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Pearl Harbor), 히로시마 원폭투하 이후 숙명적 방사능 재앙을 맞은 일본
'진주만'(Pearl Harbor) 영화가 나온지도 어느덧 1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언제나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만들어 온 마이클베이 감독의 야심작이었지만, 영화 진주만은 사실
평론가들로부터 그리 썩 좋은 평을 듣지는 못했다. 상영시간이 무려 3시간이나 되는 이 영화는 그래도
30~40분간에 걸쳐 보여지는 진주만 폭격 장면만큼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꼽힌다.
8월 들어 이 '진주만' 영화가 떠오른 이유는 요즘 계속되는 일본의 망언과 영토분쟁, 역사문제 외에도
후쿠시마에서 계속되고 있는 방사능 누출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엇그제 8월6일이 히로시마 원폭투하가
있은지 올해로 68년되는 날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인류 역사상 최초의 가공할 공격으로
히로시마에서만 16만 6천명, 나가사키에서 8만명이 원폭이 투하된 날로부터 4개월 이내에 죽었다.
여기에 조선에서 건너간 교민 2만여명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진주만'은 19세기 이전까지 풍부하게 나던 진주를 만들어 내는 굴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1908년부터 건설된 미 해군 기지와 조선소가 있는 전략지역이기도 했다. 일본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미국 또한 역사상 유례없는 본토 침략을 당했다는 사실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인류 최초의 공격용
원자폭탄이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기념비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즉, 일본의 진주만 폭격은
미국을 제2차 세계대전의 무대로 끌어내게 만든 중요한 사건이었고, 영화 '진주만'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속수무책의 공격으로 무려 2,403명의 사망자를 냈던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러고 보면 한편으로 진주만 폭격은 초일류강대국이라고 하는 미국을, 그것도
당시 조선은 일본에게 식민지로 전락해 고작 전동차나 굴리던 시절에 항공모함까지 동원해
태평양을 건너가 미 본토를 공격했던 일본의 무모함도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긴 중국과도 붙고
러시아와도 붙어 이기며 아시아 전역을 휩쓸고 다녔으니 어지간히도 기고만장했을 것이다. 결국
일본은 영화 '진주만'에서 보았던 그대로 미국을 충분히 당황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로 매우 비싼 댓가를
치룬 나라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오늘날도 가장 최근 2011년 311 대지진의 여파로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나 일본의 전 영토가 방사능을 뒤짚어 쓰고 있는 재앙를 겪고 있다.
히로시마 원폭투하로부터 68년이 지난 지금 당시와 공통점을 꼽자면 일단 두 사건 모두
핵 방사능과 관련됀 사건이라는 점과 또 하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그런 초유의 재앙사태를 맞이하게
된 책임이 자신들 스스로에게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 HBO의 밴드오브 브라더스 이후 최고의 전쟁영화 '퍼시픽(Pacific)' intro 영상
진주만을 폭격한 건 1941년 12월7일 이른 아침의 일이었다. 수천명의 희생자를 낳으며 불시에
본토를 공격당한 미국은 본격적으로 2차 세계대전(태평양 전쟁)에 뛰어들며 독일에 이어 일본을 잡기위한
기나긴 여정에 나서고, 이 과정을 그린 영화로는 밴드오브브라더스(Band Of Brothers)로 유명한 HBO가 제작한
미드 '퍼시픽'(The Pacific)을 통해 그 지난했던 과정을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미드 퍼시픽에서도 짧게
나오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오키나와까지 밀고 올라간 미국은 1945년 8월 6일 월요일 미국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의 명령으로 히로시마에 "리틀 보이"(Little boy)가 떨어진다. 그리고 3일 후인 8월 9일
"팻 맨"(Fat man)이 나가사키에 투하됐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자세한 기술은 아래 위키백과사전의
내용을 그대로 발췌하여 옮기니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현지 시간 오전 8시 15분, 최초의 핵무기인 "리틀 보이"가 일본 본토 히로시마 상공 580m에서
폭발하였다. 히로시마가 목표물이 된 것은 이전까지 공습을 받은 적이 없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폴 티베츠 중령이
조종하는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Enola Gay)호에서 투하한 폭탄이었다. 에놀라 게이는 2기의 동료 공군기,
한 대는 촬영, 다른 한 대는 과학적 측정을 위한-와 함께 티니안 섬의 미 공군 기지에서 출발하였다.
