때 난 홍콩배우인줄 알았다.

생긴게 전형적인 남방계열 미남이다. 일본이나 홍콩 대만에 가면 이런 생김새를 가진 미남들이

종종 눈에 띈다. 실제로도 금성무나 곽부성 등의 배우들을 보면 이런 남방계 미남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생긴거에 반해 연기력부재도 따라다녔지만

고지전에서는 제법 봐줄만 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라는 욕심이 생긴다.

 

 

 

 

 

 

 

 

 

 

 

 

 

 

 

 

 

 

  

 

 

▲ 좌측 위로부터 신하균(강은표 중위), 고수(김수혁 중위), 이제훈(신일영 대위),

이다윗(남성식 일병),류승룡(헌정윤 대좌), 김옥빈(차태경), 류승수(오기영), 고창석(양효삼),

 

 

 

 

 

그리고....총맞아 죽는 조진웅(유재호 대위) -_-;;

 

고지전은 개인적으로 그렇게 본다. 딱 90분 상영하고 끝내주었어야 좋지 않았을까.
관객은 거기까지만 보았더라면 더러 아쉬움이 남을지라도 조금만 그 대목에서 마무리를

잘 했더라면 덜 피로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감독 입장에서나 원작자 입장에서는

해야할 말이 더 있었겠지만, (이건 감독의 재량) 나머지 타이밍은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관객들에게는 참 성질나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다고 본다. 이후 부분이

꼭 필요했었을까 싶다. 차라리 고수가 죽는 이야기와 이후 수습 등으로 끝내면 못내 아쉬움은

남을지언정 신하균을 통한 나레이션 처리만 잘해주어도 그리 나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장훈감독은 기어이 싹다 죽였다. ㅠ.ㅠ 아쉬움이 좀 남는다.

좀 더 노련하게 마무리지었더라면...

 

 

 

 

 

 

류승룡...인민군 장교로 출연해 전쟁발발 직후 완전 자신감 쩔었었다.

포로로 잡힌 신하균을 풀어주기까지 하는 대담하고 통큰 여유를 보여주던 그가 뭐랬더라?

 

"니들은 와 싸우는디도 모르디?"

 

(씨익~!)

 

"이 전쟁....일주일이믄 끝나게 대있어!"

 

 

완전 쩌는 자신감으로 썩소까지 날렸던 그가....

 

 

 

 

 

 

 

 

 

 

 

 

 

 

이게 모니~ 마지막엔 자기도 모르겠단다. 왜 이렇게 된건지....ㅠ.ㅠ

 

 

초반에 류승룡이 타이트하게 머리깎고 인민군장교 역활을 할 때는 아마도

저쪽 동네에서 '최종병기 활'을 찍고 있지 않았을까 한다. 청나라 장수 역을 해야했으니까.
때문에 마지막 장면은 정말 마지막에 찍거나 영화 초반에 찍었을 수도 있겠다. 과거에

영화 '올드보이'에서 박찬욱 감독이 최민식에게 했던 일화가 문득 떠오른다.

15년간 갇혀있던 사람연기를 해야니까 살을 쫙 빼고 오라더라. 그래서 정말 지옥의 다이어트를

통해 영화를 다 찍고 났더니 극 초반 납치되기 전에 살찐 모습을 찍어야니까 다시

일주일 만에 도로 살 찌워서 오라고 했단다. -_-;;

 

 

 

▲ 전선야곡 - 신세영 [신세영,1951]

 

 

 

본명은 정정수이며 가수, 작곡가로 활동했다.

1926년생이며 1948년 데뷔했다. 고지전 영화가 개봉하기 1년전인 2010년 8월 22일

타계했다. 2010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끝으로 지금은 별세하신 신세영님의 원곡 '전선야곡'을 들으며 오늘 포스팅 맺는다.

영화 '고지전'에서 숱하게 울려퍼지던 주제곡이기도 하다. 특히 극 종반에 안개속에서 전 장병이

적과 아군 구분 없이 구슬프게 모두 따라 불렀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