무기는 비행 중에 핵탄두를 장착하였으며, 승무원들은 목표 지점에 도착하기 30분 전에 안전 장치를
제거하였다. 일본은 3대의 공군기가 본토에 접근하는 것을 추적하고 공습 경보를 발효했다가 곧 취소하였다.
이처럼 소규모 편대가 위협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폭격기를 방해하기 위한 전투기도
보내지 않았다. 고도 9,750m 상공에서 투하된 폭탄이 자동 폭발 고도에 도달하기까지는 꼭 57초가 걸렸다.
이로 인해 발생한 구름은 18㎞ 상공까지 치솟았다. 폭발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1.6㎞ 이내 모든 것이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총면적 11㎢가 피해를 입거나 화재가 발생하였다. 모든 건물의 90퍼센트가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일본 당국은 폭발 당시 히로시마에 약 25만 5,000명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였으며,
7만 명이 초기 폭발로 인해 사망하였다. 1945년까지 방사능 피폭으로 거의 이와 맞먹는 숫자의 사람들이
사망하였다.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사망과 질병은 오늘날까지도 끊이지 않고있다.
▲ 히로시마 원폭투하를 다룬 BBC 다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 폭탄 투하(ㅡ原子爆彈投下, 영어: Atomic bombings of
Hiroshima and Nagasaki)는 제2차 세계대전이 다 끝나갈 무렵 1945년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 시와
나가사키 시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선행으로, 당시 미국은 8월 6일 히로시마 시에 첫 원자 폭탄을 떨어뜨렸고
8월 9일 나가사키 시에 두 번째 폭탄을 떨어뜨렸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라고도 한다.
이처럼 실전용 원자폭탄의 개발과 관련한 일련의 일들은 맨해튼 프로젝트라고 불려졌다.
원자폭탄 두 개를 떨어트리기 전까지 6개월간 미국은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도시 67개에
전락상 집중하여 폭격하였다. 영국, 중화민국과 함께 미국은 포츠담 선언에서 일본에게 무조건 항복하라고
강요하였으나 일본은 항복하지 않았다. 1945년 8월 6일 월요일 미국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이 명령하여
원자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가 히로시마에, 3일 후 8월 9일 "팻 맨"(Fat man)이 나가사키에 투하됐다.
이 원자폭탄 두 개는 인류사 최초로 전쟁에서 일반 시민 수십만 명 학살에 쓰인 원자폭탄이었다. 원자폭탄 투하가
결정된 히로시마는 당시 일본군 제2사령부이면서 통신 센터이자 병참 기지였으므로, 일본의 군사상으로
중요한 근거지였다. 원자폭탄을 떨어뜨리고서 2개월에서 4개월간, 히로시마에서는 시민이 90,000명에서
166,000명이 사망했고 나가사키에선 시민이 60,000명에서 80,000명 사망했으며 그중 각 도시
사망자 절반은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당일에 집계되었다.
히로시마 의료기관은 원폭투하 탓으로 60%가 섬광화상으로, 30%가 건물 잔해물로, 10%가
기타 원인으로 죽었다고 한 이 보고가 있은 후 다음 달에 더 많이 죽었는데 이는 원폭투하 탓에 후폭풍과
피폭과 기타 질병 합병증과 부상 탓에 발생했다. 미국에선 이 사건이 최단기에 가장 많은 시민을 죽였다고
평가하였고 15%에서 20%가 피폭으로, 20%에서 30%가 섬광화상으로, 50%에서 60%가 질병과 부상으로
죽었다고 보고했다. 사망자들 중 대부분은 보통 시민들이었다. 나가사키 원폭투하 6일 후 8월 15일
일본 제국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으며, 9월 2일 항복 문서에 사인하면서
공식적으로 태평양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알렸다.
그리고 히로시마 원폭투하를 통해 우리나라 '조선'은 얼떨결에 해방을 맞이했다.
한창 상해임시정부를 거점으로 독립군을 모아 일대 반격을 준비하며 대대적인 항일투쟁을
기획하던 중이었었다. 때문에 조선은 이 일로 일제로부터 벗어날 수는 있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영광된
순간은 아니었다. 오히려 객관적 시각으로 접근할 때 또다른 불행이 엄습하였으니 그게 바로 한 민족이 3
8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뉘는 것이었고, 이념대립은 기어이 625전쟁발발로,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대립하는 상황을 가져오게 된다.
미국이 우리의 최대 우방국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이 과거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처절한
싸움 끝에 7월4일 독립기념일을 얻어냈듯이 우리도 '815 광복절'이 아닌, 자력으로 얻어낸 당당한
'독립기념일'을 얻어낼 수 있어야 했고, 히로시마 원폭투하를 통해 아이러니 하게도 기회를 날리게 된다.
물론, 현대사를 평가하는데 있어 의견은 분분하겠지만,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결국 조선을 삼킨 일본놈들을 욕하기에 앞서 나라를 그 지경으로 망친 놈들을 나는 더 욕한다. 우리가
순진하고 마냥 착한데 저절로 먹힌 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틀려먹어서 그리 되었던 것이니까 말이다.
지금도 여전한 탐관오리들, 위정자들, 나라를 배신하는 개새끼들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구한말 그 때나 지금이나 거기서 거기이니까 말이다.
한편 독일은 이미 5월 7일 유럽에서 항복을 선언했다. 이 원폭투하로 인해 전후 일본은
"핵무기를 만들지 않으며, 갖지 않으며, 들여오지 않겠다"는 비핵 3원칙을 수용했다. 이 원자폭탄 투하 사건은
윤리적 문제와 "당시 미국이 정말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주제로 아직까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몇일전 히로시마 원폭투하 당일인 8월6일 일본 아베정권은 이러한 논리를 넘어 그 이유에 대한 내용은
쏙 뺀 채 오로지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원폭피해를 입었다는 '피해자로서의 일본'만을 강조했다. 그리고
지금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또다른 방사능 찜질을 하고 있지만, 이 또한 311대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쓰나미가
1차 원인이었다고는 하나 원전 마피아들에 의해 방만한 운영을 해왔던 잘못으로 인한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는
사실도 철저히 숨겨왔다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처럼, 일본은 숙명적으로 원폭과 원전 방사능으로 부터
뗄래야 뗄 수 없는 운명을 안고 스스로 망국을 향해 달려가는 국가를 자처해 왔다. 영화 '진주만'은 결국 오늘의
일본이 스스로 자초한 망국적 배경들에 대해 돌아볼 수 있게 해준 영화였다고 말하고 싶다.
진주만
Pearl Harbor, 2001
미국
상영시간:177분
개봉:2001년6월1일
감독:마이클 베이(Michael Bay)
제작:제리 브룩하이머(Jerry Bruckheimer)
출연
벤 애플렉(Ben Affleck-Capt. 레이프 맥컬리), 조쉬 하트넷(Josh Hartnett-Capt. 대니월커),
케이트 베킨세일(Kate Beckinsale-간호사 에블린 존슨), 쿠바 구딩 쥬니어(Cuba Gooding Jr.-도리스 밀러),
톰 시즈모어(Tom Sizemore-Sgt. 얼 시스턴), 존 보이트(Jon Voight-루즈벨트 대통령),
콜므포어(Colm Feore-Adm. 허스밴드), 알렉볼드윈(Alec Baldwin-Lt Col 제임스 둘리틀)
▲ 영화 '진주만' 오피셜 트레일러-Pearl Harbor (2001) Official Trailer
진주만 폭격에 맞서 싸운 두 명의 미 조종사가 1942년 4월 18일 도쿄와 주요 도시를 폭격한
'둘리틀공습(Doolittle raid)'에 참가하기까지를 그린 작품으로, 약 1억 4천만 달러의 제작비와 7천만 달러의
홍보비가 쓰였다. 하지만 지나친 미국식 영웅주의로 전쟁을 미화시킨 이 영화는 평론가들로부터
"공허한 애국심 홍보 영화"라는 식의 혹평을 받으면서, 3시간의 상영시간 중 30∼40분의 진주만 폭격장면
외에는 볼 것이 없다는 평가를 들었다. 2002년 제74회 아카데미상 음향편집상을 수상하였다.
▲ Pearl Harbor - D.Day [1080p HD]
▲ 반격 Tokyo Bombing 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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